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콘스탄티노비치 코로부슈킨

Александр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Коровушк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9–1976 ○ 자연사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흐루쇼프에게 모자를 던졌다는 은행가

1963년 해임을 둘러싼 경위는 증언마다 엇갈린다. 측근들은 그가 술기운에 흐루쇼프에게 전화해 욕설을 들었다고 하고, 경호원의 증언은 다차 산책길의 대면 충돌에서 그가 모자를 벗어 던졌다고 전한다.

볼로그다현 로파리카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7년제 학교를 마치고 1923~1929년 회계원으로, 1929~1930년 클럽 관리자와 촌소비에트 의장으로 일했으며, 1936년 레닌그라드 재정경제연구소를 졸업하고 1937년 당에 입당했다. 1940년부터 고스방크 중앙기구 국장들을 맡아 1953년 소련 재무차관, 1958년 국가은행 총재가 되었고, 1959년 은행체계 개편과 1961년 10:1 화폐개혁을 이끌었다. 1963년 흐루쇼프와의 갈등 끝에 총재직에서 물러났으나 탄압은 받지 않았고, 이후 러시아공화국 재무부에서 국가수입·산업금융 국장과 콜레기움 위원으로 재직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1961년 화폐개혁

코로부슈킨의 고스방크 총재 임기 최대 사업은 1961년 화폐개혁이었다. 1960년 5월 4일 소련 각료회의가 10:1 디노미네이션을 골자로 한 결의 제470호를 채택했고, 흐루쇼프는 다음 날 최고소비에트에서 이를 공식 발표했다. 개혁에 반대하고 디노미네이션과 물가 상승의 동시 진행을 우려한 즈베레프 재무장관은 1960년 5월 16일 물러났으며, 후임 가르부조프와 코로부슈킨이 개혁을 주도했다.

1961년 1월 1일부터 1947년형 지폐와 구주화는 3개월간 10:1로 1·3·5·10·25·50·100루블권 새 지폐·주화와 교환되었고, 임금·연금·예금·물가·요금도 같은 비율로 재계산되었다. 새 화폐는 크기가 대폭 작아져 '흐루쇼프의 사탕 포장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공식 환율은 10:1이 아닌 4.44:1로 조정되어(1달러=90코페이크) 루블의 대외 가치는 실질적으로 절하되었고, 금 함유량은 0.222168g에서 0.987412g으로 바뀌었다. 교환 후 코로부슈킨과 가르부조프는 '1961년 화폐개혁'이라는 명칭을 공식화할 것을 제안했으나 중앙위원회는 거부했다.

1961~1962년 재무부·국가계획위원회 평가에서는 새 루블이 수입품 대비 약 2.25배 과소평가된 것으로 나타나 대외 구매력이 같은 배수만큼 떨어졌고, 비규제 시장 물가는 공식 환산율의 10배가 아니라 약 4.5배 수준에서 움직여 실질 물가는 두 배 이상 올랐다. 그럼에도 10진법 화폐 체계는 회계와 유통을 단순화했고, 소형 지폐와 새 주화는 발권 비용을 줄였다.

코로부슈킨의 임기는 1959~1963년 은행체계 개편과도 겹친다. 1959년 4월 특수 장기신용은행들이 정리되면서 셀호즈방크·체콤방크·지방 공동은행이 폐지되고 그 기능이 고스방크와 프롬방크를 기반으로 세워진 스트로이방크로 넘어갔다. 스트로이방크는 1961년 재무부에서 분리되었고, 1963년에는 고스방크가 재무부로부터 국가노동저축은행 체계를 넘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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