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노동대체 — 기술결정론 비판과 계급투쟁의 역할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26
연재: AI·플랫폼 자본주의의 계급정치경제학 | 3회차 / 5회차
1.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는다" — 이 명제의 정치적 함의
2025년, 앤스로픽이 공개한 '노동시장에 관한 AI의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컴퓨터 프로그래머 업무의 이론상 94%를 AI가 대체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AI로 인해 5년 내 9,2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1억 7,000만 개가 생긴다고 전망했다. 한국 기업의 AI 도입률은 2023년 기준 30.3%로 전년 대비 2.3%포인트 증가했고, 한국노동연구원은 AI 노출도 높은 직종에서 청년 고용이 2022~2024년 사이 15% 감소했다고 보고한다.
이 숫자들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숫자들이 어떤 정치적 프레임 안에서 소비되는가가 핵심이다. 지배적 서사는 단순하다: "기술이 변한다 → 일자리가 사라진다 → 적응하라." 이것이 기술결정론이다.
기술결정론의 정치적 기능은 명확하다. 해고의 책임을 알고리즘에게 돌림으로써, 자본가의 결정을 자연법칙으로 위장한다. "회사가 당신을 해고한 것이 아니라 기술이 당신을 대체한 것"이라는 서사는 계급적 책임을 증발시키는 이데올로기 장치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질문을 다시 설정한다: 기술은 중립적인가? 누가 기술을 도입하고, 누구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가?
2. 마르크스의 기계론 — 기술이 아니라 자본 관계가 문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1권 15장 「기계와 대공업」에서 이 질문에 정확히 답한다.
"기계는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적이 된다. 기계 그 자체로 보면, 기계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을 경감시킨다.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될 때 기계는 노동일을 연장하고 노동 강도를 높인다."
기계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자본에 복무한다. 첫째,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 기계로 노동 생산성을 높여 필요노동시간을 줄이고 잉여노동을 늘린다. 둘째, 협상력 파괴: 숙련 노동자를 비숙련 노동자로 대체 가능하게 만들어 노동계급 내부의 분할을 심화시킨다.
자동화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결정적인 것은 산업예비군 개념이다. 기술로 일자리가 줄면 실업자 풀이 커진다. 이 실업자 풀이 임금을 억제하는 압력으로 작동한다. 즉 자동화는 고용된 노동자와 해고된 노동자를 서로의 경쟁자로 만들어, 양쪽 모두를 약화시킨다.
2025년 AI 붐은 이 논리의 갱신판이다. 코드를 쓰는 AI는 주니어 개발자를 산업예비군으로 밀어 넣는다. 콜센터 AI는 상담 노동자를 대체한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이 과정이 누구의 결정으로, 누구의 이익을 위해 진행되는가다.
3. 기술결정론의 두 변종
기술결정론은 좌파 안에서도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비관적 기술결정론: "AI가 대부분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이 입장은 현실의 고통을 포착하지만, 해법을 자본주의 국가의 분배 정책에 위탁한다. 기술 소유 문제, 착취 관계 자체는 건드리지 않는다.
낙관적 기술결정론: "AI가 노동을 해방시킬 것이다. 생산성 증대의 열매를 모두에게." 이것은 자본가들의 PR 담론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AI가 빈곤을 없앨 것"이라고 말할 때, 그 주어가 '기술'이 아니라 '엔비디아'임을 노동자연대는 정확히 지적한다: "자동차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소유한 억만장자가 자사 기술이 노동을 없앨 것이라 말한다면,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것이 좋다."
두 변종이 공유하는 결함: 계급 행위자를 지운다. 기술 자체가 역사를 만드는 것처럼 서술함으로써, 누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흐린다.
4. 한국의 현실 — 자동화의 계급적 편향
청년 고용 충격의 구조
한국노동연구원의 2025년 보고서는 AI 노출도 높은 직종에서 2022~2024년 청년(15~29세) 고용이 15% 감소했음을 확인했다. 이 직종들은 주로 사무직·IT·금융 분석 등 중간 숙련 일자리다. 그런데 같은 기간 AI 전문 인력은 5.7만 명으로 증가했다. 즉 기술 변화가 균일하게 고통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소유자와 기술 피대체자 사이의 분열선을 심화시킨다.
콜센터의 자동화
KT, SKT, 카카오 등 주요 통신·플랫폼 기업들은 2023~2025년 AI 상담 시스템 도입을 본격화했다. 콜센터 노동자의 대다수는 비정규직 여성이다. 자동화 도입은 대규모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활용됐다. 이 노동자들이 AI 도입 결정에 참여할 권한은 없다.
제조업: "협동 로봇"의 실체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체들은 "협동 로봇(collaborative robot)"이 노동자를 돕는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은 다르다: 로봇 도입과 동시에 작업 속도 기준이 높아지고, 인원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적 용어로 말하면, 상대적 잉여가치 추출을 위한 노동 강도 강화다.
