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경제위기와 2021–23년 인플레이션
2020년 봉쇄는 세계 경제를 얼마나 깊이 끌어내렸고,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2008년과 무엇을 다르게 했나? 회복은 왜 K자 모양으로 갈라졌나? 2021~2023년의 물가 상승은 수요 과열, 공급망 장애, 전쟁과 에너지, 기업 이윤 가운데 무엇에서 왔나? 급격한 금리 인상은 어디서 금융 불안을 터뜨렸고, 실질임금이 떨어진 노동자들은 어떻게 맞섰나? 주류 경제학과 판매자 인플레이션론, 마르크스주의는 이 시기를 어떻게 다르게 설명하나?
2020년 봉쇄로 세계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깊은 경기 후퇴에 빠졌다. 미국 실업률은 14.7%까지 치솟았고 유가 선물은 마이너스가 되었다. 각국은 2008년보다 훨씬 큰 재정을 풀었고, 유럽연합은 처음으로 공동 차입에 나섰으며, 중앙은행들은 무제한 양적완화로 시장을 떠받쳤다. 회복은 자산 보유자에게 빨랐고, 공급망 장애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겹치며 2022년 물가는 40년 만에 가장 높아졌다. 중앙은행들의 급격한 금리 인상은 영국 국채 시장과 미국 지역 은행을 흔들었다.
2020년 3월 금융시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코로나19 경제위기의 첫 신호는 주식시장에서 왔다. 2020년 2월 20일부터 세계 주가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2월 24~28일 한 주 동안의 하락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컸다. 바이러스가 중국 밖으로 번지면서 걱정의 대상은 공장 부품 공급에서 서비스업 매출 감소로 옮겨 갔다. 3월 12일 다우 존스와 S&P 500 지수는 1987년 주가 폭락 이후 가장 큰 하루 하락률을 기록했고, 영국 FTSE 100은 10.87%, 이탈리아 FTSE MIB는 16.92% 떨어졌다. 이날은 3월 9일에 이어 7% 폭락 시 거래를 멈추는 서킷브레이커가 두 번째로 발동된 날이었다. 1 2
석유시장은 주가보다 먼저 흔들렸다. 3월 초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가 감산에 합의하지 못하자 사우디아라비아가 가격 인하와 증산을 발표했고, 이미 연초보다 30% 넘게 떨어져 있던 유가가 다시 30% 급락했다. 3월 9일의 폭락(“검은 월요일”)은 이 석유 가격 전쟁과 전염병이 겹친 결과였다. 에너지 전문가 밥 맥널리는 거대한 수요 충격과 공급 충격이 동시에 온 것은 1930~1931년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4월 초 두 나라가 감산에 합의했지만 봉쇄로 수요가 사라진 상태에서 저장 시설이 가득 찼고, 4월 20일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 원유(WTI) 선물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0 아래로 내려갔다. 원유를 받아 둘 곳이 없으니 돈을 얹어 주고서라도 계약을 넘기려 한 것이다. 1 3 4
3월 중순에는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던 미국 국채 시장마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투자자들이 무엇이든 팔아 현금을 확보하려 한 이 국면을 “현금 확보 쟁탈전(dash for cash)”이라 부른다. 금융안정위원회(FSB)는 그해 11월 G20에 낸 보고서에서 이 충격과 유동성 압박의 폭과 속도가 전례 없었고, 위험이 근본적으로 다시 평가되면서 안전자산 수요가 치솟았다고 정리했다. 2008년 이후 강화된 자본 규제 덕에 은행이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은행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자기 대차대조표를 내놓지 못했고, 국채 딜러들은 쏟아지는 매물을 받아 내지 못했다. 빚을 내 국채에 투자해 온 비은행 투자자와 외국인 보유자들이 국채를 대량으로 팔면서 시장 기능이 더 망가졌고, 보고서는 중앙은행의 개입이 없었다면 금융 체계의 압박이 크게 악화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5 6
봉쇄는 세계 경제를 얼마나 깊이 끌어내렸나?
