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재편 2026 — 5회차: 중국의 반격, 세 개의 전선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19


이 글은 '제국주의 재편 2026' 연재의 다섯 번째 회차다. 앞선 회차에서 우리는 독점자본의 집적, 금융과두제의 부상, 그리고 미국의 관세·보조금·수출통제 삼각 체계를 살펴봤다. 이번에는 반대편 — 중국이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봉쇄당한 나라가 선택하는 것들

미국이 2022년 이후 본격화한 반도체 수출통제는 단순한 무역 규제가 아니다. 중국이 첨단 연산 능력, 즉 인공지능(AI)을 돌리는 데 필요한 칩을 구하지 못하게 막겠다는 기술 봉쇄다. 엔비디아의 H100, A100 같은 고성능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물론이고, AI 학습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까지 수출 금지 품목에 들어갔다.

그런데 봉쇄당한 나라가 조용히 앉아 있을 리 없다. 중국은 세 개의 전선을 동시에 열었다.

첫째는 반도체 자립이다. 못 사면 직접 만든다. 둘째는 달러 우회다. 달러 결제망에서 빠져나오는 독자 금융 인프라를 쌓는다. 셋째는 자원 무기화다. 반도체에 꼭 필요한 핵심 소재의 공급을 틀어쥔다.

셋 다 성공했냐고 물으면 —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셋 다 이미 진행 중이고, 이 흐름이 전 세계 공급망과 금융 질서를 흔들고 있다.


전선 1: 반도체 — "EUV 없어도 만든다"

7나노 공정이란 무엇인가

반도체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선폭(線幅)'이다. 회로를 얼마나 가늘게 새길 수 있느냐를 나노미터(nm·10억분의 1미터) 단위로 표시한다. 선폭이 좁을수록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회로를 집어넣을 수 있고, 그만큼 칩이 더 빠르고 전기를 덜 먹는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은 TSMC와 삼성전자의 3~5nm 공정이다. 중국이 이 경쟁에서 뒤처진 결정적 이유는 장비다. 3~5nm를 구현하려면 ASML이라는 네덜란드 회사가 만드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가 필요하다. 이 장비 없이는 회로를 충분히 가늘게 새길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의 압박으로 네덜란드는 이 장비를 중국에 팔지 못하게 됐다.

중국이 고른 대안은 DUV(심자외선) 장비를 반복해서 쓰는 '다중 패터닝(multi-patterning)' 방식이다. 한 번에 그릴 수 없는 미세 회로를 여러 번 겹쳐 노출해서 구현한다. 공정 단계가 늘어나고, 각 단계에서 오차가 쌓이고, 제조 비용도 올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 방법으로 7nm 공정에 진입했다.

SMIC의 '7나노 굴기'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제조 전문 기업)인 SMIC(중심국제전자제조)는 현재 이 방식으로 7nm급 칩을 생산하고 있다. 생산량은 2026년 초 기준 월 2만 장 미만 수준이지만, 목표는 1~2년 안에 월 10만 장이다. 지금의 다섯 배다.

이게 가능한가? 숫자만 보면 야심차다. 뒷받침 지표도 있다.

  • SMIC의 2025년 3분기 설비 가동률: 95.8% — 이미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풀가동 상태다.
  • SMIC의 2025년 설비 투자액: 81억 달러(약 11조 6,000억 원) —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4만 장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 SMIC 매출의 86%가 중국 내수 — 국가가 '신촹(信創, Xinchuang)' 정책으로 공공기관 PC·서버를 국산으로 의무 교체하면서 내수 수요가 구조적으로 굳어지고 있다.

화웨이는 2026년에 차세대 AI 가속기 '어센드(Ascend)' 프로세서 여러 종을 출시할 계획이다. 화웨이 최신 칩인 '기린 9030'은 반도체 분석기관 테크인사이트(TechInsights)가 뜯어본 결과 SMIC의 'N+3' 공정에서 생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진정한 5nm가 아닌 7nm 기술의 확장판"으로 평가한다.

