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라클뤼즈의 뒤를 이어 공안위원회에 들어갔다가 유형지에서 죽은 화가
1841년 나폴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화가로, 로자 보뇌르에게 배웠으나 살롱이 그의 그림을 받아 주지 않아 인정받지 못했다. 파리 포위 중 국민방위대원이자 14구 감시위원회 위원으로 조직 능력을 보였다. 1871년 출마하지 않았는데도 14구에서 코뮌 평의회 의원으로 뽑혀 공공 서비스위원회와 재정위원회에서 일했다. 공안위원회 설치에 찬성했고, 들라클뤼즈가 전쟁 대표가 되자 그를 대신해 공안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피의 일주일 중 체포되어 유형을 선고받았으나 병이 깊어 감옥에 남았고, 1875년 3월 탈옥했다가 다시 잡혔다. 스스로 뉴칼레도니아 유형을 청해 1877년 도착 직후 누메아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알프레드 비요레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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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파리 코뮌(1871)코뮌 의원·공안위원회 위원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871.03.26–05.28파리 코뮌 평의회 의원 (14구)
- 1871.05.10–28파리 코뮌 공안위원회 위원
- 1871–1877체포·투옥, 뉴칼레도니아 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