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4월, 슘스키는 스탈린과 두 시간 독대하며 카가노비치 교체와 우크라이나화 가속을 요구했다. 스탈린은 정치국 서한으로 '슘스키즘'을 민족주의적 일탈로 규탄, 우크라이나 민족공산주의 탄압의 분수령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민족공산주의의 상징적 인물로, 모스크바 중앙집권에 맞서 공화국의 자율성을 주장한 '슘스키즘'의 원형. 보로트비스트에서 CP(b)U 정치국원으로 합류한 그는 교육인민위원(1924~1927) 시절 도시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탈러시아화, 우크라이나인 간부 등용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1926년 스탈린과 정면 충돌하여 '민족주의적 일탈'로 규탄받고 모든 직위에서 해임되었으며, 이후 그의 이름은 우크라이나 자율성 탄압의 대명사가 되었다. 1933년 체포되어 솔로프키 수용소와 크라스노야르스크 유형을 거쳐 1946년 석방 직후 NKVD에 암살, 1958년 복권.
상세 이력 보기
1908우크라이나 사회민주당 스필카(Spilka) 입당
1917–1919우크라이나 사회혁명당(UP SR) 좌파 지도부, 이후 보로트비스트 중앙위원
1919우크라이나 SSR 교육인민위원 (첫 임기)
1920보로트비스트와 CP(b)U 통합 주도; CP(b)U 정치국·조직국 위원, 코민테른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