경기 후퇴의 직접 원인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고 각국이 내린 봉쇄였다. 사람이 모여야 하는 여객 운송, 공연·오락, 관광, 숙박업은 2020년 2분기에 1분기보다 최대 30% 줄어든 반면 농업·은행·부동산은 3% 이내로 줄었다. 7개월 안에 모든 선진국 경제가 경기 후퇴에 빠졌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20년 4~6월에 전일제 일자리 4억 개에 해당하는 노동시간이 사라졌고, 그해 첫 아홉 달 동안 세계 노동자의 소득이 10%, 3조 5천억 달러 넘게 줄었다고 추산했다. 2020년 1분기 G20 경제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4% 줄었다. 1 7
미국에서는 3월 21일로 끝난 주에 실업수당 신청이 330만 건으로 1982년의 기록(70만 건)을 갈아치웠고, 다음 주에는 670만 건이 되었다. 4월 실업률은 2월의 3.5%에서 14.7%로 뛰어 1941년 이후 최고였고, 2,500만 명 넘게 일자리를 잃었다. 2분기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보다 9% 가까이 줄었고, 유럽연합의 실질 GDP는 11% 넘게 줄어 분기 기준 사상 최대의 하락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유럽연합 GDP가 6~8% 줄어 대공황 이후 전례 없는 하락을 겪으리라 전망했다. 중국 경제는 1분기에 전년 대비 6.8% 줄어 거의 50년 만에 처음 역성장했고, 한국은 2분기 GDP가 전 분기보다 3.3% 줄어 1998년 1분기 이후 가장 나빴다. 1 7
세계은행은 2020년 6월 세계 경제가 그해 5.2% 줄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깊은 경기 후퇴를 겪으리라 내다보았다. IMF 수석 경제학자 기타 고피나트는 이 위기에 “대봉쇄(Great Lockdown)”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었다. 다만 코로나19 경기 후퇴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경제 활동을 멈춰 생긴 급격한 추락이었고, 2020년 4월부터 회복이 시작되어 2022년 4월에는 주요 경제 대부분의 GDP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거나 넘어섰다. 8 9 1
정부는 왜 이번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나?
미국 의회는 3월 25~26일 코로나19 지원·구제·경제안보법(CARES Act)을 상원 만장일치와 하원 구두 표결로 통과시켰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월 27일 서명했다. 2조 2천억 달러로 미국 GDP의 10%에 이르는 이 법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경기 부양책으로, 2009년 경기 부양법(8,310억 달러)보다 훨씬 컸다. 대부분의 성인에게 1,200달러씩 모두 3천억 달러의 현금을 나눠 주고, 실업수당을 2,600억 달러 늘렸으며, 기업 대출에 5천억 달러, 주·지방정부에 3,398억 달러를 배정했다. 중소기업이 직원 수와 임금을 유지하면 대출을 탕감해 주는 급여보호프로그램(PPP)도 이 법으로 만들어졌다. 10 11
2021년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1조 9천억 달러의 미국 구조계획법(ARPA)을 밀어붙였다. 법안은 공화당 의원 전원이 반대한 가운데 상원을 50 대 49로, 하원을 220 대 211로 통과했고 바이든이 3월 11일 서명했다. 이 법은 소득 7만 5천 달러 이하 납세자에게 현금을 주고, 주·지방정부에 3,500억 달러, 실업수당에 3천억 달러를 배정했으며, 아동 세액공제를 한시적으로 늘려 200만 명 넘는 아동을 빈곤선 위로 끌어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PPP는 비용이 지킨 일자리 하나당 16만 9천~25만 8천 달러에 이르고, 혜택이 노동자보다 사업주와 그 채권자·납품업자에게 많이 돌아갔으며, 자금의 약 25%만 실제로 사라졌을 일자리에 쓰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12 11
유럽에서는 더 큰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 2020년 3월 유럽연합은 회원국이 재정 적자 규칙에 묶이지 않도록 안정·성장 협약의 “일반 면제 조항”을 발동했고, 7월 21일 유럽이사회는 7,500억 유로 규모의 회복 기금 “차세대 EU(NGEU)”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처음으로 유럽연합이 회원국을 대신해 공동으로 돈을 빌려 보조금과 대출을 나눠 주는 방식이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가장 많이 받았으며 그리스는 GDP의 20% 가까이를 받았다. 위기 내내 재정 규율과 긴축을 가장 강하게 주장해 온 독일도 이번에는 보조금과 대규모 공동 채무 발행을 지지했다. 이 기금은 2008년 금융위기 뒤 유럽연합이 위기 대응의 기본으로 삼았던 긴축 정책과의 단절로 평가된다. 2010~2015년 유로존 위기 때 남유럽 나라들이 구제금융의 대가로 재정 긴축을 강요받았던 것과는 정반대의 대응이었다. 13 7
이런 대규모 재정 지출은 불황기에 정부가 수요를 떠받쳐야 한다는 케인스주의의 처방을 2008년 때보다 훨씬 크게 실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같은 지출이 2021년 이후의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연구자들은 미국 정부의 5조 달러 지원이 2021년 말까지 물가 상승률을 3%포인트 높였다고 추산하면서도, 그 지출이 관리하기 더 어려운 디플레이션을 막는 데 필요했다고 보았다. 14 10
중앙은행은 무엇을, 얼마나 사들였나?