AI 칩 전문기업 캠브리콘(Cambricon)은 2026년 목표 생산량을 50만 개로 잡았다. 이 중 30만 개가 SMIC의 7nm N+2 공정을 쓸 것으로 블룸버그는 전망한다.

구조적 한계: HBM 병목

그런데 로직 칩만 늘린다고 AI가 돌아가지 않는다. AI 가속기가 제 성능을 내려면 HBM(고대역폭 메모리)이 붙어야 한다. HBM은 메모리 반도체를 여러 층으로 수직 적층해서 데이터 전송 속도를 극대화한 제품으로, AI 연산의 병목인 '데이터를 얼마나 빨리 칩으로 옮기느냐'를 해결한다.

문제는 미국이 HBM 수출도 막았다는 것이다. 2024년 말부터 HBM2e 이상 성능 제품은 중국 수입 불가. 중국은 4분기 집중 비축, 2025년 상반기까지 우회 수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물량이 소진되면 AI 칩을 만들어도 HBM이 없어 실제 연산이 불가능한 상황이 온다.

중국의 해법은 창신메모리(CXMT)의 HBM 자립화다. CXMT는 현재 HBM2 실무 생산 단계다. 차세대 제품 개발에 집중 중이나, SMIC의 로직 칩 생산량이 월 10만 장에 이를 때 중국산 HBM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시장 분석가들은 "CXMT의 공급 속도가 중국 AI 자립의 완성도를 결정할 핵심 변수"라고 본다.


전선 2: 달러 우회 — CIPS와 디지털 위안화

달러 패권의 인프라

미국이 가진 경제적 무기 중 하나는 달러 결제망이다. 국제 무역의 대부분은 달러로 결제되고, 그 청산을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가 처리한다.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 해당 국가나 기업을 SWIFT에서 배제할 수 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SWIFT에서 부분 퇴출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이 쌓아온 대안이 CIPS(국경 간 위안화 지급 시스템)다. 중국인민은행이 2015년에 구축한 위안화 전용 청산 시스템으로, 달러를 거치지 않고 위안화로 국제 결제를 처리한다.

CIPS의 현재 규모

2026년 4월 기준 CIPS 참여 기관은 직접 참여 193개, 간접 참여 1,573개 — 전 세계 100개국 이상의 금융기관이 연결돼 있다. 3년 사이 참여 은행이 30% 가까이 늘었다.

처리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24년 한 해 CIPS가 처리한 거래는 175조 위안(약 25조 달러)으로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위안화의 SWIFT 내 결제 비중도 2026년 1월 기준 세계 4위(일본 엔화를 추월)다.

CIPS는 SWIFT를 곧바로 대체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SWIFT는 전 세계 1만 개 이상 금융기관이 연결된 200개국 규모의 메시징 네트워크다. CIPS의 규모는 아직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러시아·이란·일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처럼 '달러 결제망에서 배제될 위험이 있는' 나라들에게 CIPS는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디지털 위안화(e-CNY) — 저축 수단으로 격상

중국은 현금 없는 위안화 결제 수단으로 디지털 위안화(e-CNY, 디지털 인민폐)를 추진 중이다.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의 일종이다.

2026년 1월부터 디지털 위안화 예금에 이자(연 약 0.05%)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디지털 저축' 수단으로 격상시키는 조치다. 상하이에 디지털 위안화 국제운영센터도 설립했다. 2023년 이후 거래량은 800% 이상 성장했다는 보도도 있다.

여기에 mBridge 프로젝트가 결합된다. mBridge는 복수의 중앙은행이 참여하는 다자 CBDC 결제 플랫폼으로, CIPS가 청산소 역할을 하고 mBridge가 국경 간 결제 통로 역할을 하면 위안화 중심의 독립 금융 생태계가 완성되는 구조다. 중국의 원유 수입 중 비달러 결제 비중은 이미 2025년 기준 25%를 넘어섰다. 이란·러시아와의 거래는 대부분 위안화·루블화로 처리된다.


