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트네르 레죄
Kasztner Rezső아이히만과 협상해 유대인 1,684명을 「커스트네르 열차」로 스위스에 보낸 시온주의자 변호사
콜로즈바르(클루지나포카)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태어나 15세에 시온주의자가 되어 유대계 신문 『우이 켈레트』 기자와 변호사로 일했다. 1941년 부다페스트로 옮겨 난민을 국경 너머로 들여오던 부다페스트 구호구조위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1944년 여름 아이히만과 협상해 돈과 금, 다이아몬드를 대가로 유대인 1,684명을 아우슈비츠 대신 스위스로 보내는 「커스트네르 열차」를 성사시켰다. 열차는 베르겐벨젠으로 돌려졌다가 8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스위스에 닿았다. 전후 이스라엘에서 정부 대변인이 되었으나 나치 협력 고발을 둘러싼 1955년 재판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판결을 받았고, 1957년 3월 총격을 받아 숨졌다. 1958년 대법원은 혐의 두 가지를 뒤집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21시온주의 청년단 가입
- 1930년대『우이 켈레트』 기자, 변호사
- 1941부다페스트로 이주
- 1944아이히만과 협상, 커스트네르 열차
- 1952이스라엘 상공부 대변인
- 1955그루엔발트 명예훼손 재판 판결
- 1957피격,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