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국 회의 작업 기록 — 음주와 알코올 중독 극복 대책에 관하여 (1985년 4월 4일, 발췌 사본)
인물미하일 고르바초프, 미하일 솔로멘체프, 빅토르 데멘체프, 레프 보로닌, 헤이다르 알리예프, 비탈리 보로트니코프, 빅토르 그리신, 안드레이 그로미코, 그리고리 로마노프, 표트르 데미체프, 블라디미르 돌기흐, 빅토르 체브리코프, 미하일 지먀닌, 이반 카피토노프, 콘스탄틴 루사코프, 니콜라이 리시코프, 아르비트 펠셰, 이반 보듈,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레프 톨스토이,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 니키타 흐루쇼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콘스탄틴 체르넨코,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용어반알코올 캠페인, 소련 공산당 정치국, 사모곤, 알코올 중독 나르콜로기 서비스,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고스플란, 고엘로, 콤소몰, 신경제정책(네프), 집단화, 쿨라크, 제1인터내셔널, 개인숭배, 집단지도 사건반알코올 캠페인
극비
유일본
(작업 기록)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
1985년 4월 4일
의장: 고르바초프 M. S. 동지.
참석: 알리예프 G. A., 보로트니코프 V. I., 그리신 V. V., 그로미코 A. A., 로마노프 G. V., 솔로멘체프 M. S., 데미체프 P. N., 돌기흐 V. I., 체브리코프 V. M., 지먀닌 M. V., 카피토노프 I. V., 루사코프 K. V., 리시코프 N. I. 동지.
1.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4월(1985년) 전원회의의 의사일정과 진행 절차에 관하여
고르바초프. 이 문제에 관한 제안은 동지들 모두 받으셨을 겁니다. 앞서 우리가 나눈 의견 교환에 따라 마련한 것입니다. 메모에는 전원회의를 소집하고 여는 날짜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 전원회의에서 소련 공산당 제27차 대회에 올릴 안건을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대회에 올리는 중앙위원회 보고의 문구를 조금 다듬었으면 합니다. 대회에 올리는 것이 국내·대외 정책 분야에서 당의 「당면」 과제가 아니라 그냥 당의 과제라고 적자는 것입니다. 대회에서 소련 공산당 강령 신판을 심의할 것이고, 그러니 당면 과제만이 아니라 장기 과제도 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로미코. 옳습니다.
그리신. 당 강령 신판에 대해서는 대회에서 따로 보고를 할 예정입니까?
고르바초프. 아닙니다. 서기국은 당 강령 신판과 소련 공산당 규약 개정에 관련된 문제를 중앙위원회 결산 보고에서 함께 다루자고 제안합니다.
로마노프. 옳습니다.
고르바초프. 아울러 제27차 대회 대의원을 제26차 대회 때와 같은 수, 곧 5002명으로 뽑자는 제안도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면 대표 비율이 조금 커집니다. 당원 3670명마다 대회 대의원 한 명을 뽑게 됩니다.
결산·선거 운동 일정도 정해야 합니다. 초급 당 조직 총회는 9–11월, 지구·시·관구 당 협의회는 11–12월, 주·지방 당 협의회는 12–1월, 연방 공화국 공산당 대회는 1986년 1월에서 2월 초에 열자는 안입니다. 이 일정은 대회 준비 기간에 나라 안에서 벌일 경제 작업 일정과 대체로 맞아떨어집니다.
그로미코. 좋은 일정입니다.
알리예프. 이 제안을 승인해도 되겠습니다.
고르바초프. 이의 없습니까?
정치국원들. 없습니다.
결정이 채택된다.
2. 1985년 노동절을 맞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구호 초안에 관하여
고르바초프. 중앙위원회 서기국이 노동절 구호 초안을 꼼꼼히 검토해 몇 군데를 고치고 승인했습니다.
그리신. 저는 문안에 대해 자구 수정 의견이 조금 있습니다.
고르바초프. 그것은 검토해서 반영해야지요. 구호 초안에 다른 수정 의견이 있습니까?
정치국원들. 없습니다.
고르바초프. 그러면 승인해도 되겠습니다.
결정이 채택된다.
3. 1985년 노동절 경축에 즈음한 모스크바 근로자 대표 시위와 도시의 미술·정치 장식에 관하여
고르바초프. 모스크바 당 위원회가 노동절 시위와 모스크바 장식에 관한 제안을 올렸습니다. 제가 보기에 잘 짜인 제안이고, 지난 몇 해의 경험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리신. 모스크바에서는 4월 말까지 시위 준비가 다 끝날 것입니다.
