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체코

8 명

해당 인물

루드비크 스보보다

Ludvík Svoboda
사회주의권 지도자 체코 체코 1895–1979 ○ 자연사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른 국민영웅에서 프라하의 봄의 뜻밖의 보루가 된 군인 대통령

1968년 8월 모스크바에서 브레즈네프가 '노동자-농민 정부'를 세우라 요구하자, 스보보다는 두브체크와 개혁파 지도부를 석방하지 않으면 내 머리에 총알을 박겠다고 응수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서 탈영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합류한 1차대전 참전자로, 2차대전에서는 소련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조직해 동부전선을 누비며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1948년 국방장관으로서 '군대는 인민을 향해 진군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며 공산당의 2월 쿠데타를 방조했으나, 곧 숙청당해 1950년대를 수감과 은둔으로 보냈다. 1968년 3월 두브체크의 추천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프라하의 봄 개혁에 동의했고, 8월 바르샤바조약군 침공 직후 모스크바에서 브레즈네프 앞에서 권총 자살을 위협하며 납치된 개혁파 지도부의 석방을 이끌어냈다. 이후 정상화 국면에서 신문 검열에 협력하고 두브체크 교체를 방조하는 등 소극적 순응으로 일관하다 1975년 헌법 조항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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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1920체코슬로바키아 군단: 즈보로프·바흐마치 전투, 시베리아 철수
  • 1921–1939체코슬로바키아군 장교; 뮌헨 위기 당시 대대장
  • 1939–1945폴란드·소련에서 체코슬로바키아군 편성; 제1군단장으로 키예프·두클라 해방
  • 1945–1950체코슬로바키아 국방장관
  • 1950–1951부총리 겸 체육위원장으로 전보
  • 1951–1954숙청: 체포·수감 후 석방, 고향 협동조합에서 노동
  • 1954–1959클레멘트 고트발트 군사대학 총장
  • 1968–1975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클레멘트 고트발트

Klement Gottwald
사회주의권 지도자 체코 체코 1896–1953 ○ 자연사

1948년 2월 쿠데타로 체코슬로바키아를 인민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시킨 공산당 지도자

우리는 체코슬로바키아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이며 우리 최고 사령부는 모스크바다. 우리는 배우러 모스크바에 간다. 무엇을 배우는지 아는가? 우리는 러시아 볼셰비키에게서 당신들의 목을 어떻게 비트는지 배우러 모스크바에 간다. ― 1929년 12월 21일 체코슬로바키아 국회 첫 연설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 창립자 중 한 사람으로, 1929년부터 사망까지 당을 이끌었다. 코민테른 서기(1935–1943)로서 인민전선 노선에 참여했으며, 전후 총리(1946–1948)와 대통령(1948–1953)을 지내며 국가 주도 산업화와 농업 집단화를 추진했다. 1948년 2월 위기에서 비공산당 각료들의 사퇴를 이용해 헌법적 절차 안에서 공산당 주도 정부를 구성함으로써 체코슬로바키아를 소비에트형 인민민주주의 국가로 전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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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 창립 참여
  • 1929–1945KSČ 중앙위원회 서기장
  • 1935–1943코민테른 서기
  • 1938–1945모스크바 망명,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 저항 지도
  • 1945–1946체코슬로바키아 부총리
  • 1946–1948체코슬로바키아 총리
  • 1948–1953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루돌프 슬란스키

Rudolf Slánský
사회주의권 지도자 체코 체코 1901–1952 ✕ 처형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서기장으로 1948년 2월 쿠데타를 조직하고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한 실무 책임자

1947년 9월 코민포름 회의에서 슬란스키는 모스크바의 권력 장악 지령을 받고 프라하로 돌아왔다. '국제 무대에서처럼 국내 전선에서도 공세로 전환했다' — 1948년 2월 쿠데타의 서막이었다.

