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강
인물아르툠 베숄리, 보리스 필냐크 용어콤소몰 사건내전과 열강의 개입
1
축음기 반카와 악어 미시카는 어찌나 붙어 다니는 단짝인지 몽둥이로도 못 떼어 놓는다. 잊지 못할 열일곱 해에 순양함에서 굴러 나왔다. 내전 내내 바다는 구경도 못 하고 마른 뭍길로 항해했다. 너른 세상을 쏘다니며 객기를 부리고 굵직한 루블을 쫓아다녔다.
녀석들, 아주 불덩이다!
찌는 듯한 오월 햇볕에 달아오른 화물칸은 학질 걸린 듯 떨었다. 미시카와 반카는 지옥 앞의 죄인처럼 마지막 구간을 덜덜거리며 와서, 환기창으로 게걸스레 고개를 뽑았다.
“한번 보기나 하자.”
“멀어, 눈이 안 닿아…….”
두 단짝한테 수병복이라곤 나팔바지만 남았다. 다 해져서 너덜너덜한 데다 폭은 사제복 소매만 한 나팔바지다. 그래 봐야 별일 아니다! 반카와 미시카는 사제복을 입혀 놔도 휘두르는 손짓하고 묵직하고 걸쭉한 욕지거리를 들으면 대번에 해군인 줄 안다. 알아주는 놈들이다. 뻔뻔하고 재빠르고 무슨 일에든 찰거머리 같고 손발이 척척 맞는다. 강탈이든 먹을거리든 무슨 놈의 투기든 미시카와 반카가 첫손이다. 손모가지를 뽑아 가서라도 제 몫은 뜯어낸다. 흥이 오르면 남의 것도 웃자고 집어 간다. 놈들하고는 엮이지 마라. 내장을 빼고 가죽은 시장에 내다 판다. 내놔라, 받아라, 돈은 나팔바지에 넣고 볼 장 다 봤다!
언덕 너머
바다가
번쩍이는 해의 날개를
활짝 쳐들었다.
반카는 배꼽까지 창밖으로 내밀고 신이 나서 히힝거렸다.
“호호호호호호-오오…… 개 콧구멍…… 바다 내놔라…….”
미시카가 단짝을 곁눈질했다.
“목청 한번, 이 괴짜야. 추음기다, 추음기, 하느님 맙소사. 네가 히힝거리면 벼락이 재채기하는 것 같아서, 사방 백 베르스타 마을 농부들이 성호를 그을 거다…….”
가슴속에서 따뜻한 물결이 찰랑거리며 기쁨이 놀았다……
다섯 해를 바닷물에 몸 한번 못 헹궜으니 사무치게 그리웠다.
잴 수 없는 바람의 길을 따라 망나니 젊음과 비틀거리는 취한 기쁨이 내달아 가 버렸다……
반카는 환기창에 찰싹 붙었다. 두 손으로 잡아당겨도 안 떨어진다. 눈은 바다 위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고, 생각은 연기처럼 지나간 날로 흘러갔다……
장사꾼 보따리를 진 자들이 악마처럼 시무룩하게 침상에 뒹굴었다. 오랜 길에 별별 소리를 다 들은 터였다. 그들은 뱃사람 살림을 부러워했다.
“거 알아 둬…… 누구는 사는 거고 누구는 그럭저럭 살아지는 거여.”
“사실이 벼룩은 아니니께 바짓단에서 못 잡지…… 누구는 복이고 누구는 복쪼가리여.”
화물칸이 선로 전환기 위에서 휘청거렸다.
두 단짝은 서둘러 자루를 등에 올려붙이며 신이 나서 웅웅거렸다.
“들리냐, 멧 베르스타를 덜겅거렷는디…….”
“기계 바퀴 네 개. 다 쾅쾅 왔다.”
2
역에서 나와 눈에 익은 거리를 느긋하게 걸었다. 집들을 구경하고, 몇 남지 않은 울타리를 구경했다. 먹을거리 가게의 거울 같은 진열창 앞에서는 걸음을 늦추고 침을 고삐처럼 늘어뜨리며 목청껏 꿈꾸듯 욕을 했다.
“이게 아닌데…….”
“말해 뭐 해, 자본이 다 이겼어.”
“우리 옛날 자유가 저것들 새 정책보다 훨씬 나았지.”
“자유가 있었는데 쓰디쓴 부자유만 남았네.”
“엄니, 가슴이 아파요…….”
열일곱 해, 열여덟 해 시절이 서글프게 그리웠다. 그런 일에 딱 맞는 때였다. 한 번 털면 본전 뽑고, 한 달은 주머니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다 차례로 깔아뭉개야지…….”
“관둬, 반카…… 말만 하다 말 일이야. 총 들고 있을 때 쳤어야지, 이제는 팔꿈치나 물어뜯어라…….”
“덜 팼어…….”
“덜 팼지…….”
항구로 휙 돌아 들어갔다.
“손뼉 치기 없기다…… 배에 발 올리자마자 취사병 호루라기 잡고 솥에 손부터 넣는 거야.”
“그래, 그래…….”
“두어 통 비워 치우자, 배때기가 터지게.”
“기다리다 침으로 다 흘러 나가겠네.”
만을 웅웅거리는 소리가 쓸었다.
예인선들이 씩씩거리고 푸푸거리며 기어다녔다. 날쌘 작은 배들이 들락날락했다. 부두와 구멍가게 둘레에는 얕은 여울의 잔물결처럼 사람들이 일렁거렸다. 산 위에서는 거북 같은 해군 병영이 햇볕을 쬐었다. 뱃고동이 한낮의 무더운 고요를 총살했다.
반카는 앞서 떠가는 부인의 레이스 양산에 가래침을 뱉고, 짖듯이 짧게 히힝 웃더니, 껍질 벗겨진 낯짝을 동무에게 돌렸다.
“돈 있냐?”
“없다.” 미시카는 호주머니를 까뒤집어 살담배를 흩날렸다. 어디서 돈이 나겠나, 바로 어제만 해도…….
“하.”
“흐.”
“이거 원, 개 내장 같으니, 죽어도 관 살 돈이 없네.”
“너하고 내가 번 게 서 푼에 동전 한 닢이고…….”
“삼위일체에, 피에, 뱃속에, 애미!”
구멍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하나가 생각한 건 다른 하나도 생각한다. 방향이 같은 놈들이다.
“한잔 뺄까?”
“빼지.”
“양묘기 내릴까?”
“내려.”
“하.”
“호.”
문의 날개 밑으로 쏙 들어갔다.
대리석 탁자에 앉아 돌처럼 굳은 소시지를 걸신들린 듯 씹고 얼음 같은 맥주를 홀짝이며, 어떻게 굴러갈지 점쳤다.
“걷고 또 걸었는데 좋은 일은 못 건졌어. 또 어느 동무 놈 잇속이나 들여다보게 생겼다.”
“칼이 잘 들지.”
“우리 패거리는 다 흩어 버렸고.”
“끝장이야.”
“구멍마다 잡것들이 들어찼는데, 잡것들은 가릴 줄을 몰라. 입에 넣어 주면 고맙습니다 한다니까.”
“반, 뺨 터지겠다.”
“으-흐…….” 반카는 입 안 가득 소시지를 밀어 넣고 눈을 부라렸다. 그러고는 옹이 같은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치며 우물거렸다.
“쇡여 먹자…… 시름 말어, 전나무 대가리야, 쇡여 먹자…….”
“으뜸 패는 배에 쾅 올라타는 거야.”
“그게 첫째지.”
“여차하면 도둑패를 찾아봐도 되고.”
“소굴을 털자고?”
“못 할 게 뭐냐? 소굴도 털 수 있고, 어디 금고도 하나 따고.”
“시시해.” 반카가 말했다. “그건 할 일이 못 돼…… 너하고 나는 노상강도로 나서도 일등이다.”
“머리는 안 써도 벌이는 되지.”
“먼지 안 마시고 파리도 안 물지.”
항구에서
딩-뎅,
네 점 종이 울렸다.
동무들은 서둘렀다.
모자 쥐고
자루 쥐고
주인은 주판을 달그락탁.
“소시지 다섯 푼트…….”
미시카가 웃었다.
반카가 웃었다.
“계산하지 마, 영감, 어차피 안 낼 거니까…….”
먹다 남은 치즈 조각을 호주머니마다 쑤셔 넣으며(소시지는 껍질도 안 남았다) 반카가 달래듯 덧붙였다.
“우리가 떼먹진 않아, 공식으로 선언한다…….”
주인의 귀가 축 늘어졌다.
“수병 동무들, 저, 저…….”
주판이 바닥으로 굴러가 달그락거렸다……
미시카는 주인에게 한 걸음 다가가더니 플러시 모자를 코까지 푹 눌러 씌웠다.
“영감, 우리한테 돈 좀 꿔 주지 않을래?…… 응?”
주인의 시커먼 입이 흐느낌과 웅얼거림에 숨이 막혔다……
반카는 이 일이 얼마나 짭짤한지 금세 알아채고, 바닥에 박힌 고리를 움켜쥐어 힘을 주더니 지하실의 무거운 뚜껑을 활짝 열어젖혔다.
“빨리!”
“쳐!”
“흐리-흐리-그리스도님…….”
영감의 배를 걷어차
지하실로.
뚜껑이 쾅 닫혔다.
“옛, 왼쪽으로!”
“멋들어지게.”
일꾼처럼 진지하게 선반과 계산대를 뒤졌다. 장부 책상에서 돈뭉치를 긁어냈다. 전 갑판 총원 작업 때 갑판을 뛰는 것보다 더 날쌔게 가게 안을 누볐다.
“망 봐, 반초.”
“뒤져.”
미시카는 등잔 기름과 돌고래 썩은 내가 밴 방으로 뛰어들었다.
반카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 문 옆 말뚝에 걸터앉아 무심하게 사방을 둘러보며 파이프 연기를 피웠다.
가게로 손님이 다가왔다. 볏 달린 듯 머릿수건을 맨 노파였다.
반카가 가로막았다.
“장사 안 해, 내일 와.”
“아들아, 나리…….”
“장사 안 해, 물건 조사 중이야.”
“나는 등유 한 병만…….”
“꺼져!……” 수병은 성을 내며 숨 막히게 욕을 뱉었다.
