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즈다노프·몰로토프, 영화 《이반 뇌제》에 관한 예이젠시테인·체르카소프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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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예이젠시테인과 체르카소프 — 편집자)는 11시까지 크렘린으로 소환되었다. 10시 50분에 접견실에 도착했다. 정각 11시, 포스크료비셰프가 나와 우리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집무실 안쪽에 스탈린, 몰로토프, 즈다노프. 들어가서 인사하고 탁자에 앉는다.
스탈린. 당신들이 편지를 썼지요. 답이 좀 늦어졌습니다. 늦게야 만나게 됐군요. 서면으로 답할까 했지만 직접 이야기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내가 몹시 바빠 시간이 없다 보니, 많이 늦었지만 여기서 만나기로 한 겁니다… 당신들 편지는 11월에 받았습니다.
즈다노프. 소치에 계실 때 받으셨지요.
스탈린. 그래, 그래. 소치에서. 영화를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우리는 2편을 두 부분으로 잘랐고, 그 바람에 리보니아 원정이 이 영화에 들어가지 못해 부분들 사이에 불균형이 생겼으며, 촬영분 일부를 줄이고 주로 리보니아 원정을 추가 촬영하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탈린. 역사를 공부했습니까?
예이젠시테인. 대충은…
스탈린. 대충이라?.. 나도 역사를 조금은 압니다. 당신들은 오프리치니나를 잘못 그렸습니다. 오프리치니나는 왕의 군대입니다. 언제든 깃발을 말아 쥐고 전쟁에서 떠나버릴 수 있었던 봉건 군대와 달리, 정규군이, 진보적인 군대가 만들어진 겁니다. 당신들 영화에서 오프리치니크는 쿠클럭스클랜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예이젠시테인은 그쪽은 흰 두건을 쓰는데 우리 쪽은 검은 것이라고 말했다.
몰로토프. 그건 원칙적 차이가 못 됩니다.
스탈린. 당신들의 차르는 우유부단하게, 햄릿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모두가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일러주고, 그 자신이 결정을 내리지 않아요… 차르 이반은 위대하고 현명한 통치자였습니다. 루이 11세와 비교한다면(루이 14세를 위해 절대주의를 준비한 루이 11세에 대해 읽어봤습니까?) 이반 뇌제는 루이에 비해 열 번째 하늘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반 뇌제의 현명함은 민족적 관점에 서서 외국인을 자기 나라에 들이지 않고, 외국 영향의 침투로부터 나라를 지킨 데 있습니다. 이반 뇌제를 보여주는 데서 이 방향에 어긋난 일탈과 오류가 저질러졌습니다. 표트르 1세도 위대한 군주지만, 외국인에게 너무 관대했고, 문을 너무 활짝 열어 외국 영향을 나라에 들였고, 러시아의 독일화를 허용했습니다. 예카테리나는 더 심하게 허용했지요. 그 뒤로도 그렇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의 궁정이 과연 러시아 궁정이었습니까? 니콜라이 1세의 궁정이 러시아 궁정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건 독일 궁정들이었습니다.
이반 뇌제의 탁월한 조치는 최초로 대외무역의 국가독점을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이반 뇌제가 처음 도입했고, 레닌이 두 번째였습니다.
즈다노프. 예이젠시테인의 이반 뇌제는 신경쇠약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몰로토프. 전반적으로 심리주의에, 내적 심리 모순과 개인적 체험에 대한 과도한 강조에 역점이 놓여 있습니다.
스탈린. 역사적 인물은 양식에 맞게 올바로 보여줘야 합니다. 예컨대 1편에서 이반 뇌제가 아내와 그렇게 오래 입 맞추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그 시대에는 그런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즈다노프. 영화가 비잔틴풍으로 기울어 있는데, 거기서도 그런 건 하지 않았습니다.
몰로토프. 2편은 둥근 천장과 지하실에 몹시 짓눌려 있고, 신선한 공기가 없고, 모스크바의 넓음이 없고, 인민의 모습이 없습니다. 대화를 보여주는 것도, 탄압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이어서는 안 됩니다.
