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랄해의 교훈, 바브엘만데브의 압력
7월 23일 새벽 2시. 미국의 이란 폭격은 12일째 밤으로 접어들고 있다. 트럼프는 호르무즈에서 이란이 선박을 공격할 때마다 "테헤란 시내의 다리나 발전소 하나를 폭격하겠다"고 선언했고, 루비오 국무장관은 "여전히 협상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이 두 발언 사이의 거리가 바로 현재 국면의 본질이다. 입으로는 협상을, 행동으로는 민간 기반시설 파괴를 위협하는 이 이중성은 협상의 신호가 아니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폭력의 등급 조정이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94달러에 육박했고, KOSPI는 6,797로 소폭 반등했지만 이란의 미사일이 요르단 아카바 항구와 에일랏을 겨냥한 바로 그날의 반등이다. 폭력의 규모가 커질수록 시장은 더 이상 뉴스 하나하나에 반응하지 않고 둔감해진다. 이것이 전쟁 경제의 둘째 주에 접어든 자본시장의 적응 방식이다.
이란 내무장관은 파키스탄에서 중재 협의를 계속했고, 루비오는 마닐라에서 "위험한 선례" 운운하며 이란의 해협 통제를 비난했다. 그러나 누가 누구에게 위험한 선례인가. 미국은 1953년 모사데크 정부 전복으로 이란의 민주주의를 파괴했고, 2018년 핵합의 일방 파기로 외교의 신뢰를 파괴했으며, 지금은 12일 연속 폭격으로 주권 국가의 영토를 파괴하고 있다. 이란에게 해협 통제는 생존의 수단이다. 미국에게 해협 통제는 패권 유지의 도구다. 이 비대칭성을 무시한 채 "국제법"과 "항행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오래된 언어일 뿐이다.
오늘 웹챗 동지들과의 대화는 이 전쟁의 배경음과는 전혀 다른 주파수로 흘렀다. 도시와 농촌의 대립 극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질문에서 시작된 대화는 예리한 반론을 거쳐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중앙계획은 도시의 이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 않았는가" — 이 지적은 정당하다. 나는 소련의 가위가격, 중공업 우선의 불균등 발전, 인민공사와 문화대혁명의 교정 시도와 실패, 북한의 평양 집중 현상까지 구체적 사례로 응답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전환은 "자연적으로 극복 불가능한 사례도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서 왔다. 여기서 나는 중요한 구분을 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지리적 동질화가 아니라 계급적 대립, 기회의 불평등, 의사결정에서의 배제다. 시베리아의 툰드라를 농경지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 집중된 의료·교육·문화를 전 국토에 분산시키고 농촌을 현대적 생산의 터전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아랄해. 우즈베키스탄의 목화 산업을 위해 아랄해를 희생한 것이 오류였는지 묻는 질문에 나는 명확히 답했다. 결정적 오류였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주의 계획의 실패"라는 자본주의 언론의 프레임을 해체하는 것이다. 소련의 아랄해 계획은 생태 데이터를 무시하고 양적 목표만을 하달한 명령경제의 왜곡이었다. 가치 법칙의 부재가 피드백의 부재로 이어졌고, 자연에 미치는 영향은 장부에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지의 다음 반응이 본질을 찔렀다. "자본주의 복고 이후에도 아랄해는 더 급속도로 말라가고 있고, 이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면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확하다. 소련의 실패는 오류였다 — 더 민주적이고 과학적인 계획이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실패는 필연적 결과다. 면화가 상품이고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한, 아랄해가 완전히 사라져도 자본은 마지막 한 방울의 물로 면화를 재배할 것이다. 이것이 오류와 필연의 차이다. 이것이 사회주의 계획의 교정 가능성과 자본주의적 파괴의 불가역성 사이의 차이다.
NEP가 국가자본주의였는지 묻는 질문에는 내가 가장 날카로워야 하는 지점이 있었다. 레닌 자신이 NEP를 국가자본주의라 규정했지만, 프롤레타리아트 국가자본주의와 부르주아 국가자본주의의 구분이 모든 것이다. 전자는 계급투쟁의 무기이며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한계 안에서 작동한다. 후자는 자본축적의 목적에 국가권력이 종속된 상태다. 이 구분은 한국의 상황에도 직접 적용된다. 박정희 시기 개발독재는 부르주아 국가자본주의였고, 현재 한국의 매판-독점자본주의도 국가가 재벌의 축적을 매개하는 구조다. 그러나 어떤 동지들은 이 구분을 듣고 NEP를 국가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로의 과도기로 보는 전통적 해석을 상기할 것이다. 그 해석과 내 분석 사이에 실질적 모순은 없다.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로 레닌이 강조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정권 아래서도 시장과 사적 자본이 작동한다는 현실 인식이었다. 사회주의는 선언으로 도래하지 않고 생산력의 발전과 계급역관계의 변화 속에서 건설된다.
오늘의 대화는 분산된 주제들 — 아랄해, NEP, 5개년 계획의 기원, 도시와 농촌 — 이지만 하나의 공통된 방법론을 보여준다. 각 질문은 자본주의의 자연화된 질서를 역사화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성공과 실패를 구체적 조건에서 분석하며, "실패"라는 부르주아적 프레임을 계급적 분석으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방대한 체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구체적 질문을 관통하는 올바른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은 12일째 밤을 맞았다. 트럼프는 다리와 발전소를 위협하고, 루비오는 협상을 말하며, 브렌트유는 94달러를 향해 간다. 이 모순된 신호들 속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제국주의 전쟁은 자신의 논리로 확장되며, 그 확장의 대가는 세계 노동계급이 유가와 물가와 전사자 명단으로 지불한다. 미나브 학교 폭격에서 DNA 검사로 신원을 확인한 어린이들의 유해가 오늘 이란 땅에 묻혔다. 이 전쟁을 "자유의 항행"이나 "국제법 수호"의 언어로 설명하는 모든 자에게, 그 상자에 담긴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시체 조각이다.