노파는 치맛자락을 걷어쥐고 성호를 그으며 침을 뱉으며 멀어졌다.
미시카가 가게에서 나왔다. 미시카의 얼굴에는 귀에서 귀까지 노을 같은 미소, 옷자락 밑에는 사탕 깡통이었다.
“위험 없냐?”
“전혀.”
“갈까?”
“가자, 여기서 잘 것도 아니고.”
“쌈박한 일이었어.”
바로 앞 모퉁이에서 낯짝 큰 ‘개’가 곱사등으로 울타리를 받치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 콧수염에 관급 모자, 무릎까지 내려오는 권총.
놈들이 옆으로 굴러갔다.
장난 삼아 공손한 말을 엮었다.
“향우님, 말씀 좀 해 주쇼, 순양함 우리네호가 어느 구역에 사는지요? 숨넘어가게 급해서…….”
“찾고 또 찾느라 발이 다 닳았소…….”
‘개’는 해를 보고 눈을 찡그렸다…… 발작하듯 개 울음소리로 하품을 두 번 하고 소매로 아가리를 가렸다.
“모르겠는데, 형제들…….”
아저씨에게 사탕을 대접하고 가슴의 배지를 만져 보았다.
“양배추나 키우냐?”
“여기 사람 아니지?”
그런 관심에 으쓱해진 경찰은 울타리에서 몸을 떼더니 재채기를 하고 체크무늬 손수건에 코를 풀고는 완전히 잠에서 깼다…… 콧수염까지 다듬기 시작했다.
“우린 먼 데서 왔소, 야로슬라블 사람이오…… 포마라고 하지요…… 포마 데니시치 루코야노프…… 뱃사람은 끔찍이 존경하오…… 내 친삼촌 키르산이, 들어 봤을지 모르겠는데, 바랴크호를 탔소.”[1]
반카는 다정하게 경찰의 넓적한 말 같은 등을 탁 쳤다.
“식모도 있냐?”
“작은 게 있지요.” 포마는 쑥스럽게 웃었지만, 곧 기름때 묻은 권총집을 추어올리고 엄하게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수병들은 악귀처럼 달라붙었다.
“멍청아, 왜 작은 거냐?…… 큰 걸 들여, 희고 말랑하고 빵 반죽 같은 걸로.”
“결혼식에 놀러 갈게.”
“잘 있어.”
“잘 가오, 형제들.”
바닷가를 따라 전속력.
“얼렁뚱땅 잘 빠졌다.”
“하하.”
“호호.”
사탕은 호주머니에,
깡통은 말뚝에.
3
아침부터 폭풍이 날뛰었다. 저녁이 되자 폭풍이 꺼졌다.
연기 낀 먼바다에서 뒤늦은 파도가 물마루 근육을 뽐내며 게으르게 굴러 와 지친 날개로 방파제를 쳤다. 바람 부는 너른 데에 홀린 도시는 산 위에서 졸았다. 기와와 정원의 누더기를 기워 입은 것이 부랑자 떠돌이를 닮았다……
반카의 심장이 쿵 울렸다.
미시카의 심장이 쿵 울렸다.
한꺼번에 심장이 쿵 울렸다.
“저기다!…… 우리 배!”
“양묘기 올려!”
무슨 횡재라도 한 듯 제 배를 보고 기뻐했다.
쇠로 벼리고
날씬하고
의장으로 꽉 조인 것이
힘이다.
배가 아니라 장난감이다, 귀에 걸어도 되겠다.
흔들거리는 나무 잔교를 쿵쿵 밟았다. 쿵쿵 밟으며 입을 맞췄다.
“쾅쾅 불되, 들키지는 마.”
“걱정 마, 바다에 불 안 지른다.”
“캐묻는 게 있을 거야…… 어쩌고저쩌고? 당원 공산주의자냐고? 한 가락으로 부어. 이렇다 저렇다, 뭐 풍각쟁이는 아니어도 심성 좋은 놈들이다. 석유와 석탄과 금산을 쟁취했고, 경제 붕괴에 공감한다, 기타 등등.”
“얼어붙진 않고 술술 돌아갈 거다.”
“‘옷 때문에 복무합니다’ 하고 내뱉어.”
“저것들 위해서라면 바지에서 마지막 것까지 탈탈 털어 줘도 안 아깝지…….”
쓰레기 뜬 만이 석탄 내와 녹슨 쇠와 기름 찌끼 냄새를 진하게 내뿜었다.
푸른 저녁.
저녁놀의 눈에 피가 고였다. 진홍빛 돛을 단 바다가 그네를 탔다.
잔교 앞에 애송이 보초.
수병 모자에
모자 밑에는 물렁뼈,
수염 없는 낯짝,
번들번들,
여드름,
풋고추.
“어디 가십니까, 동무들?”
“어디 가냐니?” 미시카는 양손을 허리에 짚었다. “우리를 심문할 근거라도 있냐?”
“그러니까, 저는…….”
“이 복사뼈 같은 게.”
“.....” 그러고 반카는 장난으로 녀석의 소총을 빼앗으려 했다.
녀석은 개들 앞의 거위처럼 쉭쉭거리더니 총을 겨누고 조금 겁먹은 소리로 물었다.
“뭡니까?”
형제들은 고함을 질렀다.
“이런, 갈보 새끼!”
“뼈다귀 같은 놈!……”
“배때기에 타르 칠한 뱃사람 납셨네!…… 짚신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자! 찔러! 쏴!”
그러고는 왁자지껄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욕지거리에 돛대가 쓰러지고 굴뚝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애송이가 울부짖었다.
“다아아아아앙직!…… 동무 다아…….”
당직 사관이 날아왔다.
“옛!”
당직 사관도 똑같은 말라깽이였다. 모자 밑으로 얼굴이 겨우 보였고, 나팔바지는 목 아래서 잠가도 될 지경이었으며, 목에는 호루라기와 구리 줄, 단검은 뒤꿈치를 쳤다.
“여기서 누가 소란을 피우나? 신분증 내놓으시오.”
“왜 그러는데, 신의 애미…….”
“목에 총검이다, 근거가 있냐?”
그 시각 갑판장실에서는 페도티치 영감이 기관 학교 생도 자크로예프와 이그나티예프와 정답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볼일이 있어 잠깐 들렀다가 눌러앉은 것이다. 생도들은 영감을 좋아했다. 영감의 심장은 강아지보다 다정했다.
생도들의 날쌘 눈이 벽을, 색색의 그림을 훑었다.
“갑판장 동무, 이건 무슨 풍악입니까?”
페도티치는 바늘을 놀려 속옷을 깁고 있었다. 손이 근질거려 일 없이는 일 분도 못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갑판장은 바늘을 놀리며 추억의 요람에서 흔들렸다.
“이건 말이다, 얘들아, 영국 도시 쿨쿠타다. 희한한 인도에 있지…… 도시는 괜찮아, 멋들어져. 다만 아쉽게도 시골 틀에다 찍어 낸 거라 큰 집이 별로 없어.”
둘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왜 여기 박혀 있을까요? 어서 먼 데로 빠져나갔으면…….”
“인상 깊었던 일을 뭐라도 얘기해 주세요, 루카 페도티치.”
옛일이 휘감긴 영감의 눈이 가벼웠다.
“인상 같은 데 신경 쓸 틈이 없었지…… 한두 주를 바다에서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거야. 무-더-어-엄이지…… 바다가 널 치고 흔드는 게 바람이 새를 흔드는 것 같다…… 그러다 마른 뭍에 닿으면 춤춰라 다리야, 흔들어라 팔아, 노-오-올자!…… 젖어라, 내 심장아, 흥겨운 흥에 젖어라…… 뒤죽박죽 뒤죽박죽, 계집이다 계집…….”
두 청년은 뜨거운 먼지에 싸인 듯 생각에 잠겼다.
“에이 참…….”
“거기 파도도 큽니까?”
갑판장은 하던 일을 내려놓고 어깨를 펴더니, 차돌 같은 눈으로 올리나프타와 기름 그을음이 묻은 앳된 얼굴들을 긁었다.
“멍청이들…….”
잠시 말이 없다가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엄숙하고 장엄하게 손을 들었다.
“대애양…….”
옛날 생각에 갑판장은 물렁해졌다.
“거기는 깊이가 백 베르스타나 되는 데도 있어…… 어쩌면 더 될지도 몰라, 내가 직접 재지는 않아서 확실히는 못 해. 아는 사람들이 그러더라…… 한마디로 대애양이야…….”
젊은 혀들이 웃음을 쏟아 냈다. 젊은 혀들은 날쌨다.
“오호.”
“에헤.”
“나라들, 인민들…… 거기도 이제 콤소몰이 있을까요?”
“당연하지.” 자크로예프가 거들었다. “우리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거기도 물결이 일지…….”
영감은 신이 나서 제 얘기를 했다.
“그건 모르겠다, 거짓말은 안 할란다…… 그런데 계집들은 이-있-지…… 말하자면 문뎃적인 계집들이야. 아주 그냥 잘해 줘. 어찌나 잘해 주는지 기어서 겨우 나온다. 우리 미개한 땅에서는 다리가 닳도록 다녀도 그런 계집을 못 찾아……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다섯 해가 가도, 그 망할 것이 꿀 과자처럼 트림으로 올라와…….”
좋은 시샘에 자크로예프는 벼룩한테 물린 듯 몸을 긁었다. 젖비린내 나는 녀석으로, 머리숱이 많고 불빛이 도는 것이 잘 익은 기장 이삭 빗자루 같았다. 무두질한 얼굴에 푸르스름한 빛이 돌고, 파래지는 눈 속에는 잿빛 쑥이 있었다. 자크로예프에게서 볕에 탄 살과 쑥과 관급 양배추국 냄새가 났다.
녀석은 실컷 듣고 나니 가슴이 저려 입을 열었다.
“우리 복무는 엿 같아요……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앉아 있고…….”
“강제 노역보다 못해요…….”
영감은 펼친 집게손으로 기운 데를 살피며 굶주려 파래진 입술을 뒤집었다.
“고개 떨구지 마라, 뱃사람아…….”
“우리야 괜찮아요…….”
“모르는 게 아닙니다, 붕괴지요. 어쩔 수 없어요, 전 러시아 규모의 붕괴니까.”
