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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왕실 · 유고슬라비아 인물 2명

조건 모두 해제

파블레 카라조르제비치

Pavle Karađorđević
군주·왕실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러시아계 1893–1976 → 사망

전쟁을 피하려다 추축국의 압박에 밀린 섭정

1941년 3월 25일 삼국동맹 가입 이틀 뒤 군부 쿠데타로 섭정직에서 쫓겨났다.

파블레 카라조르제비치는 알렉산다르 1세 암살 뒤 미성년 페타르 2세를 대신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통치한 섭정공이었다. 그는 중앙집권 체제의 유산을 완화하고 크로아티아 민족운동과 타협하려 했으며, 1939년 츠베트코비치-마체크 협정으로 크로아티아 바노비나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유럽 전쟁이 확대되고 영국과 프랑스의 실질적 보장이 약해지자 중립을 지키려던 외교는 독일 압력에 대한 양보로 기울었고, 1941년 삼국동맹 가입은 군부 쿠데타와 그의 실각을 불렀다. 그는 전후 망명 생활을 하다 1976년 사망했고, 2011년 세르비아 법원에서 복권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3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 1912–1921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수학, 제1차 세계대전 복무
  • 1929베오그라드 현대미술관 설립과 후원
  • 1934–1939유고슬라비아 섭정평의회 의장
  • 1939츠베트코비치-마체크 협정과 크로아티아 바노비나 추진
  • 1941삼국동맹 가입 뒤 군부 쿠데타로 실각

페타르 2세

Petar II Karađorđević
군주·왕실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 (모계 루마니아 왕가) 1923–1970 ○ 사망

망명 속에서 왕정의 정통성을 지킨 마지막 국왕

1941년 3월 27일, 두산 시모비치가 그에게 말한 순간이었다. "폐하, 이제부터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페타르 2세는 아버지 알렉산다르 1세의 암살 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다. 1941년 3월 27일 쿠데타로 섭정 체제가 무너지고 즉시 성년으로 선포되었지만, 곧 추축국 침공으로 런던의 망명정부를 이끌어야 했다. 그의 왕권은 점령에 맞선 국가적 연속성을 상징했으나, 망명정부의 분열과 파르티잔의 군사적·정치적 승리 속에서 실제 통치 기반을 잃었다. 1945년 왕정이 폐지된 뒤에도 귀환하지 못한 그는 전후 유고슬라비아의 정통성을 둘러싼 미해결 긴장을 남겼다.

상세 이력 보기
  • 1934국왕 즉위, 섭정 아래
  • 1934–1941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명목상 국왕
  • 1941.03.27쿠데타 뒤 성년 국왕으로 선포
  • 1941.04–06추축국 침공 뒤 정부와 함께 망명
  • 1941–1945런던 유고슬라비아 왕정 망명정부의 국가원수
  • 1944.09유고슬라비아 군인들에게 티토 합류를 호소
  • 1945왕정 폐지로 폐위
  • 1945–1970미국에서 망명 생활
  • 1970미국 덴버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