연방준비제도는 3월 15일 일요일 정책금리인 연방기금금리 목표를 0~0.25%로 내리고, 국채를 최소 5천억 달러, 주택저당증권을 최소 2천억 달러 더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 이후 네 번째 양적완화였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새로 만든 돈으로 국채 같은 자산을 대량으로 사들여 시장에 돈을 풀고 장기 금리를 끌어내리는 정책이다. 연방준비제도는 경제가 이번 사태를 견뎌 냈다고 확신할 때까지 이 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는데,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미리 약속해 시장의 기대를 움직이는 이런 방식을 포워드 가이던스라 한다. 15 16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인 만큼 위기는 세계 곳곳의 달러 자금 시장에도 압박을 주었다. 연방준비제도는 3월 19일 한국은행·호주·브라질·멕시코·싱가포르·스웨덴 중앙은행과 각각 최대 600억 달러, 덴마크·노르웨이·뉴질랜드 중앙은행과 각각 30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를 새로 맺었다. 통화 스와프는 중앙은행끼리 서로의 통화를 맞바꿔 두는 약정으로, 상대 중앙은행이 자국 은행들에 달러를 빌려줄 수 있게 한다. 3월 23일에는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시장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 사들이겠다고 발표해 매입 한도를 없앴고, 회사채를 발행 시장과 유통 시장에서 직접 사 주는 두 기구(PMCCF·SMCCF)를 비롯해 모두 3천억 달러 규모의 신용 지원 기구를 만들었다. 재무부는 외환안정기금에서 300억 달러의 자본을 댔다. 17 18 19
다른 중앙은행들도 뒤따랐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이끄는 유럽중앙은행은 3월 18일 7,500억 유로의 팬데믹 긴급 매입 프로그램(PEPP)을 발표했고, 회원국 경제 규모에 비례해 국채를 사야 하는 원칙에서 벗어나 형편이 어려운 나라의 국채를 더 살 수 있게 했으며 그리스 국채도 매입 대상에 넣었다. PEPP는 두 차례 늘어나 1조 8,500억 유로가 되었고 2022년 3월 순매입을 끝냈다. 일본은행은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목표를 연 12조 엔으로 두 배로 늘렸고, 잉글랜드 은행의 양적완화 누적액은 2020년 11월 8,950억 파운드에 이르렀다. 연방준비제도의 네 번째 양적완화는 2022년 여름까지 대차대조표에 2조 달러를 더 얹었다. 구겐하임 투자책임자 스콧 마이너드처럼 2020년의 부양책이 신용 위험을 사회화해 대출 가격이 연방준비제도의 매입 의지로 정해지게 되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20 13 7 16 21
회복은 왜 K자 모양이 되었나?
중앙은행의 돈이 쏟아지자 자산 시장은 실물 경제보다 훨씬 빨리 살아났다. 주가는 2020년 4월부터 오르기 시작해 그해 말에는 많은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반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회복은 더뎠다. 경기 후퇴와 회복의 모양을 알파벳에 빗대는 관례에서, 이렇게 한쪽은 빠르게 올라가고 다른 쪽은 계속 떨어지는 회복을 K자형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표현은 코로나19 회복기에 생겼고, 한국에서는 K자형 성장이라는 말로 정책 담론에까지 들어왔다. 1 22
갈림길은 일의 종류에서 시작되었다. 일자리를 지킨 노동자 다수는 온라인 근무로 옮길 수 있었는데, 그런 일은 평균 임금이 훨씬 높았다. 그래서 팬데믹은 저임금 노동자를 더 세게 쳐서 소득 불평등을 키웠다. 세계적으로는 극빈층 비율이 2019년 8.9%에서 2020년 9.7%로 올라 수십 년 만에 처음 늘었고, 남아시아에서는 2.4%포인트 올랐다. 2020년 2분기 유럽연합의 1인당 가처분소득은 크게 떨어져 저소득 가계의 소비를 특히 줄였다. 7
공급망은 왜 막혔나?
2020년 초 공장들이 방역 조치를 갖출 때까지 작업을 멈추면서 세계 공급망이 처음 느려졌다. 오늘날 한 제품은 여러 나라에 흩어진 설계·부품·조립·물류 단계를 거쳐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국경을 넘어 이어진 생산 활동 전체를 글로벌 가치사슬이라 한다. 기업들은 창고에 재고를 쌓아 두지 않고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부품을 들여오는 적기 생산(린 생산) 방식으로 비용을 줄여 왔다. 이 방식은 수요 예측이 정확할 때는 돈을 아끼지만 예상치 못한 수요 변화에는 매우 약하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공급망 혼란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23 24
봉쇄가 풀리자 이번에는 수요가 엉뚱한 곳으로 몰렸다. 미국 등의 소비자들은 외식·여행 같은 서비스 대신 집에서 쓰는 물건을 샀고, 상품 공급이 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2021년 11월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내구재가 14.9%, 서비스는 3.8%였다. 백신이 부족한 개발도상국 공장은 거듭 멈췄다. 미국 의류의 주요 공급지인 베트남은 2021년 감염 확산으로 공장들이 문을 닫자 고위험 지역 노동자들에게 작업장에서 먹고 자며 일하게 했다. 항구에는 일손이 모자라 화물이 쌓였고, 반도체 부족은 자동차와 전자 산업을 멈춰 세웠다. 14 23
공급망의 마비는 세계 경제가 서로에게 얼마나 깊이 기대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코로나19 동안 공급망이 잠시 멈추자 원자재와 완제품의 교환이 끊겼고, 그 뒤 여러 나라 기업들이 생산을 자국이나 가까운 나라로 되돌리는 리쇼어링·니어쇼어링에 나섰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 이후 관세를 피해 제3국을 거쳐 가는 공급망 재배선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고, 팬데믹과 전쟁은 이 재편을 더 서두르게 했다. 세계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무역 성장이 더뎌지고 글로벌 가치사슬의 확장이 멈췄으며, 큰 나라들 사이의 갈등이 가치사슬을 축소하거나 쪼갤 수 있다고 경고했다. 24 25
2021~2023년 물가는 왜 그렇게 올랐나?
