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 (OPEC)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OPEC)
산유국 정부들이 석유 생산과 가격 정책을 함께 조정하려고 1960년 9월 14일 바그다드에서 이란·이라크·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베네수엘라 다섯 나라가 만든 정부 간 기구. 영미계 거대 석유 회사 일곱 곳, 이른바 「세븐 시스터스」의 과점에 맞서는 균형추로 출발해 1960~1970년대에 걸쳐 석유 생산 체제를 산유국에 유리하게 바꾸었고, 1973년 석유 값을 일방적으로 올려 1970년대 석유 파동을 일으켰다. 경제학자들은 흔히 카르텔의 교과서적 사례로 들고, 회원국들은 시장 안정 기구라고 설명한다.
상세
제2차 세계대전 뒤 세계 석유 시장은 「세븐 시스터스」라 불린 일곱 거대 석유 회사가 지배했다. 앵글로-페르시안 석유 회사(BP의 전신), 셸, 그리고 스탠더드 오일이 쪼개져 나온 미국 회사들이었다. 이 이름은 이탈리아 국영 석유 회사 에니의 대표 엔리코 마테이가 붙였다. 석유 회사들은 산유국 안의 모든 석유 사업을 쥐고 있었고, 산유국 정부가 받는 몫은 회사가 정해 공시하는 원유 값, 곧 「공시 가격」에 따라 정해졌다. 한 나라가 대들면 회사들은 그 나라 생산을 줄이고 다른 나라 생산을 늘렸고, 1953년 석유를 국유화한 이란의 모사데크 정부는 미국과 영국이 지원한 쿠데타로 무너졌다.
계기는 공시 가격 인하였다. 1959년 2월 석유 회사들은 베네수엘라와 중동 원유의 공시 가격을 일방적으로 10% 내렸다. 몇 주 뒤 카이로의 제1차 아랍 석유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타리키와 베네수엘라의 후안 파블로 페레스 알폰소가 만났고, 두 사람은 수출국들의 「석유 협의 위원회」를 요구하는 마아디 협약을 이끌었다. 1960년 8월 회사들이 중동 원유 값을 또 내리자, 다음 달 바그다드 회의에서 이란·이라크·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베네수엘라 대표가 석유수출국기구를 세웠다. 미국은 강하게 반대했다.
초기 OPEC은 힘이 약했다. 산유국과 석유 회사가 이익을 반씩 나누는 「50 대 50」 계약이 1970년까지 이어졌고, 한 회원국이 너무 많이 요구하면 회사들은 그 나라 생산을 줄이고 다른 곳 생산을 늘렸다. 1970년 리비아가 옥시덴털과 58 대 42 계약을 맺자 다른 회원국도 더 나은 조건을 요구했다. 1971년 2월 14일 테헤란 협정과 4월 2일 트리폴리 협정은 공시 가격과 산유국 몫을 올렸고, 달러 가치 하락에 대비하는 조항도 넣었다. 1970년대 초에는 회원국 생산이 세계 석유 생산의 절반을 넘었고, 리비아·알제리·이라크·나이지리아·사우디아라비아·베네수엘라에서 국유화 물결이 일었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 중에 OPEC 회원국들은 회사와의 협상 없이 처음으로 직접 가격을 올렸고, 아랍 회원국 중심의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는 이스라엘을 지원한 나라에 대한 감산과 금수를 선언했다. 원유 값은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올랐다. 이것이 1970년대 위기의 한 축인 첫 번째 석유 파동이다. 금수와 감산은 OAPEC이 결정했지만 가격 인상은 OPEC 차원의 일이었다는 점에서 둘은 구별된다. 알제리 대통령 우아리 부메디엔은 1974년 4월 유엔 특별총회에서 OPEC의 행동을 원료 생산국이 가격 통제의 지렛대를 쥘 필요를 보여 준 「희망의 원천」이라고 불렀다. 이 기대가 신국제경제질서 요구로 이어졌다.
높은 석유 값은 OPEC의 힘을 스스로 깎아 먹었다. 1979~1980년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값이 배럴당 40달러 가까이 오르자, 소비국들은 발전소 연료를 석탄·가스·원자력으로 바꾸고 시베리아·알래스카·북해·멕시코만에서 새 유전을 개발했다. OPEC의 시장 점유율은 1979년 약 50%에서 1985년 30% 아래로 떨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생산을 하루 1,000만 배럴에서 3분의 1로 줄이며 값을 지키려 했으나 실패하자 방향을 바꿔 증산했고, 1986년 원유 값은 배럴당 1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OPEC을 어떻게 볼지는 갈린다. 경제학자들은 회원국이 시장 경쟁을 줄이고 독점 이윤을 얻으려 협력하는 카르텔의 교과서적 사례로 든다. 회원국들은 OPEC이 세븐 시스터스라는 이전의 카르텔에 맞서 만든 균형추이며 시장을 안정시키는 온건한 힘이라고 설명한다. 정치학자 제프 콜건은 회원국이 약속을 늘 어긴다는 점을 들어 「OPEC은 쉬운 목표를 정하고 그것조차 못 지킨다」며 카르텔이라는 규정 자체를 의심했다. 어느 쪽이든 OPEC의 창설이 천연자원에 대한 국가 주권을 향한 전환점이었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