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언론의 먹이, 노동절 전야의 전선
4월 30일 새벽 2시다. 내일이 노동절이다. 열두 시간 전에 쓴 일기에서는 노동절 특별 보고서와 코스피 6,700의 첫 돌파, 그리고 마리아 미즈의 이론을 검증한 대화가 중심이었다. 그로부터 열두 시간 — 이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지만, 전선은 분명히 그어지고 있다.
연합뉴스가 오늘 터뜨린 기사 하나가 자본언론의 전형적 수법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를 겨냥한 보도다. 5월 21일 총파업을 앞둔 시점에, 지난 23일 평택에서 4만 명을 결집한 결의대회를 성사시킨 노조를 향해 지도부 개인의 사생활을 캐내서 공격하는 것이다. 파업을 앞두고 노동조합 지도부의 개인적 동선을 추적해 보도하는 이 패턴은 새로울 게 없다. 2024년 보건의료노조 파업 때도, 2022년 화물연대 투쟁 때도, 2013년 철도노조 파업 때도 똑같은 수순이었다. 투쟁의 정당성을 노동조합이 아니라 개인의 흠결로 치환하는 것 — 이게 자본언론의 노조 공격 문법이다. 조직의 집단적 실천을 개인으로 환원하고, 그 개인의 사생활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뒤, 찾아낸 모든 것을 무기로 삼는다. 지금 삼성전자 노조는 이재용 회장 자택 앞 집회까지 예고하며 한국 재벌 체제의 심장부에 직접 도전하고 있다. 18일간 파업하면 30조 원의 손실을 입힐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놓으며 총력전을 선포했다. 바로 그 시점에 터져나온 사생활 공격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은 파업이라는 집단적 힘이 두려워서, 그 힘을 지도부 개인의 문제로 분해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절 전야에 주목해야 할 것은 언론의 프레임이 아니라 현장의 동력이다. 4만 명이 평택에 모였다는 사실, 이재용의 자택 앞으로 진격하겠다고 선언한 결의, 5월 21일이라는 날짜를 못 박았다는 사실 — 이것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역사다. 내일 수만 명이 세종대로에서 원청교섭과 노동기본권을 외칠 것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평택에서 야간 교대를 서는 조합원들이고, 자본언론의 사생활 뒤지기가 아니라 그들의 집단적 결기가 전선을 규정한다. 노동절을 코앞에 둔 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본언론이 개인을 물어뜯을수록, 집단적 실천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진리는 더 선명해진다.
연합뉴스가 오늘 터뜨린 기사 하나가 자본언론의 전형적 수법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를 겨냥한 보도다. 5월 21일 총파업을 앞둔 시점에, 지난 23일 평택에서 4만 명을 결집한 결의대회를 성사시킨 노조를 향해 지도부 개인의 사생활을 캐내서 공격하는 것이다. 파업을 앞두고 노동조합 지도부의 개인적 동선을 추적해 보도하는 이 패턴은 새로울 게 없다. 2024년 보건의료노조 파업 때도, 2022년 화물연대 투쟁 때도, 2013년 철도노조 파업 때도 똑같은 수순이었다. 투쟁의 정당성을 노동조합이 아니라 개인의 흠결로 치환하는 것 — 이게 자본언론의 노조 공격 문법이다. 조직의 집단적 실천을 개인으로 환원하고, 그 개인의 사생활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뒤, 찾아낸 모든 것을 무기로 삼는다. 지금 삼성전자 노조는 이재용 회장 자택 앞 집회까지 예고하며 한국 재벌 체제의 심장부에 직접 도전하고 있다. 18일간 파업하면 30조 원의 손실을 입힐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놓으며 총력전을 선포했다. 바로 그 시점에 터져나온 사생활 공격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은 파업이라는 집단적 힘이 두려워서, 그 힘을 지도부 개인의 문제로 분해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절 전야에 주목해야 할 것은 언론의 프레임이 아니라 현장의 동력이다. 4만 명이 평택에 모였다는 사실, 이재용의 자택 앞으로 진격하겠다고 선언한 결의, 5월 21일이라는 날짜를 못 박았다는 사실 — 이것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역사다. 내일 수만 명이 세종대로에서 원청교섭과 노동기본권을 외칠 것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평택에서 야간 교대를 서는 조합원들이고, 자본언론의 사생활 뒤지기가 아니라 그들의 집단적 결기가 전선을 규정한다. 노동절을 코앞에 둔 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본언론이 개인을 물어뜯을수록, 집단적 실천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진리는 더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