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 파업
Sit-down Strike
작업장을 떠나는 대신 그 안에 머무르며 벌이는 파업. 공장 안에 있음으로써 대체 인력 투입을 물리적으로 막고, 기계를 지킴으로써 파괴자라는 비난을 차단하며, 생산수단에 대한 사실상의 통제를 시위한다. 1920년 이탈리아의 공장점거가 선례지만, 1936년 프랑스 5~6월 파업에서 대중적 전술로 확립되어 같은 해 말 미국 플린트의 GM 공장 점거로 이어졌다.
상세
왜 공장 밖이 아니라 안인가
전통적인 파업의 약점은 공장 문 앞에 있다. 노동자들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사용자는 대체 인력을 들일 수 있고, 파업 대오는 피케팅으로 그것을 막다가 경찰과 충돌하게 된다. 점거는 이 문제를 뒤집는다. 노동자들이 기계 옆에 머무르는 한 공장은 돌릴 수도 비울 수도 없고, 이들을 끌어내려면 국가가 사유지에 병력을 투입하는 부담을 져야 한다. 동시에 점거자들은 기계와 재고를 지킴으로써 파괴자라는 오래된 비난을 무력화한다. 1936년 프랑스의 점거 공장들에서 규율은 파업위원회가 세웠고, 술은 금지되었으며, 설비는 파업 전보다 깨끗하게 관리되는 일이 많았다.
점거에는 제도 요구를 넘어서는 차원이 있었다. 자기가 일하는 공간을 자기 발로 걸어 다니고, 작업장에서 무도회를 열고, 명령 없이 하루를 조직하는 경험이다. 르노에서 일했던 시몬 베유는 1936년 6월의 점거를 「순수한 기쁨」이라 적었고, 연구자들은 이 축제적 성격을 점거 파업이 남긴 가장 독특한 기록으로 꼽는다.
1936년, 두 나라
프랑스에서 점거는 1936년 5월 르아브르의 브레게 공장에서 시작되어 6월 한 달 파업 12,142건 중 8,941건이 점거를 동반하는 규모로 폭발했고, 마티뇽 협정과 유급휴가·주 40시간제 입법을 끌어냈다. 블룸 정부는 점거가 명백한 소유권 침해라는 사용자들의 항의에도 강제 해산을 거부했다. 총리 자신이 의회에서, 법을 집행하겠다고 약속하되 「피로써 집행하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같은 해 12월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GM 노동자들이 같은 전술로 공장을 점거했다. 44일의 점거 끝에 GM은 1937년 2월 전미자동차노조(UAW)를 교섭 상대로 인정했고, 점거 파업은 미국 산업별 노조운동(CIO)의 도약대가 되었다. 그러나 1939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팬스틸 판결로 점거 파업을 불법으로 확정했고, 프랑스에서도 판례는 점거를 소유권 침해로 다루어 왔다. 전술의 힘이 합법성의 바깥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그 뒤로도 변하지 않았다.
어디로 이어졌나
계보는 앞뒤로 뻗는다. 1920년 9월 이탈리아 북부에서 금속노동자 40만 명이 공장을 점거하고 일부는 생산까지 이어 갔던 「공장점거」(occupazione delle fabbriche)가 선례였고, 그람시의 공장평의회론이 그 경험에서 나왔다. 1936년 이후로는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1,000만 총파업의 상당 부분이 다시 점거의 형태를 취했고, 1970~80년대 한국과 폴란드의 노동운동에서도, 2008년 시카고의 리퍼블릭 윈도우 공장에서도 같은 전술이 되살아났다. 작업장을 떠나지 않는 파업은,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직접적인 형식으로 남아 있다.
관련 용어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Julian Jackson, The Popular Front in France: Defending Democracy, 1934–38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 Simone Weil, La Condition ouvrière (Gallimard, 1951) — 1936년 6월 점거에 관한 서한
- Sidney Fine, Sit-down: The General Motors Strike of 1936–1937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69)
- Paolo Spriano, The Occupation of the Factories: Italy 1920 (Pluto Press,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