"AI 때문에 해고"의 법적 공백
2025년 상반기 미국에서 AI를 해고 사유로 명시한 건수는 54,836건(전체 해고의 4.5%)이었다. 한국에서는 AI를 해고 공식 사유로 적시하는 경우가 드물다 — 이는 한국 기업들이 AI 대체를 주로 자연감소·구조조정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부당해고 구제 신청에서 AI 자동화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지에 대한 판례도 아직 형성 중이다.
5. 계급투쟁이 기술을 결정한다 — 역사적 근거
기술결정론을 뒤집는 핵심 증거는 역사다.
19세기 러다이트는 단순한 '기계 파괴자'가 아니었다. 영국 방직업 기계 도입에 맞선 그들의 투쟁은 노동시간, 임금, 작업 조건을 둘러싼 계급투쟁이었다. 기계 도입 속도와 조건은 자본과 노동의 세력 관계에 따라 달라졌다.
8시간 노동제는 기술이 선물한 것이 아니다. 19~20세기 노동운동이 쟁취했다. 당시에도 기계화로 생산성이 급증했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투쟁이 없었다면 그 이익은 전부 자본가에게 돌아갔다.
일본 노동조합의 기술협약 모델은 시사적이다. 1970~80년대 일본 대기업 노조들은 단체협약에 "기술 도입 사전 협의" 조항을 삽입했다. 자동화 결정을 자본가의 전권 사항이 아닌 노사 협의 사항으로 만들었다. 이는 기술 도입을 막은 것이 아니라, 그 속도와 조건을 노동자 세력이 일부 통제한 사례다.
핵심 명제: 기술 변화의 결과는 미리 정해지지 않는다. 노동자가 조직돼 있으면, 자동화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직되지 않으면, 자동화는 해고와 노동 강화의 명분이 된다.
6. 한국의 저항 — 부분적이지만 의미 있는 사례들
라이더유니온의 알고리즘 투쟁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이 만든 라이더유니온은 쿠팡이츠·배민의 알고리즘 비공개에 맞서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배차받고 페널티를 받는지 알 권리"는 단순한 정보 요청이 아니다. 알고리즘 통제에 대한 노동자 측의 집합적 개입 시도다.
KT 콜센터 노동자 AI 도입 반발
2024년 KT 콜센터 하청 노동자들은 AI 상담 시스템 도입과 연계된 인력 감축 계획에 반발했다. 공식 파업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으나, "AI 도입 결정에 노동자 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조직 내에서 제기됐다.
금속노조 '기술변화 대응 TF'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2024년 전기차 전환·자동화 대응 TF를 구성했다. 자동화 인력 감축에 대한 단체협약 조항 삽입을 논의 중이다. 아직 성과는 제한적이지만, 조직적 대응의 씨앗이 있다.
이 사례들은 모두 초기 단계이고 취약하다. 그러나 이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기술 변화가 계급투쟁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7. 기본소득론 비판 — 출구인가 회피인가
AI 자동화 논의에서 기본소득론이 자주 등장한다. 논리 구조는 이렇다: "AI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므로,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이 제안의 한계는 두 가지다.
첫째, 생산수단 소유 문제를 회피한다. 누가 AI를 소유하고 그 이익을 수취하는가는 그대로 두고, 그 이익의 일부를 재분배하는 방식이다. 자본주의 생산 관계는 유지되면서, 분배만 조정되는 '사회민주주의적 패치'다.
둘째, 노동자의 집합적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기본소득이 조직 노동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경우, 파업·단체협약·생산 통제 요구 등 노동계급의 실질적 힘이 아닌 개인적 소득 보장으로 투쟁의 방향이 치환된다.
물론 기본소득론이 단일하지는 않다. 좌파 기본소득론 중에는 노동자 조직화의 보완으로 제시하는 흐름도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치 지형에서 기본소득 담론이 주로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활용되는지를 봐야 한다 — 이재명 정부의 '기본소득'은 계급 이해관계 조정의 도구로 기능할 공산이 크다.
8. 기술 민주화의 방향 — 문제 재설정
올바른 질문은 "AI가 일자리를 몇 개 없앨 것인가"가 아니다. 올바른 질문은:
- 누가 AI를 소유하는가? 삼성 가우스, 카카오 KoGPT, 네이버 HyperCLOVA — 이 AI들을 개발한 노동자들이 그 수익을 수취하는가?
- 누가 도입을 결정하는가? 자동화 투자 결정은 현재 경영진의 전권 사항이다. 노동자 대표가 이 결정에 참여할 권한은 없다.
- 이익이 어디로 가는가? AI 생산성 향상의 이익이 주주에게 돌아가는가, 노동시간 단축·임금 인상·재고용으로 분배되는가?
노동자연대의 정확한 지적처럼: "노동자들이 조직화한다면, 매 기술 발전이 해고가 아닌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 강도 강화가 아닌 더 안전한 노동조건으로, 새 기계에 대한 민주적 통제로 이어지도록 투쟁할 수 있다."
기술결정론이 기술을 역사의 주체로 놓는다면, 마르크스주의는 계급을 역사의 주체로 놓는다. AI 시대에 노동계급의 전략 과제는 자동화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화의 조건과 이익 배분을 둘러싼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다음 회차 (4회차): 플랫폼 독점과 국가 — 규제 실패와 반독점의 정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