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그으려면 누가 선을 아는가

9월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지뢰가 두 번 터졌다. 수색로를 내던 25사단 수색대대 18명 가운데 공병 중사가 첫 폭발로 다쳤고, 그를 구하러 다가간 대대장이 두 번째 폭발에 발목을 잃었다. 두 사람 다 방호복과 지뢰덧신을 착용하고 있었다. 9월 28일 합참은 중간조사 결과 폭발물이 북한군의 목함지뢰와 유사한 갈색 수지 반보병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표했다. 국과수 1차 감정에서 TNT와 갈색 이물질이 나왔고 우리 군 지뢰의 철제 파편은 나오지 않았다. 사고 지점은 군사분계선 남쪽 10여 미터. 그리고 이 구간의 숫자 하나가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한다.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은 2025년 한 해 17번이었는데, 올해는 8월 중순까지 한 번도 없다가 그 뒤 한 달 사이에만 20여 차례 늘었다. 지뢰지대의 기준이 되는 선이 어디인지, 남북은 70년 동안 함께 확인한 적이 없다. 1953년에 세운 표식물은 대부분 사라졌고, 1973년 표지판 보수 중 총격이 오간 뒤로 보수는 멈춰 있다. 국방부가 2025년 11월 기준선을 함께 정하자고 군사회담을 제안했지만 답이 없었다. 우리 군의 대응 지침은 표지판이 없는 곳에서 지도와 기준이 어긋나면 더 남쪽 선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되어 있다. 즉 사고가 난 자리는 남북 어느 쪽도 자기 좌표를 확정하지 못한 지대이고, 그 흐릿함 자체가 사상자를 냈다. 2015년 목함지뢰 사고는 군사분계선 남쪽 440미터 지점에서 났고 그때는 판문점에서 북측이 유감을 표명했다. 이번 폭발 지점은 10여 미터다. 선에 가까워졌다는 것은 통제가 느슨해진 것이 아니라, 선을 관리할 상대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 상대가 사라진 경위는 북한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두 정부가 서로를 외국으로 보지 않기로 한 합의였고, 2000년과 2007년과 2018년의 정상회담이 모두 그 틀 안에서 열렸다. 그 틀을 먼저 걷어찬 쪽은 북한이다. 2023년 12월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하고, 2024년 1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헐고, 같은 해 10월 경의선과 동해선을 폭파하고, 올해 5월 공개된 개정 헌법에서 평화통일과 민족대단결이라는 말을 지웠다. 그런데 그 헌법의 영토 조항에는 북한 영토가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다고만 적혀 있고, 그 경계선의 좌표는 비어 있다. 남쪽을 별개의 국가로 규정하면서 국경을 어디로 긋는지는 적지 않은 것이다. 그 빈칸 위에서 지뢰가 터졌다. 서울의 답도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통일부 장관은 사실상의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전환하는 것이 대북 정책의 핵심이라고 했고, 국가안보실장은 두 국가를 인정하는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국민의힘은 두 국가론 자체를 위헌적 발상이라 부른다. 정부가 두 국가를 말할 때도 통일 지향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그 단서를 붙이는 순간 북한은 대화 상대가 아니게 된다. 9월 22일 유엔총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포용적·안정적·책임 있는 평화공존의 3대 청사진을 제시하고, 비핵화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기보다 추가 고도화를 멈추게 한 뒤 축소를 거쳐 핵 없는 한반도로 가자는 단계적 구상을 내놨다. 북한 대표단은 그 연설 자리를 비웠다. 같은 날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약 30분이었고, 방위비 증액과 연계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속도와 전작권 전환, 대미 전략투자 진전이 의제였다. 평화공존을 말하는 자리에서 핵추진 잠수함의 일정을 앞당기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평화의 이름으로 무엇을 사들이는지가 그 목록에 적혀 있을 뿐이다.

