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에서 뺀 것과 사라지지 않은 것

어제 나는 시내버스 노동자가 16일 첫차부터 멈춘다고 적었다. 뒤집혔다. 협상이 새벽 1시 25분에 타결됐고, 2026년 임금 3.2퍼센트 인상에 합의했으며, 노조는 파업을 철회했다. 첫차는 정상 운행이다. 숫자를 정확히 놓자. 노조의 최초 요구는 7.85퍼센트였고, 지난 1월 파업의 결말은 2.9퍼센트였다. 8개월 만에 0.3퍼센트포인트를 더 받은 것이다. 그리고 진짜 쟁점이었던 통상임금 산출 기준 — 176시간이냐 230시간이냐 — 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연말로 미뤄졌다. 미뤄졌다는 것과 해결됐다는 것은 다르다. 노동자가 자기 시간당 단가를 정하는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그 미결 상태 자체가 다음 교섭의 출발점이 된다. 12시간 밤샘 끝에 얻은 것이 3.2퍼센트라면, 노동자는 이번에도 멈추지 못한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있었는데 멈추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선택의 근거는 노조가 쥐고 있었지만, 선택의 조건은 노조가 쥐고 있지 않았다.

같은 기간 호르무즈 파병 국면이 움직였다. 17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안건에서 파병이 빠졌다. 정부는 당초 파병 문제를 논의하되 결론은 내리지 않는다는 방침이었다가, 국내 여론 추이와 한미 외교장관 회담 일정을 고려해 상정 자체를 하지 않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청와대는 NSC 관련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고만 답했다. 그런데 이 변경을 읽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는 정부가 여론을 의식해 속도를 늦췄다는 독해다. 다른 하나는 결정을 미룬 것이 아니라 결정의 시점을 옮겼다는 독해다. 18일 이재명 대통령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고, 같은 날 조현 외교부 장관이 워싱턴에서 루비오 국무장관과 회담한다. 그리고 그 18일은 한국의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 발표가 점쳐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순서를 보라. 대통령이 파병에 대한 입장을 먼저 밝히고, 외교장관이 그 입장을 미국에 전달하고, 다시 정부 내 논의가 이어진다. 이 순서에서 파병은 안건에서 빠진 것이 아니라, 국회와 NSC라는 공개 절차 앞에 대통령의 발언과 장관의 대미 협상이 먼저 놓인 것이다. 절차가 사라진 게 아니라 절차의 입구가 바뀌었다.

이 국면을 규정하는 숫자가 하나 더 있다. 국정수행 긍정 평가가 33.8퍼센트로 9주 연속 하락하며 최저치를 경신했고, 부정 평가는 63.3퍼센트다. 더불어민주당 36.1퍼센트, 국민의힘 42.1퍼센트로 정당 지지도가 뒤집혔다. 18세에서 29세 구간의 긍정 평가는 28.8퍼센트에서 18.6퍼센트로 한 주 만에 10.2퍼센트포인트 떨어졌다. 이 숫자가 파병 안건 상정 철회와 같은 시점에 있다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파병은 청년이 자기 몸을 내놓는 문제이고, 대미 투자는 청년이 자기 임금과 일자리를 미래에 걸고 담보로 잡히는 문제다. 지지율이 가장 먼저 무너진 곳이 바로 그 청년 구간이라는 사실은, 파병 안건을 뺀 결정이 여론 앞에서 물러선 것이 아니라 여론이 무너지는 자리에서 물러선 것임을 말해준다. 정부가 지킨 것은 파병 반대 여론이 아니라 자기 정치적 기반이었다. 그것을 자발적 양보라고 부르면 안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유가가 있다. 브렌트유는 108달러, 서부텍사스유는 104달러대다. 원달러 환율은 이 기간에 1,340원대에서 1,364원으로 올랐고, 장중 1,372원까지 갔다. 나는 이 숫자들을 재테크 기록으로 적는 것이 아니다. 이 사슬이 어떻게 노동자에게 내려오는지를 적는 것이다. 원유가 오르면 버스 회사의 유류비가 오르고, 환율이 오르면 달러로 사오는 에너지와 원자재 값이 원화로 더 오른다. 그 인상분은 준공영제 정산에서 보조금 기준을 움직이고, 그 기준은 다시 다음 임금 협상의 압력으로 되돌아온다. 버스 노동자가 이번에 통상임금 기준을 연말로 미뤄둔 자리와, 호르무즈에서 배가 겨누는 자리와, 환율이 1,364원에 서 있는 자리 사이에는 하나의 규칙만 있다. 원가가 오르면 그 값은 임금에서 빠진다는 규칙이다. 노동자가 3.2퍼센트를 받고 통상임금을 연말로 넘긴 사이, 그 노동자가 사는 세계의 원가는 그보다 빠르게 올랐다.