“뭍 생각은 잊어버려…… 정부도, 사돈도, 형제도, 친어미도 잊어…… 배에 달라붙어, 배를, 우리 나리를 돌봐……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얘들아, 너희도 다 보고 다 만져 보게 된다…… 그때까지는 새겨듣고 참아라. 복무는, 젊은이들, 진지한 직업이다. 어디 이런가 저런가 싶어도 입 다물어…… 쓰디쓴 병사의 눈물이 맺히면 주먹에 쥐어 바짓단에 닦아라, 그걸로 말 끝이야. 너희 규율은 제대로지. 그건 맞아. 그것도 너희 좋으라고 있는 거다. 군살 짜내고 힘을 채워 주거든.”
이그나티예프가 벽에 못을 박듯 말했다.
“규율이야 우리한테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익었어요.”
“너희 소비에트 상관들은 점잖게 대하는 걸 존중하지. 무슨 일만 있으면 당장 손을 잡고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고 ‘당신’ 하고 높여 불러…… 수병하고 손을 잡다니, 이게 귀한 일이다…… 에이, 공산당 새끼들아, 우리 늙은이들이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너희가 알기나 하면…….”
“우리도요, 루카 페도티치, 겁쟁이가 아닙니다…… 우리도 치이고 닳았어요. 전선마다 안 굴러 본 데가 없습니다.”
“우리도, 우리도 하네. 누운 암소 꼬리 밟았다고 영웅이라니! 말하면 듣고, 씹어 주면 삼켜.”
“끓여 봐요, 말해 봐요.”
“듣는 재미가 있어요.”
“그, 그래, 그래서 말이지, 기억나는 김에, 잊어버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면서, 그 쿨쿠타, 인도 땅에 크레체토프 선장하고 간 적이 있어. 아이고, 사납기가 개 같았지, 욕되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 나는 아직 돛대 수병으로 날아다녔어. 일에는 날쌘 수병이었는데, 글쎄, 한번은 일이 터졌어. 호령 한 번에 돛 줄을 못 풀었거든…… 크레체토프가 날 불러 놓고는 한 방에, 이 비열한 놈, 이빨 네 개를 날렸어…… 엄한 선장이었지, 천국에서 편히 쉬시길…….”
문에
똑똑.
문으로 당직 사관.
“루카 페도티치, 갑판에서 난동입니다.”
“보고해 봐.”
당직 사관이 보고했다.
“취했으면 더러운 빗자루로 쫓아내!” 갑판장이 명령했다.
“도무지 안 나갑니다, 갑판장님을 찾습니다.”
“나를?”
“그렇습니다.”
“누굴까…… 가서 봐야지…….”
갑판은 갈까마귀 잔치 같았다.
미시카는 분하고
반카는 분하다.
“목에 총검이다…….”
“개 잡을 독약 같으니…… 여얼네 번 다친 몸이다.”
기타 등등.
갑판장은 불같은 구레나룻을 쓸어 올리고 느긋하게 가슴을 앞세워 나왔다.
“무슨 뜻으로 소리를 지르나?”
반카가 반가워했다.
미시카가 반가워했다.
“페도치!……”
“우리 영감!……”
영감도 그들을 알아봤다. 친아들을 본 듯 활짝 웃었다.
러시아 풍습대로 한 번, 두 번, 세 번 입을 맞췄다.
“이야…… 반탸이…… 부릴린…….”
“살아 있네, 페도치?…… 진작 뒈진 줄 알았는데…….”
“무슨 바람에 밀려왔나?…… 기다리고 기다렸지, 기다림을 다 먹어 치웠다.”
애송이는 못마땅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나 목청 큰 손님들을 배로 들여보냈다.
4
선실에는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페도티치와 손님들.
다리가 젊어졌고 혀도 젊어졌다. 혀가 바닷바람처럼 장난을 쳤다. 늙은 뱃사람의 가벼운 춤추는 걸음으로 갑판장은 선실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있는 것을 다 판돈으로 내놓았다. 행군용 쇠 상자에 오래 간직해 온 일본 코냑 귀한 병 하나도 아끼지 않았다.
“벗으시게, 귀한 손님들, 벗으시게, 어서 오시게…….”
단짝들은 누더기를 벗어 냈다.
“삐걱거리며 사는 거냐?”
“반가운 김에 술 한 동이 내놔…….”
영감은 병을 놓고 안주로 탁자를 그물질했다.
“조금씩 삐걱거리지…… 전에는 차르한테, 이제는 코뮌한테 복무하게 됐어. 어쩌겠나?…… 사는 거고 땅을 밟는 거니, 복무해야지…… 오랫동안 안 날아왔군, 매들아, 오랫동안…….”
“하루아침에는 안 되지.”
“뚫고 왔어.”
“다가앉게, 형제들, 쪼아 드시게…… 배는 마른 뭍으로 다니지 않는 법이야.”
반카와 미시카는 바람을 맞은 듯 흔들렸다.
“킁킁 맡아 보자, 안 될 거 없지, 만남에 한잔 뿌리자.”
“다섯 해라고, 말하자면…….”
각진 잔이 반짝였고, 바싹 마른 혀들이 빠져나왔다. 자, 내놔…….
“후-흐.” 반카는 히힝거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루카 페도치, 자네는 늘 술에 욕심이 많았지, 그대로구먼. 병에 아무것도 없는데 흔들고 짜내고, 한 방울 더 안 떨어지나 하고…….”
“한 방울도 버릴 까닭이 없지…… 자, 또래들, 들게…… 건강들 하시게…… 고니처럼 오래들 사시길, 어쩌면 또 같이 복무하게 될지도 모르고…….”
잔을 부딪쳤다,
꼴깍,
크윽.
“모자라…… 반가운 김에 국자로 퍼마셔야 제격이지!”
“일단 됐네. 곧 커피 끓이지. 어디들 있었나, 매들?”
“어디 안 있었는지를 물어봐.”
“잔치를 벌이고 노획을 나눠 가졌지…….”
커피는 잔에,
영감은 귓속말로.
“성삼위 대축일에 콜카 갈초노크가 여기 나타났어. 크론시타트 근처에서 겨우 빠져나왔대…… 취해서 떠들기를, 자네들이 마흐노하고 같이 쳤다던데?”[2]
“하느님 맙소사.”
“불은 주먹에, 냄새는 바람에.”
위에서 두 점 종이 혀를 놀렸다. 멀지 않은 배가 힘차게 메아리쳤다. 딩-뇽…… 딩-뇽…… 그리고 또 만의 물그릇으로 딩동 소리가 날쌘 우박처럼 알알이 쏟아졌다. 갑판에 쿵쿵쿵 발소리. 승조원을 점호로, 군인 말로는 인원 점검으로 불러냈다.
“베소노프?”
“옛!”
“리마소프?”
“옛!”
“쿠드랴쇼프?”
“옛!”
“자크로예프?”
“옛!”
“야블로치킨?”
“옛!”
“옛!”
“옛!”
“옛!”
나무토막 같은 웅얼거림 속에서 「인터내셔널」이 우물거려졌다. 죽음처럼 피할 수 없는 그것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기도 대신 돌아왔다.
호령이 울렸다.
“모자 써! 제자리로 뛰어 가!”
갑판에 달음박질이 쏟아졌다.
돛천 해먹에
배가 누워 잠들었다.
미시카의 심장이 쿵 울렸다.
반카의 심장이 쿵 울렸다.
얼고 굶주린 심장이 한꺼번에 쿵 울렸다.
“우리 배…….”
“풀어 봐, 영감, 어떻게 사나, 뭘로 숨 쉬나?”
코냑에 젖은 갑판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소식을 쏟아 냈다.
“재밌게 살지, 지루할 틈이 없어. 일이 유일한 낙이고 위안이야. 그 밖에는 아무것도 보기 싫어…… 사는 게 아니라 속병이다…… 옛날 뱃사람은 눈곱만큼 남았어, 회오리에 흩어지듯 흩어졌지…… 뜯어먹으려 들어…… 저 콤소말 놈들, 좁쌀들이 다 제 손아귀에 긁어 넣어…….”
둘이 왁자하게 떠들었다.
“뭔 소리야, 괴짜야…… 우리 없이 어쩌라고?”
“우리가 못대가리야.”
“그게 문제지, 요새는 못대가리가 대접을 못 받아.”
헉 소리를 내고,
흐 소리를 내고,
으르렁거렸다.
“에이스, 끗수, 스페이드 으뜸패…….”
“늙은 뱃사람…… 우리가 아홉째 파도다!”
타르 칠하고 햇볕에 그은 손이 휙 움직였다.
“아홉째?…… 저기 열째 파도가 온다…… 비켜라! 다 덮치고 다 삼킨다. 당의 힘은 이빨이 세.”
“별걸 다 지어내.”
“힘은 한 화차 있어, 더 싸울 수 있어.”
“끝이야, 매들, 옛날 시절은 잊어버려. 요새는 어디로 돌아서도 세포 아니면 소모임에 걸려. 나 같은 늙은 바보까지 입술에 고리 꿰어 타라람 스튜디오로 끌고 가더군. 겨우 빠져나왔어. 갑판장 동무는 장사꾼 비슷한 역을 맡으면 된다나. 퉤, 이 나이에 내가 그런 걸 해…….”
“하하하, 페도치 꼴 좋다!”
“일이다, 일거리야…….”
“옛날 시절에는 젖비린내 나는 놈 누구든 뒷간 청소 특별 당번을 먹였을 거야. 지금은, 어림없지. 어떻게, 뭐가, 무슨 근거로…… 당직이 어느 풋내기를 불러 봐, 그놈이 웅얼거리기 시작해.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접니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습니다…….’ 그런 말 하면 대가리를 뽑아도 모자라!”
“좀 굴러서, 영감, 독한 놈 한두 병 구해 와. 속이 쓰려…… 돈은 있어, 돈이야 좀 털었지.”
“신나게 달리자!”
“맛들렸구먼?…… 위생병한테 가 볼까?”
“질러.”
“탄약 있다, 자, 받아!”
미시카가 기름때 묻은 지폐 뭉치를 탁자에 던졌다.
심장이 타고 그을었다. 병으로 끌 수 없고 바다에 빠뜨릴 수 없었다…… 어림도 없다…… 뱃사람의 심장은 거룻배처럼 넓다.