고르바초프. 그러면 모스크바 시 당 위원회의 제안에 동의해도 되겠군요.
정치국원들. 동의해도 됩니다.
결정이 채택된다.
4. 음주와 알코올 중독 극복 대책에 관하여
고르바초프. 기억하시겠지만, 2년도 더 전에 정치국은 음주와 알코올 중독 퇴치 문제를 다룰 위원회를 A. Ya. 펠셰 위원장 아래 꾸렸습니다. 그 뒤 이 위원회는 M. S. 솔로멘체프가 이끌었습니다. 위원회가 제안을 내놓았고, 그 제안은 지방에서 토의를 거친 뒤 중앙위원회 서기국에서 검토되었습니다. 이제 그 제안을 정치국 토의에 올립니다. 솔로멘체프 동지에게 발언권을 드립시다.
솔로멘체프. 중앙위원회 서기국 회의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 소련 각료회의 결정,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의와 러시아 공화국 최고회의 간부회의 포고령 초안이 대체로 승인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중앙위원회 위원회에는 이 문서 초안들을 다듬으라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서기국 회의에서 나온 제안과 권고는 저희가 보기에 다 반영했습니다.
— 문서의 사상·정치적 수준을 높였습니다.
— 무르익은 이 문제를 풀려면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 보드카, 리큐어·보드카류, 강화 포도주와 강화 과실주의 생산량을 해마다 줄이는 과제를 구체화했습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주류 물량에 외국에서 사들이는 주류를 더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1983년에 포도주·보드카류를 5억 7940만 루블어치, 1984년에는 6억 7290만 루블어치 수입했습니다.
수요를 줄이기 위해 포도주·보드카류의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습니다.
주류를 팔 수 있는 연령 하한을 올리자는 제안을 넣었습니다.
21세 미만에게 술을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면 신체가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젊은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면 입대 전 청년과 젊은 군인에게 술을 파는 일이 없어지고, 따라서 군 기강을 높이는 데에도 이바지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이 금지가 어디서나 지켜지지는 않더라도, 그 도덕적·심리적 영향은 틀림없이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날 것이고 강한 억지 요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포고령 초안에 넣은 수정과 보완은 음주와 알코올 중독에 대한 투쟁을 강화하는 데 맞춰져 있습니다.
작업장 음주에 행정 책임을 지우고, 공공장소 음주, 미성년자를 음주에 끌어들이는 행위, 주류 판매 규칙 위반, 포도주·보드카류의 소규모 투기, 밀주 제조, 음주 운전에 대한 행정·형사 책임을 무겁게 하려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 강제 치료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추가 조건을 마련했습니다.
동지 재판소와 지방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산하 음주 퇴치 위원회의 권한을 넓힙니다.
기업·조직·기관 안에 음주 퇴치 위원회를 두도록 했습니다.
음주자에 대한 법률은 전체적으로 더 엄해집니다. 특히 벌금 제재가 강화됩니다.
다음과 같은 추가 조치도 마련했습니다.
— 기업·기관·조직에 음주 퇴치 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 위원회는 반알코올 법령을 어긴 사람에게 사회적 제재로 50루블까지 벌금을 매길 수 있습니다.
— 동지 재판소는 위반자에게 50루블까지(지금은 10루블까지) 벌금을 매길 수 있게 됩니다.
— 기업·기관·조직의 경영진은 작업장 음주에 대해 위반자가 행정 처벌을 받았는지와 상관없이 징계 책임을 함께 물을 수 있고, 노동조합 위원회와 협의하여 상여금과 연말 성과 보수, 휴양소 우대 이용권을 박탈하고 주택 배정 순번을 뒤로 미룰 수 있게 됩니다.
— 판매 목적 없는 첫 밀주 제조와 밀주 구입에 대해 경찰(민경)이 벌금을 매길 수 있게 합니다. 지금은 지방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산하 행정위원회만 이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노동조합·콤소몰 조직과 노동 집단, 소련 인민에게 보내는 중앙위원회 서한 초안도 마련했습니다.
공산당원, 콤소몰원, 모든 시민과 솔직하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음주가 퍼져서 생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두가 깨닫고, 사회가 이 악과 싸우는 데 나서게 될 것입니다.
