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긴축
Fiscal austerity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려, 또는 둘을 함께 써서 재정 적자를 줄이려는 정책. 빚을 갚기 어렵거나 새로 빌리기 어려워진 정부가 채권자와 신용평가사에 재정 규율을 보여 주려고 쓰는 경우가 많고,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 금융기관이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불황기에 시행하면 수요를 더 줄여 실업을 늘리고 성장을 떨어뜨려, 적자가 줄어도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오히려 올라갈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상세
정부가 쓰는 돈은 그 자체로 국내총생산(GDP)의 한 부분이고, 한 사람의 지출은 다른 사람의 소득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거시경제 모형에서 정부 지출을 줄이면 단기적으로 실업이 늘어난다.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가 먼저 사라지고, 정부 발주와 공무원 소비에 기대던 민간 부문으로 번진다. 세금을 올리는 긴축은 가계가 쓸 수 있는 소득을 줄여 소비를 떨어뜨린다. 모두가 한꺼번에 지출을 줄이면 불황이 깊어지는 「절약의 역설」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도 긴축이 선택되는 까닭은 정부가 빚을 갚지 못할 위험이 생겼을 때다. 자국이 발행할 수 없는 외화로 빚을 진 나라, 또는 정부 부채를 사들일 수 없도록 법으로 묶인 독립 중앙은행의 통화를 쓰는 나라가 그렇다. 유로존 회원국이 바로 뒤쪽에 해당했다. 은행과 투자자가 신뢰를 잃어 만기가 된 빚의 연장을 거부하거나 아주 높은 금리를 요구하면, 정부는 지출을 줄여 「재정 규율」을 보여 주라는 압력을 받는다. 국제통화기금은 최종 대부자로 나설 때 구조 조정 프로그램의 일부로 긴축을 요구해 왔다. 은행 위기 뒤 정부가 민간 은행의 빚을 떠안아 부채가 불어난 경우도 있다. 아일랜드가 유럽 부채 위기 때 자국 은행의 빚을 떠안은 뒤 공공 부문의 낭비를 줄이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긴축을 둘러싼 논쟁은 오래되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대공황 시기에 「재무부가 긴축할 때는 불황이 아니라 호황이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은 불황기의 재정 적자가 실업을 줄이고 성장을 돕는다고 보며, 폴 크루그먼은 정부는 가계와 달라서 불황 때 지출을 줄이면 위기가 더 나빠진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알베르토 알레시나 등은 정부 지출 감소가 민간 소비, 투자, 수출의 증가로 상쇄되면 긴축이 오히려 성장을 낳을 수 있다는 「팽창적 긴축」을 내세웠다. 정치경제학자 마크 블라이스는 긴축의 뿌리를 국가와 국가 부채를 문제로 보는 자유주의 경제학에서 찾고, 그것이 20세기에 신자유주의의 교리가 되었다고 본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코츠는 2008년 금융위기 뒤의 긴축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모델을 지키려는 시도로 읽었다. 클라라 마테이는 긴축을 경제를 고치는 수단이라기보다 노동계급의 저항을 누르고 자본주의의 대안을 막는 계급 지배의 무기로 보며, 그 기원을 제1차 세계대전 뒤의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찾는다.
2010년대 유로존은 이 논쟁의 실험장이 되었다. 유럽 부채 위기 동안 많은 나라가 긴축에 나서 2010년에서 2011년 사이 GDP 대비 재정 적자를 줄였지만, 독일을 빼면 모두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올랐다. 그리스의 부채 비율은 2010년 143%에서 2011년 165%로 뛰었다. 유로존 실업률은 2013년 3월 12.1%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2012년 10월 IMF는 긴축 국가에 대한 자신의 전망이 줄곧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밝혔다. 재정 승수, 곧 재정을 GDP의 1%만큼 조이면 GDP가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0.5로 잡았으나 실제로는 0.9~1.7이었다는 것이다. 마틴 울프는 작은 긴축은 경기 후퇴를, 큰 긴축은 공황을 낳았다고 결론지었다. 그리스는 위기 동안 GDP의 25%를 잃었고, 부채 자체는 크게 늘지 않았는데도 GDP가 줄어 부채 비율이 127%에서 179%로 치솟았다.
영국에서는 보수당 대표 데이비드 캐머런이 2009년 4월 「긴축의 시대」를 내걸었고, 2010년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부가 공공 지출을 크게 줄이는 긴축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10~2017년 영국에서 긴축 탓으로 돌려지는 사망이 적어도 12만 명이라는 연구가 있다. 데이비드 스터클러와 산제이 바수는 긴축 정책 뒤 유럽과 미국에서 자살이 최대 1만 건 늘었다고 보았다. 1980년 이후 유럽 166개 선거를 분석한 연구는 긴축이 기권을 늘리고 주류 밖 정당의 득표를 키워 정치적 양극화를 깊게 한다고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