1929년 KSČ 중앙위원·정치국원이 된 후 고트발트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대전 중 모스크바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방송을 이끌고 1944년 슬로바키아 민족봉기에 참가했다. 1945~1951년 서기장으로서 당 기구를 장악해 1948년 2월 쿠데타의 실무를 지휘, 체코슬로바키아를 소비에트형 인민민주주의 국가로 전환시켰다. 1951년 체포되어 1952년 반국가 음모·트로츠키주의·티토주의·시오니즘 혐의로 사형당했으며, 이 재판은 동구권 숙청 중 가장 뚜렷한 반유대주의 성격을 띠었다. 1963년 사법 복권, 1968년 당적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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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 입당
  • 1924KSČ 기관지 《루데 프라보》 편집자
  • 1927–1928KSČ 오스트라바 지역당 서기
  • 1928–1929KSČ 클라드노 지역당 서기
  • 1929KSČ 중앙위원·정치국원 선출
  • 1935–1938체코슬로바키아 국회의원
  • 1939–1945모스크바 망명, 체코슬로바키아 라디오 방송 주필, 슬로바키아 민족봉기 참가
  • 1945–1951KSČ 중앙위원회 서기장
  • 1948인민민병대 사령관 겸직, 2월 쿠데타 실무 지휘
  • 1951체코슬로바키아 부총리
사회주의권 지도자 체코 체코 1904–1975 ↓ 실각 1968

스탈린주의 정통을 고수하다 프라하의 봄 개혁운동에 의해 축출된 체코슬로바키아 지도자

1965년 메이데이 집회 직후 즉석 인터뷰에서 "고기가 곧 나올 겁니다!"(Maso bude vbrzku!)라고 선언했다. 국민들은 "그 '곧'이라는 곳이 도대체 어디냐"고 물으며 온 나라가 웃었다.

1921년 KSČ 창립 당원이자 자물쇠공 출신으로, 슬란스키 숙청 과정에서 당 기구를 타고 부상했으며, 고트발트 사후 제1서기(1953–1968)와 대통령(1957–1968)을 겸직하며 15년간 체코슬로바키아를 통치했다. 스탈린주의 정통을 고수하며 중앙계획·검열을 강화하고 1950년대 정치재판 청산을 거부했으나, 경제 침체와 슬로바키아의 불만이 누적되며 정권 기반이 잠식되었다. 1968년 1월 두브체크에게 당직을 내주며 강제 사임함으로써 개혁의 최대 장애물이 제거되었고, 이는 곧바로 프라하의 봄을 촉발했다. 1971년 정상화 국면에서 중앙위원으로 재선되었으나 실질적 영향력은 없었고, 1975년 프라하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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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 창립 당원으로 입당
  • 1937–1938KSČ 호도닌 지역위원회 서기
  • 1941–1945나치 점령 하 지하활동으로 체포, 마우트하우젠 수용소 수감
  • 1945–1951KSČ 프라하 시당 제1서기
  • 1951–1953KSČ 정치서기국 위원 겸 부총리
  • 1953–1968KSČ 중앙위원회 제1서기
  • 1957–1968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 1971정상화 국면 KSČ 중앙위원 재선

알렉산드르 두브체크

Alexander Dubček
사회주의권 개혁 지도자 체코 슬로바키아 1921–1992 ↓ 실각 1969

인간의 얼굴을 꿈꾸다 산림청으로 보내진 사람

1968년 8월 21일 새벽, 소련군 장교들이 두브체크의 사무실로 들이닥쳐 전화선을 끊고 수갑을 채웠다. 한 장교가 말했다: '필요하다면 체코인 백만 명을 죽여서라도 반혁명을 끝장낼 것이다.'

