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살림 알비드

علي سالم البيض
예멘 사회당 마르크스-레닌주의 예멘 예멘 1939–2026 ○ 망명 중 사망

남예멘의 마지막 지도자

1986년 1월 무력 충돌에서 알리 나시르 무함마드에게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살아남아 2월 예멘사회당 서기장에 올랐다.

남예멘의 혁명 지도자로 예멘사회당 서기장으로서 남예멘의 마지막 시기를 이끌었다. 압둘파타흐 이스마일의 동맹자로 1986년 1월 아덴 무력 충돌에서 살아남아 알리 나시르 무함마드 세력이 패퇴한 뒤 당·국가 지도권을 장악했다. 1990년 통일 예멘의 초대 부통령이 됐으나 1993년 사임하고, 1994년 내전에서 단명한 예멘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망명 뒤에는 남부 독립운동 알히라크를 이끌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망명과 알히라크 지도(1994~2026)

남부의 군사적 입지가 약화되던 1994년 5월 21일 알비드는 아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예멘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고, 7월 7일까지 그 유일한 대통령으로 있었다. 오만으로 망명한 뒤 약 15년 동안 정치 활동을 중단했던 그는 2009년 5월 통일 19주년을 앞두고 오스트리아 키츠뷔헬에서 방송 연설을 통해 남예멘의 회복을 요구하며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이 연설은 1990년 통일 협정 위반, 남부 주민의 토지와 사업체 강제 수용, 전직 남예멘 군인과 관료의 강제 퇴직·해고를 주요 쟁점으로 제기하고 남부를 군사 점령 상태로 규정했으며, 확대되던 남부 운동을 직접 겨냥했다. 그의 연설과 성명은 남부에서 널리 유포되어 참가자들이 그의 초상을 내걸었고, 2009년 아브얀 회합에 모인 남부 운동 여러 조직은 그를 의장으로 하는 임시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남부 운동은 처음부터 분산된 지도 체제를 지녔기 때문에 그를 전체의 대표로 인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남부 운동 내부에는 비폭력 노선을 둘러싼 이견과 조직 간 경쟁이 있었고, 남부 출신 무장 인사 타리크 알파들리는 그가 남부 주민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오만 당국은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에게 체류를 허용했기 때문에 그는 남부 정치 활동에 나선 대가로 오만에 머물 권리를 상실했다. 이후 2009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겨 남예멘 국가 회복을 위한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레바논 베이루트로 근거지를 옮겨 언론·정치 활동을 넓히면서 남부 운동의 주요 계파 가운데 하나를 이끌었다. 망명 상태의 그는 남부의 국제적 대변인 역할을 했고, 남예멘 망명자 사회의 네트워크와 접촉을 유지했다. 2010년 무렵 남부 운동은 세속적·사회주의적 과거를 기억하는 층과 통일 이후 종교적 색채가 강해진 층이 뒤섞여 있었고, 그의 위치도 남부 전체를 조직적으로 통일한 지도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2017년 아이다루스 알주바이디를 중심으로 남부과도위원회가 남부 운동의 한 계파로 결성되어 남부 독립을 별도로 추진했고, 2025년 12월에는 남예멘 옛 영토 대부분을 장악하는 공세에 나섰다가 2026년 1월 사우디 지원을 받은 세력의 반격으로 아덴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을 상실했다. 알비드는 그 격변의 중심에 있지 않았으며, 2026년 1월 17일 아부다비의 한 병원에서 86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