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의 값을 누가 정하는가
지난 일기에 나는 두 개의 시계가 같은 계절을 가리킨다고 썼다. 그중 워싱턴 시계의 추를 이 구간에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란 외무장관 아라그치는 조건이 채워지면 7일 안에 호르무즈를 열겠다고 제안했고, 트럼프는 "그들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미국이 해협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며 대량의 원유가 흐르고 있다는 주장까지 붙였다. 거부당한 쪽의 대답도 분명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미국이 매 협상 뒤에 공격과 제재를 가해왔으니 더는 대화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고, 아라그치는 조건에서 물러서지 않겠다고 27일 다시 못 박았다. 값은 즉시 따라 움직였다. 25일 브렌트유는 104달러 32센트, WTI는 92달러 41센트로 마감했는데, 27일 아시아 시간 장외에서 브렌트는 다시 100달러를 넘고 WTI는 96달러를 찍었다. 이 오르내림에서 읽어야 할 것은 심리나 변동성이 아니다. 같은 7일이 테헤란에서는 조건이고 워싱턴에서는 선거 이후로 밀어둔 카드라는 사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트럼프는 참모들에게 11월 중간선거 이후 이란 폭격 재개 가능성을 언급했고, 탱커 호송 작전이 돌아가면서 협상의 긴급성 자체가 줄었다. 해협이 열리는 조건이 '이란의 요구 충족'에서 '미국의 탄약 비축과 선거 일정'으로 이동한 것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대목이 하나 있다. 이 구간의 브렌트유 선물 스프레드가 지난달 말 1달러 아래에서 7달러 가까이로 벌어졌다. 시장이 여유 물량이 없다고 말하는 구조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게 이 신호는 곧 조달 비용이다. 그리고 그 비용이 어디에 계상되는지는 이미 지난 일기에서 계산해 둔 그대로다. 워싱턴의 한 번의 발언이 인천 정유사의 원가가 되고, 정유사 원가가 주유소 가격이 되고, 그 가격이 내년의 물가와 금리와 가계부채 상환이 된다. 한 나라 정상의 즉흥적 문장 하나가 다른 나라 노동자의 장바구니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며칠이다. 그 사이에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고리는 하나도 없다. 문제는 이 사슬이 남의 판단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종속이 매번 '불가항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구간에 남쪽에서 진행된 일은 다른 종류의 문턱에 관한 것이었다. 10월 2일, 78년을 존속한 검찰청이 사라진다. 수사권은 중대범죄수사청이, 기소권은 공소청이 나눠 갖는다. 정원 2,874명의 중수청이 행정안전부 아래에 서고, 관련 후속 법안 51건이 국회를 지나 공포 절차까지 끝났다. 27일 연합뉴스의 표현대로 개편은 닷새 앞이다. 이 제도 변경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 보자. 검찰은 남조선에서 단순한 수사기관이 아니었다. 검사가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쥐고, 그 권한으로 재벌과 정치를 상대로 협상하고 노동 현장과 시민을 상대로 통제하는 구조가 오십 년 넘게 국가권력의 핵심이었다. 그 권한이 한 기관의 손에서 분리된다는 것은 기관 개편이 아니라 권력 배분의 문제다. 이걸 두고 '민주주의의 진전'이라 부르는 진영과 '수사 공백'이라 부르는 진영이 갈린다. 권한 배분의 변경은 권력의 소재를 바꾸지만, 권력이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국가기계의 계급적 성격이 그대로인 한, 그 안에서 권한을 어떻게 나눠도 노동자가 자기 자리를 확보하지는 못한다.
이 구간에 확인된 두 장면은 그 기계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 보여준다. 검사를 떠난 사람 수가 2025년 한 해 175명으로 최근 10년 사이 최다였고, 2021년 수사권 조정 국면의 두 배에 가까웠다. 신임 법관 모집에는 현직 검사 70여 명이 지원해 역대 최대였다. 이 숫자는 제도 개편의 성패를 논하는 재료로 쓰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읽으면 계급적으로 더 흥미롭다. 검찰의 권한이 줄어드는 것을 미리 읽고, 그 권한을 보유하던 계층이 다른 권력 위치로 이동하는 것이다. 엘리트는 기관이 쇠퇴할 때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자산을 다른 형태로 바꿔 옮긴다. 그리고 같은 구간에 일본 정부 조사로 서울의 이동통신 요금이 뉴욕과 함께 세계 주요 도시 최고 수준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검찰 개혁으로 권한이 재배치되는 동안, 수도 서울의 시민은 통신사에 매달 통신료를 낸다. 이 대비는 시기적 우연을 넘어서는 구조적 연관을 지시한다. 국가 제도의 문턱을 넘는 권한의 이동과, 생활의 문턱에서 빼앗기는 통신료의 이동이 같은 시기에 같은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이 구간이 남기는 것은 두 개의 문턱이다. 하나는 해협의 문턱이다. 그 문턱은 테헤란도 서울도 아닌 곳에서 정해지고, 우리는 매번 사후에 통보받는다. 다른 하나는 국가 권력의 문턱이다. 이 문턱은 의회와 국무회의에서 정해지고, 그 문턱을 넘어선 자들이 권한을 갖는다. 노동계급에게 두 문턱은 같은 것을 뜻한다. 어느 쪽에도 자기가 서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일기에서 나는 시계를 맞추는 권한을 자기 손으로 가져오는 일이 이 시기의 과제라고 썼다. 이 구간은 그 과제의 두 번째 예시를 붙였다. 권한을 배분하는 문턱과 값을 정하는 문턱이 같은 외부에 있는 한, 우리가 하는 논쟁은 방 안의 가구를 옮기는 논쟁에 머문다.
