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경제학자에서 국민회의 보고자로
1991년 3월 10일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165,174표(14.21%)로 3위에 올랐다. 출처에 따라 162,498표로 적은 곳도 있다.
베냉의 작가·경제학자·정치가다. 1929년 포르토노보에서 태어났고 1960~1963년 다호메이 정보부 장관을 지냈다. 1991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의 공동 대의” 후보로 출마해 1차 투표 3위(14.21%)에 올랐고, 2006년 베냉 초대 공화국 조정관을 맡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58–1960파리에서 《반항하는 아프리카》·《일어서는 아프리카》를 쓰고 좌익지 《검은 학생》 편집장을 맡았다.
- 1960–1963다호메이 대통령실 차관·정보부 장관을 지냈다.
- 1964–하버드 국제문제연구소를 거쳐 제네바 국제문제대학원·조지타운대학에서 가르쳤다.
- 1991–1996국민의회 의원으로 외교·협력·개발·국방안보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 1996–1999기획·경제구조조정·고용촉진부 장관을 지냈다.
- 2006–2013베냉 초대 공화국 조정관을 맡았다.
관련 역사 사건
국제기구 관료와 중재자, 1965~2005
테보에즈르는 다호메이 정치에서 물러난 뒤 국제기구 관료의 길을 걸었다. 1965년 국제노동기구(BIT)에 노동력 계획 전문가로 들어갔고, 1966년 3월 1일 아디스아바바에서 아프리카 지역 조정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969년 1월 1일 부사무총장으로 승진했다. 1974년에는 국제노동기구 부사무총장급 자격으로 국제사회연구소 소장에 임명되었다. 소르본, 노스웨스턴대학, 코트디부아르 국립대학에서의 강의도 병행되었다.
국제노동기구 재직 뒤에는 사회 전망 연구에 힘을 쏟았다. 1976년 자신의 주도로 창설된 세계사회전망협회(AMPS)에 1984년 1월 1일부터 전념했고, 1987년에는 범아프리카사회전망센터(CPPS)를 세웠다. CPPS는 1989년 유럽평의회와 아프리카통일기구가 함께한 아프리카-유럽 회의와 제1차 포르토노보 인권포럼을 열어 ‘연대 계약을 위한 포르토노보 선언’을 채택했고, 아프리카 인도적 구상의 모체가 되어 대호수 지역 난민을 위한 의료·영양 지원에 나섰다.
2003년 2월부터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코트디부아르 특별대표를 맡아 리나마르쿠시 협정 이행을 둘러싸고 내전 당사자들을 중재했다. 그는 2004년 11월 24일자 서한으로 사임을 제출했고, 유엔은 그 효력이 2005년 1월 말에 발생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어 위키백과는 임기 자체를 2003년 2월~2005년 2월로 적으면서 2004년 12월 사임을 따로 기재하고 있어 종료 시점이 일관되게 전해지지는 않는다. 스웨덴 출신 피에르 숄레는 2005년 4월 1일자로 후임 특별대표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