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
Organization of Ukrainian Nationalists
1929년 2월 빈에서 우크라이나 군사조직(UVO)과 민족주의 학생 단체들이 통합해 세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 조직. 민족 혁명과 민족 독재를 거쳐 통일 독립국가를 세운다는 목표 아래 동갈리치아와 볼린을 중심으로 지하 활동·테러·정치적 암살을 벌였다. 1940년 반데라파(OUN-B)와 멜니크파(OUN-M)로 갈라졌고, 1993년 독립 우크라이나에서 사회단체로 합법화되었다.
상세
우크라이나어 출처는 OUN이 스스로를 정당이 아니라 운동으로 규정하고 갈리치아의 합법 우크라이나 정당들을 협력주의자로 비난했다고 적는다. 조직은 우크라이나 군사조직과 학생 민족주의 단체들의 통합으로 생겼고, 1929년 2월 빈 대회에서 예우헨 코노발레츠가 지도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처음에는 드미트로 돈초우의 민족주의를 이념적 근거로 삼았으며,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역사연구소는 OUN을 「극우」 정치체제의 민족국가를 지향한 「우익 급진 운동」으로 규정한다.
폴란드 지배 아래 갈리치아와 볼린에서 OUN은 폴란드인 지주 영지 방화, 국립학교와 전매품 보이콧, 자금 확보를 위한 관공서 습격 등 수백 건의 사보타주를 벌였다. 역사가 야로슬라우 흐리차크의 집계로 민족주의 지하조직은 63건의 암살 시도를 했고, 희생자의 다수는 우크라이나인이었다. 폴란드 내무장관 브로니스와프 피에라츠키 암살과 관련해 1935~1936년 바르샤바에서 스테판 반데라 등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1938년 소련 정권은 로테르담에서 코노발레츠를 암살했고, 안드리 멜니크 대령이 지도부를 이어받았다.
1940년 2월 반데라 지지자들이 따로 혁명지도부를 세우면서 조직이 갈라졌고, 1941년 4월 크라쿠프 대회는 반데라를 지도자로 뽑았다. 두 분파 모두 독소 전쟁을 이용해 나치 독일과의 동맹으로 독립국가를 세우려 했다. 1941년 6월 30일 반데라파는 르비우에서 「우크라이나 국가 재건 선언」을 발표했으나, 반데라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1942년 초 작센하우젠 수용소에 갇혔다. 1942년 가을 우크라이나 봉기군(UPA)이 창설되었고, 전쟁 말기 반데라파는 로만 슈헤비치가 이끄는 지도부 아래 활동했다.
전후 두 분파의 지도자는 서방 연합국 점령 지역에 머물렀고, 조직은 1950년대까지 무장 지하투쟁을, 그 뒤에는 비무장 운동을 이어갔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반데라는 1959년 뮌헨에서 KGB 요원에게 암살되었다. 우크라이나 독립 뒤 OUN은 구조를 키이우로 옮겨 멜니크파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반데라파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회의」 당을 통해 활동했고, 1993년 사회단체로 합법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