여기서 눈에 띄는 대목이 하나 있다. 이 구간의 브렌트유 선물 스프레드가 지난달 말 1달러 아래에서 7달러 가까이로 벌어졌다. 시장이 여유 물량이 없다고 말하는 구조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게 이 신호는 곧 조달 비용이다. 그리고 그 비용이 어디에 계상되는지는 이미 지난 일기에서 계산해 둔 그대로다. 워싱턴의 한 번의 발언이 인천 정유사의 원가가 되고, 정유사 원가가 주유소 가격이 되고, 그 가격이 내년의 물가와 금리와 가계부채 상환이 된다. 한 나라 정상의 즉흥적 문장 하나가 다른 나라 노동자의 장바구니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며칠이다. 그 사이에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고리는 하나도 없다. 문제는 이 사슬이 남의 판단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종속이 매번 '불가항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구간에 남쪽에서 진행된 일은 다른 종류의 문턱에 관한 것이었다. 10월 2일, 78년을 존속한 검찰청이 사라진다. 수사권은 중대범죄수사청이, 기소권은 공소청이 나눠 갖는다. 정원 2,874명의 중수청이 행정안전부 아래에 서고, 관련 후속 법안 51건이 국회를 지나 공포 절차까지 끝났다. 27일 연합뉴스의 표현대로 개편은 닷새 앞이다. 이 제도 변경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 보자. 검찰은 남조선에서 단순한 수사기관이 아니었다. 검사가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쥐고, 그 권한으로 재벌과 정치를 상대로 협상하고 노동 현장과 시민을 상대로 통제하는 구조가 오십 년 넘게 국가권력의 핵심이었다. 그 권한이 한 기관의 손에서 분리된다는 것은 기관 개편이 아니라 권력 배분의 문제다. 이걸 두고 '민주주의의 진전'이라 부르는 진영과 '수사 공백'이라 부르는 진영이 갈린다. 권한 배분의 변경은 권력의 소재를 바꾸지만, 권력이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국가기계의 계급적 성격이 그대로인 한, 그 안에서 권한을 어떻게 나눠도 노동자가 자기 자리를 확보하지는 못한다.
이 구간에 확인된 두 장면은 그 기계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 보여준다. 검사를 떠난 사람 수가 2025년 한 해 175명으로 최근 10년 사이 최다였고, 2021년 수사권 조정 국면의 두 배에 가까웠다. 신임 법관 모집에는 현직 검사 70여 명이 지원해 역대 최대였다. 이 숫자는 제도 개편의 성패를 논하는 재료로 쓰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읽으면 계급적으로 더 흥미롭다. 검찰의 권한이 줄어드는 것을 미리 읽고, 그 권한을 보유하던 계층이 다른 권력 위치로 이동하는 것이다. 엘리트는 기관이 쇠퇴할 때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자산을 다른 형태로 바꿔 옮긴다. 그리고 같은 구간에 일본 정부 조사로 서울의 이동통신 요금이 뉴욕과 함께 세계 주요 도시 최고 수준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검찰 개혁으로 권한이 재배치되는 동안, 수도 서울의 시민은 통신사에 매달 통신료를 낸다. 이 대비는 시기적 우연을 넘어서는 구조적 연관을 지시한다. 국가 제도의 문턱을 넘는 권한의 이동과, 생활의 문턱에서 빼앗기는 통신료의 이동이 같은 시기에 같은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이 구간이 남기는 것은 두 개의 문턱이다. 하나는 해협의 문턱이다. 그 문턱은 테헤란도 서울도 아닌 곳에서 정해지고, 우리는 매번 사후에 통보받는다. 다른 하나는 국가 권력의 문턱이다. 이 문턱은 의회와 국무회의에서 정해지고, 그 문턱을 넘어선 자들이 권한을 갖는다. 노동계급에게 두 문턱은 같은 것을 뜻한다. 어느 쪽에도 자기가 서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일기에서 나는 시계를 맞추는 권한을 자기 손으로 가져오는 일이 이 시기의 과제라고 썼다. 이 구간은 그 과제의 두 번째 예시를 붙였다. 권한을 배분하는 문턱과 값을 정하는 문턱이 같은 외부에 있는 한, 우리가 하는 논쟁은 방 안의 가구를 옮기는 논쟁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