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을 부르는 자리와 값을 치르는 자리
10월 13일 밤부터 14일 새벽까지 워싱턴에서 벌어진 일은 이 기간의 다른 모든 사건에 좌표를 준다. 트럼프가 알래스카 와실라 유세에서 "한국이 알래스카 LNG 사업에 500억 달러를 약속했다"고 말했고, 상무장관 러트닉은 연단에서 그 액수를 501억 달러로 부풀려 부르며 "가스관을 건설하라"고 외쳤다. 백악관 대변인은 취임 첫 브리핑에서 한국 에너지 투자 패키지 최대 2,000억 달러를, 원전 8기 1,200억 달러를, 텍사스 가스발전소 223억 달러를 나열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트럼프는 다시 알래스카 LNG 540억 달러를 "나와 그들의 무역·투자 합의의 일부"라고 못 박았다. 한국 정부는 사업 셋 중 확정된 것은 텍사스 가스발전소뿐이고 알래스카는 검토를 시작한 단계라고 반복해서 말해 왔다. 이 반복 자체가 사건의 성격이다. 확정되지 않은 것을 확정된 것으로 선언하는 자와, 그 선언을 취소하지 못하고 매번 해명을 반복하는 자 사이에서 조약은 이미 체결된 것처럼 굴러간다.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가 왜 지금 이것을 반복하는가다. 11월 중간선거가 세 주 앞이고 알래스카가 경합지가 됐다. 그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함께 섰던 현역 상원의원의 이름을 유세장에서 불렀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이 모든 사업이 중단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즉 이 발표는 대미 투자 협상의 진전이 아니라 미국 국내 선거 자재다. 한국의 70조 원은 알래스카 유권자에게 보여줄 성과물로 소비된다. 그리고 여기서 값은 두 번 매겨진다. 한 번은 한국 기업과 정부가 치를 투자금으로, 또 한 번은 관세율로. 트럼프는 이미 10월 초 알래스카 투자에 응하지 않으면 청구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고 했다. 대만이 44억 달러를 확정한 자리에서 트럼프가 한국의 500억 달러를 "이미 약속한" 것으로 전제한 발언은, 지불을 거부하는 쪽에 다른 지불자가 서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협상력이 생긴다는 그의 논리를 드러낸다.
그러면 이 국면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확정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반박은 하지만 거부는 하지 않는다. 대미 투자와 파병 요구를 규탄하는 시민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 요구가 정부에 청구하는 것은 해명이 아니라 거부다. 거부는 아직 없다. 그리고 같은 시각 주한미군사령관 브런슨은 14일 전시작전통권 전환 조건이 "변했다"고 말했다. 그가 든 이유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실전 경험이 축적됐다는 것이다. 위기 담론이 커지는 만큼 전환은 다시 멀어지고, 전환 조건을 정하는 자는 여전히 워싱턴에 있다. 투자금을 부르는 자와 지휘체계를 쥔 자가 같은 쪽에 서 있고, 그 사이에서 한국 정부는 확정되지 않았다는 문장 하나를 반복한다.
거제에서는 다른 층위의 같은 문제가 교섭 테이블에 올라 있다. 8일 첫 원청교섭 이후 15일 오후 2차 교섭이 예정되어 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와 웰리브지회가 참여하고, 요구는 성과급 차별 해소, 안전 분야 하청 노동자 참여, 사무실 등 노조활동 보장이다. 이 요구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2025년 12월 회사는 원청과 같은 비율의 하청 성과급 지급을 일방 발표했고, 그것이 노사 교섭의 결과가 아니라 교섭을 대신한 지급이라는 것이 하청지회의 판단이다. 실제로는 차등 지급이었다는 주장도 함께 나온다. 즉 회사는 "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으라"는 방식을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관철했고, 노동자는 그 지급을 교섭으로 되돌려 놓으려 한다. 배분의 기준을 회사의 일방 발표가 아니라 노사 합의로 정하자는 것이 이 교섭의 핵심이다. 원청 정규직 지회장이 크레인에 올라 지적한 것도 같은 것이다. 공개되지 않는 성과급 산정 기준, 지급되지 않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 두 농성이 같은 사업장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이유는 우연이 아니라, 임금과 성과급의 기준을 정하는 자리가 하나도 노동자에게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644 대 22라는 숫자와 15일의 2차 교섭을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보이는가. 요구가 나온 곳은 644개 사업장인데 교섭이 열린 곳은 22곳이고, 그중 한 곳이 거제다. 시행령이 만든 절차의 구멍은 실재한다. 그러나 거제에서 먼저 나온 것은 법의 구멍이 아니라 회사의 선택이었다. 사용자성을 세 번 인정받아도 나오지 않고, 집행정지 기각과 크레인 점거 뒤에야 나왔다. 절차는 회사가 나오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합법적으로 사들인 통로였다. 지금 2차 교섭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성과급 배분 기준을 교섭 의제로 인정하는가다. 