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이 끝난 자리
이스라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0월 30일 새벽 개표를 마쳤다. 리쿠드 27석, 아이젠코트의 야샤르 21석, 네타냐후 진영 53석, 반네타냐후 진영 48석. 과반 61석을 가진 진영이 없다. 그리고 이 선거의 실제 결과는 마지막 줄에 있다. 아랍계 정당이 공동명단 11석, 라암 8석으로 합계 19석을 얻었다. 역대 최다이고, 종전 최고치는 15석이었다. 투표율은 77.9퍼센트.
숫자만 보면 교착이다. 그러나 이 19석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보면 교착이 아니라 다른 것이 보인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 유권자의 투표율이 약 80퍼센트에 달했고, 갈릴레아 같은 지역에서는 80퍼센트를 넘었다. 팔레스타인 연구자 니머 술타니는 이를 전례 없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이 유권자층은 오랫동안 선거를 보이콧해 왔다. 시민권을 가졌어도 투표가 자기 조건을 바꾸지 못한다는 계산이 있었고, 그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2021년 라암이 참여한 여덟 정당 연정은 1년 만에 무너졌다. 그런데 이번에 그들은 투표장으로 갔다.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가자 주민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베잘렐 스모트리히가 서안 합병을 밀어붙이는 정부를 상대로, 투표장이 거리보다 나은 계산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서 내가 붙들고 싶은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계산의 성질이다. 19석은 이 의회 안에서 무엇도 결정할 수 없다. 야권에 합치면 67석이지만, 그 야권에는 아랍계와 손잡는 정부를 거부하는 베넷과 리베르만이 있고 아이젠코트 본인도 협력에 소극적이다. 즉 이 19석의 주인들은 자기 표로 정부를 만들 수 없고, 남의 정부를 막을 수만 있다.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 조사에서도 네타냐후 반대 진영 지지자의 61퍼센트가 라암을 포함한 연정을 원했지만, 그 61퍼센트는 유권자이고 연정을 짜는 것은 국회의원이다.
그래서 이 장면이 가르치는 것은 억압받는 소수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과 그 투표권이 권력이 되게 하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1948년에 쫓겨나지 않고 남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후손은 시민권을 갖고 있고, 다른 도시에 살고, 별도의 학교에 다니고, 이제는 역대 최고 투표율로 자기 몫을 보여줬다. 그 몫은 의회 산수에서 캐스팅보트가 되었다. 그러나 캐스팅보트는 결정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권한은, 자기 조건을 결정하는 권한과 다르다. 아랍계 정당들이 자기 표를 내주고 무엇을 받아낼 수 있는지가 앞으로 몇 주의 진짜 쟁점이고, 그 가격은 19석의 크기가 아니라 배제를 유지하는 쪽이 배제를 포기할 때 잃는 것의 크기로 매겨진다.
예정된 일정으로는 11월 4일 헤르조그 대통령이 최종 결과를 넘겨받고 정당 대표들과 협의를 시작하며, 11월 10일 새 의회가 개원한다. 그 사이에 네타냐후는 과도정부 총리로 남는다. 53석으로도 총리직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이 제도의 성질을 말해준다.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는 쪽의 실패가 정부를 해산하지 못하는 쪽의 자리를 보장한다.
폴란드에서도 같은 주에 다른 이름의 같은 문제가 벌어졌다. 10월 30일 밤 헌법재판소의 안나 코르빈-피오트롭스카 재판관이 소장 보그단 시비엥코프스키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자신이 재판소를 운영한다고 선언했다. 시비엥코프스키는 전임 우파 정부가 임명한 인물이다. 투스크 총리는 엑스에 법치 회복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고, 경찰이 재판소를 확보했다.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아프리카 순방 일정을 중단하고 귀국해 31일 새벽 헌재로 향했고, 측근이 대독한 성명에서 "헌정질서가 침해됐고 헌법기관이 무력으로 장악됐다"고 말했다. 재판소 앞에는 소장의 복귀를 요구하는 수백 명이 모였고, 그 자리에서 투스크를 향해 베를린으로 가라는 팻말도 나왔다.
