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코브냐 군도
인물이오시프 스탈린 용어내무인민위원부(NKVD), 트로이카, 대숙청, 제1범주 / 제2범주 사건대숙청
키예프에서 멀지 않은 비코브냐 숲에 묻힌 사람들은 이곳에 지난해 5월 세운 기념비의 비문이 말하는 것과 달리 결코 파시스트 점령군의 희생자가 아니라 스탈린 탄압의 희생자라는, 우리 신문이 내놓은 견해(1988년 11월 30일 자 『리테라투르나야 가제타』)가 완전히 사실로 확인되었다.
우리 보도를 근거로 형사 사건을 연 키예프시 검찰청 수사단이 내린 결론이다. 수사단은 주인 개개인의 [판독 불가](장서표, 이름을 새긴 빗 따위)가 남은 유품을 단서로, 이곳에 유해가 잠든 무고한 탄압 희생자 14명의 이름을 이미 밝혀냈다. 그 가운데는 휴양지 관리국 건설 기술자로 1937년 12월 10일 총살된 니콜라이 겐리호비치 이바놉스키, 1938년 5월 10일 총살된 발렌티나 마카로브나 프로코포비치, 그리고 벨라루스의 이름난 작가 얀카 브릴의 친형제로 (키예프주) 루댠스키 사탕무 국영농장의 분장(分場)장이던 블라디미르 안토노비치 브릴이 있다. 매장지에서는 “브릴 V. A. 1937년 9월 16일”이라고 새긴 물부리가 나왔다. 그는 1938년 9월 28일 “트로이카”의 판결을 받고 같은 해 10월 5일 총살되었다.
1937~1938년에 총살된 11명은 이름을 새긴 회중시계 뚜껑의 각인으로 신원을 밝힐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재무인민위원부에서 일하던 안톤 옐리세예비치 트바르돕스키레빈, 3등 병참관 표도르 야코블레비치 트칼니코프, 민경 직원 에마누일 마르코비치 다비도프바르가와 야코프 파블로비치 셸리긴, NKVD 직원 아브람 라자레비치 미첼마헤르,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야노벤코, 니콜라이 스테파노비치 코스탸노이 등이다. 이들은 모두 판에 박은 듯 반혁명 활동, 파괴·테러 활동, 간첩 행위 따위의 혐의를 받았다.
간접적인 방법으로 비코브냐 숲에 묻힌 사람 수천 명의 이름을 더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수사단 사람들은 본다. 수사단은 총살된 사람들을 4헥타르 넓이의 터 안 공동 구덩이에 묻던 그 초록색 담장 안쪽이 NKVD 소관이었고, 시신을 차에 실어 이곳으로 날라 왔다는 것을 입증했다. 사람들은 그 시절 NKVD가 들어 있던 지금의 10월 문화궁전 지하실에서 살해되었다. 그곳에서 시신을 차에 싣고 방수포로 덮는 것을 본 증인들이 있다(덧붙이자면 비코브냐 숲 매장 사건으로 신문한 증인은 모두 200명 가량이다).
이렇게 해서 비코브냐 군도에 얽힌 비밀은 모두 드러날 듯하다. 그러나 역사적·법적 정의를 되살리는 이 더없이 큰 경사가 또다시 말을 흐리는 바람에 빛이 바랠 수도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비코브냐 매장지의 발굴까지, 그 발굴로 드러날 수 있는 경위를 낱낱이 밝히는 데까지 가지 않도록 수사를 접으라고 권하는 윗선의 목소리가 벌써 들려온다. 2월 23일 키예프시 드네프르 구 당위원회는 비코브냐 기념비에 “파시즘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화환을 놓았다…
부끄러운 비문을 단 기념비가 치워지고, 그 밑에 다시 묻힌 탄압 희생자들의 유해를 다른 무덤들의 발굴과 함께 다시 한 번 꼼꼼히 조사하리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수사가 비코브냐 한 곳에 그치지 않고, 마찬가지로 스탈린 탄압의 희생자들이 묻힌 키예프의 다른 장소들(이를테면 루키야노프카 묘지)도 다루리라고 믿고 싶다.
세르게이 키셀료프,
『리테라투르나야 가제타』 우크라이나 주재 기자
키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