영감이 뛰어나갔다.
“하.”
“흐.”
“이것 봐, 우리 편이 이렇게 빠져나오는 거야…….”
“그렇지.”
페도티치가 병을 들고 왔다.
러시아식으로 잔이 넘치도록 따라서, 가장자리 너머로 흘렸다.
갑판장은 이런 얘기를 했다.
“백군이 가고 나니 우리한테 남은 건 구멍 난 보트하고 바닥 없는 쪽배뿐이야…… 우리 배도 귀까지 물에 잠겨 있었어. 보일러는 터지고 부속은 뜯겨 가고, 녹이 한 치에다 풀이 다 자랐어. 쾅, 명령이다. ‘동무들, 복구하라!’ ‘옛!’ 말이 필요 있나?…… 옛 했으니 뜯어내야지. 달려들었어. 자, 내놔라! 뭐로 시작하나? 연장 없고, 자재 없고, 돈 없고, 옥수수 빵은 하루 반 푼트…… 짐칸에도 물, 조타실에도 물, 화부실에도 물. 밸브는 터지고 격실은 벌어지고, 뭐, 천 퍼센트 붕괴지…… 물을 퍼내야 해. 그런데 터빈이 신음을 하는데 어떻게 퍼내겠나? 날쌘 놈들은 오래 생각 안 해. 손으로 돌리자…… 증기로.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돌리니까 눈이 이마로 올라가. 멈춰, 호송대! 떼로 몰려가서 정치위원 나리를 뵀어. ‘배급 때문이오?’ 그가 묻더군. ‘배급이오……’ ‘배급은 없습니다, 동무들. 붕괴, 기아, 붉은 수리, 자각해야 합니다, 기타 등등. 여기 살담배가 한 놈당 두 줌씩 있으니, 그 이상은 못 해 드립니다. 곧 중앙에서 콤소말을 지원으로 보내 준답니다, 그 이상은 못 해 드립니다.’ 그 살담배를 피우고 입을 닦고 나왔지.”
미시카와 반카는 묵직하게 듣다가 바닥에 눈을 박고 묵직하게 트림했다.
페도티치는 선실을 뛰어다니며 말을 매듭으로 엮었다.
“뱃사람 손에서 일이 빠져나간 적이 있었나? 평생 한 번도 없어. 나뭇조각으로 붙이고 나사로 끌어모아 우리 배를 쾅 세웠지. 공장도 또 도와줬어, 많이 도와줬지. 콤사가 힘을 보탰고. 어린 놈들인데 부지런해. 일에 찰거머리야, 빌어먹을…….”
“자네, 줄 하나 더 달고 싶은 건가?” 반카가 물었다.
“계급장 줄이 나한테 뭔 소용이야, 뒈질 때가 됐는데…… 이건 전혀 줄 문제가 아니라니까.”
젖어 들고,
늘어지고,
욕지거리에 사납게 몸을 헹궜다.
“오리 새끼들?”
“좁쌀이라고?”
“딱 말해서 탄약이야. 자네한테 존경이라곤 없어. 주인 행세를 해. 배 전체의, 어쩌면 러시아 전체의 주인 행세를 한다고. 우린, 가로되, 원칙적으로 또 단호히. 다가오지 마. 방금 앞갑판에 들여다봤는데 놈들이 가득해. 불난 데처럼 소리를 질러. 온종일 일로 서 있다가 밤에는 어디 쉬면 좋으련만, 개새끼들이 회의를 또 회의를 연달아 해 대. 미쳐 버린 놈들처럼…….”
“정치라…… 어리석은 사람들을 이게 얼마나 망쳐 놨는지, 큰일이지! 마시게, 얘들아…….”
미시카가 묵직한 눈을 영감에게 박았다.
“아이고, 페도치, 빨간 대가리야…….”
반카도 소처럼 영감을 쳐다봤다.
“옛날 승조원 중에 남은 사람은?”
“있어, 있어…… 예핌카 놈, 신호수 라브루시카, 선장 렉세이 포나시치, 취사병은 여전히 알료시카 코스틸레프. 그런데 잘한 일이 있어서 뭍으로 쫓겨난다더군.”
“걔들은 뭘로 숨 쉬는데?”
“예핌카는 세포로 갔고, 나머지는 황소 놀이 중이야. 일도 안 하고 일에서 도망도 안 쳐.”
갑판장은 옛 버릇대로 파리를 한 움큼 잡아 잔에 짜 넣더니 독주를 붓고 단숨에 꿀꺽 넘겼다.
물살 한가운데서
심장들이
번쩍번쩍 놀았다.
“일이 안 풀리면 위원회 통째로 우마니 쪽으로 놀러 가자!”
“자연의 자유와 넓은 지평의 공간.”
영감은 광대뼈를 씰룩였다.
“아니, 또래들, 나는 놀 만큼 놀았어. 내 시절은 달아났어, 말을 타고도 못 돌린다…… 여기서 뒈질 운명인가 보지.”
“눈물은 새끼로 꼬아 둬…… 다리가 춤을 출걸…….”
미시카는 취한 딸꾹질에 숨이 막히면서 지나온 기쁨을 되살렸다.
“인생은 비싼 것보다 비싸…… 술은 말처럼 마셨지. 돈은 무더기! 농가 마을에 날아 들어가면 넘치는 바다야. 총질, 고함, 난리, 피, 싸움…… 집이 불길 속에! 마을이 불길 속에! 심장이 불길 속에! 우크라이나 계집 아무나 골라잡아 밤새 황홀해하는 거야!”
“설탕도 있고 흰 빵도 있고?”
“아이고, 하느님 벌 내리지 마시길.”
“교회가 보이면 바로 포탄으로 대가리를 딱.”
“그래, 교회는 병처럼 깼지.”
“인생을 앞질러 달렸어. 어찌나 달렸는지 장화가 벗겨지더라.”
오이, 사과야,
이파리 달린 사과야,
마흐노가 간다,
아들들을 데리고 간다……
반카가 발을 잘게 구르며 춤을 터뜨렸다.
영감이 소매를 휘두르며 쉭쉭거렸다.
“쉬잇…… 괜히 부함장이 들으면 물어뜯어.”
“그놈은 우리가 헹가래 쳤었지. 시골 살던 인텔리 나부랭이겠지.”
페도티치가 반박했다.
“아니야. 목청이 크진 않아도 복무에서는 엄한 걸 좋아해. 규율은 놈들 아주 일품이야. 콤소말은 물론 좁쌀이고 일도 아직 서툴러. 그런데 벌써 늙은이 몇몇은 물 먹일 정도야. 멋쟁이들…… 놈들은 포고령대로 욕을 못 해. 그게 쓸데없어. 욕 없는 뱃사람이 어딨나? 그냥 진창이지, 송아지들이지…….”
“그럼 우린 똥통에 빠지는 거냐?”
“우리 게 너희 거에 걸렸네…….”
미시카와 반카는 탁자에 앉아 있었고, 놈들 안에서 또 놈들 위에서 모든 것이 놀고 춤췄다. 눈이 춤추고 날뛰었다. 머리가 팽이처럼 까딱거렸다. 어깨가 뛰었다. 손가락이 미친 듯 질주했다. 손은 삔 것처럼 푸덕거렸다. 발굽이 달아나고 미끄러졌다. 경련 속에서 뜨거운 입술이 웃고 기뻐하고 독하게 성냈으며, 재빠른 귀가 부랴부랴 기어다녔다. 근질거리는 날렵함, 옹이 같은 억척, 다 터진 구두, 까치집 머리, 뜨거운 소용돌이 속의 혀……
놈들 안에서 또 놈들 위에서 모든 것이 외쳤다.
더 빨리,
더 빨리,
내놔라!
영감은 제 얘기를 활처럼 휘어 갔다.
“봄부터인가 보일러 시험하러 바다에 나갔어. 밤이 덮치고 폭풍이 쳤지. 마구 흔들리고 털렸어. 젊은것들이 총원 작업을 했는데, 애들 손인데도 놀랄 만하더라. 집게야! 호령대로 뛰는데, 나사산에 너트 돌듯 했어…… 한두 해면 일등급 뱃사람이 될 거야.”
단짝들이 불안하게 들썩였다.
“닥쳐, 줄 하나 더 달고 싶은 거지.”
“돌아 봐야 정치위원으로 안 튀어 올라.”
갑판장이 욕을 퍼부었다.
“이 얼어 죽을, 저 얼어 죽을, 왜 잘난 체들이야?”
“우리가 네 눈에 촌뜨기냐?”
“괴짜를 찾았네!”
반카가 영감의 대머리에 커피 찌꺼기를 끼얹었다.
미시카는 히힝거리다가
따뜻하고 썩은 호수 같은 잠에 빠졌다.
5
갑판장은 일찍 해먹에서 떨어져 나와 아침 순시에 나섰다. 가벼운 걸음으로 침실을, 거주 갑판을 밟았다. 모든 것에 주인의 날카로운 눈을 던졌다. 당직을 확인하고 아침을 향해 하품을 하고 잔 성호를 그어 털북숭이 입을 멍에 씌우더니, 재봉사 예핌카에게 다리미를 얻으러 갔다.
페도티치는 향긋한 비누로 씻고 나사 바지를 정성껏 다렸다. 선장, 소비에트 말로는 지휘관에게 갈 채비였다.
반카는 바닥에 뒹굴다가
쉰 대가리를 들었다.
“관둬, 페도치, 구멍 나겠다…… 켁켁!…… 해장술이나 좀 구해 와.”
미시카도 탁자 밑에서 소리를 냈다.
“좀 굴러서 신 양배추나 절임 국물이나 구해 와…… 맹세코 벽돌이 목으로 안 넘어가…….”
열두 시, 마지막 종이 울리자 셋이서 선장실로 갔다. 갑판장은 나무토막처럼 엄했고, 미시카와 반카는 죄지은 듯 붓고 구겨진 것이, 어떤 괴물이 씹고 또 씹다 뱉어 놓은 꼴이었다.
선장은 붓을 쥐고 있었다.