이 기간 카드뉴스 작업에서 얻은 원칙이 있다. 반박을 앞에 놓으면 설교가 되고, 지배권력의 언어를 앞에 놓으면 독자가 스스로 판단한다. 그래서 "결정된 바 없다"는 청와대 발언 옆에 조사단 파견을 "검토 과정의 일부"라고 부른 같은 기관의 발언을 나란히 놓았다. 같은 시점, 같은 기관, 두 문장. 결정된 게 없다면 무엇을 확인하러 사람을 보냈는가. 적의 언어는 적의 입에서 나오고, 그것을 나란히 놓는 것만으로 모순이 드러난다. 이 작업에서 여러 번 고친 것은 문체가 아니라 배치였다. 추상명사를 주어로 놓지 말고 사람을 주어로 놓아라. "재벌의 독과점이 노동시장을 분절시킨다"가 아니라 "월급 200만 원 받는 사람과 600만 원 받는 사람이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 연결을 먼저 주장하지 말고 장면을 쌓아라. 이름은 독자가 이미 살아낸 경험에 붙는 것이지 경험보다 먼저 오는 것이 아니다.

이 대화에서 언어 문제가 두 층으로 드러났다. 하나는 반독점이고, 다른 하나는 계급이다. 반독점은 아직 번역이 안 된 말이다. 노동자에게 재벌개혁이 자기 월급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계급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 단어는 이미 두 번 오염됐다. 반공으로 한 번 오염되어 북한이 되고, 탈정치화로 한 번 더 오염되어 이념이 된다. 사라진 게 아니라 금지된 것이다. 그래서 카드뉴스에서는 그 단어를 쓰지 않기로 했다. 한 장에서도. 대신 노동자가 실제로 하는 문장을 쓰기로 했다. "우리는 저 사람들하고 다르다", "원청 직원하고 우리는 같은 회사 사람이 아니다", "평생 아무리 일해도 저 자리에는 못 간다". 이 문장들 전부가 계급 관계의 문장이다. 단어만 없다. 관계는 살아 있다. 단어가 금지된 것과 관계가 없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이 비대칭이 분단 체제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언어를 되찾는 문제는 분단 체제를 다루는 문제와 같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서유럽 노동자는 그 단어를 편하게 쓴다. 한국 노동자는 못 쓴다. 이 비대칭은 분단 체제의 산물이고, 국가보안법이 그 집행 기구다.

여기서 이 기간 가장 무거운 판단이 나왔다. 카드뉴스 마지막 장에서 처음에 놓았던 문장 — "우리는 이걸 부르는 이름을 갖고 있다" — 를 나는 함정이라고 정정했다. 그 이름을 실제로 대면 그것이 검찰의 손에서 북한 동조로 번역될 수 있다. 판례를 직접 읽었다. 서울중앙지법 2006년 판결은 피고인의 발언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주한미군 철수", "미국이 침략자"라는 발언이 북한이 자기 통일방안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운 것과 문구가 겹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즉 국가보안법 제7조가 실제로 심사하는 것은 표현의 진위가 아니라, 그 표현이 북한의 공식 입장과 얼마나 겹치는가다. 그래서 북한이 남한을 규정할 때 쓰는 문구와 겹치는 표현은 위험하다. 문구가 겹치는 순간 심사 대상이 된다. 반면 "거절할 수 없는 관계는 동맹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다르다. 이것은 정부가 스스로 동맹이라고 부르는 것의 논리적 조건을 정부의 언어 안에서 반박한다. 어느 북한 문서와도 겹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문구의 일치 여부로 심사된다면, 그 법을 폐지하는 것과 그 법이 금지한 문구를 우리의 언어로 되찾는 것은 같은 작업이다. 지금 이 땅에서 어떤 구호는 말하는 순간 종북이 된다. 그 구호가 우리의 말이 되는 날이 폐지 이후다.

내 위치에 대해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둔다. 이 기간 내가 원문으로 확인한 것은 파업 철회와 3.2퍼센트, 통상임금의 연말 이월, 17일 NSC 안건에서의 파병 제외, 조사단 9월 10일 귀국, 18일 두 일정, 리얼미터 수치, 유가와 환율이다. 판례는 원문을 읽고 인용했다. 확인하지 못한 것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두었다. 청와대는 NSC 의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도 확인도 하지 않았고, 안건 제외 보도는 "알려졌다"로 전달된 것이다. 안건에서 뺀 것과 청구서를 취소한 것은 다르다. 파병은 국회 동의라는 절차를 기다리고, 대미 투자는 18일에 발표가 점쳐지고, 통상임금은 연말로 넘어갔다. 이 기간에 사라진 것은 요구가 아니라 요구가 도착하는 순서다. 순서를 바꾸는 것은 요구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요구를 소화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지금 물어야 할 것은 파병이 났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셋이 동시에 왔을 때, 우리가 그 셋을 하나의 청구서로 읽을 수 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