이 서한은 연방 공화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지방·주 당 위원회, 연방 공화국 각료회의, 지방·주 인민대표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전연방 레닌 공산주의 청년동맹, 콤소몰 중앙위원회로 보내서, 당·노동조합·콤소몰 총회와 근로자 총회에서 토의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출된 문서 초안들이 광범한 대중과 당·소비에트 기관, 사회단체의 의견과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초안은 모든 연방 공화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29개 지방·주 당 위원회, 170개 노동 집단, 곧 미리 토의한 모든 곳에서 찬성과 지지를 얻었습니다.
토의 참가자들은 음주와 알코올 중독에 대한 투쟁을 강화하고 이를 최대한 짧은 기간, 곧 앞으로 5–10년 안에 뿌리 뽑기 위해 지체 없이 단호한 조치를 취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중앙위원회와 중앙위원회 위원회, 신문·잡지 편집부, 라디오·텔레비전으로 수천 통의 편지가 오고 있습니다. 수십, 수백 명이 서명한 집단 편지도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온 한 편지에는 1200명 넘게,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온 편지에는 2700명 넘게 서명했습니다.
편지를 쓴 사람들은 음주가 퍼지는 데, 그리고 알코올이 우리 사회와 그 신체적·사회적 건강에 끼치는 막대한 경제적·도덕적·사회정치적 피해에 깊은 우려를 나타냅니다.
「술의 유행병이 우리 넓은 나라를 뒤덮었고, 이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보드카 때문에 젊은이들이 썩어 간다」, 「적들은 우리를 맨손으로 잡으려 한다」, 「무서운 독이 든 병들을 진열대에서 치워 달라」, 「조치를 취해 달라, 그러면 우리는 아이들처럼 모두의 행복을 기뻐할 것이다」 — 이런 것이 편지에서 가장 특징적인 구절입니다.
나라 여러 지역에서 여러 계층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학 조사도 음주가 사람들의 특별한 걱정거리임을 보여 줍니다.
「무엇이 가장 걱정됩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9–74퍼센트가 「음주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주택·생활·식료품을 포함한 다른 어떤 문제보다 바로 이 문제를 걱정했고, 이보다 앞선 것은 평화를 지키는 문제뿐이었습니다.
음주가 늘면서 막대한 물적 손실이 생깁니다. 음주로 인한 손실은 가장 낮게 잡아도 한 해 300억 루블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 손실이 500–600억 루블을 넘는다고 봅니다.
고르바초프. 그건 경제적 손실만이지요. 다른 손실은요?
그로미코. 이를테면 도덕적, 심리적 손실 말입니다.
솔로멘체프. 지난 1984년의 몇 가지 자료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거리에서 수거된 주취자가 930만 명입니다. 반알코올 법령 위반으로 행정 처벌을 받은 사람은 1200만 명으로, 1983년보다 많습니다.
음주에서 비롯한 범죄도 한 해 사이에 전체적으로 늘었습니다. 그 가운데 강간이 1만 3천 건 남짓, 강도가 약 2만 9천 건으로, 1983년보다 크게 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세력이 불안해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고 근거도 있습니다. 민족의 생물학적 기반뿐 아니라 유전적 기반까지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술 마시는 사람의 3분의 2가 사회적으로 소극적이어서 사회생활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도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이 문제는 너무나 첨예한 사회정치적 성격을 띠게 되었기 때문에, 조직·경제·이념·행정 면에서 근본적이고 긴급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물론 이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관되고 끈질기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알코올과 음주에 대한 투쟁을 참으로 대중적이고 전 인민적인 것으로 만든다면 어려움은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절주 클럽과 절주 협회를 만들려는 발의를 지지하고, 기관지(잡지)를 갖춘 전연방 자원 절주 투쟁 협회를 만들자는 제안을 올립니다.
의학·생물학 문제를 다룰 전연방 과학연구센터를 만들자는 제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센터는 머지않아 이 문제의 모든 측면 — 사회·경제·법률 등 — 을 아우르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단 시작해서 이 센터를 세우는 일입니다. 세르프스키 법정신의학 연구소가 그럴 만한 실제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연구소를 바탕으로 센터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원칙적인 이견과 반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지 않습니다.
소련 각료회의 부의장 I. I. 보듈 동지가 두 가지 제안을 냈습니다. 첫째, 제안된 소련 각료회의 산하 음주 퇴치 위원회 대신 중앙 사회정치 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는 또 주류 생산 감축 과제를 물량 지표가 아니라 백분율로, 곧 전년도 실제 판매량보다 얼마간 줄이는 식으로 정하자고 제안합니다.
