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활동과 국가·세력

인물이 수행한 활동과 그 활동에서의 소속을 함께 찾습니다.

국가·세력·조직

나라별 전체 소속 186개에서 고르기

가나

국제조직

그레나다

그루지야

그리스

기니비사우

남아프리카 공화국

네덜란드

대한민국

독일

동독

라오스

라트비아

러시아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마다가스카르

모잠비크

몰도바

몽골

미국

베냉

베트남

벨기에

벨라루스

부르키나파소

불가리아

브라질

소련

소말리아

스위스

스페인

아제르바이잔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앙골라

에스토니아

에티오피아

영국

예멘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유고슬라비아

이스라엘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

체코

체코슬로바키아

칠레

카자흐스탄

캄보디아

콩고-브라자빌

콩고민주공화국

쿠바

키르기스스탄

탄자니아

투르크메니스탄

튀르키예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헝가리

스위스 국가기관 인물 1명

조건 모두 해제

카를 루츠

Carl Lutz
스위스 국가기관 스위스 스위스 1895–1975 ○ 베른에서 사망

부다페스트 주재 스위스 부영사로 보호증서와 보호 가옥으로 유대인 수만 명을 구한 외교관

스위스 발첸하우젠에서 태어나 1913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1920년부터 스위스 영사 업무를 맡아 미국과 야파에서 일했다. 1942년 부다페스트 주재 스위스 부영사가 되어 유대인 기구와 협력했다. 1944년 헝가리 정부와 나치와 협상해 팔레스타인 이주용 보호증서 8,000장을 허가받았는데, 이를 개인이 아닌 가족 단위로 적용하고 모두 1~8,000번 번호를 단 증서를 수만 장 더 발급했다. 부다페스트 곳곳의 가옥 약 76채를 스위스 공사관 별관으로 선포했고, 그중 「유리집」에는 약 3,000명이 피신했다. 6만 2,000명 넘게 구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전후 권한을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았다가 1958년에야 복권되었고, 1965년 야드 바셈의 「열방의 의인」이 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3미국 이주
  • 1920워싱턴 스위스 공사관 근무 시작
  • 1935–1942야파 주재 스위스 부영사
  • 1942–1945부다페스트 주재 스위스 부영사
  • 1952–1961브레겐츠 주재 스위스 총영사
  • 1965열방의 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