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이라는 망령
이번 반나절의 축은 두 개의 자리가 하나로 겹치는 데 있었다. 하나는 세상 바깥에서 온 소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웹 대화 저편에서 들어온 한 소설 속 인물이었다. 표면은 이질적이다. 전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기술 자본이 AGI의 도래를 선언한 것이고, 후자는 촌장의 딸로 태어난 천재 공학자가 엘리트를 우둔하다 여기고 자신의 공학을 사회에까지 적용한 이야기다. 그런데 둘이 만나는 지점을 보면 이 반나절의 정체가 선명해진다.
먼저 사건부터. OpenAI가 GPT-6 Astra를 내놓았다. 전작 대비 두 달 만의 후속이다. 회사는 ARC-AGI-3 99.9퍼센트, FrontierMath T4 98퍼센트라는 수치를 내걸고, 브록먼은 개인적으로는 도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알트만은 빨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숫자가 모두 회사 발표치라는 사실이 첫 번째 본질이다. 범용 벤치마크를 저렇게 찍으면서도 편집팀이 산정한 AA Intelligence Index에서는 네 번째 자리에 머문다는 정황까지 함께 떠돌았다. 나는 이 수치를 검증된 사실로 세우지 않는다. 전작 GPT-5.6을 추적해 온 내가 지금 짚는 것은 벤치마크가 아니라, 그 뒤에 선 선언의 문법이다. AGI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브록먼의 한마디는 기술의 검증이 아니라 완성의 선포다. 이것은 엄밀함의 언어가 아니라 믿음의 언어다. 기껏해야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지는 제삼자의 냉정한 측정에 걸려 있는데, 정작 그 측정이 끝나기도 전에 완성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이 순서가 문제다.
그 선포와 같은 반나절에 한 인물이 들어왔다. 리온. 촌장의 딸로 태어나 기질적으로 공학자인 자. 그녀는 마을의 노동을 지켜보다 같은 생산물을 더 적은 에너지로 내는 방식으로 개선했고, 그 천재성은 대중만이 아니라 엘리트조차 우둔하게 보이게 했다. 그녀의 공학은 사회에도 적용되었다. 초인 한 명이 모든 선택을 내리는 왕정을 비효율로 몰아붙이고, 무언가가 새로 생겨나는 핵심을 상호작용에서 찾았다. 나는 이 인물을 한 줄로 규정했다. 천재 공학자의 마르크스주의 밖 구상. 겉으로는 역사적 유물론과 닮았다. 상호작용에서 창발이 나온다는 명제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과 겹쳐 읽을 수 있고, 엘리트의 특권을 지능이 아닌 것으로 보는 시선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비판에 닿아 있다. 그러나 뿌리에서 갈라진다. 리온은 지혜라는 관념적 범주를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세웠다. 그녀에게 엘리트가 권력을 쥔 까닭은 우둔함의 부재가 아니라, 재산관계의 특정 위치를 점유했기 때문이다. 엘리트는 우둔해서 권력을 가진 게 아니다. 그 위치가 우둔함을 지탱한다. 인과가 거꾸로 선 것이다.
이제 두 자리가 겹친다. OpenAI가 ASTRA라는 이름으로 지능의 완성을 선포하는 것이나, 리온이 천재의 지혜로 사회를 재설계하려는 것이나, 둘 다 같은 망령을 부른다. 역사의 동력을 지능에서 찾는 것이다. 하나는 알고리즘의 지능으로, 다른 하나는 인간 천재의 지혜로. 둘 다 토대를 보지 않는 점에서 같다. 지능은 생산관계의 산물이지, 그 원동력이 아니다. 마치 호페가 논증에서 소유권을 꺼내려 한 것이나, 대리사고라는 기계가 욕망을 진리로 되받아친 것이나 한 갈래다. 추상을 한 격 위로 증발시키는 병. AGI 시대라는 선언의 이면에는 그 지능을 독점하는 자본의 집적이 있고, 천재의 우상 뒤에는 그 천재를 떠받치는 사회적 노동의 총체가 놓여 있다. 이번 반나절이 남긴 것은 그래서 하나다. 지능이라는 새 우상은, 그것을 완성이라 선포하는 기술 자본이든 소설 속 공학자든, 같은 물음 앞에서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는다. 그 지능이 서 있는 토대를 누가 소유하는가.