프라하의 봄을 이끈 슬로바키아 개혁공산주의자. 소련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1968년 검열 폐지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추진했으나, 바르샤바조약군 침공 후 실각해 산림청 직원으로 15년을 보냈다. 1989년 하벨과 함께 발코니에 다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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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38소련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성장
  • 1944슬로바키아 민족봉기 참가
  • 1963–68슬로바키아 당 제1서기
  • 1968.1체코슬로바키아 당 제1서기: 프라하의 봄
  • 1968.8모스크바로 연행, 의정서 서명 강요
  • 1969–70해임, 터키 대사를 거쳐 산림청으로
  • 1989.12연방의회 의장으로 복귀

올드르지흐 체르니크

Oldřich Černík
사회주의권 개혁 지도자 체코 체코 1921–1994 ○ 교통사고 후 사망

프라하의 봄을 이끈 광부 출신 기술관료 총리

1968년 7월, 「2000개의 말」 선언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체르니크는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선언은 결코 반혁명의 표현이 아니라 당의 한 분파의 의견일 뿐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개혁공산주의 총리(1968~1970). 광산 노동자 출신 기술관료로, 연료·에너지 장관과 국가계획위원회 의장을 거쳐 1968년 4월 행동강령을 채택한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총리로 임명되었다. 두브체크와 함께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고, 8월 침공 후 소련에 연행되어 모스크바 의정서에 서명했다. 귀국 후 개혁 지속을 약속했으나, 후사크 체제 아래 1970년 해임·제명되고 20년간 연구소 부소장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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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오스트라바 광산 노동자 가정에서 출생, 선반공으로 일함
  • 1945~49KSČ 입당, 오스트라바 고등광산학교 졸업
  • 1956~60KSČ 중앙위원회 서기
  • 1960~63연료·에너지 장관
  • 1963~68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회 의장
  • 1968.4~70.1체코슬로바키아 총리: 행동강령, 프라하의 봄, 모스크바 의정서
  • 1970~71해임, KSČ 제명
  • 1970~89프라하 연구소 경제 부소장

얀 팔라흐

Jan Palach
비소련 혁명가 체코 체코 1948–1969 ✕ 분신

소련 점령에 항거해 스스로 불붙인 카렐대 학생

의사들이 생명을 구하려 애쓰는 병상에서 팔라흐는 말했다: '내 행동은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동료 학생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말고 살아서 투쟁하라고 당부했다.

1969년 1월 16일, 바르샤바조약군 점령 5개월 만에 체코 사회가 체념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바츨라프 광장에서 분신한 카렐대학교 학생. 검열 폐지와 소련군 기관지 발행 중단을 요구하며 자신을 '인간횃불 1호'라 부른 그는 사흘 만에 사망했다. 20만 명이 운집한 장례식은 정상화 직전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항의였고, 20년 후 그의 기일 시위는 벨벳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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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8프라하 출생, 브셰타티에서 성장
  • 1963–66멜니크 김나지움
  • 1966–68프라하 경제대학
  • 1968.9카렐대학교 철학부로 편입
  • 1968.11학생 파업 참가
  • 1969.1.16바츨라프 광장 분신
  • 1969.1.1920세로 사망
외국 정치가 체코 체코인 1941– ○ 정계 은퇴 후 활동

제3의 길을 거부한 시장개혁 정치가

“우리는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은 시장경제를 원한다.”

바츨라프 클라우스는 체코의 경제학자이자 정치가로, 1989년 이후 국가사회주의 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급진적 경로를 대표했다. 그는 시민민주당을 세우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분리를 이끈 뒤 체코 총리와 대통령을 지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이 내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의 정치적 자유에는 공감했지만 경제적 제3의 길은 거부했으며, 이 입장은 전환기의 ‘수식어 없는 시장경제’와 이후 체코 보수주의의 핵심 구호가 되었다. 대통령으로서는 유럽 통합과 기후변화 정책을 비판하며 주권과 시장의 우위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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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3프라하 경제대학교 졸업
  • 1971–1986체코슬로바키아 국립은행 근무
  • 1987–1989체코슬로바키아 과학아카데미 예측연구소 분석가
  • 1989–1991체코슬로바키아 재무장관
  • 1991–2002시민민주당 초대 의장
  • 1992–1998체코 총리
  • 1998–2002체코 하원 의장
  • 2003–2013체코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