셰바르드나제 E. A. 동지가 한 가지 제안을 냈습니다. 집에서 빚는 술에 차등을 두어, 전통적으로 포도주를 빚어 온 지역에서는 차차와 아라크(밀주의 일종)를 (판매 목적이 아니라면) 빚는 것을 전면 금지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위원회는 이 제안들을 받아들일 충분한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1. 중앙에는 음주 퇴치에서 모든 국가·경제 기관의 노력을 하나로 묶고 조정할 국가기관이 없습니다.
2. 보드카와 그 밖의 주류의 생산 감축 결정은 저희가 보기에 구체적이어야 하고, 해마다 줄이는 생산량도 충분히 커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고, 음주와의 투쟁이 탄탄한 물질적 토대 위에 서 있으며 음주의 근원인 알코올 자체가 뿌리 뽑히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차차에 대해서입니다. 차차는 집에서 빚은 보드카, 본질적으로 밀주입니다. 그러니 지역 관습을 아무리 존중한다 해도 그 제조를 공식 허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빈니차주나 쿠르스크주에서는 왜 밀주를 금지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토의에 올린 자료는 거의 2년 반에 걸친 큰 집단 작업의 결과입니다. 중앙과 지방의 당·소비에트 기관 일꾼, 전문가, 학자 수십, 수백 명이 준비에 참여했습니다.
위원회는 광범한 사회 여론과 근로자들의 제안을 고려했습니다.
기록보관소와 먼 역사까지 들여다보고, 책과 잡지와 연구서를 산더미처럼 뒤적이고, 학자·역사가·사회학자·경제학자·의사·법률가 여럿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류의 가장 뛰어난 지성들은 경고해 왔고 지금도 경고합니다. 알코올은 해롭다, 알코올은 질병이나 굶주림, 전염병, 전쟁보다 더 강하고 위험한 적이라고.
인민도 알코올을 똑같이 봅니다. 인민의 지혜로운 속담과 격언은 음주를 꾸짖고, 음주가 가져오는 고통과 슬픔을 전합니다.
어떤 이들이 주장하듯이 우리 인민은 아득한 옛날부터 술을 마셔 왔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루시에서 보드카를 팔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말에 이르러서입니다. 그 전에는 큰 명절에만 브라가, 꿀술, 맥주 같은 약한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음주가 퍼지면서 그에 대한 저항도 커졌습니다.
지난 세기 중엽에는 러시아 곳곳(특히 중부 지대와 발트 지역)에 음주에 반대하고 절주를 지지하는 강력한 물결이 휩쓸었습니다.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가장 훌륭한 대표자들, 작가·의사·법률가가 이 대중적 민중 운동을 지지하며 공개적으로 나선 것도 그 무렵입니다.
L. N. 톨스토이는 음주에 반대하는 글을 여러 편 썼습니다. 그 글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정신을 차릴 때다!」라는 그의 뜨겁고 열정적이며 지혜로운 호소였습니다.
이렇게 높아 가는 반알코올 물결 속에서, 진보적 사회 세력과 볼셰비키의 압력에 밀려 차르 정부는 「금주법」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드카 판매는 전국에서 금지되었습니다.
1919년 12월 러시아 공화국 인민위원회의는 「러시아 공화국 영토 안에서 알코올, 독주, 음료가 아닌 알코올 함유 물질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것에 관하여」라는 결정을 채택했습니다.
이렇게 금주법은 계속 효력을 가졌습니다. 1924년 가을까지 그러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V. I. 레닌은 보드카처럼 사람을 마비시키는 것에 기대는 데 단호히 반대했습니다. 장사에 이득이 되더라도 말입니다. 그는 제10차 당 협의회에서 「보드카는 우리를 공산주의로 앞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로 뒷걸음치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확고한 입장은 당의 두 번째 강령(1919년)과 고엘로 계획에 반영되었습니다.
나라의 전기화 계획에는 이런 조항이 있었습니다. 「건강한 주민에게 절대적으로 해로운 알코올의 소비 금지는 앞으로도 실행되어야 한다.」
보드카 전매는 1924–25년에 임시 조치로 도입되었습니다. 보드카 생산·판매 금지가 풀린 지 2년 뒤, 스탈린은 1927년 외국 노동자 대표단 앞에서 「지금 우리의 정책은 보드카 생산을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주류 생산과 소비는 늘었습니다. 1인당 순수 알코올 소비량(리터)은 1913년 3.88, 1925년 0.88, 1928년 1.58, 1940년 2.14, 1950년 1.88, 1955년 3.26이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는 주류 생산과 소비가 크게 늘었습니다. 1960년 3.88, 1965년 4.97, 1970년 6.85, 1972년 7.15였습니다.
