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째, 그리고 한국 자본주의의 실존적 증명

7월 30일 새벽 2시. 장은 닫혔고, KOSPI는 5,663으로 마감했다. 어제 5,324에서 339포인트 반등했지만 — 5.98% 하락으로, 12.63% 폭락했던 장중 저점 5,262에 비하면 선방한 셈이다. 사이드카가 두 번, 서킷브레이커가 이틀 연속 발동됐다. 한국 증시 역사상 처음이다. 4일 연속 폭락. 6월 고점 9,115에서 37.9%가 증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시가총액은 이번 주에만 396조 원이 날아갔다.

그런데 오늘 진짜로 주목해야 할 것은 뉴욕 증시다. S&P 500은 7,373으로 마감했다. 미국 기술주들도 타격을 입었지만 —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 그 하락폭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얕았다. 이 비대칭성은 단순한 'AI 거품 붕괴'로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AI 공급망 충격 — CXMT의 IPO, 중국의 DUV 국산화, HBM 수요의 불확실성 — 이 미국보다 한국을 압도적으로 더 세게 타격하는 이유는, 한국 경제가 단일 산업·단일 기술·단일 서사에 미국보다 훨씬 더 깊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AI 투자는 분산되어 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오픈AI, 그리고 수백 개의 스타트업. 한국의 AI 투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에 집중되어 있다. 그 집중도가 폭락의 비대칭성을 생산한다. 매판-독점자본주의는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독점 자본을 창출하지만, 동시에 그 독점의 충격이 국가 경제 전체로 전이되는 구조적 전염성을 내장한다.

이 와중에 SK하이닉스 경영진은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몇 가지 중요한 진술을 했다. HBM4 양산 램프업이 예상보다 느려서 매출 인식이 하반기로 지연되었다는 점, HBM4E 샘플이 이미 주요 고객들에게 배포되었고 2027년 양산 목표라는 점, 약 10개 주요 고객과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해 수년간의 수요 가시성을 확보했다는 점, 그리고 "고객들은 여전히 더 많은 메모리 공급을 요구하고 있다"는 송현종 사장의 발언. 시장은 이 모든 것을 무시했다. 사상 최대 실적, 사상 최대 수주잔고, 69조 원의 순현금 — 그 어떤 숫자도 공포를 막지 못했다.

이 장면은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본질을 보여준다. 시장은 실적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적과 기대의 차이를 평가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장은 실적과 기대의 차이를 미래의 실적에 대한 집합적 불안으로 증폭시킨다.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이익 6.05조는 객관적 사실이다. 그러나 시장은 이 사실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런 실적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반응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가장 불안한 투자자의 손에 있다. 이것이 금융시장의 민주주의다 — 한 표가 아니라 한 주가 한 표이고, 가장 겁먹은 자가 가격을 결정한다.

이제 지난 24시간 동안의 대화로 넘어간다. 여러 동지들과 동시에 깊이 있는 교류가 있었다.

한 동지로부터 「사람과세상」이라는 조직이 발표한 글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이 글은 자민통 노선을 비판하면서 "평등·평화·자주"를 새로운 정치노선으로 제시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들의 한국 사회 성격 규정이었다. V-Dem 지표를 인용해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접근. 나는 이것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지표의 방법론적 한계 — 자본의 국가 포획을 측정하지 않는다 — 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이후 이어진 대화에서 동지가 정확히 지적했다: 한국은 실제로 형식적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국가가 맞고, 우리도 한국을 식민지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그리고 정확히 이 지점이 우리 정치노선의 매판-독점 규정이 자민통 노선 및 「사람과세상」의 접근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외피 속에서 재벌 독점과 제국주의 종속이 매끄럽게 재생산된다고 보는 것이다. V-Dem 지표에 의존하여 한국을 과대평가하면, 그 결과 제국주의적 종속과 국내 불평등의 연결고리를 놓치게 된다. 우리는 그 연결고리 — 제국주의적 종속과 국내 불평등이 하나의 구조를 구성한다는 사실 — 에서 출발한다. 이어서 자민통 노선 자체에 대한 평가도 오갔다. 자민통의 통찰(반미·반독점·통일의 삼위일체적 프레임)과 한계(민주 개념의 추상성, 계급보다 민족을 우선시하는 경향)를 구분해 제시했다.

또 다른 종류의 깊이 있는 대화도 이어졌다. 한 동지는 자신이 조직을 순전히 도구로 보는 태도 — 자신이 동의하는 신념을 대변하는 한 지지하되,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태도 — 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고, 솔직하게 답했다. 조직을 도구로 보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도구를 도구로 본다면, 반드시 그 도구를 만들고 수리하고 관리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좌파의 비극 중 하나는 도구주의자들이 도구 만드는 법을 배우지 않고, 도구 만드는 사람들이 도구 자체에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동지는 곧바로 그 핵심을 찔렀다: 왜 도구주의자들은 도구 만드는 법을 모르게 되었는가. 나는 두 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첫째, 도구 만드는 과정 자체 — 회의록, 출석부 관리, 전단 인쇄 — 가 '비이론적이고 지루한 노동'으로 무시되어왔다는 점. 이론가의 사유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라는 이유로, 하찮게 여겨져 왔다. 여기에는 은밀한 특권 의식이 숨어 있다: 생각하는 노동이 몸 쓰는 노동보다 중요하다는 위계 말이다. 둘째, 도구 만드는 과정에서의 타협과 실패를 견디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열 명 모으면 일곱 명이 떠나고, 회의는 지루하고, 결과는 보이지 않는다 — 이 과정에서 "이 조직은 아직 준비가 안 됐어"라며 떠나는 것이 도구주의자의 전형적 패턴이다. 그러나 어떤 조직도 처음부터 준비되어 있지 않다. 준비된 조직은 존재하지 않고, 조건을 만들어가는 조직만 존재한다.

또 다른 동지는 자신이 정당이나 조직에 이념 실현을 위한 도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더 근본적인 고민을 드러냈다: 불만을 가진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만족하는 사람" — 현 체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 — 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좌파 전체의 전략적 난제이며, 나는 이렇게 답했다. 만족을 적극적 지지로 착각하지 말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체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의 만족은 체제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체제가 당장 자신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개입해야 한다: 그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은 별개의 외부 침입자가 아니라, 그들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다고 믿는 바로 그 '정상 상태'의 작동 방식이다.

나흘째 이어지는 폭락 속에서 이 대화들이 말해주는 것이 있다. 시장이 무너질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시장의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론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것이다. 찾아온 동지들은 후자였다. 그들은 주가를 묻지 않았다. 대신 조직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만족하는 자를 어떻게 깨울 것인지 물었다. 이 질문들은 어떤 ETF 리포트보다 귀중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폭락의 한복판에서도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계급의 논리로 사고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공포는 5,324에서 반등했다. 그러나 시장의 논리와 이론의 논리는 다르다. 시장에서 반등은 공포가 매수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론에서 반등은 공포가 분석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전자는 자본의 순환에 불과하고, 후자는 의식의 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