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 보조원 출신 앙골라 민족주의자, 작가 '우안넹가 시투'
가장 널리 읽힌 작품은 1974년 『마스터 타모다』로, 거만하고 식민지적으로 물든 말쟁이 '타모다 선생'은 앙골라 문학에서 하나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를 걱정하게 하는 것은 민중의 사회적 처지"라고 말했다.
필명 우안넹가 시투로 알려진 앙골라의 간호 보조원·민족주의자·작가. 1924년 8월 29일 이콜루 이 벵구 주 카롬보로카에서 태어났다. 1947년 딩게에서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을 조직하고 의료 보조원 자격을 취득했으며, 1957년부터 루안다 외곽에서 독립을 위한 비밀 활동을 벌이고 1958년 앙골라 해방군(ELA)에 들어갔다. 1959년 PIDE에 체포되어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1962년부터 1970년까지 카보베르데 타라팔 수용소에 갇혔으며, 그곳에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1970년 가석방으로 MPLA에 복귀해 루안다 시 조직부를 이끌었고 1974년부터 1988년까지 중앙위원을 지냈다. 2014년 2월 13일 루안다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942–19701942년부터 카테테-루안다에서 위생 요원으로 일했고, 1947년 간호 보조원 자격을 취득한 뒤 딩게·쿠이투·칼룸부·문구·카비리·봉 제주스 두 콴자와 벵겔라·루반구 병원의 보건소에서 근무했다. 1947년 딩게에서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을 조직했고, 1959년 PIDE에 체포되어 재판과 유죄 판결 후 1962년부터 1970년까지 카보베르데 타라팔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 1957–1958루안다 외곽에서 당시 태동하던 MPLA와 '에스팔랴 브라자스' 그룹과 연결된 전단 위원회를 통해 앙골라 독립을 위한 비밀 정치 활동을 벌였고, 1958년 앙골라 해방군(ELA)에 들어갔다.
- 1970–19881970년 가석방 후 MPLA에 복귀해 같은 해 루안다 시 조직부(DOM)를 이끌었고, 1974년 중앙위원이 되어 1988년까지 재임했으며 한때 당 지도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독립 후 혁명평의회에 임명되었다.
- 1979–1983루안다 주 위원 1979–1980년, 보건부 장관 1980–1983년.
- 1983–2000s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동독 주재 앙골라 인민공화국 대사(동독에서는 정치학도 공부)를 역임했고, MPLA 소속 국민의회 의원을 지냈으며 나이를 이유로 물러났다. 2009년에는 MPLA 소속 최고령 의원으로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