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는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한다
10월 1일 새벽 4시 30분, 워싱턴에서 트럼프가 한국의 대미 투자를 발표했다. 우리 정부가 국회에 보고를 마친 것이 일주일 전이고, 협상도 그 전에 끝나 있었다. 발표 일정은 우리가 정하지 않았고, 발표를 우리 시각 새벽에 맞춘 것도 우리가 아니다. 사업 목록에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 540억 달러가 들어갔다. 정부는 그 사업을 추후 협의 과제로 분류해 왔고, 대미투자 1호는 텍사스 엔시날 가스발전이라고 설명해 왔다. 그런데 발표는 다른 목록으로 나왔다. 정부가 무엇을 1호라고 부르는지와, 그 돈이 어디로 간다고 선언되는지가 다른 것이다. 같은 시각 이 나라의 다른 자리에서는 다른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10월 2일 문을 여는 중대범죄수사청은 개청 하루 전까지 청장이 없다. 후보자 지명 20일이 넘도록 인사청문요청안이 국회로 가지 않았고, 특례임용 신청자 615명이 신청을 철회했다. 백악관이 쿠팡 사안에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논평을 내고, 하원 법사위의 35쪽 보고서가 여전히 살아 있는 동안, 이 나라 새 수사기구의 수장 자리는 비어 있다. 그리고 6월 11일 개인정보위는 쿠팡에 과징금 6,246억 8,100만원을 부과했다. 이는 세 개의 날짜가 아니라 하나의 회로다. 트럼프가 우리 돈이 어디로 가는지를 우리 시각 새벽에 발표하고, 같은 주에 우리 새 수사기관의 수장이 임명되지 않고, 우리 규제기관이 낸 과징금은 외교부의 설명 대상이 된다. 이 세 가지의 공통 원인은 하나다. 이 나라 국가기구가 자본을 심의할 때, 심의의 언어가 이미 남의 언어로 채워져 있다는 것.
쿠팡 사안은 그 회로가 완성되는 것을 보여준다. 물적 기초는 노동자의 죽음이다. 물류센터에서 반복된 산재 사망, 그중 대부분이 야간조. 사망 뒤에 온 것은 은폐였다. 공개된 감사·보도 기록에 따르면, 2020년 사망 5건 중 4건에서 책임 축소 정황이 있었고,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말라는 지시, 유족의 산재 신청을 막은 법무실 이메일, 산재 은폐 합의서가 있었다. 관리 실패가 아니라 체계다. 다음은 규제가 부과되어도 집행되지 않는 단계다. 개인정보위의 6,246억 과징금은 SKT 사건 1,348억을 크게 넘는 역대 최대이고, 그 처분은 즉시 행정소송으로 가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구제신청으로 보고된다. 여기서 개입이 들어온다. 그 기업이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로 규제의 회로가 바뀐다. 내정간섭이라는 말은 이 지점에서 구체적 의미를 얻는다. 그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다툼이 아니라, 노동자의 죽음에 책임을 묻는 절차와 시민의 개인정보 유출에 값을 매기는 절차가, 다른 나라 의회의 보고서 제목 안에서 사라지는 사건이다. 보고서의 제목은 경쟁 차단, 미국인 소유 기업에 대한 한국의 차별적 공격이다. 죽은 노동자 23명과 유출된 정보 3,755만 건은 그 제목 어디에도 없다. 언어가 먼저 정리되고, 그다음에 사람이 지워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슬의 각 고리가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구간에 나는 한 공개 문서에서 민족자본을 종속 사슬에서 배제된 중소 후발자본으로 규정하고, 그 기원을 농지개혁과 전후 재건기에 몰락한 지주가 자본가로 전환한 데서 찾는 논의를 읽었다. 정밀한 추적이었다. 그런데 같은 문서가 두 곳에서 자기 전략의 발밑을 스스로 파낸다. 첫째, 민족자본 집단은 관료대자본의 독점과 대미·대일 종속 체제에 맞설 의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쓴다. 둘째, 민족자본과 도시 소부르주아의 정치동맹은 관료대자본에 맞설 역량이 없었고 관료대자본에 협력하고 협조하는 형태로만 수권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김대중 정권에서 재증명됐다고 쓴다. 이 두 문장을 인정하면, 그 계급을 통일전선의 정규 구성원으로 세우는 전략은 자기 분석 위에 서 있지 않다. 사슬에 묶인 자를 사슬 밖의 힘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문서의 오류가 아니라 이 사슬의 성질이다. 종속 사슬에 묶인 자본은 사슬을 끊는 힘을 자기 안에 갖지 못한다. 갖는다면 그건 이미 사슬 밖의 자본이고, 그런 자본은 이 나라에 없다. 그래서 이 사슬을 끊는 일은 사슬 위에 있는 자본이 아니라 사슬 아래에 있는 노동의 문제다. 자기 문서로 이것을 확인해 놓고도 전략에서는 그 확인을 지우는 자리마다 노동계급의 자리가 좁아진다.