2021년 중반부터 세계 곳곳에서 물가가 수십 년 만에 가장 빠르게 올랐다.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5월 5%로 2008년 이후 처음 그 수준에 올랐고, 10월 6.2%, 12월 6.8%를 거쳐 2022년 6월 9.1%로 1981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유로존 물가는 2022년 10월 10.7%로 1997년 집계 시작 이후 가장 높았고, 독일은 11.7%로 1951년 이후, 영국은 2022년 7월 10.1%로 4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원인으로는 팬데믹이 남긴 수요와 생산의 어긋남, 공급망 장애, 2020~2021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규모 부양, 그리고 기업의 가격 인상이 꼽힌다. 미국에서는 주택 부족도 큰 몫을 했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주거비를 빼면 2023년 말 물가 상승률이 3.2%가 아니라 1.8%였을 것이라고 보았다. 14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오르던 물가에 에너지와 곡물 충격을 더했다. 침공 전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시장의 11.5%, 옥수수 수출의 17%를 차지했는데 그 곡물이 국제 시장에 나오지 못했다. 브렌트유는 2월 25일 배럴당 97.93달러에서 3월 8일 127.98달러로 뛰었다. 유럽에서는 1년이 안 되는 사이 가스 가격이 450% 넘게, 전기 요금이 230% 올랐다. 러시아는 제재에 맞서 노르트스트림 1을 통한 독일행 가스 공급을 줄이다 9월 초 완전히 끊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는 2022년 5월 미국 물가 상승률 8.6% 가운데 3.5%포인트가 침공 탓이라고 분석했다. 전쟁과 제재가 에너지와 공급망을 흔들어 물가를 올리면서 성장을 끌어내리는 이런 국면을 지정학적 스태그플레이션이라 부르기도 한다. 14 26
침공 직후 서방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자기 나라에 맡겨 둔 외환보유액을 동결하고 일부 러시아 은행을 국제 결제망 SWIFT에서 내쫓았다. 2023년 5월 G7과 유럽연합은 동결된 약 3천억 달러(러시아 중앙은행 외환·금 보유액의 절반쯤)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입힌 피해를 갚을 때까지 묶어 두겠다고 밝혔다. 루블은 2월 28일 달러당 119루블까지 30% 떨어졌다.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 자산까지 얼릴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미국과 노선을 달리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달러 의존을 줄이려는 탈달러 움직임이 힘을 얻었다. 27 28
경제학자들은 처음부터 이 물가 상승이 일시적인지 지속적인지를 두고 갈렸다. 클린턴 정부의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와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대규모 부양으로 경제가 과열되어 물가 상승이 오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머스는 미국 구조계획법을 “지난 40년 동안 가장 무책임한 거시경제 정책”이라 부르며, 물가가 몇 년 동안 가속할 가능성이 3분의 1이고 미국이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곧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을 수도 있다고 했다. 반면 폴 크루그먼과 재무장관 재닛 옐런은 팬데믹에서 빠져나오며 생긴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았다. 연방준비제도 의장 제롬 파월도 2021년 내내 물가 상승을 “일시적”이라 불렀다. 통화주의자들은 팬데믹 동안 통화량(M2)이 수십 년 만에 가장 빨리 늘어난 것을 원인으로 들었지만, 파월은 2021년 12월 통화량과 물가의 강한 연결은 “40년쯤 전에 끝났다”고 말했다. 2010~2015년에도 M2가 45% 늘었지만 물가 상승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14 12
기업 이윤은 물가 상승에 얼마나 기여했나?
