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르의 가까운 동지로 7월 왕정의 내무장관과 제3공화정 초기 외무장관을 지낸 자유주의 정치가·문필가
1797년 파리에서 나폴레옹의 시종장 아버지와 레뮈자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복고 왕정 아래 자유주의 언론인으로 일했고, 1830년 7월 칙령에 맞선 언론인 항의문에 서명했다. 그해 오트가론 도 하원의원이 되어 1848년까지 의석을 지켰다. 티에르의 동지로 1840년 내무장관을 지냈다. 제2공화정에서도 의원으로 뽑혀 공화국이 굳어지는 것을 반대한 옛 정당들과 함께 투표했다. 1851년 12월 2일 쿠데타 때 대통령 해임 결의에 서명한 뒤 프랑스를 떠나야 했고, 제정기에는 철학사를 썼다. 끝내 공화국 지지를 밝혀 1871~1873년 티에르 정부의 외무장관을 지냈다.
다른 이름: 샤를 프랑수아 마리 드 레뮈자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30–1848오트가론 도 하원의원
- 1840내무장관,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 1848–1851오트가론 도 제헌의회·입법의회 의원
- 1871–1873외무장관
- 1873–1875오트가론 도 하원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