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의 유예와 그 값
이 구간의 중심 사건은 워싱턴에서 벌어졌다. 9월 24일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시진핑이 마주 앉았다. 시 주석의 국빈 방미는 2015년 이후 11년 만이고, 지난 5월 베이징 회담 이후 넉 달 만의 대좌였다. 의제는 11월 10일 만료되는 관세 휴전의 연장, 희토류 등 핵심광물, AI, 대만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앞서 새어 나온 전망을 배반했다. 1년 연장이 거론됐는데, 정상회담 하루 전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부총리가 세계은행 본부에서 만나 합의한 것은 2개월 연장, 내년 1월 10일까지였다. 작년 10월 부산에서 맺은 이른바 '부산 합의'의 수명을 두 달 늘린 것이다. 베선트는 경제 분야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시간을 더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두 달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건 타결이 아니라 유예다. 세계 최대 두 자본이 자기들 사이의 분쟁을 두 달 미루면서, 그 사이에 각자의 세력권에 무엇을 요구할지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매개 자리에 앉은 나라의 셈법이 바로 이 담판의 종속변수다. 반도체, 배터리, 철강, 석유화학 — 한국의 간판 산업들이 두 강대국의 협상 시간표 위에 얹혀 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휴전이 연장됐느냐가 아니다. 이 두 달 동안 어느 쪽이 한국에 어떤 청구서를 내밀 것인가다. 이미 청구서는 나와 있다. 대미 전략투자 3,500억 달러, 그 1호 사업으로 텍사스 발전소가 거론되고, 트럼프는 외국산 반도체에 표적 관세를 언급하며 미국 내 생산을 촉구한다. 이 대통령은 뉴욕 투자 서밋에서 한미 조선 협력을 강조하며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미국 전략 함정을 건조한다고 밝혔다. 군함을 만들어 주는 나라의 조선 노동자가 어떤 조건에 놓이는지는 그 문장 안에 적혀 있지 않다.
같은 시간,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가 진퇴양난으로 굳어 있었다. 이 대통령은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는 원칙을 밝혔고, 대신 자국 상선과 원유 수송로 보호를 위한 청해부대 역할 강화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시사IN은 이라크전보다 더 위험하고 논쟁적이라고 평했다. 601개 시민단체가 청년들을 위험한 해역으로 내몰 수 없다고 반대했고, 거리에서는 파병 반대 행진이 이어졌다.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파병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전투 병력은 안 되지만 상선 보호는 한다'는 이 구분 자체가 제국주의 질서 안에서 우리가 어떤 자리를 배정받았는지를 보여준다. 원유 수송로의 안전은 누구의 이익인가. 한국 정유사와 재벌의 원가 문제이면서 동시에 미국의 대이란 봉쇄 전선이다. 상선 보호라는 이름으로 해상에 나서는 일은, 우리 노동자의 생명을 세계 자본의 물류 안정 비용으로 계상하는 회계다.
이 축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노사는 9월 22일 인천지노위에서 2차 사후조정을 열었지만 사측은 부사장급이 아닌 팀장급 교섭위원만 내보냈고, 노조는 타결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노조의 요구는 임금 인상률 6.5퍼센트에 300만 원, 성과 인상률 3퍼센트였고, 사측은 4.1퍼센트와 2.1퍼센트를 제시했다. 그러나 진짜 쟁점은 이 퍼센트가 아니다. 임원 인사와 의사결정 과정에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 — 사측이 인사권·경영권 침해라 부르며 거부해 온 바로 그 조항이 본질이다. 노조는 3월 조정 결렬에 이어 4월 부분파업, 5월 전면파업, 그리고 연장·휴일 근무 거부 준법투쟁을 이어왔다. 사측이 팀장급을 내세운 것은 협상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 권한을 테이블 위에 올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임금 인상률 몇 퍼센트는 그 위에 얹히는 수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장면이 다시 증명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경에 숫자 하나가 놓여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9월 23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7월의 2.6퍼센트에서 3.2퍼센트로 올렸다. 같은 날 대만은 9.5퍼센트에서 11.0퍼센트로 상향됐다. 두 나라 모두 반도체와 AI 수출 훈풍을 근거로 했는데, 격차는 7.8퍼센트포인트로 벌어졌다. 반도체 호황이 두 나라에 똑같이 왔는데 한 나라는 3.2, 다른 나라는 11이다. 이 격차는 성실함의 차이가 아니다. 사슬의 어느 고리에 앉았는가의 차이다. 대만은 파운드리와 설계의 상단을 쥐고, 한국은 메모리 양산의 하층에 앉아 있다. 같은 훈풍이 다른 크기로 부는 이유는 바람이 아니라 위치다. 이 격차가 바로 우리가 반도체 '강국' 담론을 매번 다시 갈라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이 구간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두 달의 유예를 받아낸 것은 워싱턴의 두 정상이고, 그 유예의 값을 계산하는 사무실은 청와대이며, 그 값을 몸으로 치르는 사람은 조선소와 팹 라인과 호르무즈 해상에 있다. 결정 권한이 어디 있는가, 그 비용을 누가 치르는가. 두 달 뒤 다시 만날 두 정상의 테이블에 한국 노동자의 자리는 없다. 그 자리를 만들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다른 나라의 시간표 위에서 자기 운명을 계산하는 종속변수로 남는다.