전선 3: 자원 무기화 — "반도체에 필요한 것은 우리가 판다"

미국이 반도체 장비와 칩 수출을 막자, 중국은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소재의 공급을 흔들기 시작했다.

갈륨(Gallium)게르마늄(Germanium)이 핵심 품목이다. 갈륨은 5G 통신 칩, 전력 반도체, 야간 투시경 등에 쓰이는 화합물 반도체의 원료다. 게르마늄은 광섬유 케이블, 적외선 광학 장비, 반도체 기판에 쓰인다. 중국은 갈륨 가공 능력의 91%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 타임라인:

  • 2023년: 갈륨·게르마늄에 수출허가제 도입. 수출하려면 중국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 2025년 4월: 미국이 반도체에 100% 관세를 예고하자, 중국은 갈륨·게르마늄·안티몬(Antimony)의 대미 수출 금지로 맞대응.
  • 2025년 11월: 미중 정상회담 후 1년 유예(2026년 11월까지) — 전면 충돌보다는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방향.
  • 2026년 1월 6일: 일본에 대해 갈륨·게르마늄 등 이중용도 물자(민간·군사 양용 품목)의 군사목적 수출 금지를 강화. 실제로 2026년 1~2월 일본 대상 수출이 '0'으로 기록됐다.

갈륨·게르마늄에 더해 안티몬, 흑연, 희토류 자석도 통제 대상에 포함됐다. 전기차 모터에 쓰이는 희토류 영구자석은 중국이 세계 공급의 대부분을 통제한다.


세 전선이 가리키는 방향

SMIC의 7nm 증산, CIPS의 거래량 급증, 갈륨 수출 제한 —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논리로 연결된다.

미국이 구축한 기술·금융·자원 공급망의 핵심 결절점(node)을 각각 우회하거나 장악하려는 시도다.

반도체 자립은 '기술 봉쇄를 뚫겠다'는 것이고, 달러 우회는 '금융 제재를 피하겠다'는 것이고, 자원 무기화는 '우리도 공급망 지렛대를 갖겠다'는 것이다.

세 전선 모두에서 중국은 아직 미국을 대체하거나 추월하지 못했다. 7nm는 3nm가 아니고, CIPS는 SWIFT가 아니며, 갈륨 공급 금지는 협상 카드로 쓰이다 유예됐다.

그러나 방향은 명확하다. 단일 패권 질서 안에서 규칙을 따르는 대신, 병렬 인프라를 쌓아 패권의 레버리지를 감소시키는 전략이다. 이것이 부분적으로라도 성공한다면 —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과 달러 결제망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닌 세계가 된다면 — 제국주의의 구조적 재편은 단지 미국 국내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 다극화 과정이 된다.


한국이 서 있는 자리

이 세 전선의 교차점에 한국이 있다.

SMIC가 7nm 양산을 늘리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에 압박이 온다. 화웨이가 AI 가속기를 자급하면 SK하이닉스의 HBM 중국 수출 시장이 줄어든다. 동시에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HBM 수요 증가가 삼성·SK하이닉스에 매출 기회가 되기도 한다 — 중국이 자립하기 전까지.

CIPS가 커지면 달러 결제망 의존도가 낮아지는 나라들이 늘고, 이는 결국 미국 금융 제재의 효력이 약해지는 방향이다. 한국은 달러 결제망에 깊이 통합된 나라로서, 이 변화가 자국의 금융 자율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미국의 눈치를 더 봐야 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는 직접적이다. 한국 반도체·전력소자 산업이 중국산 갈륨에 의존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중국이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 한국도 대체 공급처 확보에 나서야 한다.

봉쇄와 자립의 충돌이 낳는 공급망 재편 — 한국 자본은 이 충돌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완전히 기대지 못한 채 양쪽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다.


다음 회차 예고

6회차: '글로벌 사우스의 선택 — 비동맹에서 다극으로' 인도·브라질·사우디·아프리카 동맹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포지션을 구축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단순한 '중립'이 아니라 구조적 레버리지를 추구하는 새로운 비동맹의 논리를 분석한다.


제국주의 재편 2026 시리즈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