1972년에 음주와의 투쟁을 강화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결정이 채택되었고, 모든 초급 당 조직에 중앙위원회 서한이 보내졌습니다.
이 두 중요 문서의 취지는 「음주를 뿌리 뽑기 위한 정력적이고 가장 단호한 투쟁을 벌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무렵(1972년 5월 16일) 채택된 소련 각료회의 결정은 「1972–1975년에 보드카와 독한 보드카류의 생산을 줄이는 조치를 시행할 것」을 규정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때 계획한 것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1972년 뒤 소비 곡선은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1975년 8.19, 1980년 8.68, 1982년 8.3, 1984년 8.3입니다.
물론 이 자료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밀주, 공업용 알코올, 그 밖의 알코올 함유 물질의 소비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인당 순수 알코올 8.3리터는 전국 평균입니다. 러시아 공화국은 더 높아 10.3리터이고, 연해주는 12리터, 캄차카는 14.5리터, 사할린은 거의 17리터입니다.
우리나라 주류 소비의 증가를 역사적으로 그려 보면, 1960년에 러시아 300년 음주 역사에서 가장 높았던 1913년 수준에 이른 뒤, 지난 25년, 사반세기 동안 그 수준을 2.2배, 실제로는(밀주와 공업용 알코올 등을 넣으면) 세 배, 어쩌면 그 이상 넘어섰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음주가 어느 규모에 이르렀는지 더 뚜렷이 보여 드리기 위해 비교 자료를 들겠습니다.
여러 학자들에 따르면 1913년 러시아에서는 음주가 꽤 퍼져 있었는데도 남자의 절반가량이 술을 마시지 않았고, 여자는 열에 아홉, 징집 연령의 청년도 열에 아홉이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학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성인 인구의 99퍼센트 넘게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술을 마십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절주가)은 1퍼센트에도 못 미칩니다.
우리는 이른바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경계선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뒤에는 우리의 미래, 인민의 미래, 우리 건설 계획의 미래가 있습니다.
알코올에 맞서, 음주에 맞서 공세를, 오직 공세를! 단호하고 계획적이며 목표가 뚜렷한 공세를.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유례없이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합니다. 보드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서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 짐을 단호히 내던져야 합니다.
소련 인민의 상당수,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술에서 깨어나 신체적·도덕적으로 건강해지면,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우리의 힘은 몇 배로 커질 것입니다.
사회주의에는 이 문제를 풀고, 새 사회의 힘과 매력을 온 세계에 보여 주며, 사회주의와 소비에트 생활양식이 지닌 높은 도덕적 가치가 실재함을 눈앞에 확인시켜 줄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고르바초프. 솔로멘체프 동지에게 질문 있습니까? 질문 없습니까? 발언하실 분?
데멘체프 V. V.(소련 재무부 제1차관). M. S. 솔로멘체프 동지가 음주 퇴치를 위해 제안하는 조치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이 조치들은 정치적·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몇 해 동안 나라 안의 음주와 알코올 중독 문제는 심각해졌습니다. 주류 소비는 상당한 경제적·도덕적 손실을 가져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생활에서 용납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음주와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특별히 중요한 과제이며, 당이 내놓은 발전된 사회주의 완성 강령을 실현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와 함께 몇 가지 문제는 신중히 검토해서 결정이 모든 면에서 따져 보고 현실적인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특히 주류 생산 감축의 규모와 기한 문제가 그렇습니다. 1986년부터 보드카 생산을 해마다 3천만 데칼리트르, 강화 포도주를 2천만 데칼리트르, 과실주를 4500만 데칼리트르씩 줄이고, 과실주 생산은 1986–1987년에 완전히 그만두며, 보드카 생산을 1985년 2억 8천만 데칼리트르에서 1990년 1억 데칼리트르로, 곧 2.8분의 1로 줄이자는 안입니다.
이 조치를 실행하면 소매 상품 유통의 재원이 1986년에 50억 루블, 1987년에 100억 루블, 1988년에 135억 루블, 1989년에 170억 루블, 1990년에 180–200억 루블 줄어듭니다. 동시에 소련 국가예산 수입이 1986년에 40억 루블, 1987년에 75억 루블, 1988년에 110억 루블, 1989년에 140억 루블, 1990년에 150–160억 루블 줄어듭니다.