스탈린. 이반 뇌제는 매우 잔혹했습니다. 잔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왜 잔혹해야만 했는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반 뇌제의 오류 중 하나는 다섯 개의 대봉건 가문을 끝까지 베어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섯 보야르 가문을 절멸시켰더라면 동란시대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반 뇌제는 누군가를 처형하고 나서 오래 참회하고 기도했습니다. 신이 이 일에서 그를 방해한 것이지요… 더 결단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몰로토프. 역사적 사건은 올바른 이해 속에서 보여줘야 합니다. 예컨대 데미얀 베드니의 희곡 《용사들》 사건이 있었습니다. 데미얀 베드니는 거기서 루시의 세례를 조롱했는데, 실은 기독교 수용은 그 역사적 단계에서 진보적 현상이었습니다.
스탈린. 물론 우리가 그리 훌륭한 기독교도는 아닙니다만, 특정 단계에서 기독교가 한 진보적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은 매우 큰 의의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국가가 동방 지향이 아니라 서방과의 결합으로 방향을 튼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동방과의 관계에 대해 스탈린은 이렇게 말한다. 타타르의 멍에에서 갓 벗어난 이반 뇌제는 타타르의 침입 가능성에 맞서는 보루가 되고자 러시아 통일을 서둘렀다. 아스트라한은 정복되었지만 언제든 모스크바를 칠 수 있었다. 크림 타타르 역시 그럴 수 있었다.
스탈린. 데미얀 베드니는 역사적 전망을 잘못 그렸습니다. 우리가 미닌과 포자르스키 기념비를 성 바실리 성당 쪽으로 옮길 때, 데미얀 베드니는 항의하면서 기념비를 아예 내다 버려야 하고 미닌과 포자르스키 따위는 잊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 편지에 답하면서 나는 그를 "제 근본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반"이라고 불렀습니다. 역사를 내다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어 스탈린은 이반 뇌제 형상의 해석에 관해 일련의 지적을 하고, 말류타 스쿠라토프가 큰 군사령관이었으며 리보니아 전쟁에서 영웅적으로 전사했다고 말한다.
비판이 도움이 되며 푸돕킨도 비판을 받은 뒤 좋은 영화 《나히모프 제독》을 만들었다는 말에 이어, 체르카소프가 말했다. "우리는 그보다 못하지 않게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이반 뇌제의 형상을 영화만이 아니라 극장에서도 다뤄왔고, 이 형상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우리의 시나리오 개작이 올바르고 진실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스탈린이 (몰로토프와 즈다노프 쪽을 향해) 답했다. "뭐, 해보라지요."
체르카소프. 개작이 성공하리라 확신합니다.
스탈린.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하루하루가 새해니까요. (웃는다.)
예이젠시테인. 1편에서 성공한 대목들이 있고, 그것이 우리가 2편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스탈린. 무엇이 성공했고 좋은지는 지금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결함만 이야기하는 겁니다.
예이젠시테인은 영화와 관련해 그 밖의 특별한 지시 사항은 없겠는지 묻는다.
스탈린. 나는 당신들에게 지시를 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소감을 말하는 겁니다. 역사적 형상은 진실하게 그려야 합니다. 그런데 글린카는 우리한테 뭘 보여줬습니까? 그게 무슨 글린카입니까? 그건 막심이지 글린카가 아니에요. 배우 치르코프는 변신할 줄 모르는데,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변신할 줄 아는 것입니다. (체르카소프를 향해.) 당신은 변신할 줄 알지요.
이에 즈다노프는 체르카소프가 이반 뇌제 건으로는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봄》 소동까지 있어서 그는 관리인 역이나 하게 되었다고 — 영화 《생명의 이름으로》에서 그는 관리인을 연기한다.
체르카소프는 자신이 차르 역 대부분을 연기했고, 심지어 표트르 1세와 알렉세이까지 연기했다고 말한다.