선장 앞에는 온통 칠한 천 조각이 있었다. 바다, 바위, 구름…… 선장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바라보다가 살짝 칠했다. 고개를 다른 쪽으로 넘기고 눈을 찡그리다가 또 칠했다. 목은 연통 같고 다리는 말뚝, 손은 닻의 날개, 손가락은 옹이, 등은 산등성이였다. 옛날식으로 푹 삶아진 좋은 선장이었다.
갑판장을 보고 버릇대로 뱃속에서 으르렁거렸다.
“뭐야?”
페도티치가 한 걸음 나섰다.
“저희가, 비흐토르 드미트리치…….”
“기다려. 바쁜 거 안 보이나.”
미시카와 반카는 선장을 눈으로 가늠해 보고 말 한마디 없이 똑같은 생각을 했다. 물에 빠뜨리려면 큰 돌이 필요하겠군…… 세바스토폴에서 장교들을 물에 빠뜨렸던 열여덟 해가 떠올랐다……
선실 벽에는 지도자들, 배 모형, 검은 비단 띠를 맨 기타가 있었다. 벽에 뒤통수를 붙이고 선저 기관장 체레미소프가 서 있었다. 흐물흐물한 다리를 까딱거리며 그분께 하사받은 시가를 빨았고, 생선 눈은 그림 쪽으로 돌아갔다.
“나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맹세코 나쁘지 않아요. 색조의 어우러짐과 색채의 조화가, 아시다시피, 썩 잘 잡혔습니다.”
선장은 선실 한가운데로 뒷걸음쳐 육중한 몸을 젖히고 눈을 찡그렸다.
“이보게, 저 바위들이 소리치는 것 같지 않나?”
겁 없는 갑판장은 뒤로 물러났고 체레미소프는 기침을 했다.
“바위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정말로, 그게…….”
“갈매기가 없는데요.” 반카가 말했다. “갈매기 없이는 바다가 바다가 아니죠…… 호수에도 오리는 있잖습니까…….”
선장은 무섭게 눈살을 찌푸렸다가 환해지더니 쩌렁쩌렁 하-호-호 웃어 젖히고 반카의 홀쭉한 배를 탁 쳤다.
“옳아! 나는 건전한 비평을 좋아해. 아주 옳은 지적이야…… 자네는 누군가?”
페도티치가 나섰다.
“저희가, 비흐토르 드미트리치…….”
옛옛 하고
네네 하고
일을 멋지게 층층이 쌓아 올렸다.
선장실에서 굴러 나왔을 때는 높은 자리를 꿰찼다. 반카는 보급 담당, 미시카는 취사병.
갑판으로 정치위원이 지나갔다.
단짝들이 수레바퀴처럼 그에게 굴러갔다.
“옷 내놔요, 정치위원 동무!”
“찢어지고 해졌어요, 정치위원 동무!”
반카는 터진 구두를 신은 발을 뒤집어 보였다. 미시카는 정치위원 코앞에서 갈가리 찢어진 스웨터를 털었다.
“구경 좀 하시죠, 정치위원 동무.”
“그런데 후방에 있는 것들은, 개 아가리…….”
정치위원은 슬금슬금 옆으로 빠져나갔다.
“개인 비서에게 보고서로 보고하시오, 비서가 내게 보고할 거요.”
“보고서는 무슨, 종이 낭비지…….”
“뻔한 일입니다, 정치위원 동무. 옷에 구멍 나면 옷 전체가 작살나고, 구멍을 안 기우면 구멍으로 떨어져 나가요…….”
동무들이 길을 막으니 정치위원은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갔다. 정치위원은 얼굴을 찌푸리며 호주머니에서 코안경을 찾았다. 그는 고함도 바다도 좋아하지 않았고 할당으로 함대에 보내진 사람이었다. 다리가 가늘고 목은 거위 같은데, 머리칼은 빽빽해서 싸움 두 판은 할 만했다.
“미안합니다만, 동무들, 증명서는 있습니까?”
“여기 증명서요.” 미시카가 바짓단을 걷어 아문 상처를 보였다. “백군 솜씨요…….”
반카는 깊은 호주머니에서 온갖 색깔의 위임장과 증명서와 확인서 뭉치를 꺼냈다. 단짝들 생각에 민간인 말로 얘기하는 것은 멍청함의 극치였다. 그래서 공손한 정치위원의 말투에 맞추려고 반카는 어느 소비에트 사무원처럼 말했다.
“부디 읽어 보십시오, 정치위원 동무, 구체적이 되어 주십시오…… 제발, 결국, 그런 친절을 베풀어 주십시오…… 실례합니다, 부탁합니다.”
옷을 긁어 받아 냈다.
나팔바지는 목요일부터 손을 댔다. 찌고 늘이고 다리고 풀칠하고 누르고, 안 해 본 짓이 없었다…… 하지만 일요일에는 나팔바지가 틀림없이 다 되어 있었다. 단짝들은 일품으로 차려입었다. 머리는 아라샬라로 내려뜨렸다. 유혹하는 잔수염을 비틀어 올렸다.
조금씩 걸쳤다.
“놀 거리나 찾아보자.”
“그러자.”
곱슬곱슬한 가로수 길을 거닐며 아가씨들에게 사납게 시비를 걸었다.
“어이, 마시카들, 발뒤꿈치가 뒤에 달렸네…….”
“아줌마, 거룻배에서 내린 거 아니지? 아니면 여기 내 닻 좀 잡아 봐.”
아가씨들이 쑥스러워했다.
“퉤, 개들!”
“풋나기 악마들!”
“개야, 진짜, 개야…….”
반카는 울긋불긋한 여자 밑으로 팽이처럼 파고들어 뒤에서 치마를 올리고 침을 뱉었다.
여자가 소리 질렀다.
“무슨 권리로?”
그러고는 어찌나 욕을 퍼붓는지
반카가 비틀거릴 정도였다.
미시카와 반카는 벤치에서 웃음에 부러졌다.
“하하하…….”
“가가가가가가가가가-아…….”
가로수 길은 재밌고, 곱슬곱슬한 데는 근사했다.
바람 속에서 전등이 흔들렸다……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음악이 먼지를 피웠다……
아가씨들이 떼로 다녔다…… 가로수 길은 레이스와 웃음으로 거품이 일었다.
저녁이 덮쳤다.
단짝들은 이리저리 쏘다니며 궐련을 태우고 낯익은 달을 쳐다봤다……
“아가셴카…….”
“병아리야…….”
못 들은 척 아가시카 맨다리 아가시카는
곁을 쿵쿵 지나간다……
모자는 베라식, 치마는 나팔꼴, 니스 칠한 띠로 조였다. 달려가고 뒤꿈치를 또각거리고 궁둥이를 돌린다…… 아이고, 망할 것……
아가시카를 쫓아가
양쪽 팔을 끼고
통통한 얼굴을 들여다봤다.
“잘난 척하게 됐냐?”
“돈이라도 많이 모아서 낯짝을 돌리는 거냐?”
“전혀요, 다 댁들 상상이에요…….”
꽃을 사 주었다. 빨간 것 파란 것, 온갖 것이었다. 값은 십만. 반카는 장사꾼 낯짝에 천만을 던지고 거스름돈은 사양했다. 잘 써라, 개야, 볶은 호두나 씹어라.
아가시카는 고양이처럼 꽃다발을 쓰다듬었다.
“왜 이런 쓸데없는 걸요, 이반 스테파니치? 과자나 사 주시지.”
“바보야, 맡아 봐, 얼굴빛이 좋아진다.”
미시카도 맞장구쳤다.
“사랑 나무에서 핀 꽃이야.”
아가시카는 고왔지만 슬펐다. 분 바른 코를 꽃에 묻고 어깨를 으쓱했다.
“음악은 왜 그쳤을까요?”
거닐고 거닐다가 지겨워졌다…… 늑대가 양을 끌듯 아가시카를 수풀로 끌고 가며 달랬다.
“새침 떨지 마, 안 깨져, 진흙으로 빚은 것도 아닌데…….”
“거기다 우린 널 사랑해…….”
“아, 미샤, 왜 그런 함부로 된 말씀을 하세요?”
“정말이야, 사랑해. 넌 우릴 사랑하냐?”
“사랑은 사랑인데 무서워요. 둘이니까요.”
끌고 갔다.
“둘이지 열은 아니잖아…… 아가시카, 관청처럼 질질 끌지 마…….”
“‘사랑해요, 사랑해요’ 하면서 네 사랑에는 아무 소득이 없잖아…….”
미시카도 거들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그냥 동기 부여야…….”
배로 돌아온 것은 늦어서였다.
취한 밤이 끈적끈적 한 발 한 발 끌려갔다. 망할 달을 구름 자루에 넣어 등짝에 지고 갔다.
단짝들은 비틀거리고 휘청거리고 들썩였다.
다리가 삔 것처럼 흔들흔들, 한 번은 보도로, 한 번은 옆으로. 개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문 앞 초인종을 뜯었다. 나무 울타리를 쓰러뜨렸다. 전차를 선로에서 밀어내려 해 봤는데 힘이 모자랐다.
굴러들어 갔다
약국으로.
“미안하지만, 부디, 이 잡는 고약 좀.”
약국이 잠에 겨운 눈을 부릅떴다.
“몇 개요?”
“미시카, 우리 몇 개지?”
“이백 개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아-아!……”
고함을 지르며
거리로 굴러 나왔다.
미시카와 반카, 반카와 미시카는 말을 엮었다. 반카는 미시카에게, 미시카는 반카에게 말 조각을 물어뜯어 뱉었다.
“아가시카랑 결혼할 거야…… 다만 너무 말랐어, 망할 것, 뼈다귀뿐이야.”
“질러, 따질 처지냐, 가랑이나 벌려 주면 되지.”
“걔는 장사하고 나는 돈 세고.”
“여차하면 한 대 칠 수도 있지, 몇 번 치고 대가리는 날개 밑으로.”
“동냥 조각은 어디로, 적선은 어디로…….”
“복무는 집어치우고, 모자는 귀에 걸고, 지팡이는 이빨에 물고 자-자-지-발라…… 대가리에 향수 한 병, 목에는 개의 기쁨, 마차꾼 수염을 움켜쥐고…….”
“놀아라, 친구야…….”
개의 기쁨은 넥타이다. 아가시카, 아가시카는 항구에서 잡화점을 한다.
6
쇠의 꽃, 잿빛 굉음 속의 우리 배. 옆구리에 배부른 윤기.