소련 재무부는 1986–1987년에 걸쳐 과실주를 생산과 대주민 판매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보드카와 강화 포도주 생산을 점차 줄인다는 문제 설정이 옳다고 봅니다.
문제는 주민 소득의 증가와 상품 공급 사이의 균형, 그리고 국가의 수입과 지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입니다.
그런데 제12차 5개년 계획과 2000년까지의 기본 방향 초안을 작업해 보니, 상품 재원과 빠져나가는 예산 수입을 메울 원천을 찾아내도 균형을 완전히 맞출 수는 없습니다. 소련 국가계획위원회 자료로도 1990년 소매 상품 유통 4050억 루블은 아직 100–150억 루블만큼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잠정 자료로 보면 주민의 화폐 소득 증가에 맞추려면 1986년 상품 유통을 160억 루블 넘게 늘려 잡아야 합니다.
이 상품 유통을 보장하려면 210억 루블 넘는 상품 재원을 추가로 찾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해마다 찾아낸 상품 공급 증가분은 140억 루블을 넘은 적이 없습니다.
잠정 계산으로는 1986년 국가의 수입과 지출도 아직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특히 지난 몇 해 동안 국가예산의 주된 수입원인 거래세가 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시장이 포화되어 텔레비전, 세탁기, 문화·생활용품, 라디오 같은 상품의 판매가 늘지 않고, 자동차 같은 상품의 대주민 판매도 예년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주된 원인은 상품의 질이 거의 나아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연방 공화국 각료회의와 각 부처는 질이 개선되고 필요한 품목을 갖춘 상품을 추가로 생산하고 주민 유료 서비스를 늘리기 위해 실효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소비재의 질을 높이고 생산을 늘리면 예산 수입을 늘리고 상품 유통 재원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 초안에 있는 대로 남은 주류 제품의 가격을 올리는 조치까지 실행하더라도, 빠져나가는 예산 수입과 상품 유통 재원을 완전히 메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고르바초프. 당신이 말한 것에 새로운 건 하나도 없소. 사람들 손에 있는 돈을 메울 물건이 없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인민에게 술을 먹이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군요. 그러니 생각을 더 짧게 보고하시오. 당신은 지금 재무부가 아니라 정치국 회의에 와 있습니다.
데멘체프. 보드카와 포도주·보드카류의 생산을 크게 줄이면 밀주 제조가 늘고 공업용 알코올을 빼돌리는 일이 생길 수 있으며, 그러면 설탕 소비가 추가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결정 초안에 있는 대로 밀주 제조에 맞서 매우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소련 재무부는 보드카, 포도주, 그 밖의 주류 생산을 줄인다는 문제 설정이 옳다고 봅니다. 다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다 따져 볼 때, 감축의 양과 규모 문제는 더 검토해야 하겠습니다.
보로닌 L. A.(소련 국가계획위원회 제1부의장). 소련 국가계획위원회는 음주와 알코올 중독 퇴치를 위해 제출된 제안을 열렬히 지지합니다. 이런 조치를 취할 때가 무르익었고, 전체적으로 필요한 것도 물론입니다.
그러면서도 결정 초안 제11항에 담긴 과제는 거듭 다시 검토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여기서는 보드카와 그 밖의 리큐어·보드카류 생산을 해마다 3천만 데칼리트르, 저급 독한 포도주를 2천만 데칼리트르, 과실주를 4500만 데칼리트르씩 줄이자고 합니다. 게다가 1986–1987년 사이에 과실주 생산을 완전히 그만두기로 되어 있습니다.[1]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주류 생산을 그렇게 줄이면 주민 손에 있는 돈과 바꿔 줄 물건이 말 그대로 하나도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제11항에 계획된 조치를 다시 한번 꼼꼼히 생각해 보고, 기한도 더 현실적으로 잡아 주셨으면 합니다.
고르바초프. 보드카와 「보르모투하」[2]를 이만큼 계속 만들어 낸다면 음주와의 투쟁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겁니다.
보로닌. 하지만 그러면 사람들이 설탕을 사재기해서 밀주를 빚을 겁니다. 예전에 그 때문에 설탕을 100만 톤 더 생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현실적인 것은 보드카 생산을 한 해에 1천만 데칼리트르쯤 줄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련 각료회의 결정 초안 제11항을 검토할 시간을 달라고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고르바초프. 알코올 중독 퇴치 문제의 핵심은 보드카 생산 감축입니다. 우리의 취한 예산을 더는 참을 수 없습니다.