즈다노프. 세습으로군요. 세습으로 넘어간 겁니다…
스탈린. 역사적 인물은 올바르고 힘 있게 보여줘야 합니다. (예이젠시테인에게.)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당신이 만든 것이지요? 훌륭하게 나왔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시대의 양식을 지키는 것입니다. 감독은 역사에서 벗어나도 됩니다. 사료의 세부를 그저 베껴 적기만 한다면 그건 옳지 않습니다. 자기 상상력으로 작업해야 합니다. 다만 양식의 한계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감독은 역사적 시대의 양식 안에서 변주할 수 있습니다.
즈다노프는 예이젠시테인이 그림자에 탐닉하며(이것이 관객의 주의를 행위에서 흐트러뜨린다), 뇌제의 수염에 탐닉한다고, 뇌제가 수염을 보이려고 너무 자주 고개를 쳐든다고 말한다.
예이젠시테인은 앞으로 뇌제의 수염을 줄이겠다고 약속한다.
스탈린. (1편 《이반 뇌제》의 몇몇 출연자를 회상하며.) 쿠릅스키는 훌륭합니다. 스타리츠키(배우 카도치니코프)도 아주 좋아요. 파리를 아주 잘 잡습니다. 그것 보세요. 미래의 차르라는 자가 손으로 파리를 잡는다!
그런 디테일을 넣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대화는 체르카소프의 촬영차 체코슬로바키아 방문 및 소련 영화제 참가와 관련하여 체코슬로바키아 정세로 옮겨 간다. 체르카소프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소비에트 나라가 누리는 인기를 이야기한다.
미국인들이 체코슬로바키아 도시들에 입힌 파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스탈린. 우리의 과업에는 미국인들보다 먼저 프라하에 들어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인들은 몹시 서둘렀지만, 코네프의 진격 덕에 그들을 앞질러 프라하 함락 직전에 먼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업을 폭격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유럽 어디에서나 이 노선을 견지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기들과 경쟁하는 공업을 없애는 것이 중요했던 겁니다. 아주 맛을 들여 폭격했지요!
체르카소프는 조린 대사의 별장에 있던, 프랑코와 괴벨스의 사진이 담긴 앨범 이야기를 한다.
스탈린. 우리가 그 개자식들을 끝장냈으니 다행이지, 그 악당들이 이겼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체르카소프는 프라하의 소비에트 교민 학교 졸업식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망명자의 아이들 이야기를 한다. 러시아를 조국으로, 제 집으로 여기지만, 그곳에서 태어나 러시아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이 몹시 안쓰럽다고.
스탈린. 아이들이 안쓰럽지요. 그 애들은 아무 죄가 없으니까요.
몰로토프. 지금 우리는 아이들이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는 넓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스탈린은 체르카소프에게 그가 변신할 줄 안다고, 우리나라에서 변신할 줄 알았던 배우로는 흐멜료프도 있었다고 짚어 말한다.
체르카소프는 샬랴핀 — 변신의 위대한 명인 — 이 무대에 서던 시절 레닌그라드 마린스키 극장에서 단역으로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스탈린. 위대한 배우였지요.
즈다노프가 물었다. 《봄》은 어떻게 찍혀가고 있습니까?
체르카소프. 곧 끝냅니다. 봄까지는 《봄》을 내놓겠습니다.
즈다노프는 《봄》의 소재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배우 오를로바가 아주 잘한다고.
체르카소프. 배우 플랴트가 아주 잘합니다.
즈다노프. 라넵스카야는 또 어떻고요! (하며 두 손을 내저었다.)
체르카소프. 저는 생전 처음으로 수염도, 콧수염도, 망토도, 분장도 없이 영화에 나섰습니다. 감독 역을 하자니 제 몰골이 좀 부끄러워서, 성격 뒤에 숨고 싶습니다. 소비에트 감독을 보여줘야 하니 몹시 책임이 무거운 역이고, 우리 감독들 모두가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감독이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 하고요.
