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노동당
Party of Labour of Albania
1941년 11월 8일 알바니아 공산당으로 창당해 1948년 이름을 바꾼 알바니아의 집권 정당.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어 1944년 권력을 잡았고 1991년까지 유일 합법 정당으로 통치했다. 엔베르 호자가 1985년 죽을 때까지 이끌었으며, 1991년 6월 13일 알바니아 사회당으로 재창당했다.
상세
1920년대 알바니아는 공산당이 없는 유일한 발칸 국가였다. 1928년 8월 소련에서 첫 알바니아 공산당이 만들어졌지만, 1941년까지 국내에는 통일 조직이 없었고 공산주의자들은 서로 반목하는 작은 집단으로 흩어져 있었다.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 뒤 티토가 코민테른 지시에 따라 보낸 밀라딘 포포비치와 두샨 무고샤가 이 집단들을 묶었고, 1941년 11월 8~14일 창당 회의에서 엔베르 호자가 지도자가 되었다. 알바니아어 출처는 1948년까지 당 회의 문서를 유고슬라비아 쪽이 베오그라드의 지시에 따라 준비했다고 적는다.
당은 1942년 결성된 민족해방운동의 중심 세력이었고, 1943년 8월부터 발리 콤베타르 등 다른 알바니아 세력과 싸웠다. 1944년 11월 29일 독일군을 몰아낸 뒤 당은 다른 동유럽 나라와 달리 연립정부 단계 없이 권력을 잡았다. 1945년 12월 2일 제헌의회 선거에서 당이 이끄는 민주전선의 단일 명부가 93.7%를 얻었다. 러시아어 출처는 1945년 당원이 2000명을 조금 넘었다고 적으며, 집권 시작을 영어 출처는 1944년, 러시아어 출처는 1945년으로 적는다.
1947년 7월 스탈린이 농민이 다수인 나라 사정을 들어 개명을 권했고, 당은 1948년 제1차 대회에서 알바니아 노동당이 되었다. 같은 해 코치 조제 등 「티토주의자」가 숙청되었다. 스탈린 사후 당은 소련 블록에서 가장 강경한 반수정주의 정당이 되었고, 1961년 흐루쇼프와 결별하며 리리 벨리쇼바, 코초 타슈코 등 친소파를 숙청하고 중국 편에 섰다. 1968년 바르샤바 조약에서 공식 탈퇴했고, 마오쩌둥 사후 중국과도 멀어져 1978년 독자 노선을 선언했다.
1985년 호자가 죽자 라미즈 알리아가 제1서기가 되어 점진적 개혁에 나섰다. 1990년 반공 시위가 번지자 알리아는 당의 권력 독점 포기와 복수정당제 도입을 발표했는데, 그 날짜를 영어 출처는 1990년 12월 11일, 러시아어 출처는 12월 12일로 적는다. 1991년 3월 31일 첫 복수정당 선거에서 당은 공식 집계 56.2%로 이겼지만, 이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 아니었다.
1991년 6월 13일 임시 대회에서 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버리고 알바니아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회당은 이후 알바니아의 두 주요 정당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러시아어 출처에 따르면 1992년 3월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긴 뒤 알리아 등 옛 지도자들이 권력 남용 등의 혐의로 수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