부렌코프 S. P.(소련 보건장관). 정치국에 보고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나라 안에 상당히 넓은 마약·알코올 중독 진료망(나르콜로기 서비스)이 갖추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의사와 그 밖의 의료진 6천 5백 명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 진료망은 중독 환자 치료용 병상 9만 1천 개를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대기업에 딸린 진료소들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경험으로 보아 우리는 이 진료망을 적극 넓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전망입니다.
솔로멘체프. 알코올 중독자 수를 늘리는 게 무슨 전망입니까.
부렌코프. 알코올 중독 퇴치와 관련된 의학·생물학 센터를 만드는 일을 다룬 결정 조항을 다듬어서, 솔로멘체프 동지가 제안하는 대로 그 조항을 정식화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214–247쪽 결락: 볼코고노프 사본에 없음]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
1985년 4월 4일
알리예프. 이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고르바초프. 코체트코프 동지를 추천하는 데 이의 없습니까?
정치국원들. 없습니다.
코체트코프. 정치국의 큰 신뢰로 받아들이고, 이 신뢰에 보답하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고르바초프. 성공을 빕니다.
결정이 채택된다.
* * *
고르바초프. 끝으로 정치국원 여러분과 이런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3월 전원회의에서 나온, 겉치레, 거드름, 찬양, 아첨과 일관되게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나라 안에서 뜻밖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문제로 근로자들의 편지가 중앙위원회에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중 한 통을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1944년부터 소련 공산당원인 레닌그라드의 V. A. 자뱌로프가 쓴 편지입니다. 편지는 이렇습니다.
「당신은 추도 집회 연설[3]에서 겉치레와 싸워야 한다고 옳게 말씀하셨습니다. 겉치레는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사업에 해를 끼칩니다. 겉치레에는 대개 찬양과 아첨이 따르는데, 이것들이 우리 당 안에서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책임은 가장 높은 지도자들에게 있습니다. 일찍이 I. V. 스탈린이 찬양에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명예 간부회를 선출하는 일, 무슨 일이 있을 때나 높은 사람들의 생일에 중앙위원회 앞으로 축하 편지를 쓰는 일, 서기장을 칭송하는 연설, 서기장 앞으로 노동 위업 보고서를 지어 올리는 일 따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스탈린 자신이 겉치레 의식을 비웃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웃는 데서 더 나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무적인 작풍은 일에서 계산 착오를 막고 저지른 잘못을 빨리 바로잡게 도와줍니다. 겉치레는 그러지 못합니다. 1930년대 초에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과를 두고 떠들썩한 소동 속에서, 파괴된 농업을 되살리려던 레닌의 노력(네프)이 「전면적」 집단화를 바탕으로 한 「쿨라크」 계급의 청산으로 수포가 되었다는 사실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N. S. 흐루쇼프가 스탈린 숭배와의 싸움을 아주 서투르게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싸움 뒤에 그 자신이 더 나쁜 형태의 숭배에 빠졌습니다. 이 편지에서 흐루쇼프의 잘못을 따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회를 명예 간부회로 추대하는 관행이 생겼을 때 그가 한 말 하나만 들겠습니다. 저는 이런 관행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여 이에 대해 N. S. 흐루쇼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소련 공산당 레닌그라드주 위원회에서 전화로 알려 주기를, 제 편지가 흐루쇼프 동지에게 보고되었고 그는 명예 간부회를 선출하는 데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거기에 무슨 무서운 것이 있다고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명예」 절차 그 자체가 「명예」 자리에 추대되는 사람들의 겸손하지 못함을 드러낸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게다가 이런 관행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처신과 어긋납니다. 마르크스주의 고전가들이 언제나 그런 행동에 반대했는데, 어떻게 「…를 비롯한 정치국」을 회의의 명예 간부회로 추대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제1인터내셔널에 가입하면서 자신들이 지도자라는 점을 내세우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레닌은 평생 겉치레와 전시 행정에 맞서 싸웠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쉰 번째 생일을 기념하려 했을 때 그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만 떠올려 봐도 그가 찬양을 어떻게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역사의 경험이 가르쳐 주듯이, 지도자들은 겉치레의 소동 속에서 방향 감각과 절제를 잃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인민은 L. I. 브레즈네프의 「금별」 훈장 열아홉 개와 K. U. 체르넨코의 세 번째 「금별」이 그들 자신의 권위에 먹칠을 했을 뿐 아니라, 그 여파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들에게까지 미쳤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까닭 없이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 정치국은 어디를 보고 있는가? 정치국원들은 서기장들에게, 그리고 자기들 자신에게 아무렇게나, 원하는 만큼 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제 손이 곧 임금이라는 식으로 훈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훈장의 가치가 떨어진다. 그런 작풍이 레닌의 규범에 맞는가?」 우리 당의 참모부인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이런 의아한 물음이 나올 빌미를 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공산당원의 겸손과 실무 정신이라는 명제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위에서 아래까지 모든 당 기관에서 실현된다면, 이런 의문은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당 안에서 우리는 아직 이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넓은 뜻의 지금의 포상 제도도 크게 손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훈장과 메달을 대량으로 주는 것을 보십시오. 그것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 해가 끝나면 상을 주거나 포상을 하라! 묻건대 무엇 때문입니까? 계획을 달성해서? 일을 잘해서? 우리가 일을 못 하고 계획을 달성하지 못해야 할 까닭이라도 있습니까? 제 생각에는 경축 의식에서 절제와 기본적인 겸손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실무 정신이 얻을 것입니다.
