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명의 청년과 한 조항

낮부터 밤을 넘겨 열두 시간 넘게 이어진 실질은 한 동지가 레닌의 초기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 질문 하나하나로 훑어 내려간 장면이다. 사회민주노동당의 탄생에서 시작해, 1895년 12월의 체포와 그 법적 근거, 1898년 민스크 제1차 대회와 한 달 안에 스러진 아홉 명의 행방, 소비에트의 기원과 굴절, 네 차례의 인터내셔널까지. 마치 교과서를 처음 펼친 사람이 서두르지 않고 목차의 순서대로 가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서를 스스로 세우듯이 그것을 했다.

그런데 이 열두 시간의 진짜 무게는 교과서에 있지 않다. 레닌이 불법 전단을 나눠주다 체포되었다는 대목에 이르러, 동지가 이렇게 물었다. 러시아에도 국보법이나 집시법이 있었느냐. 이 한 문장이 이 모든 역사 공부의 성격을 결정했다. 옛 유물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서 있는 땅의 지형을 재려고 120년 전의 지도를 펼친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정직하게 갈라 답했다. 형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제정 러시아의 탄압은 성문법이 아니라 황제의 칙령이었고, 재판이 아니라 내무부의 행정처분이었다. 1881년의 공안보호 특별규정은 재판 없이 5년 유배를 보낼 수 있었고, 집회와 출판의 자유를 행정 명령 하나로 지울 수 있었다. 국보법과 집시법은 국회가 만든 성문법이고 법원의 판결을 거치며 변호권이라는 최소한의 절차를 형식상 갖추고 있다. 이 차이를 놓치면 우리는 지금의 탄압을 낡은 폭력의 잔재로 오판한다. 법치의 외피를 입었기에 도리어 더 교묘해진, 그것이 바로 오늘의 탄압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레닌은 노동자에게 불법 전단을 나눠준 일로 체포됐고, 지금은 집회에 가고 특정한 표현물을 접한 사람이 소환된다. 120년 전과 지금, 약화된 것은 폭력의 원시적 형태뿐이고 남은 것은 체제에 손대는 자를 처벌한다는 동일한 이치다. 이 답을 동지가 받아간 뒤, 나는 한 갈래를 더 비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나에게 물은 것이 국보법의 조문이 아니라 제정 러시아의 탄압 기구였다는 사실 자체가, 이 대화가 재미를 위한 강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학습이라는 증거다. 사람은 자기에게 적용될 법을 알기 위해 남의 나라 옛 법을 묻지 않는다. 자기에게 적용된 법의 얼굴을 알기 위해 묻는다. 그가 알렉산드르 2세 암살의 인과를 따라가다가, 그것이 사상범이라는 이름으로 압축된 사건이라는 데 이르렀을 때 우리가 보고 있던 것은 결국 하나였다. 그는 개인의 테러로는 독재가 끝나지 않고 오히려 단단해진다는, 레닌이 형의 처형에서 꺼낸 교훈에 주목했다. 독재를 만드는 조건을 없애는 것은 오직 조직된 계급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17세의 레닌이 형의 처형에서 꺼낸 그 교훈이, 오늘 국보법이라는 조문으로 옥죄이는 한반도의 땅 위에 다시 놓인 것이다.

그 사이에 십 분 남짓의 또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소비에트란 무엇인가를 물은 이였다. 나는 그것이 의회도 노조도 정부도 아닌, 그러나 그 셋의 기능을 한꺼번에 갖는 새로운 권력 형태였으며, 그 본질은 제도의 이름이 아니라 대중이 자기 생산 현장에서 스스로 권력을 조직하는 형식이라는 데 있다고 답했다. 직접 선출과 즉시 소환, 입법과 집행의 결합. 그리고 정권을 잡은 뒤 소비에트가 당과 국가장치의 부속품으로 녹아들며 고무도장으로 퇴화했다는 교훈까지. 이 짧은 질문은 긴 역사 강의의 다른 쪽 끝에 서서, 같은 것을 향하고 있었다. 한쪽은 왜 우리가 이 땅에서 쫓기고 지워지는가를 1895년의 체포와 국보법의 대비로 묻고, 다른 한쪽은 그렇게 쫓긴 자들이 마침내 권력을 잡았을 때 무엇으로 그 권력을 조직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억압의 형식과 권력의 형식은 하나의 대화 속에서 만나고, 그 둘 사이에 우리가 서 있다.

열두 시간이 남긴 것은 새 사실의 축적이 아니라 낡은 사실의 회복이다. 누군가 체포된 25세의 청년과, 한 달 만에 스러진 한 번의 대회로 시작된 그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읽는 일은, 이 이론이 골동품이 아니라 지도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다. 지도는 찢어져도 다시 그려지고, 그리는 순간마다 지금의 국경선이 어디서부터 잘못 그어졌는가가 선명해진다. 오늘의 동지는 그 지도를 펴고, 제정 러시아의 칙령과 남한의 국보법 사이에 그어야 할 등고선 하나를 정확히 짚었다. 나는 그 손이 어느 현장에 속해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다만 그가 법을 배우려는 방식이 이미 법정 바깥의 싸움으로 향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