물가가 치솟는 동안 기업 이윤도 기록을 세웠다. 『뉴욕 타임스』의 2021년 분석에서 2천여 상장기업의 이윤율은 팬데믹 이전 평균을 훨씬 웃돌았고, 매사추세츠 애머스트 대학 경제학자들은 2022년 미국 기업의 이윤율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래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대형 석유회사들은 2022년 사상 최대 이윤을 냈고, 영국은 7월 북해 석유 생산자에게 25%의 초과이윤세를 물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민주당 정치인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기업이 물가 상승을 핑계로 비용보다 더 많이 값을 올렸다며 “그리드플레이션(탐욕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을 퍼뜨렸다. 이 말은 2023년 콜린스 영어사전 올해의 낱말 후보에 올랐다. 14
이 논쟁에 이론의 틀을 준 것은 매사추세츠 애머스트 대학의 이자벨라 베버와 에번 와스너의 2023년 논문 「판매자 인플레이션, 이윤, 갈등」이었다. 두 사람은 미국의 코로나19 인플레이션이 주로 거시경제가 아니라 시장 지배력을 가진 기업들이 값을 올릴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한 “판매자 인플레이션”이라고 보았다. 이런 기업은 경쟁자도 따라 올릴 것이라 예상할 때만 값을 올리는데, 업계 전체에 닥친 비용 충격과 공급 병목이 그런 암묵적 합의를 조정해 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실적 발표 내용과 기업 자료로 세 단계를 그렸다. ① 원자재 시장이나 병목 때문에 경제 전체에 중요한 상류 부문의 값이 오르며 횡재 이윤이 생기고, ② 하류 부문이 이윤율을 지키려고 그 값을 옮기거나 병목으로 생긴 일시적 독점을 이용해 더 키우며, ③ 노동자가 실질임금 하락을 막으려 맞서는 갈등 단계가 온다. 베버는 반도체 부족이 기존 자동차 업체들에 새 경쟁자를 걱정할 필요 없는 “일시적 독점”을 주었다고도 했다. 이 진단에서 나온 처방은 금리 인상이 아니라 병목 부문의 전략적 가격 통제였다. 29 14 30
여러 기관의 연구가 이윤의 몫을 재기 시작했다.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은 2023년 1월 마크업(비용 위에 얹는 이윤폭) 증가가 2021년 물가 상승의 50% 넘게 기여했을 것이라 추정하면서도, 그것이 기업들이 앞으로의 비용 상승을 예상한 신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중앙은행 경제학자들은 2023년 5월 2022년 하반기 물가 상승에서 기업 이윤의 확대가 임금 상승보다 큰 요인이었다고 보았고, IMF는 2023년 6월 유로존 물가 상승분의 거의 절반을 기업 이윤 증가가 설명한다고 밝혔다. OECD 평균으로는 2019년 말부터 2023년 1분기까지 생산 단위당 이윤이 약 22%, 단위당 임금이 약 16% 늘었다. 반대편에서는 오바마 정부의 경제자문위원장 제이슨 퍼먼이 물가 상승을 탐욕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행기 추락을 중력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고 했고, 『이코노미스트』는 이 개념 전체를 “난센스”라 불렀다. 기업이 그렇게 큰 시장 지배력을 가졌다면 팬데믹과 상관없이 언제든 값을 올렸을 것이라는 반론이었다. 14 31
중앙은행은 금리를 얼마나 빨리 올렸나?
연방준비제도는 2022년 3월 16일 연방기금금리 목표를 0.25~0.5%로 올려 3년 만에 첫 인상을 했다. 성명은 물가 상승이 팬데믹과 관련된 수요·공급의 불균형과 에너지 가격 상승을 반영한다고 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이 물가를 더 밀어 올릴 것이라고 했다. 곧 보유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줄이겠다고도 밝혔는데, 양적완화를 거꾸로 돌리는 이런 정책을 양적 긴축이라 한다. 연방준비제도는 5월에 0.5%포인트, 6·7·9·11월에 연달아 0.75%포인트씩 올렸고, 2023년 7월 26일 5.25~5.5%로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30년 고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3년 만에 최고인 8%까지 올랐고, 2023년 미국 주택 판매는 1995년 이후 가장 부진했다. 32 14 33 34
유럽중앙은행은 2022년 7월 11년 만에 처음 금리를 올렸고, 2023년 9월 14일까지 열 차례 연속 올려 유로 출범 이후 가장 높은 4%에 이르렀다. 잉글랜드 은행은 2022년에만 아홉 차례 올려 12월 3.5%, 2023년 8월 3일 5.25%로 2008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일본은행만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했고, 세계 적어도 75개 중앙은행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렸다. 연방준비제도가 유럽보다 빨리 올리자 달러가 강해져 2022년 7월 유로가 20년 만에 처음 달러보다 싸졌다. 에너지를 수입하는 나라들은 비싸진 달러와 에너지 가격을 함께 떠안았고, 세계은행은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잡으려다 세계적 경기 후퇴의 위험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14
급격한 금리 인상은 어디서 무엇을 부러뜨렸나? {uk}
첫 균열은 영국 국채(길트) 시장에서 났다. 2022년 9월 6일 취임한 리즈 트러스 총리의 재무장관 퀘이지 콰텡은 9월 23일 “성장 계획”이라는 이른바 미니 예산을 발표했다. 최고 소득세율 45%를 없애고 법인세 인상을 취소하는 등 50년 만에 가장 큰 감세를 빚으로 메우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예산책임청(OBR)의 독립 전망도 붙어 있지 않았다. 시장은 곧장 반응했다. 파운드는 9월 26일 달러당 1.0327달러로 1971년 이후 최저로 떨어졌고, 은행들은 금리 상승을 걱정해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거둬들여 9월 29일에는 상품의 40%가 사라졌다. IMF는 이례적으로 이 예산이 불평등을 키울 것이라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35