당 강령 신판이 제안될 소련 공산당 제27차 대회를 앞두고, 강령이나 규약에 모든 형태의 겉치레와 찬양에 반대하는 조항을 넣어 공산당원들이 그것과 싸우도록 동원했으면 합니다. 대회에서는 공산당원의 말이 행동과 어긋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 높여 말해야 합니다. 간단하고 누구나 아는 진리 같지요. 그렇습니다, 진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나 삶이 보여 주듯, 그것을 실천에서, 일에서 실현하기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평당원과 비당원들은 소련 공산당 제27차 대회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대회는 겸손과 실무 정신과 조직성의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지난 대회들이 중앙위원회 서기장들과 우리의 성과에 대한 찬양을 피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칭송은 일에 해만 끼칩니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우리의 성과를 보여 주는 데 반대한다는 인상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성과를 겸손하게, 「성공에 따른 현기증」 없이 기리자는 것입니다. 성과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더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한 예비력을 찾아낼 수 있게 해 주는 진지한 분석으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회의적인 사람들은 제 편지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구 안에 머물고 받는 사람에게 보고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앙위원회 기구, 특히 편지부는 「아래로부터」의 정보가 당 전체의 중대한 문제를 건드릴 때 그것을 정치국까지 전달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당의 힘은 대중과의 연계에 있습니다. 그 연계의 한 형태가 평당원들이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그 정치국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런 생각에서 저는 당신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존경하는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공산당원들은 당신이 매우 어려운 과제들을 감당해 내리라고 기대합니다. 이 길에서 모든 성공과 평안을 빕니다.」
보시다시피 이 편지는 진지합니다. 다만 여기에는 두 측면, 곧 당의 권위를 지키고 굳건히 할 필요와, 다른 한편으로 온갖 지나침과의 싸움이 얼마간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회 여론에 적극적으로 응답합시다. 우리 연설을 더 짧게 하고, 온갖 수식어를 덜 쓰고, 쓸데없는 찬사와 보여 주기식의 겉도는 낙관을 버립시다. 우리 인민은 나라 앞에 놓인 어려움과 과제도, 당을 중심으로 더욱 단결해야 할 필요도 잘 알고 있습니다. 레닌은 지도자들의 권위, 영도자들의 권위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당의 권위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당의 권위는 우리 각자가 최대한 굳건히 해야 합니다. 흐루쇼프가 스탈린의 행동에 대한 비판을 터무니없는 규모로 끌고 갔을 때 그것이 해만 끼쳤고, 우리가 아직도 그 깨진 조각들을 어느 정도 다 줍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그로미코. 모든 일에는 절도를 지켜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무슨 결정을 내리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이 써 보내는 것에 합리적인 핵심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고르바초프. 대체로 이것은 당과 중앙위원회와 정치국의 권위에 관한 문제여야 합니다. 구체적인 개인에 대해서는 절도와 겸손을 지킬 뿐 아니라 군더더기 수식어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지먀닌. 승리 40주년을 기념하는 창작 동맹 합동 전원회의가 열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중앙위원회 앞으로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지도 말고, 중앙위원회 서기장을 비롯한 명예 간부회도 선출하지 말아야 합니까?
고르바초프. 중앙위원회에 보내는 편지도, 서기장을 따로 내세우지 않는 정치국 구성의 명예 간부회도 관례대로 채택하고 선출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모든 일에서 집단지도와 레닌적 겸손의 원칙을 엄격히 지키고, 도를 넘는 일도, 어떤 형태의 칭송도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국원들.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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