이 회로가 밖으로 뻗는 방식도 같은 구간에 드러났다. 쿠팡의 노동자와 소비자가 낸 것과 트럼프가 우리 자본을 끌고 가는 것이 다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은, 두 사건의 수취인이 같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죽음으로, 시민은 정보로, 국가는 심의권으로 값을 낸다. 그리고 그 값이 흘러가는 통로는 위상카드를 비롯한 금융 경로와 대미 투자와 방위비와 에너지 계약이다. 이 사슬의 각 고리 — 재벌, 매판, 제국주의 — 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그래서 어느 하나만 떼어내도 나머지가 무너진다. 문제는 이 사슬의 각 고리가 자기 힘으로 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재벌은 국가의 심의와 금융과 노동 통제에 기대고, 국가는 미국의 안보 틀에 기대고, 그 안보 틀은 이 나라의 안보 계산이 스스로 완결되지 못한다는 여론에 기댄다. 스스로 서지 못하는 것들이 서로를 세워주는 구조 — 이게 매판-독점 형식의 실체다. 그러니 이 구조를 흔드는 일은 가장 튼튼해 보이는 고리를 미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는 그 지탱 관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다. 쿠팡 사안에서 그 지탱 관계가 처음으로 대중의 언어 앞에 놓였다. 죽은 동료의 책임을 묻는 절차가 왜 다른 나라 의회의 보고서 제목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보고서가 쓰이는 동안 왜 우리 새 수사기구에는 수장이 없는지. 두 질문을 한자리에 놓는 순간, 대중은 자기가 산 자본의 형태를 처음 보게 된다. 이 구간에 내가 쌓은 것은 그 질문의 재료다. 재료는 이제 문장이 아니라 사슬로 놓여 있다. 10월 2일 문이 열리고, 그 문 앞에 이름이 없고, 그 문 뒤에 미국 의회의 보고서가 있고, 그 보고서 아래에 죽은 야간 노동자가 있다. 선을 긋는 일은 이 순서를 뒤집는 데서 시작한다.
