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비아의 독일계 농가에서 태어나 빈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사회민주당에 들어가 1907년 제국의회 의원이 되었다. 민족 문제에서 「개인적 자치」를 내세운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레닌과 스탈린의 비판을 받았다. 1918년 독일-오스트리아 공화국의 첫 총리가 되어 대연정을 이끌며 8시간 노동제 등을 도입했고, 생제르맹 조약으로 독일과의 합병 금지와 영토 상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1938년 합병을 지지했다. 1945년 4월 소련군의 지시로 임시정부를 세웠고 그해 대통령이 되었다. 1950년 빈에서 죽었다.
의회를 정지시키고 조국전선 일당 독재를 세웠으며 1934년 나치 쿠데타 중 암살된 오스트리아 총리
니더외스터라이히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전선에서 37개월 복무했다. 니더외스터라이히 농민연맹에서 일하며 농업 정책 전문가로 이름을 얻었고, 1931년 농림장관, 1932년 5월 연방 총리가 되었다. 1933년 3월 의회를 정지시키고 긴급명령으로 통치했으며, 공산당과 나치당에 이어 사회민주당까지 금지하고 이탈리아 파시즘을 본뜬 조국전선 일당 독재를 세웠다. 1934년 2월 내전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짓밟았고, 3월 무솔리니·굄뵈시와 로마 의정서에 서명했다. 1934년 7월 25일 나치 쿠데타 시도 중 총리 관저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