이 사건을 두고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것은 이 국면의 핵심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두 진영이 서로 다른 법 개념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은 법과정의 정부가 법치를 훼손했다고 규정해 왔고, 투스크 정부는 그 훼손을 되돌리는 것이 법치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나브로츠키 진영은 재판소의 구성과 소장의 신분이 법이 정한 절차로만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 주장 모두 자기 안에서는 성립한다. 문제는 서로 다른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하나는 2015년 이전의 재판소를 기준으로 하고, 다른 하나는 2015년 이후에 만들어진 재판소를 기준으로 한다. 어느 쪽도 상대의 기준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 다툼은 법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찰이 건물을 확보하고 대통령이 새벽에 차를 돌리는 장면이 그 증거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확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법의 이름을 건 정면충돌에서 승패를 정하는 것은 법학이 아니라 그 건물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수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느냐다. 투스크에게는 경찰과 하원 다수가 있었고, 나브로츠키에게는 재판소 건물 안의 판사들과 거리의 지지자들이 있었다. 11월 1일 투스크는 재판소 독립을 계속 밀겠다고 밝혔고, 시위는 이틀째 이어졌다. 이 대치는 단기간에 정리되기 어려운 구조다. 유럽연합의 자금과 법치 절차가 이 사건에 어떻게 걸리는지가 앞으로의 변수이지만, 그 절차 역시 결정하는 것은 회원국의 정치다.
한국에서도 이 주에 하나의 계산이 끝났다. 10월 30일 오전 2시 32분, 한 광역버스 노조와 사용자는 해당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임단협 조정안에 합의했다. 열한 시간 반이다. 조정 시한은 자정이었고 사측 요청으로 새벽 3시까지 연장됐다. 준공영제와 민영제 모두 시급 3.2퍼센트 인상, 소급분은 내년 2월 말 지급, 주 2일 휴일을 연속·고정 요일로 부여, 독감 예방접종, 무사고자 3일 유급 포상휴가. 파업은 철회됐고 4천130대가 첫차부터 정상 운행했다.
노조가 처음 요구한 것은 21.56퍼센트와 30퍼센트였다. 그 요구의 근거는 감정이 아니라 문서였다. 해당 광역자치단체는 2022년 10월 공문으로 2026년까지 서울시와 동일한 임금을 적용하겠다고 공언했고, 노사는 임금협정서에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매년 서울과의 격차를 3분의 1씩 줄이기로 명시했다. 노조는 그 3년을 양보하며 기다렸다. 결과는 3.2퍼센트였고, 최대 쟁점이었던 서울 동일임금은 "추후 논의"로 넘어갔다. 노조는 도의 재정 여건을 고려해 한발 물러섰고, 도와 사측이 향후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되면 동일임금을 맞추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2022년의 공문과 임금협정서는 왜 2026년에 집행되지 않았는가. 답은 문서에 서명한 자와 그 문서를 이행할 돈을 쥔 자가 다르다는 데 있다. 합의는 노사정 사이에 있었고, 이행 재원은 광역자치단체 예산에 있었고, 그 예산은 의회와 세수와 부동산과 국채에 매여 있다. 해당 광역자치단체장은 5천억 원대 세출 구조조정을 담은 추경안을 냈지만 의회와의 갈등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노조는 준공영제에 투입되는 1조 원 안팎이 업계 지원이 아니라 환승할인과 교통약자 감면 같은 도민 대상 교통복지라고 지적했다. 그 지적은 정확하다. 그러나 정확한 지적이 재원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합의에서 노동조합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같은 저울에 올릴 수 없다. 얻은 것은 확정된 것이다. 연속·고정 휴일, 예방접종, 포상휴가, 그리고 소급분 2월 지급. 잃은 것은 확정되지 않은 약속, 곧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되면"이라는 조건부 문장이다. 그 문장의 조건은 노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 버스 통상임금 소송의 판결과 그 판결이 요구하는 재원을 대는 쪽이 정한다. 다시 말해, 2022년에 무효가 된 문서는 2026년에 조건부 약속으로 대체되었고, 그 조건 역시 노동조합의 손 밖에 있다.
