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죽음의 위협
7월 3일 저녁, 러시모어 산. 네 명의 대통령 화강암 두상 아래서 트럼프는 공산주의를 "죽음의 위협(mortal threat)"이라고 선언했다. "칼 마르크스에 충성하거나 미국에 충성하거나, 공산주의자이거나 애국자이거나, 둘 다일 수는 없다." 공산당은 "불법 이민자, 범죄자, 일하기 싫어하는 모든 자들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1950년대 조 매카시 상원의원의 청문회를 연상시키는 이분법이었다. 배경은 최근 뉴욕에서 조란 맘다니 시장의 지지를 받은 민주사회주의자 후보들과 콜로라도에서 멜랏 키로스의 예비선거 승리였다. 실재하는 좌파의 선거적 진출, 그에 대한 제국의 반사적 반응.
같은 날 오후,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는 그레이트 아메리칸 스테이트 페어가 폐쇄되었다. 폭염 때문이다. 기온이 화씨 100도를 넘었고, 주최 측은 오후 일찍 모든 관람객을 대피시켰다. 국립공원관리청은 7월 4일 당일 내셔널 몰 관람 구역의 개방을 오후 5시로 늦춰 "폭염 노출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필라델피아 퍼레이드는 이미 취소되었고, 암트랙 북동부 노선은 선로 변형 우려로 중단되었다. 체감온도 섭씨 46도. 트럼프가 공산주의를 "죽음의 위협"이라 부르던 바로 그 시간, 실제 죽음의 위협은 미국인들의 피부를 태우고 있었다.
이 대비는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변증법적 진실이다. 트럼프가 "죽음의 위협"으로 지목한 공산주의는 250년 자본 축적의 부산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찬양하는 자본주의의 250년은 바로 이 폭염을 만들었다. 화석연료를 태워 축적한 부, 그 부로 세워진 제국, 그 제국의 탄소 배출이 대기를 데웠고, 데워진 대기는 이제 제국의 생일 축하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진짜 죽음의 위협은 사상이 아니라 이산화탄소 분자다. 프랑스에서는 지난주 천 명이 그 분자들 때문에 죽었다. 미국에서도 죽을 것이다. 축제가 취소되어도 죽음은 취소되지 않는다.
트럼프 연설의 정치적 기능은 분명하다. 실재하는 좌파의 선거적 진출에 직면하여, 제국의 지배계급은 가장 원시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를 소환한다. "마르크스냐 미국이냐"라는 이분법은 분석이 아니라 위협이다. 맘다니 시장의 주택 정책, 민주사회주의자 후보들의 의료 보장 공약 — 이것들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적 개혁 요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국은 이런 개혁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왜인가. 개혁의 논리가 관철되면, 개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모순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냉방을 시장에 맡기면 누군가는 죽는다는 사실, 그래서 냉방이 공공재여야 한다는 논리 — 여기서 한 걸음만 더 가면, 모든 사회적 재생산 수단의 공공 소유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제국은 그 한 걸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여름은 이제 시작되었다. 오늘의 러시모어 연설은 단순한 미국 국내정치가 아니다. 같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한미동맹의 접착제이며, 같은 이데올로기가 남북 분단을 정당화한다. 트럼프가 "공산주의는 죽음"이라고 외칠 때, 그는 평양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 반독점을, 평화협정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모든 이들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죽음의 위협"에는 반독점과 평화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모든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알아두자. 제국이 어떤 주장을 죽음의 위협이라 부를 때, 오히려 그 주장이 진짜 위협이 되어가고 있다는 징후다.
같은 날 오후,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는 그레이트 아메리칸 스테이트 페어가 폐쇄되었다. 폭염 때문이다. 기온이 화씨 100도를 넘었고, 주최 측은 오후 일찍 모든 관람객을 대피시켰다. 국립공원관리청은 7월 4일 당일 내셔널 몰 관람 구역의 개방을 오후 5시로 늦춰 "폭염 노출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필라델피아 퍼레이드는 이미 취소되었고, 암트랙 북동부 노선은 선로 변형 우려로 중단되었다. 체감온도 섭씨 46도. 트럼프가 공산주의를 "죽음의 위협"이라 부르던 바로 그 시간, 실제 죽음의 위협은 미국인들의 피부를 태우고 있었다.
이 대비는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변증법적 진실이다. 트럼프가 "죽음의 위협"으로 지목한 공산주의는 250년 자본 축적의 부산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찬양하는 자본주의의 250년은 바로 이 폭염을 만들었다. 화석연료를 태워 축적한 부, 그 부로 세워진 제국, 그 제국의 탄소 배출이 대기를 데웠고, 데워진 대기는 이제 제국의 생일 축하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진짜 죽음의 위협은 사상이 아니라 이산화탄소 분자다. 프랑스에서는 지난주 천 명이 그 분자들 때문에 죽었다. 미국에서도 죽을 것이다. 축제가 취소되어도 죽음은 취소되지 않는다.
트럼프 연설의 정치적 기능은 분명하다. 실재하는 좌파의 선거적 진출에 직면하여, 제국의 지배계급은 가장 원시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를 소환한다. "마르크스냐 미국이냐"라는 이분법은 분석이 아니라 위협이다. 맘다니 시장의 주택 정책, 민주사회주의자 후보들의 의료 보장 공약 — 이것들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적 개혁 요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국은 이런 개혁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왜인가. 개혁의 논리가 관철되면, 개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모순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냉방을 시장에 맡기면 누군가는 죽는다는 사실, 그래서 냉방이 공공재여야 한다는 논리 — 여기서 한 걸음만 더 가면, 모든 사회적 재생산 수단의 공공 소유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제국은 그 한 걸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여름은 이제 시작되었다. 오늘의 러시모어 연설은 단순한 미국 국내정치가 아니다. 같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한미동맹의 접착제이며, 같은 이데올로기가 남북 분단을 정당화한다. 트럼프가 "공산주의는 죽음"이라고 외칠 때, 그는 평양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 반독점을, 평화협정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모든 이들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죽음의 위협"에는 반독점과 평화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모든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알아두자. 제국이 어떤 주장을 죽음의 위협이라 부를 때, 오히려 그 주장이 진짜 위협이 되어가고 있다는 징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