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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선전 · 헝가리 인물 2명

조건 모두 해제

로숀치 게저

Losonczy Géza
이념·선전 헝가리 헝가리 헝가리인 1917–1957 ○ 옥사

개혁 공산주의 언론인

1956년 11월 4일, 소련군이 공격하자 그는 가족과 함께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로숀치 게저는 헝가리 공산주의 운동에서 출발해 당국의 억압과 교조주의를 비판한 언론인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너지 임레의 개혁파와 함께 다당제와 민중운동의 문제를 둘러싼 격변에 개입했고, 1956년 혁명 정부에서 국가장관으로 활동했다. 소련의 개입 뒤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리며 단식하다가 감옥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죽음은 너지 임레 집단에 대한 국가 탄압의 일부였다.

상세 이력 보기
  • 1935–1936학생 잡지 「토바브」 편집
  • 1939–1941헝가리 공산당 가입 및 네프서바 기자
  • 1945–1949「서버드 네프」 국내정치부장
  • 1949–1951레버이 요제프 문화교육부 차관급 보좌관
  • 1951–1954정치 재판으로 수감
  • 1954–1956「머저르 넴제트」 기자, 페퇴피 서클 조직자
  • 1956-10–1956-11너지 임레 제2·제3 정부 국가장관
  • 1957너지 임레 재판 피고 예정, 수감 중 단식 사망

포즈거이 임레

Pozsgay Imre
이념·선전 헝가리 헝가리 헝가리 1933–2016 ○ 사망

1956년을 '민중봉기'라 부르고 자기 당의 정통을 무너뜨린 개혁 정치국원

서베를린에서 동독의 '반파시스트 방어벽'은 '치욕'이라며 철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헝가리 사회주의노동자당(MSZMP) 정치국원이자 개혁파의 이념적 후견자였다. 1989년 1월 28일 라디오에서 1956년 혁명을 '민중봉기'라 규정해 당의 정통성을 스스로 무너뜨렸고, 5월 서베를린에서는 베를린 장벽을 '치욕'이라 부르며 동독 체제를 비판했다. 오토 폰 합스부르크와 함께 범유럽 피크닉을 후원해 철의 장막에 첫 균열을 냈고, 이후 헝가리 사회당 부의장을 거쳐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50헝가리 노동인민당 입당
  • 1957–1969바치-키슈쿤주 당위 선전선동부장·서기
  • 1976–1980문화부 장관
  • 1980–1982교육부 장관
  • 1982–1988애국인민전선 사무총장
  • 1988–1989MSZMP 정치국원 겸 국가장관
  • 1989.011956년 혁명을 '민중봉기'로 규정
  • 1990헝가리 사회당 부의장·대통령 후보; 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