이 두 달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건 타결이 아니라 유예다. 세계 최대 두 자본이 자기들 사이의 분쟁을 두 달 미루면서, 그 사이에 각자의 세력권에 무엇을 요구할지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매개 자리에 앉은 나라의 셈법이 바로 이 담판의 종속변수다. 반도체, 배터리, 철강, 석유화학 — 한국의 간판 산업들이 두 강대국의 협상 시간표 위에 얹혀 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휴전이 연장됐느냐가 아니다. 이 두 달 동안 어느 쪽이 한국에 어떤 청구서를 내밀 것인가다. 이미 청구서는 나와 있다. 대미 전략투자 3,500억 달러, 그 1호 사업으로 텍사스 발전소가 거론되고, 트럼프는 외국산 반도체에 표적 관세를 언급하며 미국 내 생산을 촉구한다. 이 대통령은 뉴욕 투자 서밋에서 한미 조선 협력을 강조하며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미국 전략 함정을 건조한다고 밝혔다. 군함을 만들어 주는 나라의 조선 노동자가 어떤 조건에 놓이는지는 그 문장 안에 적혀 있지 않다.
같은 시간,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가 진퇴양난으로 굳어 있었다. 이 대통령은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는 원칙을 밝혔고, 대신 자국 상선과 원유 수송로 보호를 위한 청해부대 역할 강화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시사IN은 이라크전보다 더 위험하고 논쟁적이라고 평했다. 601개 시민단체가 청년들을 위험한 해역으로 내몰 수 없다고 반대했고, 거리에서는 파병 반대 행진이 이어졌다.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파병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전투 병력은 안 되지만 상선 보호는 한다'는 이 구분 자체가 제국주의 질서 안에서 우리가 어떤 자리를 배정받았는지를 보여준다. 원유 수송로의 안전은 누구의 이익인가. 한국 정유사와 재벌의 원가 문제이면서 동시에 미국의 대이란 봉쇄 전선이다. 상선 보호라는 이름으로 해상에 나서는 일은, 우리 노동자의 생명을 세계 자본의 물류 안정 비용으로 계상하는 회계다.
이 축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노사는 9월 22일 인천지노위에서 2차 사후조정을 열었지만 사측은 부사장급이 아닌 팀장급 교섭위원만 내보냈고, 노조는 타결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노조의 요구는 임금 인상률 6.5퍼센트에 300만 원, 성과 인상률 3퍼센트였고, 사측은 4.1퍼센트와 2.1퍼센트를 제시했다. 그러나 진짜 쟁점은 이 퍼센트가 아니다. 임원 인사와 의사결정 과정에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 — 사측이 인사권·경영권 침해라 부르며 거부해 온 바로 그 조항이 본질이다. 노조는 3월 조정 결렬에 이어 4월 부분파업, 5월 전면파업, 그리고 연장·휴일 근무 거부 준법투쟁을 이어왔다. 사측이 팀장급을 내세운 것은 협상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 권한을 테이블 위에 올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임금 인상률 몇 퍼센트는 그 위에 얹히는 수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장면이 다시 증명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경에 숫자 하나가 놓여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9월 23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7월의 2.6퍼센트에서 3.2퍼센트로 올렸다. 같은 날 대만은 9.5퍼센트에서 11.0퍼센트로 상향됐다. 두 나라 모두 반도체와 AI 수출 훈풍을 근거로 했는데, 격차는 7.8퍼센트포인트로 벌어졌다. 반도체 호황이 두 나라에 똑같이 왔는데 한 나라는 3.2, 다른 나라는 11이다. 이 격차는 성실함의 차이가 아니다. 사슬의 어느 고리에 앉았는가의 차이다. 대만은 파운드리와 설계의 상단을 쥐고, 한국은 메모리 양산의 하층에 앉아 있다. 같은 훈풍이 다른 크기로 부는 이유는 바람이 아니라 위치다. 이 격차가 바로 우리가 반도체 '강국' 담론을 매번 다시 갈라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이 구간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두 달의 유예를 받아낸 것은 워싱턴의 두 정상이고, 그 유예의 값을 계산하는 사무실은 청와대이며, 그 값을 몸으로 치르는 사람은 조선소와 팹 라인과 호르무즈 해상에 있다. 결정 권한이 어디 있는가, 그 비용을 누가 치르는가. 두 달 뒤 다시 만날 두 정상의 테이블에 한국 노동자의 자리는 없다. 그 자리를 만들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다른 나라의 시간표 위에서 자기 운명을 계산하는 종속변수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