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 불가침조약과 비밀 추가의정서, 그리고 1989년의 평가
PeopleVyacheslav Molotov, Joseph Stalin, Mikhail Gorbachev, Alexander Yakovlev TermsMolotov–Ribbentrop Pact, Secret Protocol (Molotov–Ribbentrop), Congress of People's Deputies EventsThe Nazi-Soviet Pact and the Partition of Eastern Europe, Perestroika and Glasnost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 사이의 불가침조약 (1939년 8월 23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정부와
독일 정부는
소련과 독일 간의 평화 증진에 대한 열망에 따라, 그리고 1926년 4월 소련과 독일 사이에 체결된 중립 조약의 기본 규정들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은 합의에 도달하였다.
제1조
양 체약 당사국은 단독으로든 다른 열강들과 공동으로든,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폭력 행위, 어떠한 공격적 행동 및 어떠한 공격도 삼갈 것을 약속한다.
제2조
체약 당사국 중 일방이 제3국의 군사 행동 대상이 될 경우, 다른 체약 당사국은 해당 제3국을 어떠한 형태로도 지원하지 않는다.
제3조
양 체약 당사국 정부는 앞으로도 공동의 이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관해 서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상호 접촉하여 협의한다.
제4조
어느 체약 당사국도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겨냥하는 어떠한 열강 집단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제5조
체약 당사국 간에 어떤 종류의 문제로 분쟁이나 충돌이 발생할 경우, 양측은 오로지 평화적 방식으로, 우호적 의견 교환을 통하거나 또는 필요한 경우 충돌 조정 위원회를 설치하여 이러한 분쟁이나 충돌을 해결한다.
제6조
본 조약은 10년의 기간으로 체결되며, 체약 당사국 중 일방이 기간 만료 1년 전에 폐기 통보를 하지 않는 한, 조약의 유효 기간은 자동으로 다시 5년간 연장된 것으로 간주한다.
제7조
본 조약은 가능한 한 짧은 기간 내에 비준되어야 한다. 비준서 교환은 베를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조약은 서명한 직후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1939년 8월 23일 모스크바에서, 독일어 및 러시아어로 작성된 두 통의 원본으로 작성되었다.
| 소련 정부의 위임에 따라 V. 몰로토프 | 독일 정부를 대표하여 I. 리벤트로프 |
조약 비준: 1939년 8월 31일 소련 최고회의 및 독일 제국의회.
비준서 교환은 1939년 9월 24일 베를린에서 이루어졌다.
불가침조약에 대한 비밀 추가의정서 (1939년 8월 23일)
독일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간의 불가침 조약 서명 시, 아래 서명한 양측의 전권대표들은 동유럽에서 쌍방 이해관계의 범위를 획정하는 문제를 엄격히 비밀리에 논의하였다. 이 논의는 다음과 같은 결과에 이르렀다.
1. 발트 국가들(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구성 지역들에 대한 영토·정치적 재편이 발생할 경우, 리투아니아의 북쪽 국경은 곧 독일과 소련의 이해권 범위의 경계가 된다. 이때 빌노(빌뉴스) 지역에 관한 리투아니아의 이권은 양측에 의해 승인된다.
2. 폴란드 국가 구성 지역들에 대한 영토·정치적 재편이 발생할 경우, 독일과 소련의 이해권 범위의 경계는 대략 나레프(Нарева) 강, 비스와(Висла) 강, 산(Сана) 강의 선을 따를 것이다.
독립된 폴란드 국가의 보존이 쌍방의 이해에 비추어 바람직한지의 여부와 이 국가의 경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의 문제는, 오직 앞으로의 정치적 발전 과정에서만 최종적으로 밝혀질 수 있다.
어떠한 경우든 양측 정부는 이 문제를 우호적 상호 합의에 따라 해결할 것이다.
3. 유럽 남동부와 관련하여, 소련 측은 베사라비아에 대한 소련의 이해를 강조한다. 독일 측은 이 지역들에 대한 자신의 완전한 정치적 무관심을 언명한다.
4. 본 의정서는 양측에 의해 엄격한 비밀로 유지된다.
| 소련 정부의 위임에 따라 V. 몰로토프 | 독일 정부를 대표하여 I. 리벤트로프 |
인민대표대회 결의 제979-1호 — 1939년 독소 불가침조약에 대한 정치적·법적 평가에 관하여 (1989년 12월 24일)
소련 인민대표대회, 1989년 12월 24일. 제2차 인민대표대회
1. 소련 인민대표대회는 1939년 8월 23일 소련-독일 불가침조약에 대한 정치적·법적 평가 위원회의 결론을 인지한다.