이 구조는 한국 노동운동이 매번 새벽 협상으로 가는 이유를 설명한다. 문서에 적힌 권리는 문서 밖의 재원에 기대고, 재원은 예산과 금리에 기대고, 예산은 정치에 기대는데, 노동조합이 직접 손댈 수 있는 것은 파업의 시계뿐이다. 그래서 파업은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계산서를 다시 쓰게 만드는 유일한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성공하는 방식이 매번 같다. 노동조합이 요구를 낮추고, 상대가 진정성 있는 약속을 제시하고, 합의가 새벽에 발표된다. 4년 뒤에 그 약속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한 번 관찰되었다.
민주노총은 11월 2일과 12일 두 차례 합동토론회를 거쳐 19일부터 25일까지 투표로 간다. 첫 토론회는 위원장 후보만 참석하고, 두 번째는 선거운동본부별 임원 후보 중 한 명이 나온다. 투표권을 가진 조합원은 97만 7천여 명이다. 이 선거에서 각 후보가 내놓은 조직 확대 구상은 산별 재편, 초기업교섭 확대, 2035년까지 단체협약 적용률 50퍼센트 같은 것들이다. 이 구상들이 겨냥하는 것은 원청이 공고를 미루고 소송으로 버티는 병목이다. 병목을 겨냥하는 것과 병목을 걷어내는 것은 다르지만, 적어도 병목의 위치를 정확히 지목하고 있다.
내가 이 국면에서 보고 싶은 것은 후보들의 구상이 아니라, 그 버스 노조의 새벽 합의가 이 선거에 어떤 자료로 들어가는가다. 21.56퍼센트를 요구해 3.2퍼센트를 받은 사례, 2022년 공문이 2026년에 조건부 문장이 된 사례, 그리고 그 조건을 정하는 자리가 노사정 테이블 밖에 있다는 사실. 이 세 가지가 토론회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97만 7천 명은 자기 조직의 지난 4년이 남긴 가장 정확한 증거를 놓치고 투표하는 셈이다. 문서를 잘 쓰는 지도부보다, 이미 만기된 문서가 왜 만기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지도부가 필요하다. 그 설명이 없으면 다음 문서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만기된다.
숫자만 보면 교착이다. 그러나 이 19석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보면 교착이 아니라 다른 것이 보인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 유권자의 투표율이 약 80퍼센트에 달했고, 갈릴레아 같은 지역에서는 80퍼센트를 넘었다. 팔레스타인 연구자 니머 술타니는 이를 전례 없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이 유권자층은 오랫동안 선거를 보이콧해 왔다. 시민권을 가졌어도 투표가 자기 조건을 바꾸지 못한다는 계산이 있었고, 그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2021년 라암이 참여한 여덟 정당 연정은 1년 만에 무너졌다. 그런데 이번에 그들은 투표장으로 갔다.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가자 주민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베잘렐 스모트리히가 서안 합병을 밀어붙이는 정부를 상대로, 투표장이 거리보다 나은 계산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서 내가 붙들고 싶은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계산의 성질이다. 19석은 이 의회 안에서 무엇도 결정할 수 없다. 야권에 합치면 67석이지만, 그 야권에는 아랍계와 손잡는 정부를 거부하는 베넷과 리베르만이 있고 아이젠코트 본인도 협력에 소극적이다. 즉 이 19석의 주인들은 자기 표로 정부를 만들 수 없고, 남의 정부를 막을 수만 있다.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 조사에서도 네타냐후 반대 진영 지지자의 61퍼센트가 라암을 포함한 연정을 원했지만, 그 61퍼센트는 유권자이고 연정을 짜는 것은 국회의원이다.