몰로토프. 바로 여기서 체르카소프가 모든 감독들과 셈을 치르겠군요!
영화 《봄》이 큰 의혹에 휩싸였을 때, 체르카소프는 신문 《소베츠코예 이스쿠스트보》에 실린 《봄》 관련 사설을 읽고 영화가 이미 금지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즈다노프가 말했다. 체르카소프가 《봄》 준비가 끝장난 것을 보고는 관리인 역이나 맡기 시작한 거군요! 이어 즈다노프는 《봄》을 둘러싸고 일어난 비판 소동을 못마땅하게 말한다.
스탈린은 배우 오를로바가 어떻게 연기하는지에 관심을 보인다. 배우로서 그를 호의적으로 평한다.
체르카소프는 대단한 작업 능력과 재능을 지닌 배우라고 말한다.
즈다노프. 오를로바는 잘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볼가-볼가》와 오를로바가 연기한 우편배달부 스트렐카 역을 회상한다.
체르카소프. 《생명의 이름으로》는 보셨습니까?
스탈린. 아니요, 못 봤습니다. 다만 클리멘트 예프레모비치에게서 좋은 평을 들었습니다. 보로실로프가 그 영화를 마음에 들어했어요.
자, 그렇다면 문제는 결정된 셈이군요. 동지들, 어떻게 생각합니까(몰로토프와 즈다노프를 향해), 체르카소프 동지와 예이젠시테인 동지에게 영화를 완성할 가능성을 줍시까? — 그리고 덧붙인다. 이 일을 볼샤코프 동지에게 전하세요.
체르카소프는 영화의 몇 가지 세부와 이반 뇌제의 외양에 대해 묻는다.
스탈린. 모습은 올바릅니다. 바꿀 필요 없습니다. 이반 뇌제의 외양은 좋습니다.
체르카소프. 스타리츠키 살해 장면은 시나리오에 남겨도 됩니까?
스탈린. 남겨도 됩니다. 살인이야 있었으니까요.
체르카소프. 시나리오에는 말류타 스쿠라토프가 필립 대주교를 목 졸라 죽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즈다노프. 그게 트베리의 오트로치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이지요?
체르카소프. 예. 이 장면을 남겨야 할까요?
스탈린은 이 장면은 남겨야 하며, 그것이 역사적으로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몰로토프. 탄압은 일반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보여줘야 합니다. 다만 왜 그것이 행해졌는지, 무엇의 이름으로 행해졌는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가 활동을 더 넓게 보여줘야 하고, 지하실과 닫힌 공간의 장면들에만 갇히지 말고 폭넓은 국가 활동을 보여줘야 합니다.
체르카소프는 앞으로 개작될 시나리오, 앞으로의 2편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한다.
스탈린. 영화는 무엇으로 끝나게 됩니까? 나머지 두 편, 그러니까 2편과 3편을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까? 대체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예이젠시테인은 촬영된 2편의 소재와 시나리오에 남아 있는 것을 하나의 큰 영화로 합치는 편이 낫겠다고 말한다. 모두가 이에 동의한다.
스탈린. 그럼 우리 영화는 무엇으로 끝납니까?
체르카소프는 영화가 리보니아 격파, 말류타 스쿠라토프의 비극적 죽음, 바다로의 진군으로 끝날 것이며, 이반 뇌제가 군대에 둘러싸여 바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고 답한다. "우리는 바다에 서 있고, 앞으로도 서 있으리라!"
스탈린.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요. 심지어 조금 더 되었고요.
체르카소프는 앞으로의 시나리오 초안을 정치국 승인용으로 제출해야 하는지 묻는다.
스탈린. 시나리오는 제출할 필요 없습니다. 알아서들 해결하세요. 대체로 시나리오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고, 완성된 작품을 놓고 이야기하는 편이 쉽습니다. (몰로토프에게.) 당신은 시나리오가 몹시 읽고 싶겠지요?
몰로토프. 아니요, 나는 전공이 좀 다른 쪽이라서요. 볼샤코프더러 읽으라지요.
