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여름 우스타샤 지도자 크바테르니크가 카진으로 찾아와 협력을 권하자, 포즈데라츠는 그와의 면담 자체를 단호히 거부했다.
누리야 포즈데라츠는 카진 지역의 교사 출신 보스니아 무슬림 정치가로, 우스타샤 정권의 협력 요구를 거부하고 세르비아인과 유대인 박해에 맞섰다. 아내 데블레타와 함께 수십 명의 유대인 피란민을 구했고, 1942년 아브노이 부의장으로 선출되며 민족적으로 다원적인 해방전선의 대표 인물이 되었다.
코민포름에서 서유럽 공산당을 공격하고, 훗날 『새 계급』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해부한 유고슬라비아 반체제 인사
나는 공산주의의 전 길을 걸었다: 젊은 혁명가에서 독실한 스탈린주의자로, 그리고 완전한 환멸에 이르기까지.
몬테네그로 출신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지도자로, 파르티잔 투쟁과 전후 국가 건설에서 티토의 가장 가까운 동지 중 하나였다. 1947년 코민포름 창설 회의에서 카르델과 함께 프랑스·이탈리아 공산당의 '의회주의적 기회주의'를 신랄히 비판했으며, 그의 회고록은 이 회의의 내부 동학에 관한 핵심 사료로 남아 있다. 당내 민주화와 관료 특권층 비판을 제기하다 1954년 모든 직위에서 축출되었고, 수감 중 밀반출한 『새 계급』에서 공산당 관료가 착취적 지배계급으로 변했다고 주장해 국제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30년 넘게 투옥과 감시 속에서도 저술을 이어간 동유럽 최초의 저명한 공산권 반체제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