그래서 이 장면이 가르치는 것은 억압받는 소수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과 그 투표권이 권력이 되게 하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1948년에 쫓겨나지 않고 남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후손은 시민권을 갖고 있고, 다른 도시에 살고, 별도의 학교에 다니고, 이제는 역대 최고 투표율로 자기 몫을 보여줬다. 그 몫은 의회 산수에서 캐스팅보트가 되었다. 그러나 캐스팅보트는 결정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권한은, 자기 조건을 결정하는 권한과 다르다. 아랍계 정당들이 자기 표를 내주고 무엇을 받아낼 수 있는지가 앞으로 몇 주의 진짜 쟁점이고, 그 가격은 19석의 크기가 아니라 배제를 유지하는 쪽이 배제를 포기할 때 잃는 것의 크기로 매겨진다.
예정된 일정으로는 11월 4일 헤르조그 대통령이 최종 결과를 넘겨받고 정당 대표들과 협의를 시작하며, 11월 10일 새 의회가 개원한다. 그 사이에 네타냐후는 과도정부 총리로 남는다. 53석으로도 총리직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이 제도의 성질을 말해준다.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는 쪽의 실패가 정부를 해산하지 못하는 쪽의 자리를 보장한다.
폴란드에서도 같은 주에 다른 이름의 같은 문제가 벌어졌다. 10월 30일 밤 헌법재판소의 안나 코르빈-피오트롭스카 재판관이 소장 보그단 시비엥코프스키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자신이 재판소를 운영한다고 선언했다. 시비엥코프스키는 전임 우파 정부가 임명한 인물이다. 투스크 총리는 엑스에 법치 회복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고, 경찰이 재판소를 확보했다.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아프리카 순방 일정을 중단하고 귀국해 31일 새벽 헌재로 향했고, 측근이 대독한 성명에서 "헌정질서가 침해됐고 헌법기관이 무력으로 장악됐다"고 말했다. 재판소 앞에는 소장의 복귀를 요구하는 수백 명이 모였고, 그 자리에서 투스크를 향해 베를린으로 가라는 팻말도 나왔다.
이 사건을 두고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것은 이 국면의 핵심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두 진영이 서로 다른 법 개념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은 법과정의 정부가 법치를 훼손했다고 규정해 왔고, 투스크 정부는 그 훼손을 되돌리는 것이 법치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나브로츠키 진영은 재판소의 구성과 소장의 신분이 법이 정한 절차로만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 주장 모두 자기 안에서는 성립한다. 문제는 서로 다른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하나는 2015년 이전의 재판소를 기준으로 하고, 다른 하나는 2015년 이후에 만들어진 재판소를 기준으로 한다. 어느 쪽도 상대의 기준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 다툼은 법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찰이 건물을 확보하고 대통령이 새벽에 차를 돌리는 장면이 그 증거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확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법의 이름을 건 정면충돌에서 승패를 정하는 것은 법학이 아니라 그 건물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수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느냐다. 투스크에게는 경찰과 하원 다수가 있었고, 나브로츠키에게는 재판소 건물 안의 판사들과 거리의 지지자들이 있었다. 11월 1일 투스크는 재판소 독립을 계속 밀겠다고 밝혔고, 시위는 이틀째 이어졌다. 이 대치는 단기간에 정리되기 어려운 구조다. 유럽연합의 자금과 법치 절차가 이 사건에 어떻게 걸리는지가 앞으로의 변수이지만, 그 절차 역시 결정하는 것은 회원국의 정치다.
한국에서도 이 주에 하나의 계산이 끝났다. 10월 30일 오전 2시 32분, 한 광역버스 노조와 사용자는 해당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임단협 조정안에 합의했다. 열한 시간 반이다. 조정 시한은 자정이었고 사측 요청으로 새벽 3시까지 연장됐다. 준공영제와 민영제 모두 시급 3.2퍼센트 인상, 소급분은 내년 2월 말 지급, 주 2일 휴일을 연속·고정 요일로 부여, 독감 예방접종, 무사고자 3일 유급 포상휴가. 파업은 철회됐고 4천130대가 첫차부터 정상 운행했다.