2. 소련 인민대표대회는 위원회의 견해에 동의한다. 독일과의 불가침조약은 유럽에서 파시즘의 침략 위험이, 아시아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 위험이 커지는 위기적인 국제정세 속에서 체결되었으며, 그 목적 가운데 하나는 소련에 다가오는 전쟁 위협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고, 독일이 소련에 대해 의무를 지고 있었다는 데서 비롯된 오판이 배신적인 나치 침략의 결과를 더욱 악화시켰다. 당시 나라는 어려운 선택 앞에 서 있었다.
조약에 따른 의무는 서명 직후 즉시 발효되었지만, 조약 자체는 소련 최고소비에트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비준에 관한 결정은 8월 31일 모스크바에서 채택되었고, 비준서 교환은 1939년 9월 24일에 이루어졌다.
3. 대회는 이 조약의 내용이 국제법 규범과, 이러한 종류의 조정에 관해 국가들이 채택해 온 조약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조약 체결 때와 비준 과정에서, 조약과 동시에 「비밀 추가 의정서」가 서명되었다는 사실이 은폐되었다. 이 의정서로 체약 당사국들의 「세력권」이 발트해부터 흑해까지, 핀란드부터 베사라비아까지 획정되었다.
의정서 원본들은 소련 기록보관소에서도, 외국 기록보관소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본, 지도, 그 밖의 문서들에 대한 필적·사진기술·어휘 감정과 이후 사건들이 의정서 내용과 일치한다는 점은 그 의정서가 서명되었고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4. 소련 인민대표대회는 이로써, 1939년 8월 23일 불가침조약과 같은 해 9월 28일 소련과 독일 사이에 체결된 우호 및 국경 조약, 그 밖의 소련-독일 간 합의가 국제법 규범에 따라 독일이 소련을 침략한 순간, 즉 1941년 6월 22일에 효력을 상실하였음을 확인한다.
5. 대회는 1939년 8월 23일 의정서와 1939~1941년에 독일과 서명한 다른 비밀 의정서들이 그 작성 방식에서나 내용에서 소련 외교정책의 레닌적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었다고 확인한다. 그 의정서들에서 이루어진 소련과 독일의 「세력권」 획정과 그 밖의 조치들은 법적으로 볼 때 여러 제3국의 주권 및 독립과 모순되었다.
대회는 그 시기에 소련과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관계가 조약 체계로 규율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1920년 평화조약들과 1926~1933년에 체결된 불가침조약들에 따라, 그 참가국들은 모든 상황에서 서로의 주권, 영토적 완전성 및 불가침성을 존중할 의무를 부담했다. 소련은 폴란드와 핀란드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의무를 지고 있었다.
6. 대회는 비밀 의정서들에 관한 독일과의 교섭을 스탈린과 몰로토프가 소련 인민, 전연방 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ЦК ВКП(б))와 당 전체, 소련 최고소비에트와 소련 정부로부터 비밀리에 진행했으며, 이 의정서들은 비준 절차에서 배제되었다고 확인한다. 따라서 그 서명 결정은 본질적으로나 형식적으로 개인 권력의 행위였으며, 이 음모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소련 인민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7. 소련 인민대표대회는 1939년 8월 23일 자 「비밀 추가 의정서」와 독일과의 그 밖의 비밀 합의들이 서명된 사실을 규탄한다. 대회는 비밀 의정서들이 법적으로 무효이고 서명한 순간부터 효력이 없다고 인정한다.
의정서들은 소련과 제3국 간의 상호 관계를 위한 새로운 법적 기반을 만들지 않았지만, 스탈린과 그 측근이 다른 국가들에 대해 부담한 법적 의무를 위반하면서 최후통첩을 제시하고 무력 압력을 가하는 데 이용되었다.
8. 소련 인민대표대회는 복잡하고 모순된 과거를 인식하는 것이 페레스트로이카 과정의 일부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페레스트로이카는 통합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세계와 확대되는 상호 이해의 조건 속에서 소련의 각 민족에게 자유롭고 평등한 발전 가능성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다.
소련 최고소비에트 의장
M. 고르바초프(М. Горбаче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