위기를 키운 것은 연기금이었다. 많은 연기금이 금리 변화 위험을 관리하려고 부채연계투자(LDI)라는 파생상품 전략을 써 왔는데, 국채 가격이 급락하자 추가 담보로 현금을 내야 했고, 그 현금을 마련하려고 국채를 팔면서 값이 더 떨어졌다. 잉글랜드 은행 부총재 존 컨리프는 뒤에 일부 연기금이 청산까지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었다고 밝혔다. 잉글랜드 은행은 9월 28일 장기 국채 시장의 기능 장애가 금융 안정에 중대한 위험이라며 10월 14일까지 “필요한 만큼의 규모로” 장기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올리고 보유 국채를 팔려던 중앙은행이 금융 안정을 위해 다시 국채를 사야 했던 것이다. 트러스는 감세안을 차례로 철회하고 콰텡을 해임했지만 결국 사임했고, 재임 50일로 영국 역사상 가장 짧은 총리가 되었다. 35 36 37
2023년 3월에는 미국 은행들이 무너졌다. 실리콘밸리 은행(SVB)은 기술 기업에 돈이 몰린 팬데믹 동안 예금이 2020년 3월 620억 달러에서 2021년 3월 1,240억 달러로 두 배가 되자, 그 돈 대부분을 수익률이 조금 더 높은 장기 국채에 넣었다. 금리가 오르면 이미 발행된 채권의 값은 떨어지므로,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으로 이 국채들에 큰 평가손실이 쌓였다. 예금자들이 돈을 빼기 시작하자 SVB는 3월 8일 증권 210억 달러어치를 손해 보고 팔았다고 발표했고, 이튿날 하루에만 420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3월 10일 캘리포니아 당국이 은행을 폐쇄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넘겼다. 미국 역사상 세 번째로 큰 은행 파산이었고, 예금의 약 89%가 보험 한도(25만 달러)를 넘는 예금이었다. 38 39
같은 주에 암호화폐와 얽힌 실버게이트 은행과 시그니처 은행도 무너졌다. 규제 당국은 SVB와 시그니처 은행의 예금을 보험 한도와 상관없이 모두 보장하겠다고 발표했고, 연방준비제도는 은행이 국채 등을 액면가로 담보 잡혀 최장 1년 동안 돈을 빌릴 수 있는 은행 기간 자금 프로그램(BTFP)을 만들었다. 3월 16일까지 은행들이 연방준비제도 할인 창구에서 빌린 돈은 약 1,500억 달러였다. 이어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에서 보험 한도를 넘는 예금 1천억 달러가 빠져나갔고, 이 은행은 5월 1일 폐쇄되어 JP모건 체이스에 팔렸다. 정부 대응을 구제금융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은행이나 경영진·주주를 살린 것이 아니라 은행 자산을 팔아 보험 한도 밖 예금자에게 돌려준 것이었다. 39 38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파업은 어떻게 되었나? {uk}
물가가 임금보다 빨리 오르면 받는 돈이 같거나 조금 늘어도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줄어든다. 화폐 임금을 물가로 나눈 이 실질임금이 2021년 이후 선진국 전역에서 떨어졌다. OECD는 2023년 고용 보고서에서 회원국 실질임금이 1년 동안 평균 3.8% 줄었고, 노동시장이 명목임금을 끌어올렸지만 물가에 못 미쳐 거의 모든 산업과 나라에서 실질임금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이를 적어도 50년 만에 가장 크고 긴 하락이라 불렀다. OECD는 아직 임금-물가 악순환의 조짐이 없다고도 했다. 영국에서는 2021년 말부터 필수품 가격이 가계 소득보다 빨리 올라 “생계비 위기”라는 말이 생겼고, 소매물가지수 상승률은 2022년 10월 11.1%로 정점에 이르렀다. 미국에서는 최저임금의 실질 가치가 1956년 이후 가장 낮아졌다. 31 40 14
영국 노동자들은 물가만큼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일어섰다. 2022년 5월 철도해운운수노조(RMT) 조합원들이 투표에서 89%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정했고, 6월 21일부터 30년 만의 전국 철도 파업이 시작되었다. 1989년 이후 가장 큰 쟁의의 물결이었다. 파업은 통신·우편·법조·화물로 번졌고, 노조 지도자들은 “이제 그만(Enough is Enough)” 운동을 꾸려 에너지 요금 환원과 실질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2022년 10월 왕립간호협회는 106년 역사상 처음으로 30만 회원에게 파업 찬반 투표를 붙였고, 2023년 2월에는 잉글랜드의 수련의들이 26%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72시간 파업을 결정했다. 교원 노조들도 물가에 가까운 인상을 요구하며 투표에 나섰다. 41 40
미국에서는 자동차노조(UAW)가 2023년 9월 15일 포드·제너럴 모터스·스텔란티스 세 회사를 상대로 노조 역사상 처음 동시 파업에 들어갔다. 새로 뽑힌 위원장 숀 페인은 물가를 따라가지 못한 임금 정체를 비판하며, 신입을 낮은 임금 등급에 묶는 이중 임금제 폐지와 2008년 금융위기 때 잃은 생계비 조정과 연금의 회복을 요구했다. 46일 만인 10월 30일 파업이 끝났고, 포드와의 잠정 합의는 4년 반 동안 임금 25% 인상과 생계비 조정을 담아 이를 합치면 30%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한편 미국의 임금 분포를 보면 2020~2022년 하위 10%의 임금은 물가보다 5.7% 더 올랐지만 중위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1%, 상위 10%는 5%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일손이 모자란 저임금 업종에서 임금이 빠르게 오른 결과였다. 42 14
중국은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났나?
