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전 우리는 운명과의 약속을 맺었고, 이제 그 서약을 실현할 시간이 왔습니다. 한밤중, 세계가 잠든 그 시간에 인도는 생명과 자유를 향해 깨어날 것입니다.」(1947년 8월 14일 독립 전야 연설)
인도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1947년 독립과 함께 초대 총리에 취임하여 1964년 사망할 때까지 인도를 이끌었다. 의회민주주의와 세속주의, 계획경제를 인도 국가의 기초로 삼았으며, 대외적으로는 냉전의 두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비동맹 노선을 개척했다. 1954년 티토와의 공동성명에서 '비동맹'을 국제정치 용어로 처음 규정했고, 1956년 브리유니 선언과 1961년 베오그라드 회의를 통해 비동맹운동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1962년 중·인도 국경전쟁의 패배로 국내적 위신이 흔들렸으나, 사후에도 인도 공화국의 설계자로 추앙받았다.
“어떤 역사라도 살아남는다면, 인류 문명의 종말을 함께 초래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 딴은 버마의 교사와 관료 출신 외교관으로, 탈식민화와 국제 협상이 중심이 된 냉전기의 유엔을 이끈 제3대 사무총장이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그는 존 F. 케네디와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호소와 제안을 보내 소련 선박의 항로 전환과 쿠바 미사일 철수를 연결하는 출구를 제시했고, 이후 쿠바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와 검증 문제를 논의했다. 그의 중재는 핵전쟁의 위험을 낮췄지만, 유엔의 조용한 외교는 초강대국 중심의 위기 서술에서 오래도록 과소평가되었다. 그는 콩고 평화유지 작전과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협상도 추진하며 국제기구의 도덕적 책임과 강대국 정치 사이의 긴장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