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티스트 출신으로 인터내셔널 총평의회에 있다가 코뮌 문제로 물러난 런던의 의자 조각공
1809년 엑서터에서 태어나 런던 쇼디치에서 의자 조각공으로 이름을 얻었다. 차티즘을 지지했고, 1858년 마지막 차티스트 대회를 공동 주재했으며 개혁동맹의 평의회와 집행부에 있었다. 1864년 세인트마틴 홀 창립 집회에서 임시 위원회에 뽑혀 1871년까지 인터내셔널 총평의회 위원으로 있었고, 1868년 브뤼셀 대회와 1869년 바젤 대회에 대의원으로 나가 토지 국유화와 국가의 대규모 경작을 주장했다. 1871년 파리 코뮌을 두고 흔들리다가, 마르크스가 쓴 『프랑스 내전』에 자기 서명이 들어간 일을 두고 다툰 끝에 인터내셔널에서 탈퇴했다. 1870년 첫 런던 교육위원회에 노동자로는 혼자 당선되었고, 1874·1880년 하원 선거에서는 떨어졌다. 1897년에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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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1858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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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1871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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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1869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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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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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1890
런던 교육위원회런던 교육위원회 위원
교육
경력 연표
- 1858마지막 차티스트 대회 공동 의장
- 1864–1871인터내셔널 총평의회 위원
- 1870런던 교육위원회 위원 당선
- 1871코뮌 문제로 인터내셔널 탈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