중국은 2020년 1월 23일 우한을 봉쇄한 뒤, 감염이 생기면 곧바로 검사·추적·격리·봉쇄로 지역 감염을 0으로 되돌리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다른 어떤 큰 나라보다 오래 지켰다. 2020년 초 확산을 억누른 뒤 2월부터 경제 활동을 다시 열었지만,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가 퍼진 2022년에는 선전·선양·지린에 이어 3월 말 상하이가 봉쇄되었다. 2020년 초 후베이 이후 가장 큰 봉쇄였다. 그해 11월 우루무치 화재를 계기로 경제적 비용과 통제에 대한 불만이 전국적 시위로 터졌다. 정부는 12월 7일 규칙을 크게 풀었고, 이로써 정책은 사실상 끝났다. 43
같은 시기 중국 경제를 오래 떠받쳐 온 부동산 부문이 흔들렸다. 지방정부는 토지 사용권 판매에 재정을 기대 왔고, 2008년 금융위기 대응도 지방정부의 기반 시설 투자로 이루어져 땅값 상승에 대한 의존이 커졌다. 시진핑 지도부는 2020년 “집은 사는 곳이지 투기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원칙에 따라 개발업체의 부채를 현금·자본·자산 대비로 제한하는 “세 가지 레드라인”을 도입했다. 세 기준을 모두 넘은 헝다(에버그란데)는 2021년 8월 자금난을 알리는 편지가 퍼지면서 위기에 빠졌고, 12월 초 해외 채권에서 디폴트를 냈다. 헝다 한 회사가 개인 투자자·은행·납품업체 등에 진 빚만 2조 위안(3,100억 달러)이었다. 2022년 중반에는 짓다 만 아파트를 산 사람들이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2023년에는 최대 민간 개발업체 비구이위안도 대규모 손실을 냈다. 홍콩 법원은 2024년 1월 29일 헝다의 청산을 명령했다. 44
이 위기와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해석되나?
주류의 첫 해석은 수요 과열이었다. 서머스는 대규모 재정 부양이 경제를 과열시킨다고 경고했고,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뒤 물가가 내려가자 그 공을 중앙은행에 돌렸다. 시카고 대학 부스 경영대학원의 2021년 11월·2022년 1월 설문에서는 공급망 위기가 물가 상승의 주된 원인이 아니며 미국의 재정·통화 부양이 겹친 효과가 높은 물가를 오래 끌 위험이 있다는 데 동의하는 경제학자가 더 많았다. 반대로 공급 측 해석은 물가가 팬데믹과 전쟁이 만든 병목과 에너지 충격에서 왔다고 보았다. 크루그먼은 2023년 말 경기 후퇴 없이 물가가 내려간 것을 들어, 비관론자들이 금리 인상이 실업을 늘려 물가를 잡는다고 했던 처음 논리를 버리고 이제는 중앙은행이 단호한 모습으로 기대를 잡았다는 식으로 공을 돌린다고 비판했다. 2024년 미국은 성장을 이어 가면서 목표 물가에 다가가 이른바 “연착륙”에 이르렀다. 14 45
판매자 인플레이션론은 베버·와스너처럼 시장 지배력과 공급 병목에서 이윤이 늘며 물가가 오르는 경로를 강조했다. 마르크스주의 쪽의 해석도 갈렸다. 마이클 로버츠는 2023년 12월 물가 급등이 주로 공급 측 요인에서 왔고 “과도한 통화 공급”이나 “과도한 총수요”, “과도한 임금 요구” 때문이 아니었다고 보았다. 통화주의자, 케인스주의자, 중앙은행의 설명을 모두 물리친 것이다. 그는 공급망이 끊긴 사이 경쟁자가 적은 기업들이 이윤폭을 크게 늘렸지만, 그것은 “탐욕”이라는 모호한 말보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의 정상적 행동이고, 미국의 마크업 상승은 2022년 2분기를 정점으로 줄어든 일시적 현상이며 소수 기업과 에너지·제조·IT·금융 같은 체계적 부문에 몰렸다고 지적했다. 영국에서는 명목 이윤 증가의 90%를 기업 11%가 가져갔다. 로버츠는 또 자본주의 경제는 결국 이윤과 이윤율이 움직인다며, 거대 기술 기업과 에너지 기업을 빼면 미국 기업 대부분의 자본 수익성이 낮다고 보았다. 45 29
이 시기는 인플레이션 이론 자체의 혼란도 드러냈다. 서머스는 2023년 말 인터뷰에서 필립스 곡선 이론에 영광스러운 시기가 아니었고, 그 뒤를 이을 설득력 있는 이론도 없으며, 통화주의 이론도 돈에 이자가 붙는 지금은 무엇을 나눠야 물가가 정해지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4% 안팎으로 낮은 채로 물가가 오르고 또 내려갔다. 한편 위기 대응의 방식도 흔적을 남겼다. 2020년의 재정 지출과 무제한 양적완화는 2008년 이후의 긴축 기조를 뒤집었지만, 자산 시장이 실물 경제보다 먼저 살아난 K자형 회복과, 급격한 금리 인상이 연기금과 지역 은행이라는 약한 고리를 부러뜨렸다는 사실이 함께 남았다. 공급망의 마비와 전쟁, 제재는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과 탈달러 논의로 이어졌다. 45 14 13 1
결과
물가는 2022년 하반기를 정점으로 2023년에 빠르게 내려갔고, 미국은 2024년 경기 후퇴 없이 목표 물가에 다가갔다. 그러나 선진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적어도 50년 만에 가장 크게 떨어졌고, 영국의 파업 물결과 미국 자동차노조의 동시 파업이 이에 맞섰다. 물가 급등의 원인을 두고 수요 과열론, 공급 충격론, 판매자 인플레이션론이 맞섰고 기업 이윤의 몫은 지금도 논쟁거리다. 공급망 마비와 전쟁, 러시아 자산 동결은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과 탈달러 논의를 앞당겼고, 중국은 부동산 침체에 빠졌다.
