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정전협정 서명을 거부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1950년 7월 트루먼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세로 전환, 힘겨운 적진을 뚫고 승리의 북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합니다.'
이승만은 조선 말기 독립협회 활동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 후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독립운동가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제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반공을 국시로 삼고 국가보안법 제정 등 강력한 반공 체제를 구축했으며, 38도선 이북으로의 무력 북진통일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한국전쟁 중에도 정전을 거부하고 1953년 반공 포로 2만 7천 명을 일방적으로 석방해 휴전 교섭을 흔들었으며, 정전협정 서명을 끝내 거부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으로 하야한 뒤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객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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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6–1898독립협회·협성회 활동, 《매일신문》 주필
- 1899–1904한성감옥 투옥, 옥중 《독립정신》 집필
- 1905–1910도미, 프린스턴대 정치학 박사
- 1919–1925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 1948제헌국회의장,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당선
- 1948–1960대한민국 제1·2·3대 대통령,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으로 장기집권
- 1960–19654·19혁명으로 하야, 하와이 망명
평남건준 선전부장을 지낸 언론인
1945년 평양에서 평남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장으로 활동했으며, 소련군 제25군 진주 후 이 위원회가 평남인민정치위원회로 재편되는 과정에 참여했다. 그가 소련 군정과 직접 접촉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한재덕(韓載德, 1911–1970)은 평안남도 성천 출신의 언론인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중앙일보 도쿄 특파원과 평양매일신문 기자로 일했고, 1933년 시인 임화와 함께 문예지 집단을 냈다가 폐간당했다. 1945년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의 선전부장을 맡았으며, 이 위원회가 소련군의 요구로 평남인민정치위원회로 재편될 때 참여했다. 같은 해 평양민보 편집국장을 지냈고, 1946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해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과 민주조선 주필을 맡았다. 조선중앙통신 국내보도부장을 지낸 뒤 1953년 일본에 파견되었고, 1959년 대한민국으로 넘어가 공산권문제연구소에서 반공 연구자·저술가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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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시인 임화와 함께 문예지 집단 간행
- 일제 강점기조선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평양매일신문 기자
- 1945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장, 평양민보 편집국장
- 1946조선공산당 입당,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 민주조선 주필
- 1953조선중앙통신 국내보도부장을 지낸 뒤 일본에 파견
- 1959대한민국으로 넘어가 공산권문제연구소에서 활동
식민지 군 경력과 전쟁 초기 지휘 실패를 함께 지닌 장성
1950년 6월 28일 새벽, 그의 명령으로 한강교가 폭파되었다.
채병덕은 일본군 장교 경력을 거쳐 해방 뒤 대한민국 군대의 창설과 확대에 참여한 장성이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육군참모총장으로서 전방 경계와 지휘를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고, 서울 철수 과정의 한강교 조기 폭파 명령에도 책임이 있었다. 개전 직후 해임된 그는 경남 방어전선에 투입되었고, 7월 하동 전투에서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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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일본군 포병 장교 임관
- 1940–1945일본군 포공학교 교관, 육군 조병창 공장장
- 1946군사영어학교 졸업, 남조선국방경비대 제1연대장
- 1948통위부 참모총장, 국방부 합동참모총장
- 1949제2대 육군총참모장
- 1950.04–06.30제4대 육군총참모장 겸 육해공군총사령관
- 1950.06.30–07.27경남 지구 편성군 사령관, 하동 전투에서 전사