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흐루쇼프에게 모자를 던진 은행가
흐루쇼프가 욕설을 퍼붓자, 코로부슈킨은 조용히 모자를 벗더니 땅에 침을 뱉고는 그것을 당 제1서기의 어깨를 향해 집어던졌다.
볼로그다 농민 가정 출신으로, 회계원과 촌소비에트 의장을 거쳐 레닌그라드 재정경제연구소를 졸업하고 소련 금융계에 진입했다. 1940년부터 고스방크에서 두각을 나타내 1953년 재무차관, 1958년 국가은행 총재가 되었으며, 1959년 은행체계를 개편하고 1961년 10:1 디노미네이션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963년 현금 부족 해소를 위한 초과 발권을 놓고 흐루쇼프와 직접 충돌해 해임되었으나, 이후 러시아공화국 재무부에서 산업금융을 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경력 연표
- 1923–1936회계원·클럽 관리자·촌소비에트 의장을 거쳐 레닌그라드 재정경제연구소 졸업
- 1936–1940레닌그라드 시·주 공동은행 관리자, 시 재정과장
- 1940–1953고스방크 중앙기구 각 국장, 잡지 《화폐와 신용》 편집장, 이사, 부총재
- 1950–1955대외무역은행(브네슈토르그방크) 이사장
- 1953–1958소련 재무차관
- 1958–1963국가은행 총재 — 1959년 은행체계 개편, 1961년 10:1 화폐개혁 단행
- 1963–1976러시아공화국 재무부 국장(국가수입·산업금융), 콜레기움 위원
1961년 화폐개혁
코로부슈킨의 고스방크 총재 임기 중 가장 큰 사업은 1961년 화폐개혁이었다. 1960년 5월 4일 소련 각료회의는 10:1 디노미네이션을 골자로 하는 결의 제470호를 채택했고, 니키타 흐루쇼프는 다음 날 최고소비에트에서 이를 공식 발표했다. 이 개혁에 반대했던 아르세니 즈베레프 재무장관은 결의 채택 직후 사임했으며, 그의 후임 바실리 가르부조프와 코로부슈킨이 개혁을 주도했다.
1961년 1월 1일부터 구권은 3개월간 10:1 비율로 새 지폐·주화와 교환되었고, 임금·연금·예금·물가도 동일 비율로 재계산되었다. 새 화폐는 크기가 대폭 축소되어 '흐루쇼프의 사탕 포장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공식 환율은 10:1이 아닌 4.44:1로 조정되어(1달러=90코페이크), 루블의 대외 가치는 실질적으로 절하되었다. 개혁 직후 코로부슈킨과 가르부조프는 중앙위원회에 '1961년 화폐개혁'이라는 명칭을 공식 사용할 것을 제안했으나 중앙위원회는 이를 거부하고 '가격 척도 변경 및 구권 교환 조치'라는 무미건조한 표현을 고수했다.
이 개혁으로 루블의 구매력은 대외적으로 약 2.25배 과대평가된 것으로 드러났고, 시장 가격은 공식 환산율을 따르지 않아 실질적인 물가 상승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10진법에 기초한 새 화폐 체계는 회계와 유통을 단순화했고, 소형 지폐와 주화의 도입으로 생산 비용이 절감되었으며, 자동판매기 등 새로운 상거래 방식을 촉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