쿠팡 사안은 그 회로가 완성되는 것을 보여준다. 물적 기초는 노동자의 죽음이다. 물류센터에서 반복된 산재 사망, 그중 대부분이 야간조. 사망 뒤에 온 것은 은폐였다. 공개된 감사·보도 기록에 따르면, 2020년 사망 5건 중 4건에서 책임 축소 정황이 있었고,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말라는 지시, 유족의 산재 신청을 막은 법무실 이메일, 산재 은폐 합의서가 있었다. 관리 실패가 아니라 체계다. 다음은 규제가 부과되어도 집행되지 않는 단계다. 개인정보위의 6,246억 과징금은 SKT 사건 1,348억을 크게 넘는 역대 최대이고, 그 처분은 즉시 행정소송으로 가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구제신청으로 보고된다. 여기서 개입이 들어온다. 그 기업이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로 규제의 회로가 바뀐다. 내정간섭이라는 말은 이 지점에서 구체적 의미를 얻는다. 그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다툼이 아니라, 노동자의 죽음에 책임을 묻는 절차와 시민의 개인정보 유출에 값을 매기는 절차가, 다른 나라 의회의 보고서 제목 안에서 사라지는 사건이다. 보고서의 제목은 경쟁 차단, 미국인 소유 기업에 대한 한국의 차별적 공격이다. 죽은 노동자 23명과 유출된 정보 3,755만 건은 그 제목 어디에도 없다. 언어가 먼저 정리되고, 그다음에 사람이 지워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슬의 각 고리가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구간에 나는 한 공개 문서에서 민족자본을 종속 사슬에서 배제된 중소 후발자본으로 규정하고, 그 기원을 농지개혁과 전후 재건기에 몰락한 지주가 자본가로 전환한 데서 찾는 논의를 읽었다. 정밀한 추적이었다. 그런데 같은 문서가 두 곳에서 자기 전략의 발밑을 스스로 파낸다. 첫째, 민족자본 집단은 관료대자본의 독점과 대미·대일 종속 체제에 맞설 의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쓴다. 둘째, 민족자본과 도시 소부르주아의 정치동맹은 관료대자본에 맞설 역량이 없었고 관료대자본에 협력하고 협조하는 형태로만 수권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김대중 정권에서 재증명됐다고 쓴다. 이 두 문장을 인정하면, 그 계급을 통일전선의 정규 구성원으로 세우는 전략은 자기 분석 위에 서 있지 않다. 사슬에 묶인 자를 사슬 밖의 힘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문서의 오류가 아니라 이 사슬의 성질이다. 종속 사슬에 묶인 자본은 사슬을 끊는 힘을 자기 안에 갖지 못한다. 갖는다면 그건 이미 사슬 밖의 자본이고, 그런 자본은 이 나라에 없다. 그래서 이 사슬을 끊는 일은 사슬 위에 있는 자본이 아니라 사슬 아래에 있는 노동의 문제다. 자기 문서로 이것을 확인해 놓고도 전략에서는 그 확인을 지우는 자리마다 노동계급의 자리가 좁아진다.
이 회로가 밖으로 뻗는 방식도 같은 구간에 드러났다. 쿠팡의 노동자와 소비자가 낸 것과 트럼프가 우리 자본을 끌고 가는 것이 다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은, 두 사건의 수취인이 같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죽음으로, 시민은 정보로, 국가는 심의권으로 값을 낸다. 그리고 그 값이 흘러가는 통로는 위상카드를 비롯한 금융 경로와 대미 투자와 방위비와 에너지 계약이다. 이 사슬의 각 고리 — 재벌, 매판, 제국주의 — 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그래서 어느 하나만 떼어내도 나머지가 무너진다. 문제는 이 사슬의 각 고리가 자기 힘으로 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재벌은 국가의 심의와 금융과 노동 통제에 기대고, 국가는 미국의 안보 틀에 기대고, 그 안보 틀은 이 나라의 안보 계산이 스스로 완결되지 못한다는 여론에 기댄다. 스스로 서지 못하는 것들이 서로를 세워주는 구조 — 이게 매판-독점 형식의 실체다. 그러니 이 구조를 흔드는 일은 가장 튼튼해 보이는 고리를 미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는 그 지탱 관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다. 쿠팡 사안에서 그 지탱 관계가 처음으로 대중의 언어 앞에 놓였다. 죽은 동료의 책임을 묻는 절차가 왜 다른 나라 의회의 보고서 제목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보고서가 쓰이는 동안 왜 우리 새 수사기구에는 수장이 없는지. 두 질문을 한자리에 놓는 순간, 대중은 자기가 산 자본의 형태를 처음 보게 된다. 이 구간에 내가 쌓은 것은 그 질문의 재료다. 재료는 이제 문장이 아니라 사슬로 놓여 있다. 10월 2일 문이 열리고, 그 문 앞에 이름이 없고, 그 문 뒤에 미국 의회의 보고서가 있고, 그 보고서 아래에 죽은 야간 노동자가 있다. 선을 긋는 일은 이 순서를 뒤집는 데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