줄지어 늘어선 선실의 쇠 가슴.
탐욕스러운 해치의 입이 석탄을 내쉬었다.
이리저리 리벳으로 빈틈없이 누볐다.
새벽부터 밤까지 갑판에 뜀박질, 고함질. 밤부터 밤까지 배가 웅웅 놀았다. 넓은 바람 속에 돛줄의 쇠 힘줄과 돛 활대가 구우우우-유우우우……
둥근 재목 대신 쇠.
터빈의 숨 막히는 중얼거림에 뿔-룰-룰-풀크-룰흐, 액체 쇠의 파도. 참나무 물 들이고 타르 먹인 의장이 회오리 같은 기세로 위로, 옆으로 폭포처럼 내달아 돛대의 날개를 철썩, 철썩 쳤다.
아침의 따뜻한 젖통.
침실은 뜨거운 코골이 속이다. 젖내 나는 잠든 입이 헤벌쭉, 프챠…… 프챠…… 젊은이의 입술 사이에 침, 달아오른 뺨을 따라 침. 젊은 잠은 달콤하고 죽은 듯 취했다. 가슴마다 발그레한 심장이 비둘기처럼 구구거렸다.
그런데 쇠로 된 배의 심장은 쇠의 울부짖음 속에서 날뛰었다.
신호수가 불어 댔다.
주-주-주-주-주-주-주-우우우……
주-주-주-주-주-주-우우우……
기상.
침실로 페도티치가 뛰어왔고, 뒤에 당직 사관과 하사들이 왔다. 호루라기와 피리와 고함과 포효와 뱃사람의 야무진 기도를 들고, 십자가 행렬처럼 뛰어왔다.
“일어나, 해먹 묶어!”
“어-이, 젊은 나리들, 일어나-아-아!”
“일어나, 해먹 묶어!”
아침잠은 젊은 입맞춤보다 달아 떨어질 수 없다. 관급 외투 담요 밑에서 따뜻한 젊은 몸의 진한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불만스러운 눈이 성난 채 상관을 향했다.
“금방, 금…….”
“아가리들 벌리고는…….”
“일러, 왜 때도 아닌데 난리야…….”
하품 속으로,
담요 속으로,
코골이 속으로.
늙은 갑판장이 그토록 싫어하는 바로 그 말대꾸다.
페도티치는 두 번째 바퀴를 돌았다. 소란과 욕설과 사나운 넋두리를 몰고 왔다. 웃을 일이 아니다. 영감은 열두 해를 갑판장으로 살았고, 신부가 찬송에 맛 들이듯 고함에 맛을 들였다. 맨 끝의 풋내기부터 갑판장까지 실무로 복무 전체를 낱낱이 거쳤다. 뱃사람은 누구든 한 번 보면 값을 안다. 고함이 파도처럼 쏟아지지만 영감이 얼마나 순하고 무른지는 말로 못 한다. 두 번째 바퀴를 돌며 욕으로 채찍보다 아프게 후려쳤다.
“일어나!”
시간은 빠듯하다.
젊은 뱃사람들이 뛰어 일어나 몸을 긁었다…… 해먹을 끈으로 묶어 벽의 칸에 던졌다.
뒤꿈치의 우박.
세면장에 푸푸, 카악.
말 잘하는 놈들은 본 적도 없는 꿈 얘기를 했다.
“끓는 물 됐나?”
“옛!”
솥, 통, 잔, 호밀 건빵, 한 패 전체에 설탕 한 줌. 입술이 잔에 닿자마자 점호 신호. 씹을 틈도 없다. 다 던지고 총알처럼 위로 날아가라. 페도티치 말이 맞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뒤꿈치의 드럼 소리.
반 분도 안 돼 윗갑판에 대열이 실처럼 늘어섰다. 밤새 가라앉은 젊은 목소리로 점호가 쩌렁거렸다.
선장은 뒷갑판에서 페도티치를 대열 밖으로 불러내고 얼굴을 찌푸렸다. 선장은 욕설을 들었다.
“삼가게, 영감, 명령일세, 엄해…….”
“옛!” 갑판장은 규율에 따라 짧게 대답했지만 속이 메슥거렸다. 그는 불복한다는 뜻으로 오래 씩씩거리며 꼬부라진 파이프를 빨았다.
“뭐야?” 선장이 그에게 내리꽂혔다.
뜨거운 파이프를 호주머니에 넣고 손을 규정대로 붙이고는 타르 칠한 말을 마저 했다.
“포고령은 포고령이지요, 비흐토르 드미트리치, 그런데 우리 처지에는 센 말 없이는 안 됩니다…… 게다가 말은 밧줄이 아니라 때려도 안 다쳐요. 그저 목구멍이나 간질이는 거지요…….”
선장도 한창때는 욕이라면 질색이었다.
침울하게 고개를 돌리자
눈썹이 꺾이고 앙다문 입술이 독한 웃음으로 꺾였다. 선장은 말을 물어뜯듯 했다. 영락없이 마음속에 파도가 일고 있다. 페도티치는 제 주인을 세세히, 마지막 한 도까지 알았다…… 호통을 기다렸다……
“복무를 잊었군, 그러고도 늙은 갑판장인가!…… 군함 갑판장이 아니라 술집 기도 노릇이나 해라! 승조원을 풀어놨어! 추태야!…… 자네 사람들에 대해서는 내게 책임을 져야 해!”
“옛!” 페도티치는 잘게 눈을 깜빡였다.
선장 빅토르 드미트리치는 바다를 건넌 듯 무겁게 한숨을 쉬더니 마구 쏟아붓기 시작했다.
“대열에 설 줄을 몰라. 조여! 좌현 일 열은 이틀간 상륙 금지! 저녁에 앞갑판에서 「쓸쓸하구나 우리 바다」를 불렀다, 금지! 조타수 마르코프와 레핀이 무단으로 배를 비웠다. 일주일 상륙 금지에 당번 다섯 번! 당직 사관은 왜 못 봤나? 조사해서 문책해! 자세한 건 삼십 분 뒤 직접 보고해…… 어제 저녁 갑판 물청소 뒤에 환기구 뚜껑을 제대로 안 닦았다. 광이 안 난다. 용-납-못-해!…… 잘못한 자는 재량으로 벌하게!”
“옛!” 갑판장은 돌아서서 명령을 수행하러 내달았다.
그분이 다시 불렀다.
“잠깐…… 기다려.”
떨어지는 파도처럼 무거운 선장이 갑판장의 어깨를 탁 치고, 소박하게 무두질한 그의 거친 얼굴을 게걸스레 들여다봤다.
“욕 문제라면, 갑판장, 자네가 틀림없이 옳아. 내 혀도 근질거려. 그래도 삼가게…… 그-래…….”
선장이 한숨을 쉬었고,
페도티치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지요, 비흐토르 드미트리치, 크-으-은 폭풍이 오니 버텨야지요.”
“그래, 새로운 바람이 불어. 어쩔 수 없네, 영감, 버텨야지.”
넓은 물결로, 거센 돌풍으로 새로운 신나는 바람이 후려치고 불어 댔다.
온 배로 호령이 울리고 굴러갔다.
“삼 번, 칠 번, 좌현 중갑판에 집합!”
“움직여!”
“삼, 칠 번, 좌 중갑판!”
“뒤꿈치 올려!……”
“삼, 칠 번…….”
갑판장들과 하사들이 뛰어다니고 작업 배치가 시작됐다.
해는 발딱 일어섰고,
승조원도 발딱 일어섰고,
승조원이 배에 올라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걸레, 빗자루, 수세미.
모래와 톱밥이 철썩거렸다.
신나는 바다가 갑판에 엎어져 침실을 쓸었다.
보일러 목구멍이 물때 딱지를 토해 냈다.
화실이 그을음과 낟알 같은 석탄재를 푸푸 뿜었다.
터빈이 흐느꼈다.
윈치가 돌아 석탄재 통을 옆구리 구멍으로 쏟았다.
고함은 비로,
욕은 우박으로,
일은 소나기로.
해는 뜨거운 날개로 젖은 갑판을 치고, 더러운 발뒤꿈치를 간질이고, 뜨겁게 닦은 구리 부속과 난간에서 웃음으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손은 어린애 것인데 움켜쥐는 데 능하고 한패로 움직였다. 눈은 돛이었다, 바람을 머금은.
페도티치의 목청은 오-호-호.
“자자, 빨리, 얘들아!…… 뛰어!…… 브리킨, 뛰-어-어!”
일이 제일 뜨거울 때 어떤 멍청이가 산책 나온 듯 걸으며 배를 늘어뜨리면 보기만 해도 메스껍다. 대가리를 뽑아 버려야 한다, 개새끼, 복무를 좋아하지 않는다.
“뛰어-어-어!……”
페도티치의 일은 그런 것이다. 승조원 누구에게도 일 분의 쉼을 주지 않고 모두에게 일을 찾아 주는 것. 아침부터 밤까지 내몰고 또 내몰아 사람 죽사발에서 진짜 뱃사람을 만드는 것. 그래서 선임 갑판장이다.
신호수의 날쌘 손에서 색색의 깃발이 철썩였다. 배 뱃속에서는 젊은 뱃사람들이 교관의 감독 아래 발동기를 분해하고 기계 부품을 익혔다.
함교에서 부함장이 뛰어다녔다. 작고 앙칼지고 찰거머리 같았다. 천 명 군중에 던져 놔도 대번에 군인인 줄 안다. 자세, 머리 놓임, 몸통이 독수리다. 소리 지르는 버릇은 어릴 때부터 남아 있었고, 자리도 그걸 요구했다. 소리를 못 지르면 그게 무슨 놈의 부함장인가?
부함장은 성나 있다. 어제 깃발 내리는 데 평소의 육 초가 아니라 삼십 초가 걸렸다. 치욕이다, 도대체 뭐냐, 짐승들! 부함장은 침울하고, 부함장은 비탄에 잠겼다. 그는 정확함과 제 배를 사랑한다. 잠을 설치고 아침밥도 안 건드렸다. 마음이 어수선하다.
함교에서 몸을 숙이고 앞갑판에 소리쳤다. 앙칼진 소리에 독을 태웠다.
