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대숙청을 피해 망명한 소련 GRU 준장: 극소수 생존자
「내가 책을 쓸 때면 마치 묘지를 걷는 듯하다. 내 친구와 평생의 동지들은 모두 총살되었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무슨 실수처럼 느껴진다」 — 『살아남은 자』(1945)
소련 군사정보국(GRU) 장교이자 외교관으로, 프랑스 주재 GRU 레지던트와 그리스 주재 대리대사를 역임했다. 대숙청이 한창이던 1937년, 동료들이 차례로 사라지고 아들이 보내온 편지에서 미하일 투하쳅스키 원수의 처형 소식을 접한 뒤 아테네에서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OSS에서 복무하고 16년간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러시아어 방송 책임자를 지냈다. 1945년 회고록 『살아남은 자』에서 '내가 집필할 때면 마치 묘지를 걷는 듯하다. 내 친구와 평생의 동지들은 모두 총살되었다'라고 썼다.
경력 연표
- 1919붉은군대 입대, 러시아 내전 참전; RCP(b) 입당
- 1920–23보병장교학교·프룬제 군사아카데미 동양학부 수학
- 1921–25투르케스탄 전선 RVS 전권대표, 부하라 총영사, 페르시아 길란 총영사
- 1929–32파리·밀라노·브뤼셀 소련 통상대표부 근무
- 1934–35아프토모토엑스포르트 청장; 아프가니스탄 주재 소련 대표부 1등서기관
- 1935–37프랑스 주재 GRU 레지던트; 그리스 주재 소련 대리대사
- 1937.7그리스에서 프랑스로 망명 — 초기 고위급 소련 정보장교 망명자
- 1940–44미국 이주; 미육군 사병 복무 후 OSS(전략첩보국) 근무
- 1948–64미국의 소리(VOA) 러시아어 방송 책임자
- 1964–72미국 정보국(USIA) 소련 담당 고문
관련 역사 사건
망명: 아들의 편지와 《루주타크》호
1937년 초 바르민은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반대파 재판이 조작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아테네로 돌아온 그는 동료들에게 재판의 진위에 대한 의심을 털어놓았고, 이 대화 내용이 곧 모스크바에 알려졌음을 감지했다. 7월, 동료들이 그의 책상을 뒤지고 사무실을 수색하는 것을 발견한 직후, 14세 아들 보리스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사랑하는 아빠, 학교에서 트로츠키주의 간첩 투하쳅스키, 야키르, 코르크, 우보레비치, 펠트만에게 내려진 판결문을 읽었어요… 펠트만은 우리 아파트에 살던 분 아닌가요?" 아들은 자신과 동생, 할머니가 "바다에서 목욕하러 멀리멀리 간다"고 썼다. 이는 가족이 이미 NKVD의 통제 아래 놓였음을 암시하는 암호였다. 같은 달, 소련 외교 공관에도 사전 통보 없이 증기선 《루주타크》호가 피레아스 항에 갑자기 입항했다. 선장은 바르민에게 배에서의 만찬을 집요하게 권유했고, 바르민이 거절하자 육지의 식당에서 그에게 귀국을 강력히 종용했다. NKVD 요원들에게 끊임없이 미행당하던 바르민은 프랑스 주재 GRU 레지던트로 근무했던 파리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이 시기 소련은 서유럽 정보망 책임자였던 이그나츠 레이스를 스위스에서 암살했다. 휘태커 체임버스는 훗날 회고록에서 "내가 아는 네 명 중 바르민만이 사냥꾼들을 따돌렸다"고 기록했다. 바르민은 1937년 7월 18일 그리스에서 프랑스로 망명했고, 프랑스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허가를 받았다. 그는 생애 다시 가족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