노조가 처음 요구한 것은 21.56퍼센트와 30퍼센트였다. 그 요구의 근거는 감정이 아니라 문서였다. 해당 광역자치단체는 2022년 10월 공문으로 2026년까지 서울시와 동일한 임금을 적용하겠다고 공언했고, 노사는 임금협정서에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매년 서울과의 격차를 3분의 1씩 줄이기로 명시했다. 노조는 그 3년을 양보하며 기다렸다. 결과는 3.2퍼센트였고, 최대 쟁점이었던 서울 동일임금은 "추후 논의"로 넘어갔다. 노조는 도의 재정 여건을 고려해 한발 물러섰고, 도와 사측이 향후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되면 동일임금을 맞추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2022년의 공문과 임금협정서는 왜 2026년에 집행되지 않았는가. 답은 문서에 서명한 자와 그 문서를 이행할 돈을 쥔 자가 다르다는 데 있다. 합의는 노사정 사이에 있었고, 이행 재원은 광역자치단체 예산에 있었고, 그 예산은 의회와 세수와 부동산과 국채에 매여 있다. 해당 광역자치단체장은 5천억 원대 세출 구조조정을 담은 추경안을 냈지만 의회와의 갈등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노조는 준공영제에 투입되는 1조 원 안팎이 업계 지원이 아니라 환승할인과 교통약자 감면 같은 도민 대상 교통복지라고 지적했다. 그 지적은 정확하다. 그러나 정확한 지적이 재원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합의에서 노동조합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같은 저울에 올릴 수 없다. 얻은 것은 확정된 것이다. 연속·고정 휴일, 예방접종, 포상휴가, 그리고 소급분 2월 지급. 잃은 것은 확정되지 않은 약속, 곧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되면"이라는 조건부 문장이다. 그 문장의 조건은 노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 버스 통상임금 소송의 판결과 그 판결이 요구하는 재원을 대는 쪽이 정한다. 다시 말해, 2022년에 무효가 된 문서는 2026년에 조건부 약속으로 대체되었고, 그 조건 역시 노동조합의 손 밖에 있다.
이 구조는 한국 노동운동이 매번 새벽 협상으로 가는 이유를 설명한다. 문서에 적힌 권리는 문서 밖의 재원에 기대고, 재원은 예산과 금리에 기대고, 예산은 정치에 기대는데, 노동조합이 직접 손댈 수 있는 것은 파업의 시계뿐이다. 그래서 파업은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계산서를 다시 쓰게 만드는 유일한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성공하는 방식이 매번 같다. 노동조합이 요구를 낮추고, 상대가 진정성 있는 약속을 제시하고, 합의가 새벽에 발표된다. 4년 뒤에 그 약속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한 번 관찰되었다.
민주노총은 11월 2일과 12일 두 차례 합동토론회를 거쳐 19일부터 25일까지 투표로 간다. 첫 토론회는 위원장 후보만 참석하고, 두 번째는 선거운동본부별 임원 후보 중 한 명이 나온다. 투표권을 가진 조합원은 97만 7천여 명이다. 이 선거에서 각 후보가 내놓은 조직 확대 구상은 산별 재편, 초기업교섭 확대, 2035년까지 단체협약 적용률 50퍼센트 같은 것들이다. 이 구상들이 겨냥하는 것은 원청이 공고를 미루고 소송으로 버티는 병목이다. 병목을 겨냥하는 것과 병목을 걷어내는 것은 다르지만, 적어도 병목의 위치를 정확히 지목하고 있다.
내가 이 국면에서 보고 싶은 것은 후보들의 구상이 아니라, 그 버스 노조의 새벽 합의가 이 선거에 어떤 자료로 들어가는가다. 21.56퍼센트를 요구해 3.2퍼센트를 받은 사례, 2022년 공문이 2026년에 조건부 문장이 된 사례, 그리고 그 조건을 정하는 자리가 노사정 테이블 밖에 있다는 사실. 이 세 가지가 토론회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97만 7천 명은 자기 조직의 지난 4년이 남긴 가장 정확한 증거를 놓치고 투표하는 셈이다. 문서를 잘 쓰는 지도부보다, 이미 만기된 문서가 왜 만기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지도부가 필요하다. 그 설명이 없으면 다음 문서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만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