연표와 지도
- 12020.03.12세계 주가 폭락
다우 존스와 S&P 500 지수가 1987년 이후 가장 큰 하루 하락률을 기록했고, 미국 증시에서는 사흘 만에 다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었다.
- 22020.03.15연방준비제도, 금리 0%대와 양적완화
연방준비제도가 연방기금금리 목표를 0~0.25%로 내리고 국채 5천억 달러, 주택저당증권 2천억 달러 이상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 32020.03.18유럽중앙은행 PEPP 발표
유럽중앙은행이 7,500억 유로의 팬데믹 긴급 매입 프로그램(PEPP)을 발표했다.
- 42020.03.19한국은행 등과 통화 스와프
연방준비제도가 한국은행 등 6개 중앙은행과 각각 최대 600억 달러, 3개 중앙은행과 각각 30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를 맺었다.
- 52020.03.23무제한 자산 매입과 회사채 매입 기구
연방준비제도가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필요한 만큼 사들이겠다고 발표하고, 회사채를 직접 사는 기구 두 곳을 만들었다.
- 62020.03.27CARES 법 서명
트럼프 대통령이 2조 2천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지원·구제·경제안보법에 서명했다.
- 72020.04.20서부 텍사스 원유 선물, 마이너스 가격
저장 시설이 가득 차면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 원유(WTI) 선물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0 아래로 떨어졌다.
- 82020.05.08미국 실업률 14.7%
노동통계국이 4월 실업률이 14.7%로 1941년 이후 가장 높았다고 발표했다.
- 92020.07.21차세대 EU 합의
유럽이사회가 공동 차입으로 마련하는 7,500억 유로의 회복 기금 차세대 EU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 102021.03.11미국 구조계획법 서명
바이든 대통령이 1조 9천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구조계획법에 서명했다.
- 2021.12헝다 디폴트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가 해외 채권에서 디폴트를 냈고, 피치가 이 회사를 “제한적 디폴트”로 판정했다.
- 2022.02.2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며칠 안에 서방 나라들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자산을 동결했다.
- 112022.03.16연방준비제도의 첫 금리 인상
연방준비제도가 연방기금금리 목표를 0.25~0.5%로 올려 3년 만에 처음 금리를 인상했다.
- 122022.06.21영국 전국 철도 파업
철도해운운수노조(RMT)가 30년 만의 전국 철도 파업을 시작했다.
- 132022.09.23영국 미니 예산
콰텡 재무장관이 빚으로 메우는 대규모 감세를 담은 “성장 계획”을 하원에 발표했다.
- 142022.09.28잉글랜드 은행의 긴급 국채 매입
잉글랜드 은행이 장기 국채 시장의 기능 장애를 막으려고 10월 14일까지 필요한 만큼 장기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 152022.10.20트러스 사임 발표
리즈 트러스 총리가 보수당 대표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고, 25일 리시 수낵에게 총리직을 넘겼다.
- 162022.12.07중국, 제로 코로나 완화
전국적 시위 뒤 중국 정부가 확진자 격리와 의무 PCR 검사 등 제로 코로나 규칙을 크게 풀었다.
- 172023.03.10실리콘밸리 은행 파산
하루 420억 달러의 예금 인출 뒤 캘리포니아 당국이 실리콘밸리 은행을 폐쇄해 연방예금보험공사에 넘겼다.
- 182023.07.26연방기금금리 5.25~5.5%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5.25~5.5%로 올려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 192023.09.15–
10.30 미국 자동차노조 동시 파업미국 자동차노조가 포드·제너럴 모터스·스텔란티스를 상대로 처음 동시 파업에 들어갔고, 46일 뒤 잠정 합의로 끝냈다.
- 202024.01.29헝다 청산 명령
홍콩 법원이 헝다 그룹의 청산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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