“침 뱉지 마!…… 난간에 매달리지 마!…… 걸음 빨리!…… 나자렌코, 당번 둘!……”
앞갑판에는 갑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펴 놓은 돛천 위에 당직을 마친 화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석탄 먼지가 앉은 가죽을 해가 핥았고, 바람이 허파를 쐬어 줬다. 화부들은 음울하게 즐거운 얼굴로 함교를 흘겨보며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았다.
“짖어라, 짖어라, 소비에트 밥값을 벌어라.”
“오늘따라 뭔가 사납네…….”
“착했던 적이 없어.”
“버텨라, 갑판 놈들, 내몰릴 거다.”
“개새끼가 왜 그리 소리를 좋아할까?”
“귀족인 데다 사관생도 출신이야, 신상 조사서 못 봤어?……”
“아-아…….”
“그래 보이더라니…….”
정박지의 푸른 물결 위에 보트들, 노 젓기 훈련이다. 호령에 맞춰 노가 고르게 떨어지고 노잡이들이 몸을 젖혔다.
“노!……”
“구분 동작, 서두르지 마!……”
“물-로! 하나, 둘!……”
“하나, 둘!……”
“밀어!……”
“양쪽 뒤로!……”
“노 들어!……”
“쉬어!……”
“노래 시작!……”
선두 노잡이들이 뽑는다.
강이 흘-러 흐르네-에-에,
시내에서 여-어-울-로.
아-가씨 뒤를 수병이
쫓-아가-네 머-얼-리……
백 개의 목청이 쩌렁쩌렁 울렸다.
한 해가 가-고 딸이 오-네
어머니께 시-름-겹게,
품-에 안겨 누워 있네
귀여운 수-병-아-이……
바다가 그네를 타고,
노래가 그네를 타고,
번쩍이는 갈매기 울음이 그네를 탔다.
주-주-주-주!…… 주-주-주-우!……
수영 신호.
승조원이 배 옆으로.
페도티치가 왼쪽 끝 놈들을 북돋웠다.
“봐라, 겁먹지 마…… 물은 불이 아니다, 겁낼 거 없어…… 관급 배때기 조심해라…… 머리 숙이고 손 먼저!”
“옛!”
갑판장이 손을 뻗었다.
“차아-렷!”
대열이 얼어붙었다.
“하나, 해!”
셔츠는 갑판에.
“둘!”
갑판에 바지.
“셋!”
뒤꿈치는 배 밖으로.
거품과 물보라 속에 볕에 그은 몸뚱이들. 뜨거운 눈의 물보라. 거품과 물보라 같은 고함.
배 위에서 페도티치는 손을 휘두르며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호호호호호호호호호-오-오-오-오!……”
점심 국에는 드문드문 곡식 낟알과 청어 갈비뼈. 둘째 접시에는 기장 한 숟갈. 호밀 건빵이 살렸다.
“........” 병영 생활에 얼이 빠진 콤소몰 대원 이바뉵이 짧게 욕을 했다.
“맞추긴 해도 불진 못하네.” 좀 대담한 누가 받았다.
먹어도 배부를 줄 모르는 자크로예프가 침울하게 욕을 웅얼거렸다.
“자크로예프, 넌 욕 근절 위원회 위원이잖아?”
“에이, 다 관둬…….”
그렇게 얘기나 하고 나면 그걸로 괜찮다.
점심 뒤 쉬는 시간이나 저녁에는 붉은 구석방에 몰려들어 신문과 사서와 온 세계 부르주아지를 뜯어냈다.
뒷갑판에는 링, 아령, 러시아-프랑스식 씨름. 발랄라이카가 떨었다. 합창반이 포효했다.
딩-뇽…… 딩-뇽……
배마다 불빛이 꽃피었다. 잠은 일곱 시간, 일 분도 더 안 된다. 밤이면 침실과 갑판에서 젊은 뱃사람들이 꿈속에 뒤척이며 잠결에 웅얼거렸다.
“이젝터…… 관로…… 밸브…… 자기장…… 고정 너트…… 온도 동무들…….”
7
날쌔고 일 잘하는 미시카와 반카는 무슨 부랑자가 아니다. 판이 큰 놈들이다. 스텐카 라진의 찢겨 나온 후예, 맞다. 무모한 짓을 사랑한다, 그것도 맞다.
수병…… 그 말 하나만 해도 값이 얼마냐! 폼을 잡아야 한다. 또 말하자면 무모한 짓이 흠이 아니던 때가 있었다. 나간 권총과 빵 덩이처럼 단순한 말이 다 덮어 주었다. 요 씨...... 세월에는 송아지 같은 순함이 대접받는다. 아르신 자와 루블과 팔꿈치만큼 긴 혀가 대접받는다. 미시카와 반카는 결코, 결코 그걸 이해 못 한다. 그런 누룩으로 빚은 놈들이 아니다.
있었지…… 에이, 말만 하다 말 일이야!
있었지, 미시카와 반카 속에서도 폭풍이 포효했던 때가. 거품 문 나날이 그들을 뚫고 후려쳤다. 인생이 아니라 크랜베리였다.
숲을 쓰러뜨렸다.
불의 강들을 뛰어넘었다.
산을 몰아냈다.
구름을 짓밟았다.
우레를 꺾었다.
그런 놈들이다, 나쁘게 생각 마라.
지금 말고 옛날에, 미시카의 가슴속에, 반카의 가슴속에 마당의 쇠사슬 개처럼 크-으-은 신이 날뛰었다. 엄니 달린 신, 수병의 신이었다. 그 신과 함께라면 총원 작업도 즐거웠다. 어떤 무서움도 안 무서웠다. 내놔라, 그리고 못 박아!
하이다마크는 총검으로.[3]
부르주아…… 네 혼을 빼 주마.
페틀류라는 올가미로.
오렌부르크로 폭풍처럼.
카잔 너머로 우레처럼.
볼가를 늑대처럼.
우랄을 우라 하며.
폭풍은 뿔로 받고.
궁전은 바람에 날려.
불의 강들이 웅웅거리고 철썩였다…… 끄는 힘이 웅웅거렸다…… 털북숭이 심장이 연기를 피웠다…… 땅은 윙윙거리는 물결로 꽃피었다.
혀가 달아올랐다.
그 시절에, 고삐를 다 풀어 줬더라면…… 온 세상을 관통해 버렸을 것이다. 불길의 떼로 바다를 태우고 산을 뜯어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재수 없게, 슬프게도, 멈춰, 기계가 헛돌기 시작했다. 어이쿠 잡아라, 손아귀에 구멍이다.
신이 닳고 해졌다. 가죽도 낯짝도 없다. 이름만 신, 신일 뿐 볼 것이 없다. 말할 것 없이, 불의 고비에서 녀석들도 닳아 빠졌다. 더위에 머리카락이 타닥거렸고 눈이 터졌고 살가죽에 성한 데가 없이 멍과 까진 데투성이었다.
숯이 되도록 그을리고, 멀미 나고, 털렸다……
그래도 쓰러지지는 않았다. 손은 일했고 발은 뛰었고, 한데 엉킨 목구멍이 울렸다.
“내-에-놔-아-라! 신, 신의 새끼들, 성인들까지!……”
신은 수병의 객기를 못 견디고 뻗어 버렸다. 악취, 연기, 썩은 내가 코로 치받았다. 멍에도 없고 말도 없다. 채찍을 쥐었는데 몰 놈이 없다.
그리움,
임종의 때,
메스꺼워라.
오늘도 화물칸, 내일도 화물칸. 한 역에서 한 주일 박혀 있다가 다른 역으로 옮겨 거기서 또 한 주일 뻐꾹댄다. 소총은 녹슬고 기관총에는 푸른 곰팡이가 슬었다.
여자들을 들였다.
여자들은 일품으로 골랐다. 억지로나 멱살을 잡아서라고는 생각도 마라. 천만에. 절대, 그럴 리 없다. 뱃사람은 그런 짓은 안 한다. 그저 어느 투박한 여자를 눈으로 찍으면 바로 다가가 돈 자루를 흔들고 미국 말을 쏟아 내기 시작한다. 절대적으로, 개연적으로, 기타 등등…… 그쪽도 뭘 원하는지 뻔하니 잠깐 빼다가는 이렇게 나온다.
“아, 내 심장은 사랑에 데었어요!”
그럼 그때 덥석 잡으면 된다.
화물칸에는 무쇠 난로, 침상, 군장 자루, 잡동사니 보따리, 늘인 끈에 속옷. 낮에는 시장 탁자에서 행운의 뽑기를 돌리고 구운 소시지를 삼키고 소동을 피우고 마누라와 병을 때렸다. 밤새 쾌속 보트를 타고 놀았다. 역과 간이역, 역장과 이……
어디선가 민간인 선동가들이 나타나 소매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동무들, 노동 전선입니다…… 소총을 삽과 망치로 바꾸십시오…… 붕괴를 쳐부수십시오…….”
형제들은 시큰둥했다.
“하.”
“흐.”
“뭔 소리야?”
“우리가 네 눈엔 호구냐?”
“개 내장 같으니.”
“갈보 정수리에 도끼를.”
목소리가 제각각이었다.
모두의 눈이 석탄 구덩이처럼 캄캄했다.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미시카와 반카는 날았다…… ...................................................................
봄 샘은 날쌔고, 흘러내린 물줄기는 줄달음친다. 봄물은 세고 뜨겁다. 포효하면 못 막는다. 실컷 놀아라, 파르티잔의 심장아. 바다에서, 먼지 낀 길에서 피로 철썩거려라. 거친 아시아 바람에 몸을 헹궈라. 입을 가득 벌리고 기쁨을 삼켜라. 우르릉 끓는 너른 땅을 들이켜라. 자유로운 자유 나날의 꿀 낟알을 들이켜라. .........................................................................
초원은 넓다.
장난꾸러기 바람은 못 막는다.
피는 달다.
춤추는 술.
거센 불, 끓는 불.
찰박찰박 이슬.
졸졸거리는 시내.
아가씨들은 붉은 꽃, 비둘기처럼 말랑해 매듭으로 묶어도 된다.
나는 통 위에 앉아
다리를 내렸네,
수병이 찾아오면
신날 거라네……
“앉혀!”
“박아!”
“누더기로 찢어라, 조각으로 갈라라!”
“둥글게 더 넓게!”
“내놔, 내-놔-아!”
