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인도

3 명

해당 인물

마나벤드라 나트 로이

মানবেন্দ্র নাথ রায়
비소련 혁명가 인도 인도 1887–1954 ○ 심장마비

레닌과 식민지 혁명을 논쟁한 인도 마르크스주의자

“당신은 정말 젊군요! 나는 동방에서 온 백발의 현자를 기대했는데.” — 1920년 크렘린에서 로이를 처음 만난 레닌이 27세의 인도 혁명가에게 건넨 첫마디.

벵골 출신 마르크스주의자. 1920년 코민테른에서 식민지 문제로 레닌과 논쟁했고, 멕시코 공산당과 인도 공산당 창립을 주도했다. 제명 후 영국에서 6년간 투옥, 말년에 급진적 인본주의로 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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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7멕시코 사회당 창립 참여 (이후 멕시코 공산당으로 전환)
  • 1919멕시코 공산당 창당 — 러시아 밖 최초의 공산당
  • 1920제2차 코민테른 대회에서 식민지 문제 보충 테제 제출, 레닌과 논쟁
  • 1920타슈켄트에서 인도 공산당 창립 주도
  • 1922–1929코민테른 집행위원·상임간부회 위원, 중국 문제 담당
  • 1929부하린 우익반대파 가담으로 코민테른에서 제명
  • 1931–1936영국 식민당국에 체포되어 반역죄로 6년간 투옥
  • 1940–1948급진민주당 창당, 반파시스트 노선 견지
  • 1947『신인본주의』 선언 발표 — 급진적 인본주의 철학 정립

자와할랄 네루

जवाहरलाल नेहरू
외국 정치가 인도 인도 1889–1964 ○ 심근경색

비동맹운동을 공동 창설한 인도의 초대 총리

「오랜 세월 전 우리는 운명과의 약속을 맺었고, 이제 그 서약을 실현할 시간이 왔습니다. 한밤중, 세계가 잠든 그 시간에 인도는 생명과 자유를 향해 깨어날 것입니다.」(1947년 8월 14일 독립 전야 연설)

인도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1947년 독립과 함께 초대 총리에 취임하여 1964년 사망할 때까지 인도를 이끌었다. 의회민주주의와 세속주의, 계획경제를 인도 국가의 기초로 삼았으며, 대외적으로는 냉전의 두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비동맹 노선을 개척했다. 1954년 티토와의 공동성명에서 '비동맹'을 국제정치 용어로 처음 규정했고, 1956년 브리유니 선언과 1961년 베오그라드 회의를 통해 비동맹운동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1962년 중·인도 국경전쟁의 패배로 국내적 위신이 흔들렸으나, 사후에도 인도 공화국의 설계자로 추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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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 1936–37인도 국민회의 의장
  • 1946–1947인도 과도정부 총리
  • 1947–1964인도 총리
  • 1947–1964외무장관 (겸임)

우 딴

ဦးသန့်
외국 정치가 버마 버마족 1909–1974 ○ 자연사

초강대국의 핵 대치를 중재한 조용한 외교관

“어떤 역사라도 살아남는다면, 인류 문명의 종말을 함께 초래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 딴은 버마의 교사와 관료 출신 외교관으로, 탈식민화와 국제 협상이 중심이 된 냉전기의 유엔을 이끈 제3대 사무총장이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그는 존 F. 케네디니키타 흐루쇼프에게 호소와 제안을 보내 소련 선박의 항로 전환과 쿠바 미사일 철수를 연결하는 출구를 제시했고, 이후 쿠바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와 검증 문제를 논의했다. 그의 중재는 핵전쟁의 위험을 낮췄지만, 유엔의 조용한 외교는 초강대국 중심의 위기 서술에서 오래도록 과소평가되었다. 그는 콩고 평화유지 작전과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협상도 추진하며 국제기구의 도덕적 책임과 강대국 정치 사이의 긴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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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8–1931판타나우 국립고등학교 교사·교장
  • 1948버마 방송국 국장
  • 1951–1957버마 총리실 비서
  • 1955반둥 회의 사무국장
  • 1957–1961유엔 주재 버마 상임대표
  • 1961유엔 콩고위원회 의장
  • 1961–1971유엔 사무총장
  • 1971–1974애들라이 스티븐슨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