예이젠시테인은 이 영화의 제작을 재촉하지 않아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발언은 모두에게서 활발한 호응을 얻는다.
스탈린. 어떤 경우에도 서두르지 마세요. 그리고 대체로 급조된 영화들은 앞으로 우리가 닫아버리고 내보내지 않을 겁니다. 레핀은 《자포로지예 사람들》을 11년 그렸습니다.
몰로토프. 13년입니다.
스탈린. (고집스럽게.) 11년입니다.
모두가, 오랜 작업으로써만 정말로 좋은 영화를 해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반 뇌제》에 관해 스탈린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 제작에 1년 반이든 2년이든, 심지어 3년이 필요하다면 그 기간에 하되, 영화가 잘 만들어지도록, "조각처럼" 만들어지도록 하라. 대체로 우리는 지금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 영화 수는 적더라도 질은 더 높게. 우리 관객은 성장했고, 우리는 그들에게 좋은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
첼리콥스카야는 다른 역에서는 좋다고들 말했다. 연기는 잘하지만, 그는 발레리나라는 것이다.
우리는 알마아타로 다른 배우를 불러올 수 없었다고 답한다.
스탈린은 감독이란 완강해야 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해야 하는데, 우리 감독들은 자기 요구를 너무 쉽게 양보한다고 말한다. 큰 배우가 필요한 자리에, 역에 맞지 않는 배우가 요구를 해서 그 역을 받아 연기하게 되고 감독은 동의해버리는 일이 더러 있다는 것이다.
예이젠시테인. 배우 고셰바를 예술극장에서 알마아타 촬영에 내주지 않았습니다. 아나스타시야는 2년을 찾았습니다.
스탈린. 배우 자로프는 《이반 뇌제》에서 자기 역에 그릇되게, 진지하지 못하게 임했습니다. 그건 진지하지 못한 군사령관이에요.
즈다노프. 그건 말류타 스쿠라토프가 아니라 무슨 "샤포클랴크"입니다! [샤포클랴크: 접이식 오페라 모자(chapeau claque)에서 온 말로, 경박한 어릿광대 같은 인물이라는 뜻]
스탈린. 이반 뇌제는 더 민족적인 차르였고, 더 선견지명이 있었으며, 외국의 영향을 러시아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표트르는 유럽으로 문을 열고 외국인을 너무 많이 끌어들였지요.
체르카소프는 유감스럽고 부끄럽게도 자신이 《이반 뇌제》 2편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영화가 편집되어 상영되었을 때 그는 레닌그라드에 있었다.
예이젠시테인은 자신도 완성본을 보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영화를 끝내자마자 병이 났기 때문이다.
이 말이 큰 놀라움과 술렁임을 불러일으킨다.
대화는 스탈린이 성공을 빌며 "신이 도우시길!" 하고 말하는 것으로 끝난다.
서로 악수를 나누고 나온다. 0시 10분, 대담이 끝난다.
B.N. 아가포프의 기록에 대한 예이젠시테인·체르카소프의 추가
즈다노프는 또 "영화에 종교 의례의 남용이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몰로토프는 그것이 "신비주의의 색채를 주는데, 그렇게 강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즈다노프는 "'불타는 용광로' 극이 벌어지는 성당 장면이 너무 길게 펼쳐져 있어 주의를 흐트러뜨린다"고 말한다.
스탈린은 오프리치니크들이 춤출 때 식인종 같고, 무슨 페니키아인들과 무슨 바빌로니아인들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체르카소프가 자신이 영화와 극장에서 오래전부터 이반 뇌제의 형상을 다뤄왔다고 말하자, 즈다노프가 말했다. "여섯 해째 나는 평온히 다스리고 있노라." [푸시킨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보리스의 독백 인용]
작별하면서 스탈린은 예이젠시테인의 건강을 물었다.
B.N. 아가포프가 S.M. 예이젠시테인과 N.K. 체르카소프의 말을 받아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