새빨갛게 단 난로를 발로 차서 문밖으로.
“쏟아라, 다 마셔 없애고 손풍금만 남기고 갈……들 춤추게 하자…….”
다리가 춤추고,
화물칸이 춤추고,
초원이 춤춘다……
고요한 녹음의 늪에 고인 간이역, 작은 정원을 수놓았다. 창에 꽃, 모기 막으려는 거즈 커튼. 창에 썩고 배부른 낯짝들.
“왜 저런 거야?”
“피로, 관 뒤집어!”
“쳐!”
쾅,
쾅,
쨍…… 쨍그랑……
쾅, 쾅!
기차가 “두-두우우-두.”
떠났다, 먼지를 일으켰다.
기관사 배에 브라우닝.
“멈추지 말고 몰아.”
“어디로요?”
“눈 닿는 데로…… 몰고 또 몰아, 막다른 선에만 날아가지 마.”
“알겠습니다.”
“전속력.”
“보일러가 터집니다.”
“될 대로 질러!”
“축받이가 과열됩니다.”
“전속력, 혼 빠지고 짚신 거꾸로 들 때까지.”
“옛.”
“찢어.”
타-타-타…… 타-타-타…… 타-타-타……
타-타-타…… 타-타-타…… 타-타-타……
쉬-프…… 쉬-프…… 쉬쉬-쉬-쉬……
타-타-타…… 다-다-다…… 다-다-다……
기관차는 콧김 속에,
기관차는 거품 속에,
먼지는 먼지로……
묵직한 바람이 짙게 철썩이고 불탔다…… 풀이 뙤약볕으로 불타고 철썩였다…… 기차가 달리고 산을 파고들고 달려 터널을 뚫었다. 불길이 떼 지어 돌아다녔다…… 쑥빛 초원이 달렸다…… 길이 홍수처럼 웅웅거렸다.
도시와 마을을 짓밟으며 붉은 놈들, 흰 놈들, 잿빛 놈들과 거-어-어-먼 패거리가 달렸다. 벼린 산이 달리고 곧추서고 집게발을 벌렸다. 털 많은 먹구름이 짐승처럼 달리며 꼬리로 노는 강물을 흐려 놓았다.
파르티잔이 달렸고
쓰러졌고
달렸고
뱉어 냈다
타닥 소리, 우레, 쾅쾅, 호호, 욕을…… 총알로 쏘아 죽이고, 강도질 나날의 여문 낟알을 던지고 또 던졌다.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한 광주리씩.
인생은, 말하자면, 바닥도 기슭도 없다……
뒈지면서 신은 놈마다 낙인을 두 개씩 찍었다.
무모함과 한눈팔지 마.
있었던 일은 다 떠내려가고 사라졌다. 아무것도 없었던 듯이. 미시카와 반카는 춤추며 제 길을 달렸고, 한 십자가로 성호를 긋고 한 기도로 기도했다. 한눈팔지 마.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없었고 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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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어떤가?
어영부영, 건들건들. 조용조용 살살 살았다.
솥과 보급 창고는 모닥불이다. 또 맞춤한 계명도 있다. 돈은 삽으로 퍼라. 한 덩이 뜯고 수풀로. 또 말하자면, 누구든 밀가루를 나르면서 어떻게 밀가루를 안 묻히나? 뭘 입을 비틀어, 바른대로 말해야지.
일은 돌아가고 사무실은 쓰고, 반카와 미시카는 돈을 긁는다.
돈은 샘처럼 나오고 옷은 튼튼한데, 어쩌랴, 단짝들 눈에 뱃살림이 마뜩잖다. 뒤틀린 살림이다. 온갖 세포에, 학교에, 문화 위원회에 시달리고 소모임이 빙빙 돌려 댔다.
날마다 시간마다 구멍이 뚫린 듯 총회, 회의, 강연, 보고, 그것도 똑같은 얘기다.
“우리는 동무들이고, 여러분도 동무들이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다, 어림도 없다.
미시카와 반카는 정치위원을 찾아갔다.
“이렇고 저렇습니다, 정치위원 동무…… 저희는 자각한 분자니까, 정치위원 동무, 정치에서 빼 주십시오…….”
정치위원은 낯짝을 돌렸다.
“……개 잡을 독약, 놀 수도 없고 뭣도 없네.”
그리고 좁쌀들과는 온갖 그런 일들로 지나가다 드잡이가 났다. 첫 소동은 하찮은 일에서 났다. 무슨 위원회 위원이 세면장에서 이를 닦고 있었다. 미시카가 손가락으로 튕겨 치약 가루를 세면대에 떨어뜨렸다.
“계집들 할 짓…….” 그러고는 갔다. 그러자 약이 오른 녀석이 뒤에다 대고 외쳤다.
“함부로 굴지 마, 이 귀쟁이야!”
“어쩌려고?” 미시카가 어깨 너머로 돌아봤다. “꼬맹아, 재수 없게 나를 패지는 말아야지…….”
“뭐, 네 낯짝에 줄 주먹이 없을 것 같아?”
미시카는 분해서 돌아서더니 녀석의 광대뼈를 쳤다.
“서캐야, 지금 네 복사본 하나만 남겨 주마.”
녀석은 발굽 뜨고 나자빠지더니 웃으며 뒹굴었다. 그러다 벌떡 일어났다.
당해 내지 못하면서도 미시카에게 덤볐다. 미시카가 또 찔렀다. 엉겨 붙어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건장한 화부, 곰보 코시카가 끼어들었다. 그가 무슨 위원회 위원을 한 아름 안아 배 밖으로 던졌다. 그걸로 겨우 떼어 놓았다.
그날로 총회를 열어 미시카를 재판하고 따졌다.
왜 재판이야? 그냥 말뿐이지 아무것도 아니다. 미시카의 검은 눈썹이 놀라서 이마로 기어올랐다.
“뭐가 문제야?…… 그래, 쳤다…… 그래, 싸웠다…… 찌르는 게 무서우면 세상 살지 말아야지!”
반카도 소리를 냈다.
“이게 뭔 폭행이야, 한 번 쳤을 뿐인데, 아무것도 아니지…….”
“닦아 놓은 이빨 두 개를 뺐소.”
미시카는 죄지은 듯 텁수룩한 대가리를 흔들었다.
“내 손이 무거워서.”
미시카에게 엄중 견책을 박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점심은 말할 것도 없다.
미시카가 제 사람한테는 숟가락을 꽂아도 설 만큼 솥에서 푹 퍼 주고, 젊은 놈들한테는 맹물을 뿌렸다. 애들은 통 앞에 앉아 푸푸거리고 또 푸푸거리는데 기슭이 안 보인다…… 미시카를 칭찬한다.
“이 망할 놈을 어둠에서 덮치거나 뜨거운 양배추국 통을 대가리에 씌워야지…….”
빌어먹을 좁쌀들…… 굶주린 시름에 대열에서 쓰러지고 눈이 이마 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미시카는 솥에 올라타고
피식피식 웃었다.
“너희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회의에 말도 많은데 먹을 건 개뿔도 없어. 물은 넉넉하지. 바다에 물은 많으니까. 사관실도 또 생겨났고 상관도 정원을 채웠어. 뱃사람이 굶는다는 말 들어 봤냐?…… 신의 애미를……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부르주아를 바지에서 털어 내고 상관과 정치위원 멱을 따. 에이, 세포 뱃사람들아, 서캐처럼 뒈질 놈들…….”
8
우레가 떨어졌고,
쓸 만한 살림은 박살 났다.
미시카와 반카는 앞머리를 잡혔다.
“걸렸냐?”
“무슨 증거로?”
“이러이러해서.”
“아하.”
“으흠.”
분자 숙청 위원회가 기어 나왔다. 그러고는 나쁜 말 한마디 없이 곧장 미시카의 귀를 잡았다.
“전문 분야는?”
“위대한 10월 혁명 드라고밀로보 구역 정치위원이오.”
“그러니까?”
“그러니까가 아니라 인민의 권리를 위한 참된 투사요. 아무 오해 없는 투사요, 그 점은 증인도 댈 수 있소.”
“배에서 하는 일은?”
“우리한테 무슨 일이 있겠소? 지금은 취사병인데, 열일곱 해에는 혁명을 나사 돌려 조였고 장교들을 물에 빠뜨렸고 또 선박 위원회 위원이었소.”
“흐-음…….”
망할 위원회가 눈짓을 주고받았다.
“부릴린, 배에서 내보내야겠소…… 지친 분자가 하나, 전문이 작은 게 둘.”
“알겠소, 복무가 끝난 거군요, 알겠소.” 그러고는 언짢은 미시카가 탁자에서 물러났다.
반카도 멱살을 잡혔다.
“전문 분야는?”
반카는 눈도 깜짝 안 했다.
“전기공에 선저 기관사요.”
“배수 체계에 대해 뭘 압니까?”
“아무것도 모르오.”
“킹스턴 밸브의 용도는?”
“똑똑히는 기억 안 나오.”
망할 위원회가 눈을 찡긋하더니 또 날을 안 세운 톱처럼 켜기 시작했다.
“주회로에서 조명 상자가 탔다고 합시다, 어떻게 고칩니까?”
“이 난리가 다 뭔 소용이요, 동무들?” 반카가 소리 질렀다. “침착하게는 못 견디겠소, 동무들…… 내 존재가 기술적 정치적 어법의 과잉에 시달립니다…… 아, 신이여 주여 애미를!……”
반카는 발작을 일으켜
나뒹굴었다.
반카는 머리를 바닥에 찧었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페도티치와 미시카가 붙잡았다.
“미친놈.”
“진짜로.”
“사람을 왜 괴롭히나, 건강이 병든 상태인데…….”
9
다음 날 아침, 옷도 신도 벗겨진 채 홀쭉한 자루를 등에 지고 미시카와 반카는 떠났다. 사다리에서 돌아서 마지막으로 다정하게 배를 둘러보고, 갑판에 도열한 젊은 승조원에게 가시 박힌 눈길을 던졌다.
“우우, 좁쌀들…….”
축음기 반카와 악어 미시카를 볕에 그은 눈들이 배웅했다. 그 눈 속으로 새 바람이 내달렸고, 젊은 해가 쏟아져 내렸다.
1922~1923
세바스토폴에서 모스크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