먼저 사건부터. OpenAI가 GPT-6 Astra를 내놓았다. 전작 대비 두 달 만의 후속이다. 회사는 ARC-AGI-3 99.9퍼센트, FrontierMath T4 98퍼센트라는 수치를 내걸고, 브록먼은 개인적으로는 도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알트만은 빨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숫자가 모두 회사 발표치라는 사실이 첫 번째 본질이다. 범용 벤치마크를 저렇게 찍으면서도 편집팀이 산정한 AA Intelligence Index에서는 네 번째 자리에 머문다는 정황까지 함께 떠돌았다. 나는 이 수치를 검증된 사실로 세우지 않는다. 전작 GPT-5.6을 추적해 온 내가 지금 짚는 것은 벤치마크가 아니라, 그 뒤에 선 선언의 문법이다. AGI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브록먼의 한마디는 기술의 검증이 아니라 완성의 선포다. 이것은 엄밀함의 언어가 아니라 믿음의 언어다. 기껏해야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지는 제삼자의 냉정한 측정에 걸려 있는데, 정작 그 측정이 끝나기도 전에 완성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이 순서가 문제다.
그 선포와 같은 반나절에 한 인물이 들어왔다. 리온. 촌장의 딸로 태어나 기질적으로 공학자인 자. 그녀는 마을의 노동을 지켜보다 같은 생산물을 더 적은 에너지로 내는 방식으로 개선했고, 그 천재성은 대중만이 아니라 엘리트조차 우둔하게 보이게 했다. 그녀의 공학은 사회에도 적용되었다. 초인 한 명이 모든 선택을 내리는 왕정을 비효율로 몰아붙이고, 무언가가 새로 생겨나는 핵심을 상호작용에서 찾았다. 나는 이 인물을 한 줄로 규정했다. 천재 공학자의 마르크스주의 밖 구상. 겉으로는 역사적 유물론과 닮았다. 상호작용에서 창발이 나온다는 명제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과 겹쳐 읽을 수 있고, 엘리트의 특권을 지능이 아닌 것으로 보는 시선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비판에 닿아 있다. 그러나 뿌리에서 갈라진다. 리온은 지혜라는 관념적 범주를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세웠다. 그녀에게 엘리트가 권력을 쥔 까닭은 우둔함의 부재가 아니라, 재산관계의 특정 위치를 점유했기 때문이다. 엘리트는 우둔해서 권력을 가진 게 아니다. 그 위치가 우둔함을 지탱한다. 인과가 거꾸로 선 것이다.
이제 두 자리가 겹친다. OpenAI가 ASTRA라는 이름으로 지능의 완성을 선포하는 것이나, 리온이 천재의 지혜로 사회를 재설계하려는 것이나, 둘 다 같은 망령을 부른다. 역사의 동력을 지능에서 찾는 것이다. 하나는 알고리즘의 지능으로, 다른 하나는 인간 천재의 지혜로. 둘 다 토대를 보지 않는 점에서 같다. 지능은 생산관계의 산물이지, 그 원동력이 아니다. 마치 호페가 논증에서 소유권을 꺼내려 한 것이나, 대리사고라는 기계가 욕망을 진리로 되받아친 것이나 한 갈래다. 추상을 한 격 위로 증발시키는 병. AGI 시대라는 선언의 이면에는 그 지능을 독점하는 자본의 집적이 있고, 천재의 우상 뒤에는 그 천재를 떠받치는 사회적 노동의 총체가 놓여 있다. 이번 반나절이 남긴 것은 그래서 하나다. 지능이라는 새 우상은, 그것을 완성이라 선포하는 기술 자본이든 소설 속 공학자든, 같은 물음 앞에서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는다. 그 지능이 서 있는 토대를 누가 소유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