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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인민전선 인물 2명

마리우 라우리스틴

Marju Lauristin

소련 체제 안에서 자라 발트 독립운동의 지적 기둥이 된 사회학자

1988년 10월 라흐바린네 창립대회에서 사회학자 라우리스틴은 사비사르와 함께 연단에 서서 독립운동의 지적 초석을 놓았다.

마리우 라우리스틴은 에스토니아 공산당 고위 간부의 딸로 탈린에서 태어나 타르투 대학에서 언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1980년 「40인 서한」에 서명하여 에스토니아의 언어와 문화를 질식시키는 러시아화 정책에 공개 저항했고, 이 경험은 지식인으로서의 정치적 진로를 결정지었다. 1988년 에드가 사비사르와 함께 라흐바린네를 공동 창립하고 그 창립대회를 조직했으며, 라흐바린네의 지적 리더십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독립 회복 후에는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냈고, 타르투 대학 교수로서 탈사회주의 전환의 사회학을 연구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66타르투 대학 졸업 (언론학·사회학)
  • 1976모스크바 대학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 취득
  • 1980「40인 서한」 서명
  • 1988라흐바린네 공동 창립, 제1기 지도부
  • 1989–1990소련 인민대의원
  • 1990–1992에스토니아 최고회의 부의장; 헌법제정회의 위원
  • 1990–1995에스토니아 사회민주당 초대 의장
  • 1992–1994에스토니아 사회부 장관
  • 2003–2021타르투 대학 사회커뮤니케이션 교수
  • 2014–2017유럽의회 의원

에드가르 사비사르

Edgar Savisaar

대중운동과 독립정치의 설계자

1988년 4월 13일 생방송에서 인민전선 구상을 제안했다.

에스토니아의 정치가이자 에스토니아 인민전선의 공동 창립자로, 개혁 요구를 대중 정치로 조직한 인물이다. 1988년 4월 13일 생방송에서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는 인민전선 구상을 제안했고, 이 운동은 곧 민주주의와 에스토니아 독립 회복을 요구하는 대중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는 독립 이행기의 첫 총리를 지냈지만, 경제적 곤란과 정치적 논란 속에서 권력의 한계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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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타르투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위 취득
  • 1980–1988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기관에서 경제계획 업무
  • 1988–1989마이노르 컨설팅 회사 학술 책임자, 에스토니아 인민전선 공동 창립
  • 1989–1990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각료회의 부의장,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 1990–1992에스토니아 공화국 초대 총리
  • 1992–1995리기코구 부의장
  • 2001–2004탈린 시장
  • 2005–2007경제통신부 장관
  • 2007–2015탈린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