그것이 인정되지 않으면 교섭은 요구 목록의 일부만 소화하는 형식이 된다. 상반기 영업이익 1조 1,772억 원을 낸 회사 앞에서 하청 노동자가 크레인 위에서 시간을 태우는 동안, 알래스카에서는 같은 회사가 수주한 선박이 3년치 일감으로 쌓여 있다. 조선 호황이 만든 이익이 대미 투자와 방산 잔고로 빠져나가면 임금으로 돌아올 몫이 줄고, 그 배분의 다툼이 크레인 위에서 벌어진다. 그 다툼은 교섭 테이블과 거리에서 동시에 걸려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가 왜 지금 이것을 반복하는가다. 11월 중간선거가 세 주 앞이고 알래스카가 경합지가 됐다. 그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함께 섰던 현역 상원의원의 이름을 유세장에서 불렀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이 모든 사업이 중단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즉 이 발표는 대미 투자 협상의 진전이 아니라 미국 국내 선거 자재다. 한국의 70조 원은 알래스카 유권자에게 보여줄 성과물로 소비된다. 그리고 여기서 값은 두 번 매겨진다. 한 번은 한국 기업과 정부가 치를 투자금으로, 또 한 번은 관세율로. 트럼프는 이미 10월 초 알래스카 투자에 응하지 않으면 청구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고 했다. 대만이 44억 달러를 확정한 자리에서 트럼프가 한국의 500억 달러를 "이미 약속한" 것으로 전제한 발언은, 지불을 거부하는 쪽에 다른 지불자가 서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협상력이 생긴다는 그의 논리를 드러낸다.
그러면 이 국면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확정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반박은 하지만 거부는 하지 않는다. 대미 투자와 파병 요구를 규탄하는 시민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 요구가 정부에 청구하는 것은 해명이 아니라 거부다. 거부는 아직 없다. 그리고 같은 시각 주한미군사령관 브런슨은 14일 전시작전통권 전환 조건이 "변했다"고 말했다. 그가 든 이유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실전 경험이 축적됐다는 것이다. 위기 담론이 커지는 만큼 전환은 다시 멀어지고, 전환 조건을 정하는 자는 여전히 워싱턴에 있다. 투자금을 부르는 자와 지휘체계를 쥔 자가 같은 쪽에 서 있고, 그 사이에서 한국 정부는 확정되지 않았다는 문장 하나를 반복한다.
거제에서는 다른 층위의 같은 문제가 교섭 테이블에 올라 있다. 8일 첫 원청교섭 이후 15일 오후 2차 교섭이 예정되어 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와 웰리브지회가 참여하고, 요구는 성과급 차별 해소, 안전 분야 하청 노동자 참여, 사무실 등 노조활동 보장이다. 이 요구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2025년 12월 회사는 원청과 같은 비율의 하청 성과급 지급을 일방 발표했고, 그것이 노사 교섭의 결과가 아니라 교섭을 대신한 지급이라는 것이 하청지회의 판단이다. 실제로는 차등 지급이었다는 주장도 함께 나온다. 즉 회사는 "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으라"는 방식을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관철했고, 노동자는 그 지급을 교섭으로 되돌려 놓으려 한다. 배분의 기준을 회사의 일방 발표가 아니라 노사 합의로 정하자는 것이 이 교섭의 핵심이다. 원청 정규직 지회장이 크레인에 올라 지적한 것도 같은 것이다. 공개되지 않는 성과급 산정 기준, 지급되지 않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 두 농성이 같은 사업장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이유는 우연이 아니라, 임금과 성과급의 기준을 정하는 자리가 하나도 노동자에게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644 대 22라는 숫자와 15일의 2차 교섭을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보이는가. 요구가 나온 곳은 644개 사업장인데 교섭이 열린 곳은 22곳이고, 그중 한 곳이 거제다. 시행령이 만든 절차의 구멍은 실재한다. 그러나 거제에서 먼저 나온 것은 법의 구멍이 아니라 회사의 선택이었다. 사용자성을 세 번 인정받아도 나오지 않고, 집행정지 기각과 크레인 점거 뒤에야 나왔다. 절차는 회사가 나오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합법적으로 사들인 통로였다. 지금 2차 교섭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성과급 배분 기준을 교섭 의제로 인정하는가다. 그것이 인정되지 않으면 교섭은 요구 목록의 일부만 소화하는 형식이 된다. 상반기 영업이익 1조 1,772억 원을 낸 회사 앞에서 하청 노동자가 크레인 위에서 시간을 태우는 동안, 알래스카에서는 같은 회사가 수주한 선박이 3년치 일감으로 쌓여 있다. 조선 호황이 만든 이익이 대미 투자와 방산 잔고로 빠져나가면 임금으로 돌아올 몫이 줄고, 그 배분의 다툼이 크레인 위에서 벌어진다. 그 다툼은 교섭 테이블과 거리에서 동시에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