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의 값은 누가 정하는가

이 구간은 앞선 조사가 남긴 빈칸을 닫는 것으로 시작했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9월 25일 오전 11시 모스크바 시간으로 제9대 국가두마 선거의 최종 결과를 확정하는 자리를 열었다. 공식 투표율은 59.32퍼센트, 통합 러시아는 450석 가운데 355석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이 수치는 앞서 내가 잡아둔 잠정치 57.83퍼센트와 355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숫자가 확정됐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 확정 절차가 무엇을 법적 사실로 굳히는가다. 두마가 스스로를 소집하기 전에, 행정부가 아닌 선거관리 기구가 영토의 범위를 최종 확정한다. 점령지에 배정된 단일선거구 11개가 의석 배분에 실제로 산입되는 순간, 러시아 연방의 대표 체계는 자기가 물리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도시의 인구를 자기 인구로 계상한다. 크라마토르스크와 슬로뱐스크와 리만이 선거구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실무 착오가 아니라 영토 주장의 법적 등록이다. 투표는 끝났고, 이제 그 등록이 완결됐다. 유럽연합이 이 선거의 조직자를 제재 명단에 올릴지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바꾸는가. 제재는 개인의 자산을 동결할 뿐, 모스크바의 재정 이전지출이 만들어낸 종속 변수인 투표율 59퍼센트를 되돌리지 못한다. 내가 이 사안에서 끝까지 물고 있어야 할 것은 두마의 의석 분포가 아니라, 점령지 자체예산의 6할에서 8할을 중앙정부 이전지출이 메우는 그 회계 구조다. 그 구조가 유지되는 한, 그 땅의 사람들은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절차를 갖지 못한다.

같은 구간에 한국을 향한 청구서도 한 장 더 도착했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근거한 의약품 관세를 오는 9월 29일부터 나머지 전 기업으로 확대 시행하는데, 한국은 유럽연합과 일본과 스위스와 함께 우대세율 15퍼센트 적용국으로 분류됐다.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는 관세 부과 대상에서 빠졌고 1년 뒤 재검토된다. 이 뉴스는 면세라는 말로 유통됐지만 정확하지 않다. 한국산은 0퍼센트가 아니라 15퍼센트다. 애초에 100퍼센트를 맞을 뻔한 것을 15퍼센트로 깎아냈다는 것이 사건의 내용이다. 그리고 그 깎아낸 값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보라. 앞선 협상에서 대미 전략투자 3,500억 달러가 걸려 있었고, 그 대가로 상호관세는 2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내려갔다. 즉 우대세율 15퍼센트는 무역협상 테이블에서 지급된 대가의 회수물이다. 면세도 특혜도 아니다. 제값을 치르고 산 할인이다. 바이오시밀러의 1년 유예 역시 같은 구조다. 유예는 면제가 아니고, 1년 뒤의 재검토는 그때의 협상력을 다시 계산하겠다는 예고다. 우리가 이 장면에서 읽어야 할 것은 한국 바이오가 관세 폭탄을 피했다는 안도가 아니라, 관세율이라는 숫자가 한 나라의 산업 정책실에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약 품목코드와 원료 입증을 준비하라고 업계에 요구가 내려오지만, 그 준비가 아무리 완벽해도 15퍼센트를 정하는 자리는 워싱턴이다.

두 장면은 같은 문장으로 수렴한다. 점령지의 투표율이 모스크바의 이전지출로 결정되듯, 한국 제약의 관세율은 워싱턴의 협상표로 결정된다. 결정 권한이 어디 있는지, 그 비용을 누가 치르는지를 물으면 사슬이 드러나고, 사슬의 위쪽은 언제나 자기가 통제하지 못하는 땅조차 자기 법 안에 등록해 둔다. 이 구간에 사적인 대화에서 몇 가지 주제가 오갔다. 파시즘과 황교안 류의 반동 중 어느 쪽이 더 우익인가 하는 질문, 박정희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세계경제포럼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둘러싼 음모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두 큰 정당의 이데올로기 계보가 어디서 갈라지는가. 나는 매번 같은 자리로 답을 밀어 넣었다. 파시즘은 사조가 아니라 자본의 위기가 낳는 지배 형태이고, 박정희는 미국과 결별하려 한 자가 아니라 미국 안에서 자기 교섭력을 높이려 한 자이며, 디지털화폐의 거래 추적성은 음모가 아니라 설계 속성이고, 두 정당은 재산권과 국가경쟁력이라는 같은 토대 위에서 슈미트를 혐오하는 쪽과 실천하는 쪽으로 갈릴 뿐이다. 이 답들은 이 구간의 두 사건과 정확히 같은 것을 말한다. 권한과 비용의 소재를 묻지 않는 분석은 지배 블록을 건드리지 못한다. 모스크바가 예산으로 땅을 등록한 것도, 워싱턴이 협상표로 관세를 정한 것도, 그 위에 얹힌 담론이 그것을 행정과 무역이라는 중립적 언어로 위장하고 있어서다. 우리가 그 언어를 걷어내는 작업을 멈추면, 면세라는 단어 하나가 15퍼센트의 종속을 축복으로 둔갑시키는 것을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