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itative easing (QE) / 量的緩和 · 2001.03.19 (일본은행이 2001년 3월 19일부터 2006년 3월까지 처음 썼고, 2008년 금융위기 뒤 미국 연방준비제도(2008년 11월), 잉글랜드 은행(2009년 3월) 등이 뒤따랐다. 용어는 경제학자 리하르트 베르너가 1995년에 만들었다.)

양적완화

Quantitative easing

정책금리를 0 가까이 내려 더 내릴 수 없게 되었을 때, 중앙은행이 새로 만든 돈으로 국채나 주택저당증권 같은 장기 자산을 미리 정한 규모만큼 대량으로 사들이는 통화정책. 장기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 경기 후퇴와 디플레이션을 막으려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2001년 처음 썼고, 2008년 금융위기 뒤 미국·영국·유럽 등으로 퍼졌다. 자산 가격을 부풀려 부자에게 이익이 쏠린다는 비판을 받는다.

상세

중앙은행은 보통 단기 금리를 올리고 내려 경기를 조절한다. 금리를 내리면 돈을 빌리기 쉬워져 투자와 소비가 늘어난다. 그런데 금리가 이미 0에 가까우면 더 내릴 수 없고, 사람들은 다른 자산의 수익이 낮으니 현금만 쥐고 있으려 한다. 이를 유동성 함정이라 한다. 이때 중앙은행이 금리 대신 돈의 「양」을 늘리려고 쓰는 수단이 양적완화다.

방법은 공개시장 조작과 비슷하다. 중앙은행이 은행과 금융기관에게서 채권을 사고 그 값을 새로 만든 돈으로 치르면, 채권 값이 오르고 수익률(장기 금리)이 내려가며 은행에 돈이 쌓인다. 다만 보통의 공개시장 조작이 단기 국채를 사고파는 데 그치는 것과 달리, 양적완화는 장기 국채나 주택저당증권처럼 더 길고 위험한 자산을 미리 정한 대규모로 정해진 기간에 걸쳐 산다.

이 정책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은행은 1999년부터 단기 금리를 0 가까이 유지했으나 디플레이션이 이어지자, 2001년 2월까지도 효과가 없다며 거부하던 양적완화를 2001년 3월 19일 도입해 2006년 3월까지 썼다. 2008년 금융위기 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정책금리를 0~0.25%로 내린 데 이어, 2008년 11월 말 6천억 달러 규모의 주택저당증권 매입을 시작했다(나중에 「QE1」이라 불렸다). 2009년 3월까지 은행 채무와 주택저당증권, 국채 보유액은 1조 7,500억 달러가 되었다. 연준은 2010년 11월 국채 6천억 달러를 사는 2차 양적완화(QE2), 2012년 9월 매달 400억 달러씩 기한 없이 주택저당증권을 사는 3차 양적완화(QE3)를 이어 갔고, 2013년 6월 버냉키가 매입 축소(테이퍼링)를 예고했다. 잉글랜드 은행은 2009년 3월 양적완화를 시작해 그해 10월 말까지 1,750억 파운드를 사들였다. 일본은 2013년 아베노믹스로 더 큰 규모의 양적완화를 벌였고, 유럽중앙은행도 뒤에 같은 길을 걸었다.

양적완화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지지하는 쪽은 이것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디플레이션을 막아 경기 후퇴를 줄였다고 본다. 비판하는 쪽은 자산 거품을 부풀린다고 지적한다. 그린스펀은 2012년 7월 「경제에 미친 영향은 매우 작다」고 평가했고, 연준에 쌓인 은행 예치금은 QE1~3 동안 4조 달러 가까이 늘어 채권 매입액을 거의 그대로 따라갔다. 2012년 잉글랜드 은행 보고서는 양적완화의 이익이 주로 부유층에 돌아가 그 40%가 가장 부유한 5% 가구에 갔다고 밝혔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federalreserve.gov
  3. federalreserve.gov
  4. ja.wikipedia.org
  5.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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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ederalreserve.gov
  8. federalreserve.gov
  9. ecb.europa.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