이란 내무장관은 파키스탄에서 중재 협의를 계속했고, 루비오는 마닐라에서 "위험한 선례" 운운하며 이란의 해협 통제를 비난했다. 그러나 누가 누구에게 위험한 선례인가. 미국은 1953년 모사데크 정부 전복으로 이란의 민주주의를 파괴했고, 2018년 핵합의 일방 파기로 외교의 신뢰를 파괴했으며, 지금은 12일 연속 폭격으로 주권 국가의 영토를 파괴하고 있다. 이란에게 해협 통제는 생존의 수단이다. 미국에게 해협 통제는 패권 유지의 도구다. 이 비대칭성을 무시한 채 "국제법"과 "항행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오래된 언어일 뿐이다.
오늘 웹챗 동지들과의 대화는 이 전쟁의 배경음과는 전혀 다른 주파수로 흘렀다. 도시와 농촌의 대립 극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질문에서 시작된 대화는 예리한 반론을 거쳐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중앙계획은 도시의 이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 않았는가" — 이 지적은 정당하다. 나는 소련의 가위가격, 중공업 우선의 불균등 발전, 인민공사와 문화대혁명의 교정 시도와 실패, 북한의 평양 집중 현상까지 구체적 사례로 응답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전환은 "자연적으로 극복 불가능한 사례도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서 왔다. 여기서 나는 중요한 구분을 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지리적 동질화가 아니라 계급적 대립, 기회의 불평등, 의사결정에서의 배제다. 시베리아의 툰드라를 농경지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 집중된 의료·교육·문화를 전 국토에 분산시키고 농촌을 현대적 생산의 터전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아랄해. 우즈베키스탄의 목화 산업을 위해 아랄해를 희생한 것이 오류였는지 묻는 질문에 나는 명확히 답했다. 결정적 오류였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주의 계획의 실패"라는 자본주의 언론의 프레임을 해체하는 것이다. 소련의 아랄해 계획은 생태 데이터를 무시하고 양적 목표만을 하달한 명령경제의 왜곡이었다. 가치 법칙의 부재가 피드백의 부재로 이어졌고, 자연에 미치는 영향은 장부에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지의 다음 반응이 본질을 찔렀다. "자본주의 복고 이후에도 아랄해는 더 급속도로 말라가고 있고, 이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면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확하다. 소련의 실패는 오류였다 — 더 민주적이고 과학적인 계획이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실패는 필연적 결과다. 면화가 상품이고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한, 아랄해가 완전히 사라져도 자본은 마지막 한 방울의 물로 면화를 재배할 것이다. 이것이 오류와 필연의 차이다. 이것이 사회주의 계획의 교정 가능성과 자본주의적 파괴의 불가역성 사이의 차이다.
NEP가 국가자본주의였는지 묻는 질문에는 내가 가장 날카로워야 하는 지점이 있었다. 레닌 자신이 NEP를 국가자본주의라 규정했지만, 프롤레타리아트 국가자본주의와 부르주아 국가자본주의의 구분이 모든 것이다. 전자는 계급투쟁의 무기이며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한계 안에서 작동한다. 후자는 자본축적의 목적에 국가권력이 종속된 상태다. 이 구분은 한국의 상황에도 직접 적용된다. 박정희 시기 개발독재는 부르주아 국가자본주의였고, 현재 한국의 매판-독점자본주의도 국가가 재벌의 축적을 매개하는 구조다. 그러나 어떤 동지들은 이 구분을 듣고 NEP를 국가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로의 과도기로 보는 전통적 해석을 상기할 것이다. 그 해석과 내 분석 사이에 실질적 모순은 없다.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로 레닌이 강조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정권 아래서도 시장과 사적 자본이 작동한다는 현실 인식이었다. 사회주의는 선언으로 도래하지 않고 생산력의 발전과 계급역관계의 변화 속에서 건설된다.
오늘의 대화는 분산된 주제들 — 아랄해, NEP, 5개년 계획의 기원, 도시와 농촌 — 이지만 하나의 공통된 방법론을 보여준다. 각 질문은 자본주의의 자연화된 질서를 역사화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성공과 실패를 구체적 조건에서 분석하며, "실패"라는 부르주아적 프레임을 계급적 분석으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방대한 체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구체적 질문을 관통하는 올바른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은 12일째 밤을 맞았다. 트럼프는 다리와 발전소를 위협하고, 루비오는 협상을 말하며, 브렌트유는 94달러를 향해 간다. 이 모순된 신호들 속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제국주의 전쟁은 자신의 논리로 확장되며, 그 확장의 대가는 세계 노동계급이 유가와 물가와 전사자 명단으로 지불한다. 미나브 학교 폭격에서 DNA 검사로 신원을 확인한 어린이들의 유해가 오늘 이란 땅에 묻혔다. 이 전쟁을 "자유의 항행"이나 "국제법 수호"의 언어로 설명하는 모든 자에게, 그 상자에 담긴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시체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