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World Bank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IMF와 함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으로 세워진 국제 개발은행. 처음에는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나라의 재건에 돈을 빌려주었고, 뒤에는 개발도상국의 사회기반시설과 빈곤 감축 사업으로 대출을 넓혔다. 좁게는 IBRD와 1960년에 생긴 국제개발협회(IDA)를, 넓게는 다섯 기관으로 이루어진 세계은행 그룹을 가리킨다. 본부는 워싱턴에 있고 총재는 관례상 미국인이 맡으며, 1980년대 구조조정 대출로 큰 비판을 받았다.
상세
세계은행은 1944년 7월 1~22일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IMF와 함께 만들어졌다. 많은 나라가 참석했지만 협상을 주도한 것은 미국과 영국이었다. 이름 그대로 처음 임무는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 나라들의 재건 자금을 대는 것이었고, 시장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나라에 대출하되 정책 개혁을 요구할 수 있었다. 은행은 1946년 6월 25일 업무를 시작했다.
첫 대출은 1947년 5월 9일 프랑스에 준 2억 5천만 달러였다. 요청액의 절반이었고, 균형 예산과 다른 채권국보다 세계은행에 먼저 갚는다는 엄격한 조건이 붙었다. 대출 승인 전 미국 국무부는 프랑스 정부에 공산당 각료를 먼저 내보내야 한다고 알렸고, 프랑스가 공산당이 참여한 3당 연립을 깨자 몇 시간 만에 대출이 승인되었다. 같은 해 마셜 플랜이 시작되어 유럽이 다른 원조를 받게 되자 은행은 유럽 밖의 동맹국으로 눈을 돌렸다.
1968년까지 은행 대출은 항만·도로·발전소처럼 상환할 수입을 낳는 사회기반시설에 한정되었다. 1960년에는 가난한 나라에 낮은 이자로 빌려주는 국제개발협회가 생겼다. 1968년 존슨 대통령이 임명한 로버트 맥나마라 총재 아래 1974~1980년 은행은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기본 필요 충족으로 초점을 옮기고 대출을 사회 서비스로 넓혔다. 은행은 회원국 출자금 말고도 AAA 신용등급으로 국제 채권시장에서 대부분의 자금을 끌어온다.
가장 큰 비판은 구조조정 정책에 쏠린다. 1979년 에너지 위기로 여러 나라가 경제 위기에 빠지자 은행은 인플레이션과 재정 불균형을 줄이는 정책 변경을 조건으로 한 구조조정 대출을 내놓았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 일부 나라에서는 성장이 뒷걸음치고 인플레이션이 나빠졌고, 1980년대 말에는 사회 지출 삭감과 보조금 폐지로 빈민의 삶이 나빠졌다는 비판이 국제기구 안에서도 나왔다. 은행과 IMF는 1999년 구조조정 대출을 빈곤감축전략보고서 방식으로 바꾸었다. 표결권은 출자에 따라 나뉘어 2010년 개편 뒤에도 미국이 15.85%로 가장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