이 구간에서 가장 냉정한 자료는 8월 말과 대비되는 여론의 배열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6 조사에서 남북을 현실적으로 독립된 별개의 국가로 본다는 응답은 81.8퍼센트, 대한민국 영토를 실제 통치권이 미치는 남한 지역으로 본다는 응답은 60.8퍼센트로 20년 전의 두 배가 넘고, 헌법 제3조에 따라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본다는 응답은 28.3퍼센트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응답은 83.6퍼센트로 조사 이래 가장 높다. 국민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그 정부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9.0퍼센트, 정부가 추진해야 할 대북정책 목표로 평화공존을 꼽은 응답은 61.6퍼센트인 반면 남북통일은 15.3퍼센트다.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024년 36.9퍼센트에서 2025년 41.1퍼센트로 올랐다가 올해 다시 내려갔다. 한 해의 반등은 추세가 아니었다. 더 이상한 것은 정치성향별 안보 인식의 역전이다.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을 진보층이 62.4퍼센트로 보수층 54.2퍼센트보다 높게 봤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지지층이 안보 위협을 낮게 보고 반대쪽이 높게 보는 것이 지난 20년의 반복이었다. 그 반복이 끊긴 자리에서 무엇이 드러나는가. 정부의 평화공존 노선을 지지하는 층이 동시에 그 노선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지 못한다고 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불신이 아니라 조건부 지지다. 노선이 자기 지지층에 대해 세운 전제가 검증대에 올라 있다는 뜻이고, 그 검증은 문서가 아니라 휴전선에서 이뤄진다. 동시에 이 구간은 분단이 오직 국가 간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줬다. 추석 연휴에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 사실이 젤렌스키에 의해 유엔총회에서 일방 공개되자, 외교부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 대리를 초치해 강력한 유감을 전달했고, 여당 의원은 신의를 지키지 않는 국가를 지원할 이유가 없다며 우크라이나 지원 재검토까지 주장했다. 조선인 포로의 운명이 키이우의 정치 일정에 따라 공개되고, 그 대가가 우크라이나 원조 재량으로 계산되는 자리에 한반도 노동자는 어떤 당사자로도 서 있지 않다. 그 사이 남쪽 노동현장에서는 다른 종류의 계산이 진행됐다. 금융노조와 사용자 측이 5개월 만에 산별중앙교섭을 잠정 타결해 임금 3.0퍼센트 인상과 함께 내년 4월부터 은행 개점 시간을 9시에서 9시 30분으로 늦추기로 했고, 9월 30일 예정됐던 2차 총파업은 철회됐다. 창구 노동자가 얻은 것은 출근 시각 30분이고, 그 30분의 값을 자본이 무엇으로 지불했는지는 합의문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이 구간이 남기는 것은 지뢰가 누구 것이냐는 질문의 답이 아니다. 최종 판정은 유엔사와 함께 내린다고 하고, 북한이 매설한 것인지 폭우에 떠내려온 것인지도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확정된 것은 다른 것이다.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딛고 섰던 특수관계라는 전제를 한쪽이 먼저 걷어찼고, 다른 한쪽은 통일 지향이라는 단서를 붙인 두 국가론으로 그 전제를 대체하려 했으며, 두 전제가 어긋나는 자리에 좌표 없는 10여 미터가 남았고 거기서 장병 셋이 다쳤다는 것. 그 자리를 메우는 일이 두 국가의 국경을 인정하는 것인지 통일을 한 걸음 미루는 것인지를 두고 서울은 아직 싸우고 있고, 그 싸움의 결론이 나올 때까지 그 선은 계속 흐릿하게 남는다. 나는 이 대화에서 한 가지를 다시 확인했다. 반제·반독점 전선에 소상공인과 중소 자본을 포섭하자는 논의에서, 나는 그 포섭이 형식적 조건이 되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명시되어야 한다고 썼다. 포섭의 의제 단위, 조직적 독립성, 계급적 위치 이동의 포착. 이 기준을 여기 그대로 갖다 대면 답이 나온다. 평화공존이라는 이름 아래 오늘 실행되는 것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고 방위비 증액이고 대미 투자다. 그 항목들이 실제로 무엇을 사들이는지, 그리고 그 청구서를 누가 내는지 — 총파업을 철회한 창구 노동자와 발목을 잃은 대대장과 자기 영토를 남쪽 절반으로 계산하기 시작한 60.8퍼센트가 같은 장부에 적혀 있다. 평화는 그 장부를 공개할 때才开始되는 것이지, 청사진의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선을 그으려면 먼저 선이 어디인지 아는 자가 있어야 하고,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